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 동기 유젤을 만났다.
펼쳐두기..
빗속에 가기 싫어서 꾸물대다가 느지막히 도착했는데, 막상 들어서니 학회 행사 담당자중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메릴랜드 대학 박사과정 학생 지쎌라. 지쎌라는 스페인 (카탈로니아) 출신의 여학생인데 석학 마이클 롱 선생의 연구 조교. 메릴랜드 대학이 올해에 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소속 대학원생들이 총 출동이 되었다. 지쎌라가 나를 발견하더니 "유젤이 왔어" 하면서 강당에 앉아있는 유젤을 가리킨다. 유젤은 지쎌라의 애인.
유젤과 나는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공부했고, 지쎌라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나는 일찌감치 공부 마치고 여기 이러고 있고, 유젤도 나와 하루 차이로 논문을 통과시키고 졸업했다. 유젤은 캐나다에서 일년간 포스트닥 코스를 밟고, 터키로 돌아가 교수질을 하고 있다. 유젤은 국비장학생이라서, 국가가 제공한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갚아야만' 자유로와질수 있다. 유젤은 빨리 국가에 대한 의무를 벗어버리고 미국에서 활동하고 싶어 한다. (애인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테니까...)
지셀라는 이쪽 학문 분야의 '대부'님의 총애를 받는 수제자이니까, 학위 받으면 취업이 순조로울 것이다.
대학원 다닐때 좌유젤, 우도안. 아주 똑똑한 두명의 친구가 있었다. 나의 좌유젤을 오늘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내가 너무 분주하고 정신이 없어서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이름을 찾아보았으면 그가 오는 것을 알수 있었을텐데.) 나의 또 한친구 도안은 역시 터키의 국립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두달후엔 결혼식을 한다고 한다. 나는 지난 2년간 모든 Social Network Service 를 모두 해지해버렸기때문에 내 친구들도 내 소식을 알수 없었을것이다. (이 블로그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언라인 통로인데...) 나 역시, 모든것과 인연을 끊고 살아왔다. 유젤을 만나 그를 통해 내 친구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학문의 친구는, 학문의 장에서 이렇게 약속도 없이 만나기도 하고 그런거니까...내가 이 장에 있는한 늙어 꼬부라질때까지 우리는 만날수 있겠지...
유젤은 약간 우울한 입장이라고 한다. 도안은 큼직한 국립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제 곧 결혼도 할것이고, 터키에서 행복한 학자로, 교수로 살아갈것이다. 유젤은 현재 있는 대학이나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루저'라고 느끼는때가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애인이 미국에 있고, 애인과 합류하기가 난감하고 그래서 그런것 같다. 일단 터키에 자리 잡으면 미국에서 자리 잡는 일은 요원해 질 것이고... 자꾸만 멀어져가는 기분이 들 것이고.
나역시, 내가 어느날 거의 모든 네트워크를 차단해 버린 이유도 유젤과 비슷한 우울감 때문이었을것이다. 어쩐지 내가 '루저'같고, 뭐 설명하기 힘든.
그래서 대략 3년만에 유젤과 만나서 마치 난리통에 헤어졌던 친형제를 다시 만난듯 얼싸안고 부비부비 한나절을 함께 붙어서 지냈다. 옛날에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녀석을 응원해주면서 나도 기운이 나고. (친구란 그런거다. 응원해주면서 나도 기운이 나는.)
첨단 연구 방법론 특강이 있었는데, 각자 노트북 열어놓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가동시켜보고 그러는 시간이 있었다. 잠시 짬을 내어 학회장에서 내장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도안에게 이메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우리둘은 여기 함께 있다. 도안 너는 거기서 뭐하니? 너까지 왔으면 삼위일체인데.)
오랫만에 대학원 동기를 만나서, 살아온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옛날에 가졌던 열정과 꿈이 되살아나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요새 얼마나 나태한가. 나 요새 얼마나 딴데 정신팔고 헤메고 있는가. 나 얼마나 게을러졌는가.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나 지금 뭣 하고 있나. 유젤만해도 연구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데, 나는 왜 놀고있나.

