챔버스 교수의 장례식을 마치고, 일부는 점심을 먹으러 함께 이동했고, 나는 피곤하여 그냥 집으로 향했다.
사실 비가 안온다면 오랫만에 강변에 나가고 싶었는데, 비가 쏟아졌다.
알링턴에 있는 작은 천주교회.
거기서 돌아오는 길에 매클레인 스타벅스 (예전 우리집 근처에 있던)에 들러서 Cinammon Dolce Latte 그란데, 휩크림 듬뿍 올려달라고 주문을 하고. 눈앞에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음반, 비지스 것이 있길래, 수록곡 들여다보고 한장 샀다. 매사추세츠도 있고, I started a joke 도 있고. 좋아. 이렇게 비오고 낙엽지는 가을, 장례식 날 딱 맞는 음반이군.
모든게 Joke 같쟎아... 사는것도.
그래서 조크같은 이야기 두가지를 적어본다. (문득 생각나서)
동창
나는 지금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을 못하고, 그가 중학교 동창인지 고등학교 동창인지도 잘 분별을 못하겠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친구의 키가 작은 편이었고, 아주 똑똑하게 생겼으며, 애국조회 시간의 스타였다는 것이다. 애국조회 시간의 스타란 --- 무슨 상을 많이 받는 학생을 의미한다. 교내외 각종 행사에서 상을 받아서 월요일 애국조회 시간에 교단에 불려 나가서 상받는 아이들. ---> 나하고는 수만 광년 떨어져 있던 친구들. 하하하. 나는 그가 중학교 동창인지 고등학교 동창인지도 기억을 못한다...
어느해, 남편의 사회 생활과 관련, 가족모임이 있을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피크닉을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과 관련된 모임에 가는것을 예나 지금이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축이다. 아무개의 부인으로 불리는, 그런 내 모습에 내가 불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피크닉이 내게 즐거울 리는 없었고, 그냥 뭐 눈에 안띄는 곳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그 어리버리하고 불편한 상황속에서 내 이름을 부른 것이다.
"너 아무개 아니니?"
"네...제...제가 아무갠데...요....?"
"나..나..*** 이야. 너하고 나하고 동창인데!"
그 친구 역시 남편의 가족 자격으로 그 피크닉에 온것이었고, 뭐 가족사항 맞춰보니 내 남편이 선배이고 그 친구 남편이 후배인 입장이었다. 내 남편은 우리 오빠보다도 한살이 많다. 하하하. 아 그러니까, 가족관계 맞춰서 살펴보니 관계가 약간 불편해진다. 한쪽은 뭐 선배 부인이고, 한쪽은 후배 부인이고. 게다가 한쪽은 나를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내 쪽에서는 그 친구의 이름도 잘 기억을 못하고 어리버리했던 거다. (내 머릿속의 그 친구의 기억은, 그냥 나하고는 상관없이 동떨어진, 상 많이 받던 수재. 모범생. 장래가 촉망되는 여학생.)
그날 두 동창의 조우는 그냥 그렇게 어리버리하게 지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친구와 내가 공유하는것이 별로 없었던거다.
그 친구가 내 이름을 선명하게 기억한 이유는, 원래 그 친구가 머리가 좋아서 사람을 기억을 잘 하는것이리라. 도대체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개성없는 학생이었을 뿐이니.
친구
대학 다닐때, 영자신문사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 대학생 영자신문사 학생기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모 대학의 편집장을 알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사람 진짜 미남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그리고 표정이 밝고 온화했다. 영어도 진짜 잘했다. 그 대학 학생기자들 중에는 외교관 자녀로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전공이 무슨 천문기상인가 뭔가. 영어 잘하는 과학자. 오오~~ (이거 너무 노출시키면 그 인물이 누군지 견적이 나올 판인데...)
뭐 인물 좋고 성격좋고 그러니까 모두들 그를 좋아할 만 했다. 이 경우 나는 아예 집적거리지를 않는 편이다. 나는 원래 스타한테 반감이 있어서, 인기있는 사람 근처에 안가는 편이다. 그렇지만 '내추럴 파워'라는게 있다. 하하하. 가만히 앉아서 눈길 안보내도 올 사람은 오게 되어있는거다. (그땐 그랬었다. 모두들 순수했다...아니, 내가 순진했다...) 정말 엮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엮일거라고 믿는 신비주의적 무지몽매함을 견지하고 있었다. 나의 신비주의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 잘생긴 분께서 내게 다가왔다.
