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버스 교수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슬픔은 별도로 치고 (나는 슬퍼할 시간도 없는것 같다), 나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가 책임지던 대학원과정 한과목과 ESL 한과정을 가르칠 강사를 학기 중간에 갑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레이첼이 빠져나가서 내가 일주일만에 훌륭한 선생님 데려다놓고, 막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에, 아니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냐구~ ).
일단, 수퍼파워 닥터리, 보이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여, 챔버스 박사 돌아가셨다는 연락받고 두시간 만에 그의 대학원 수업을 책임져줄 공인된 강사를 충원했고 (놀랍지 않은가...) 이제 그의 ESL수업을 메꿔줄 강사를 찾아야 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이력서를 뒤져 연락을 취해보니, 이미 어디선가에서 자리를 잡고 모두들 일을 하고 있었다. 오고 싶은데 시간이 안맞는 사람도 있고. 대략 낭패.
그리고, 어제는, 예정에 있던대로 스미소니안으로 향했다. 교육을 받아야 해서. (내가 지금 강사 찾아서 뛰어다녀야하는데 한가롭게 스미소니안이라니...)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가서 교육을 받고 뮤지엄 카페에서 사과파이와 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한 여자가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다. 합석좀 하자고.
솔직히 귀챦았다. 합석하면 대화를 해줘야 하고, 나는 지금 해골이 복잡해서 누구하고 한가롭게 떠들 기분이 아닌데...하지만, (내가 원래 사회성이 발달된 사람이라) 싫어도 몇마디 예의로 주고 받다보니, 얘기가 재미가 있는거라. 상대는 알고보니 스탠포드 사회학 석사.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던 사람. 민주당 지지자. 나하고 사상과 이념과 철학이 두말할것없이 통하는. 마치 또다른 나를 보는듯한. 그분은 나보다 열살쯤 많아 보이는 키크고 잘생긴 여성이었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지금은 남편 직장때문에 워싱턴에 와서 그냥 쉬고 있다고.
그래서, 인간적으로 그 사람과 대화가 즐거워져서, 내 신세한탄을 좀 했다. 챔버스 교수가 갑자기 떠나버려서 내가 낭패라는. 그도 진심으로 내 상황을 딱해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교육받으러 와서 만나야 할 사이이므로 후일을 기약하며 기분좋게, 가볍게 헤어졌다. 나는 그에게 내 명함을 한장 줬고, 그이는 쪽지에 연락처를 적어서 내게 줬다. 나는 온김에 뮤지엄 구경이나 하면서 시름을 달래고. 대책없지만, 어떻게 되겠지 뭐... 이러면서.
오늘 아침에도 아무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강사 후보가 연락을 해줘야 하는데....). 챔버스 교수의 목요일 수업을 내가 땜빵을 하기위해서 출근을 하면서, 차가 신호대기로 서 있을때, 내가 속이 답답해서, 혼자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하느님. 나 이러다가 챔버스 이어서 천국 가겠소...챔버스 데려갔으면 그런 사람 또 내게 보내주셔야 나도 살 것 아닙니까. 제발 오늘 강사 한명, 아주 유능한 분으로 보내주세요. 하느님, 귀가 있으면 내 말이 들리실겁니다. 나 지금 심각합니다. 강사 하나만 보내주세요!"
그런데, 수업중 커피 브레이크를 주고 잠시 오피스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
받았지.
저쪽이 뭐라뭐라하는데 "어제 내친구 수잔이 스미소니안에서 널 만났다고 하더라. 너 ESL강사 필요하다며? 나 대학에서 ESL 가르치는 강사야. 내가 시간이 되면 수업을 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그래서 상대방을 체크해보니, 조지타운대에서 언어학 박사 코스 마치고 지금 논문 쓰는 단계라고 한다. 이미 주변 대학에서 ESL코스와 undergraduate 교양 코스도 가르치고 있었다. 게다가 챔버스 박사가 전직 변호사 경력이 있는데, 이분도 전직 변호사 경력이 있다는거다. 오마이 갓. 정말 챔버스같은 사람을 보내셨나보네!
그이는 내일 이력서와 성적증명서를 가지고 내 오피스에 오기로 했다.
별 문제 없으면 바로 다음주부터 수업 시작이다. 이미 여러군데서 비슷한 코스를 가르쳤으므로 문제 될 것도 없다. 수잔과는 30년지기인데, 수잔이 나에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설명을 했다고, 수잔을 믿기 때문에 나를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어제 수잔과 점심을 먹었을 뿐이지만, 수잔은 나하고 영혼과 생각이 통하는 듯한 인상을 나도 받았었다. 수잔이 친구를 정말로 불러다 줄지는 나도 전혀 예상도 못했었지...
스미소니안에서 한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으며 한시간정도 시간을 보낸 낯선 사람이
내게 이런 도움을 줄 줄을 나는 전혀 예상도, 기대도 하지 못했는데.
하느님한테 정말로 귀가 있어서 내가 소리소리 지르면 - 귀따갑고 시끄러워서 문제 해결해주시는가보다.
지금 창밖을 내다보는데, 하늘에 커다란 귀가 하나 있는것 같다. 하하하.
박물관이 사람도 소개시켜주는 역할도 하는군. 강사 문제가 금방 해결돼서 다행이네.
답글삭제@King - 2010/10/22 06:53
답글삭제나는 이런 생각을 해.
삶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때, 정답이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니야. 정답은 어디에나 있는거야.
사람이 어떤 어려운 문제에 골몰할때, 예를 들어서 난해한 수학문제와 몇시간씩 씨름하는 상황일때, 때로는 책상에서 벗어나서 산책을 한다던가, 드러누워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던가 그런 '일탈'도 필요해.
돌아와 보면, 어려워보이던 수학문제가 가볍게 해결이 되는 수도 있지.
그래서, 내가 일이 아무리 바빠도, 박물관으로 가는거지. 가서 박물관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작품도 다시 보고, 아주 엉뚱한 일을 하는거야.
그리고 내 문제 상황으로 돌아오면, 일이 해결이 되어 있기도 하지. 원래 인간의 일이라는것이 그래. 노력해서 되는 일이 있고, 때를 기다려야 할 일이 있고, 혹은 '섭리'가 작용해야 할 일이 있는거지. 우리는 맹인이 코끼리 만지듯이 더듬더듬 '인생이 뭘까' 사색하면서 해석해 나갈 뿐이야.
나는 저 너머의 섭리에 의지하는 것이지. 내 상상력의 범주를 벗어난 곳에서 찬연히 빛나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보는거야. 잠깐 살다가 죽는거니까, 아둥바둥하지는 않겠어. 최선을 다하되, 나방같이 파닥거리지는 않을거야. 뭐, 잘 되겠지...
박물관은...언제 가도 즐겁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