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직업군 두가지를 고르라면
1) 성직자 --> 종교적인 지도자
2) 상담자
이 두가지이다.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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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가지 직업군의 공통점은 (내가 생각하기에)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깊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장 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때가 종종 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발생해서, 내가 곰곰 생각해보다가, 그것이 내 삶에서 되풀이되는 어떤 패턴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집에서는 내가 성격이 아주 개차반이지만, 사회 생활 할 때는 생존 본능 때문에 내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으로 살고 있다. (자기 성질 다 드러내면, 사회에서 밥벌이 하고 살기 힘들다). 나는 집중력이 강하거나 혹은 집중하지 않으면 뭐 한가지 제대로 못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일것이다. 멀티태스킹이 안되는 사람이다. 한번에 한가지만 한다. 가령 어떤 모임에서 사람과 대화를 나눌때도 나는 집중을 하는 편이다. 깊이있게 진지하게 들어준다. 뭔가 미진하다 싶으면 질문을 던져가면서 끝까지 파헤쳐본다.
가령, 며칠전 모임에서 한 내 또래 여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이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 것을 견디기가 얼마나 힘이든지, 하루하루 견디기가 얼마나 벅찬 일인지 설명을 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는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은 나의 과오일수도 있다, "뭐가, 뭐가 당신을 그렇게 괴롭히는가?" 내가 진지하게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자, 그 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고통을 생생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도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그이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뭐 내가 해줄수 있는것이 그것밖에 더 있는가?)
그리고나서 뭐, 다른 것 좀 하다가 모임이 파했다. 나는 피곤해서 얼른 자리를 빠져나가려는데, 좀전의 그분이 쪽지를 갖고 내게 다가왔다. 쪽지에는 그이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가 고운 필체로 적혀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그동안 나 너무 외로웠어. 나한테 연락해줘.... 너한테 이야기를 더 해주고 싶어." 나는 그 여자의 눈을 들여다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가 실수를 저질렀음을 통감했다.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어, 아무것도.
책임을 지지도 못 할 거면서 왜 남의 일은 물어본거야?
...
난 그자리에서 그냥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으로 내 할일을 다 하는거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판단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들어줄거라고 판단하는거다. 하지만, 나는 기운이 없다. 다른 사람을 위로해줄 에너지가 없다. (인정 할 것은 인정하자.) 나는 그냥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툭툭 털고 돌아 설 뿐인데.
아무튼 나는 지금 무척 바쁘고, 기운이 없고, 할일은 널렸고 그렇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눌 여력이 별로 없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차일피일 이메일 보내는 것을 미룰것이다. 그리고, 따로 그 사람을 만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럴 여력이 없고, 그이를 별도로 만나서 위로해줄 능력도 없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직자나 상담자로는 살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런 일은 성직자가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내 삶을 돌아보니, 이런 식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던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대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도 충분히 고통스럽게 이 삶을 견디는 중이므로.) 나는 에너지의 여신도 아니고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그냥 매일 지쳐 쓰러져 잠이드는 고통받는 영혼일뿐이다. 내 곁모양이 기운이 넘친다고 남보다 에너지가 몇곱절 더 있는것은 아니다. 게다가 고기도 많이 안먹고...기운도 없다.
저녁때 대학원생 한명을 차에 태워가지고 돌아오다가 잠시 이런 이야기를 내 제자에게 신세한탄 하듯 했더니, 그 학생이 자기도 나한테 당했다며 깔깔댔다. 그 학생은 언젠가 선생인 내가 그를 무척 특별히 아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심, 내게 어떤 기대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자신을 특별히 생각하고 아껴준다는 기분좋은 느낌. 그런데 그 후에 보니까 뭐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이 쌀쌀맞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배신감을 느꼈는데, 그 후에는 그냥 원래 저런 사람인가보다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오해 한것 같다고. (내 학생이 일찌감치 나의 본질을 파악했던 모양이다.)
나 원래, 눈 마주칠때는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고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해준다. 그 현장에 최선을 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돌아서면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여력이 없다. 순간순간 초파리처럼 살아가는것도 같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기운이 없기때문에 내게 주어진 현실에 집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내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깊이 들여다보고 함께 슬퍼해주는 것으로 위로 받았다면, 거기서 끝나야 한다. 나는 더이상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나의 행동에 속고 만다. 내가 성직자나 상담자쯤으로 태어났을거라고 상상하고 기대하고 ...그래서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때 또다시 상처받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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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Anonymous - 2010/10/16 01:00
답글삭제Compassion fatigue 라는 개념이 있는데, 학문적으로 깊이 아는 것은 아니고, 대강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타적인 마음을 갖는것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만큼 정신적으로 소모가 크지요. (그러면 병 생기는거지요.)
