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두기..
챔버스 교수의 수업을, 당장 이번주에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프로그램 책임자이니까, 누가 떠나건 죽건 그 뒷감당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내가 초년부터 온갖 것을 다 겪어요~ (할렐루야~)
나 이 관록으로 미국 최대의 티솔 프로그램 디렉터로 가도 되겠다. 뭐든 해결 가능하니까.
일단 수습을 위해서 챔박사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가 우리곁을 훌쩍 떠났다는 것을 알리고, 이번주 진도 어딘가 물으니 내 학생이 대답대신 소리내어 운다. 우는 놈한테 목요일 수업은 내가 진행할테니 수업준비 단단히 해가지고 오라고 일렀다.
챔교수 수업을 다음주 부터 맡게될 선생을 확정지었다.
이제 그의 ESL 수업을 대신 할 선생을 역시 결정해야 한다.
서류도 챙겨야 하고.
(이런것이,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내가 보따리 챙겨가지고 한숨을 지으며 오피스를 나서려는데, 자리 지키고 있던 조교가, "집에 가셔서 매운 국물에 소주나 잡수시고 주무십시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딱해요. 도꼬다이 인것은 좋은데, 책임이 너무 무거워요 내가.
그래서, 내가. 지금, 스트레스 확 받아서, 앞머리 확 올리고 이마 다 드러내고 앉아서 혼자 신세한탄중. (소주가 없어요 소주가~ )

내가 왜 이마 확 뒤집어 올렸냐 하면,
이거, 국가 기밀인데,
이거 천기누설하면 안되는 사항인데
스트레스 받아서...
옛날에 플로리다에 있을때, 통계학 조교하던 중국인 남학생이 나한테 통계학 가르쳐주다 말고 왈라 왈라 왈라, 뭐라뭐라 했는데, 요지는,
"너 내가 가만보니 니 그 이마가 보통 이마가 아니다. 너 그 이마가 대륙의 황제가 될 이마다. 너 중국 오지마. 네가 중국오면 중국이 한국인의 통치를 받게 될거다. 너, 관상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너를 시기하고 해칠지도 모르니, 이마를 꼭꼭 숨겨라. 앞머리 내려서 가리고 다니고, 함부로 드러내지 마라. 넌 때가 되면 대륙의 황제가 될거야. 제발 중국에 오지마. 딴 대륙에서 놀아라 응?"
아 그래서, 그 녀석의 농담을 잊지 않고, 내가 앞머리를 내려서 이마를 살짝 가리고 다니는 중인데, 가끔 너무 열 받으면 머리가 뜨끈거려서 이마 확 다 뒤집어 까고 앉아있는 것이지. 흠... 지금 이 모든 스트레스가 대륙의 황제가 되기 위한 전초전 쯤인 것으로 접수하고, 오늘도 살아보자.
근데...사랑하는 짱께야... 사실은 내 대륙은, 이 세상에 없어. 난 원래 별나라 공주야. 흐흐흐. 지금 지구에 연수 나온거야.
사실 일요일 오후부터 나는 집에서 끙끙 앓았다.
이틀 사이에 3파운드 빠졌다.
어제 월요일에도 일어나기 싫은데 억지로 일어나서 오후에야 학교에 갔었다.
학교에서도 비몽사몽 하고 있다가 챔버스 교수가 나왔길래, 그냥 기운이 없어서 모처럼 기운없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챔교수와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눈 거다.
평소에, 나는 챔교수를 잘 안쳐다본다.
챔교수는 꼭 어린 소년처럼 내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듯 내 오피스 앞을 맴돌고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맴돌다 풀이 죽곤 했다.
내가 방긋 웃으면서 인사를 날려주면 기뻐했고
내가 바쁘고 스트레스 받아서 그냥 인사도 없이 지나칠때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어제 나는, 아마도 가장, 가장, 상냥하고 부드럽게 그를 대했던 것 같다.
그는 내 오피스에서 30분쯤 나와 대화를 나눴다.
내가 평소처럼 무뚝뚝하고, 뚱하게 그를 지나쳤다면 나는 두고두고 나를 원망할 뻔 했다.
어제 나는 그에게 이상하리만큼 달콤하고 상냥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고
아마도 그의 아내 외에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나 였으리라.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밤에도 이메일로 인사를 보냈으니까.
그는 늘 겁에 질린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소년처럼 천사의 손에 이끌려 하늘로 갔을 것이다.
그는 지금 천국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의 그의 숙제는 끝난 것이다.
아, 내가 어제 그를 기쁘게 해 준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내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햇살이 빛나던 날, 그와 함께 웃었던 기억을 그에게 선사한것에 대해 안도하게 된다.
챔버스 교수,
그는 내게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의 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가을 햇살이 비치는 오후,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동료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함께 11월에 캐나다에 여행 갈 이야기를 나눴으리라
그리고 푹 자고 일어난 그는 새벽에 갑작스럽게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사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떠난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가 (부러울 정도로...)
나는 지구상에서 대륙의 황제가 될 운명을 타고 났다는 그 돌팔이 중국인 관상가 녀석의 꾀임에 넘어가서 황제의 꿈이나 꾸면서 이 삶을 견디다가, 나 역시 때가 되면 훌쩍 그렇게 떠나고 싶다.
*** ***
그런데, 사람이란게, 그렇다. (뭐 살다가 죽는거지 별 수 없는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거지).
사람이, 초상이 나서 울다가도 깔깔 웃고 그런다. 비정하다고? 아니, 그래야 살 수 있는거다.
전에 우리 아빠도 심장마비로 말 한마디 안하시고 급히 가버리셨는데
온가족이 혼비백산하여 엉엉 울다가도 울다 울다 지치면 기가 막혀서 농담하고 킥킥 웃고 그랬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 수 있는거지.
열두시 30분에 ESL 수업이 끝났는데, 학생들에게 챔버스 교수의 별세 소식을 내가 간략하게 알리려다 말고, 조교하고 서서 킥킥 웃고 말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내가 생각해도 '농담' 이나 '거짓말' 같은거다. 실감이 안 나는거다. 조교가 먼저 킥킥 웃었고, 나도 기가 막혀서 웃고 말았다. (이런것을 '기가 막히다'고 하는거다.) 조교가 이어서 한 말, "우리 교수님(--->죽은 챔버스 말고, 살아있는 나) 너무 불쌍해...강사 하나 나가서 고생고생해서 좋은 선생님 하나 데려다 놓고 한숨 돌린다 했더니, 이번엔 교수가 죽었어... 우리 교수님 딱해서 우짜노." 하 하 하. 내 원 참 기가 막혀서.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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