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5일 화요일

왕눈이의 애정과 심술

Frans De Waal 의 동물행동학 책을 읽다보니, 평소에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왕눈이의 행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전에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지금은 그것을 보는 '눈'이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때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색하고 관찰하고 그래야 하는것이리라.

 

왕눈이의 애정

 

왕눈이가 우리 식구와 함께 지낸지도 6년이 넘었다. 2004년 3월에 입양했으니까.  6년 6개월을 함께 산 셈이다.  내가 왕눈이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할 당시 그의 나이는 대략 3세로 추정되었다.  (버려지거나 잃어버린 개는 수의사가 대충 짐작하는 나이이다. 정보가 부족하니까.)  그러니까 왕선생은 얼추 만 열살 가까이 되는 개이다.  개가 스무살까지도 산다지만...이제는 어린 개라고 할수는 없다. 옛날에 우리 할머니를 비롯한 시골 어르신들은 집안에 개를 오래 키우는 것을 내켜하지 않으셨다. 짐승이 나이를 먹으면 '흉물/요물'이 된다고, 몇해 키우다가 '잡아 먹는것'을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이셨다.

 

내가 볼때 우리 왕선생...완전 고참이다.  내가 부르면 냉큼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색하여 결정하는 눈치다. 심심하면 오고, 귀챦으면 '왜 부르니?' 묻듯 멀리서 쳐다보기만 한다. 어느때는 내가 아무리 불러서 내 옷방이라던가 집안 구석 어딘가에 꼭꼭 숨어서 나오지도 않고 들은척도 안한다. 내가 찾아가보면 쓱 쳐다보고 꼬리만 흔들고 만다. 쳇.

 

왕눈이가 아무리 귀챦아도 꼭 달려오는 경우가 있다.

 

내가 방에 앉아서 왕눈아 왕눈아! 부르는데 왕눈이가 대꾸도 안하고 못들은 척 한다.

나는 왕눈이르 부르다 말고 잉잉 우는 소리를 낸다.

  "왕눈아, 왕눈아 엉엉! 왕눈아 엉엉!"

나는 짐짓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시늉을 한다.

 

이러면 왕눈이가 냅다 뛰어오는데, 내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으니까, 내 얼굴이 안보이고, 나하고 눈을 마주칠수가 없다.  그러면 왕눈이는 와서 내 다리를 혀로 싹싹 핥는다거나 코로 문질러댄다. (자기가 왔다 이거지.)  그래도 내가 모르는척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소리내어 징징거리면 왕눈이는 내 주위를 돌면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급기야는 서글프게 짖어댄다. 자기가 왔으니까 그만 울고 좀 쳐다보라 이거다.   그러다가 내가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고 왕눈이에게 웃어주면, 왕눈이도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한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그런다 (그것이 좋다는 표시이다.)

 

프란스 드 왈을 비롯한 동물 행동 학자들은 이런 행동을 단순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다른 생명체의 기분을 읽고, 그에 반응하고, 뭔가 위로하려는 동작은 진화단계에서도 매우 고급 단계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전에는 이런 현상들이 외면되어 왔는데 (비과학적으로 보이니까), 요즘 동물과 인간의 감성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도 제법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한다. 동물을 통해서 인간을, 인간을 통해서 동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동물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어떠하건, 그들과 우리는 이 지구에서 공생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왕눈이의 심술

 

 

게으른 왕눈이를 불러도 단번에 달려오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위에 밝힌 바 있다.  내가 우는 시늉을 하면 냉큼 달려와 나를 위로하려 애쓴다는 이야기도 적었다.

 

왕눈이를 냉큼 달려오게 하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그것은, 내가 집안에서 왕눈이를 안 부르고 찬홍이를 부르는 것이다.  왕눈이는 자신의 이름과 찬홍이의 이름을 구별할줄 안다.

 

내가 왕눈아! 하고 부르면 왕눈이는 안온다

내가 찬홍아! 하고 부르면 왕눈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내 품에 안긴다.

 

왕눈이는 내가 '찬홍아!'하고 부를때 그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내가 찬홍이를 부르면 찬홍이가 내게 온다. 그러므로 왕눈이가 찬홍이보다 먼저 달려와 내 품에 안겨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왕눈이의 것이니까. '엄마'가 왕눈이가 아닌 다른 '애들'을 안아 주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용서가 안된다. 찬홍이가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빨리 엄마품에 가서 방어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침대에 누워서 찬홍이를 부르면, 어느 구석에 박혀있던 왕눈이가 어느틈에 달려와 그 높은 침대에 점프하여 올라온다. 이때 찬홍이가 다가오면 왕눈이는 내 침대가 '요새'라도 된다는 듯 으르렁대면서 찬홍이가 침대에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그 으르렁대는 꼴이 가관이라서 왕눈이를 놀려먹기 위해서 가끔 우리는 그런 놀이를 하면서 논다. 찬홍이가 침대 발치로 가면 왕눈이는 그리 뛰고, 찬홍이가 침대 머리쪽으로 오면 또다시 그리 뛰고,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하는 짓이 하도 꼴값이라...찬홍이와 나는 심심하면 이런 장난을 하면서 왕눈이를 놀려먹는다.

 

며칠전에는 내가 거실 바닥에 누운채로 책을 보고 있었다. 거실 중앙에 베게를 갖다 놓고 한가롭게 독서.

무심코 찬홍이를 불러 커피나 좀 내려오라고 말하려는데, 내가 찬홍이 부르는 소리에 왕눈이가 먼저 뛰어온다. 방어를 해야 하므로.

 

그런데 왕눈이로서는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거실 중앙에 누워있는것이다. 찬홍이가 4방 8방 어느쪽에서건 엄마에게 다가올수 있는 구조인것이다. 왕눈이는 찬홍이가 엄마 곁에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내 주위를 뱅뱅 돌면서 방어전을 펼쳐야만 했다. 찬홍이는 왕눈이를 놀려먹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숨었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왕눈이는 숨을 헐떡이며 적을 물리치느라 바쁘다.

 

그렇게 한참 왕눈이를 놀려먹다가 마침내 내가 왕눈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면 그제서야 왕눈이는 안심을 한다. 그렇다고 왕눈이가 찬홍이에게 사납게 구는 것은 아니지만, 찬홍이과 내가 왕눈이를 따돌리고 둘이서만 사이좋게 있는 '꼴'을 못 본다.  왕눈이는 온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해야 안심이 되는 눈치이다. 특히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하지 못하면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서 죽을듯한 태도이다.   왕눈이의 애정이 그토록 애절하므로, 나 역시 왕눈이를 사랑할수밖에 없다.  털투성이 심술쟁이 왕선생.

 

왕눈이를 불러서 한달음게 오게 만들려면

왕눈아! 하고 부르는대신에

'찬홍아!' 하고 부르는 것이다.

'적군'이 그를 강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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