캬~ 눈만 마주쳐도 좋았쥐~
(난 또 얼마나 각을 잡았겠냐구... 무심한척, 시크해보이면서, 동시에 그 잘생기신 분을 잡아당겨 보기 위해서...) 에잇, 나는 왜 그때 그 남루한 청바지와 다 떨어진 싸구려 운동화밖에 없었던걸까? 지금 같았으면 멋도 부리고 그랬을텐데 말이지.
모임에서 만나면 제법 불꽃튀는 토론도 했었고, (이게 사실 토론을 위한 토론이기보다는, 피차 서로 낚기 위한 불꽃이었겠지...)
한번,
두번,
신총에서 만나가지고 또 그 쓸데없는 '진지한 토론'을 했었다.
나는 지금 그것을 [쓸데없는 토론]이라고 규정짓는데, 그 시간에 플라톤이 어쩌구를 떠들것이 아니라 "야 우리 사귈까?" "그래 사귀자" 이런 소리를 했어야 하는 것이었겠지. 그 말 못하고 딴소리만 피차 한거쟎아...
세번째 만나기로 했던날, 내가 바람을 맞았다 (젠장...)
그때는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다.
나중에 그 잘생기신분이 학교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가지고 피치 못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또 약속을 잡자고 했는데, 나는 그냥 끊어버렸다. 잘생기신 분들은 인기도 많으실테니, 뭐 나말고도 매력있는 여자친구들 많으실테고... 게다가 남녀공학 다니시는 분이시니, 뭐 내가 대수겠는가. 그후에 그 잘생기신 분이 그 시절의 문화였던, 학보 보내기 (학보가 나오면 서로 그걸 우편으로 부쳐주었다)를 통해서 내게 연락을 취했는데, 나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리고, 끝났다. (그당시 나는 여자대학생이었고, 남학생이 여학생을 바람 맞힌다는 것은 삼족을 멸하고(?) 부관참시(?) 를 해야 마땅한 중범죄라고 상상하고 있었고, 바람 맞은 주제에 또 그 사람을 만난다는 일은 온세상 여자의 자존심을 모두 던져버리는 중범죄라고 믿었던거다. 나는 왜 그런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내가 편집장이 되었을때, 그는 이미 졸업을 하고 떠난 후였고,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몇줄로 정리를 해버리지만, 나도 쓰리고 그랬다. 아쉽고, 쓰리고,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한숨 짓고. 그가 보냈던 미소가 달콤하게 여겨지고. 그랬다.
세월이 흘렀다.
몇해전에, 한국에 갔을때, 그냥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그 사람과 다시 조우했다.
뭐, 그냥, 내가 사람들한테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키크고 잘생긴 신사분이 무척 반갑게 나를 맞으셨다. 그래서 나도 원래 내 스타일대로, 미국식으로 악수 청하면서 "반갑습니다" 인사를 했는데, 이 분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소식 많이 들었습니다...저 아무갭니다. 저 기억 못하시겠어요?" 이러는거다.
뭔소리랴?
그래서 내가 그 신사분 손을 잡은채로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기억 저 너머의 어떤 남학생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남학생을 끄집어낸 순간 모든 기억들이 일제히 되돌아왔다. 세상에...나는 그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니...
그래가지고 나는 다시한번 그와 힘있게 악수를 하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그리고 그 조우는 그렇게 끝났다. (쳇, 옛날에 신촌에서 두번 데이트 할때도 손끝한번 스치지 못했었는데 말이쥐...그땐 왜 그렇게 한심하게 촌스러웠던걸까?)
한때, 나는 그분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분도 어쩌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그분이 나의 행적을 알게 된것은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 모양이다. 뭐 친구가 플로리다의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몇명 안되니까, 뭐 우연하게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기억해내고 있었고, 그래서 나를 발견했을때 금세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고 있었고.
그때, 그분과 지나치면서, 나는 인간 감정의 속절없음을 절감했다.
내가 한때 특별하게 좋아하던 한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데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해내지도 못하고 피상적으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참 허무하고 쓸쓸한 일이다.
사람의 감정은 이렇게 허망하고 쓸쓸맞은 것이다.
또 한편 생각하면, 이런 사실들이 내게 위안을 준다.
가슴이 아픈가?
세월이 지나면 내가 왜 가슴이 아팠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나는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할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사실들이 내게 위안을 준다.
아무도, 나를 가슴아프게 할 수 없을것이다.
내가 이 모든것을 잊을때.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나는 잊으면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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