난, 그렇게 내 몸 상할 정도로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은 아니지요. (그걸 제가 알아요.)
얼마전에 자살의 방법으로 세상과 작별하셨다는 '희망 전도사'라는 분. 사고 난 후에 궁금해서 어떤 분인가 웹으로 좀 찾아봤는데,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이 분, 자기 몸 안 돌보고 희망, 웃음 그런거 몸아프고 가슴아프고 마음아픈 사람들한테 나눠주다가 정말 생병 들었겠다...아주 골병 들게 남들을 챙겼겠구나. 허허 웃으면서 남들 통사정 다 들어주고, 고민 상담해주고, 그거 허구헌날 해주는데 생병 안 나겠냐구... 건강을 돌보셨어야지... (진심으로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측면에서, 가끔 성직자가 이상한 추문이나 해괴한 소문의 주인공이 될때 그럴때, 문득 '저 사람 스트레스 엄청 심했나보다' 그럽니다. 인간적으로 연민 같은것을 느낍니다. 사람 사는거 다 비슷하고, 하늘아래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있는것도 아닌데, 수퍼스타처럼 행동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대상이 되다보면 그 빛만큼 음지같은 우울이나 스트레스는 얼마나 격심할것인가. 이상행동을 할 만도 하지...
다행히 나는 만인이 우러르는 수퍼스타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고, 나는 나 편한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욕먹는것은 그다지 신경을 안써요.
지금도, '아무개가 뭐라고 욕하더라' 이런 소리 자주 들어요. 가령, 제 수업 방식이 맘에 안들어서 학교 때려치고 싶어하는 학생이라면 제 등뒤에서 제 흉보는것이 자연스러운것이니까, 이럴때 그런 소리가 들려오면 '그럴수도 있지' 그러고 맙니다.
사회생활하다보면 매일 얼굴 마주치고 웃던 사람도 등뒤에서 제 흉 볼수 있거든요. 누가 그런 얘기 전해줘도 역시 웃고 맙니다. '잠시 기분이 나쁘면 욕하고 흉볼수도 있지. 하지만 나쁜 맘은 아닐거야.' (나도 화딱지 나면 육두문자 나갈수 있는거니까.)
시집살이 한 십년 착실히 견디면, '욕'따위는 파리소리만큼도 신경이 안쓰이게 되지요. 앵앵거리다 마는거니까.
정말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저 사람이 내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내가 그럴 의사가 없을때, 나의 작음에 내가 화가 나는거지요.
@Anonymous - 2010/10/16 23:48
답글삭제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책 볼때 책 내용을 정확히 알려고 집중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매카니즘이거든요. 그냥 정확히 듣고자 하는 제스처일뿐, 어떤 면에서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요. 나는 사람한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 짚어보니까,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의 이야기'였던 것도 같아요.
이야기.
그래서, 나는 상담해주는 사람으로는 적합하지 못한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상담이 재미가 없어요. 하하하. (나야말로 정말 나를 상담해줄 사람이 필요한 입장이라~ )
@Anonymous - 2010/10/16 23:52
답글삭제늘 인간관계가 그모양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서 그냥 지나가고 말아요. 뭐 치료사나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면 '모욕감'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말 조차도 하고 싶지도 않은거죠 뭐.
2년쯤 전에는 검은 제복의 성직자님께서 뭐 저하고 대화가 잘 통한다고 자꾸 연구실에 찾아오시더니만 뭐 결국 인간적인 고민 사항들을 자꾸만 말씀을 하셔서 '하느님 믿는 분이 저한테 이러지 마시고 하느님한테 하소연을 하시면 좋겠네요' 대충 이렇게 마무리. (사실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상담도 해드리고 그랬어야 했는데, 듣기가 싫더라구요. 그렇게 박대하고 나니까, 아 성직자라는 직업인들이 내면적인 고충이 많은데 보통사람한테 털어놓기도 힘들고 괴롭겠다...알겠더라구요. 성직자도 자기네 신 외에 이야기 들어줄 '인간의 귀'가 필요하대요. 뭐, 인간이니까 그렇겠다 했죠.) 하지만, 나야말로 기진맥진이라서 나야말로 누가 내 얘기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그러면 좋겠다 이거지요 뭐. 그런데, 나는 타인한테 별로 기대 안하거든요. 스스로 해결 할 뿐. 남한테 기대하는 순간, 더욱 깊은 슬픔으로 빠져드는거지. 아 나란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웃은죄' 밖에 없다는 싯귀도 있는데... (나는 점점 내가 스무살때 썼던 소설속의 여주인공하고 똑같아지는것 같기도 하다...표정이 사라진 여자.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과 눈도 안 마주치고 그냥 살아가는) :) 농담~~
@RedFox - 2010/10/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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