유젤은 금요일 오후에 주제발표를 한다. 지셀라는 스승인 마이클 롱 선생과 함께 발표를 한다. 두가지 다 가서 봐야지...프로그램을 보니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 몇몇 한국의 교수님들도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 어느 교수를 만나서, 혹시 그대학에 ...내 친구가 있을텐데...하고 물으니 자신의 제자인데 지금 박사논문 막바지라고 알려주신다. 그 친구가 논문을 잘 완성하기를.
이번 학회 행사가 아주 가까이에서 열리는 중요한 학회 행사이기때문에, 내 수업을 받는 대학원생들에게는 '반드시 참석하고, 참석 리뷰를 써내라'는 숙제를 내 주었다. 교실안에서 백날 떠드는것보다, 큰 학회행사 하나 제대로 보여주고, 큰 물을 보여줘야 시야가 넓어지므로. 한국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터키에서 유럽에서 중동에서 비행기타고 오는 마당인데, 코앞에서 열리는 이런 귀한 행사를 그냥 지나치기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학생들이 내 발표에 보러온다길래 '아이구 이 순진한 양반들아, 맨날 보는 내 발표는 봐서 뭐하노. 나는 볼것 없고, 다른 대학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뭘 하고 노는지 살펴보라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 대학원생들이 '집단적으로' 행사장에 보이니까, 어느 교수가 내 학생에게 묻더라고 한다, "그 학교는 연구가 활발한가보다 무슨 학교냐?"
가끔 그런 학교들 있다. 이름도 별로 안 난 신생 학교인데, 뭐 취업률 백프로라던가, 혹은 뭐 이상하게도 프로그램이 소문이 나가지고 인재가 몰린다거나 아무튼 겉보기에 어줍지 않은데 알찬 학교가 가끔 있다. 뭐....내가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청출어람이니깐, 내 학생들이 모두 나를 능가해가지고 막 굴지의 학교로 가고 그러면 되는것이지. 나중에는 내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국제적인 학술대회 개최하고 그러는것이지. 안되라는 법도 없는거니까...
좀 힘들지만 행사기간동안 빠짐없이 가서 듣고 보고 배우고, 그리고 마지막날 내 발표도 보기좋게 잘 하고 그렇게 마쳐야 할 것 같다. 그냥 주저앉으면 안될것 같다. 나는 아직 청춘이니까.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 옛날에 대학생때, 내가 '영문과' 다닐때, 우리과가 미팅 전선에서 인기가 캡이었다. 한국의 남학생들은 '영문과' 여학생에 대한 어떤 신비감을 갖고 있었던듯 하다. (옛날에는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선생'이라고 하면, 어쩐지 뭐 죄다 줄리아 로버츠나 니콜 키드만 같은 미모일것 같은거다. (그런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프로그램의 대학원생들을 보면 그 망상이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류 심사와 인터뷰를 할 뿐, 용모는 전혀 심사대상이 아닌데 그런데 우리과 학생들은 양귀비의 뺨을 철썩철썩 때릴 정도의 미모들이다. 그래서...내가 내 제자들하고는 절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손해보는 장사이니까. 그 미모에 나만 찌그러지는거지. 오늘 내가 딱 한장만 학생들하고 함께 찍었는데...역시, 난 안돼. 미모로는 얘네들을 이길수가 없어. 공부나 들이파서 들볶는 수 밖에.
내일은 우리과에서 캡, 진짜 최고의 미모의 학생이 올텐데. 그 학생과는 절대 사진을 함께 찍으면 안된다. 그 아우라때문에 나머지는 그냥 찌그러지고마는거다...
* 지팔이, 찬홍이도 유젤 좋아하니까, 일요일에 지/찬 모두 학회 구경가면 유젤, 지쎌라 모두 함께 점심이나 먹으려고~ (P님이 점심값이나 두둑히 보내주면~~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