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9일 금요일

Social Realism (3): Ben Shahn

 

배움을 찬양함

 

 

Book Shop: Hebrew Books, Holy Day Books (책방) 1953

Tempera on Panel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itroit Institute of Art Museum)에서 촬영

 

 

 

 

배움을 찬양함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어머니"에서


 

가장 단순한 것을 배워라! 자기의
시대가 도래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너무 늦은 것이란 없다!
알파벳을 배워라,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우선 그것을 배워라! 꺼릴 것 없다!
시작해라! 당신은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배워라, 난민 수용소에 있는 남자여!
배워라, 감옥에 갇힌 사나이여!
배워라,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이여!
배워라, 나이 육십이 넘은 사람들이여!
학교를 찾아가라, 집없는 자여!
지식을 얻어라, 추위에 떠는 자여!
굶주린 자여,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묻기를 서슴지 말아라, 친구여!
아무것도 믿지 말고
스스로 조사해 보아라!
당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
계산서를 확인해 보아라!
당신이 그 돈을 내야만 한다.
모든 항목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물어보아라, 그것이 어떻게 여기에 끼어들게 되었나?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1931作)

 

위의 그림은 1951년에 그려진 것이고, 브레히트의 글은 1931년작이지만, 어쩐지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처음 이 그림을 만났을때부터 - 저것은, 브레히트의 시와 같구나!  이런 상념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저 그림 이야기를 할때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해야지,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림은, 제목을 안 읽고 그림만 볼경우 Books라는 간판 덕분에 책방 풍경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 책방 문을 열어 젖히고, 한 키가 커보이는 여인이 아이를 왼쪽 가슴에 안고, 숄을 두른채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쩐지 그 여인의 손이 굉장히 커 보입니다. 특히 발에 비교해볼때, 손이 기이하게 커보이지요.  아주 커다란 손입니다. 그리고 쇼윈도우에 적힌 글귀가 아마도 히브리언어로 적힌 것이고 그것을 옮기면, 'Hebrew Books, Holy Day Books' 결국 유태인들의 히브리 경전들을 주로 취급하는 종교서적 책방인듯 합니다.  유태인들에게 그들의 '경'은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얼개이지요.  유태인들이 수천년간 '나라'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인재들을 배출할수 있었던 이유는, 어딜가건 우선 '학교'부터 세우라는 탈무드의 가름침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습니다. 학교, 교육이 우선되는 종족은 살아 남지요.  한국이 일제 식민역사와 참혹한 한국전의 아픈 역사를 딛고 수위안에 드는 경제국가로 성장한 배경도, 한국의 '교육열'을 빼놓고 생각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교육열이 높으면, 대학입시 경쟁이 그토록 치열하겠습니까... 교육이 파행으로 흐르는 면도 부정할수 없지만, 이것이, 무엇보다도 교육에 투자하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라는 본능과도 같은 원칙 때문이겠지요.)

 

 

 

1951년이면, 1945년에 2차 대전이 끝났고,  2차 대전 전후로 유럽에서 나찌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뉴욕에 온 유태인 이민자들이 뉴욕에서 발을 붙이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할 때이겠지요.  1951년이면 한국에서는 625 전쟁이 (제가 어릴땐 '육이오'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한국전쟁'이란 이름을 많이 쓰는군요) 진행되고 있던 때 입니다.  한반도의 사람들이 전쟁의 고통속을 헤멜때, 뉴욕 거리의 유태인들도 척박한 남의 나라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브레히트가 위의 글을 발표한 1931년은 미국이 경제 대공황을 겪고 있던 시기이고,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경제난이 휩쓸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1931년의 경제 공황과 1951년의 뉴욕의 유태인들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시기가 다르지만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의 곤궁한 삶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브레히트도, 벤 샨도 '책'의 '교육'의 '자발적인 공부'를  삶을 살아가는 어떤 해법으로 글에서, 그림에서 제안을 합니다.

 

 

 

오늘, 학교에서 어떤분의 인생상담을 잠시 하게 되었는데요.  가끔 저에게 '지금 공부해도 될런지, 어떤 판단을 하면 좋을지' 두루두루 묻고 싶어하는 분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가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그분과, 내가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진행한 일화라던가, 앞으로의 전망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묻기도 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제가요, 어느날 돌아보니까, 40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무엇을 이뤘나 생각을 곰곰해보니까, 내 손에 쥔 것이라고는 알토란 같은 내 가족, 무조건 나를 지지해주는 내 가족하고...그리고...죽어서 관뚜껑 덮을때까지 나를 따라다닐 내 학위이더군요. 애인은 나를 버려도, 내 학위는 나를 버리지 않아요. 나는 재산을 잃을지라도 내 지식을 잃지는 않아요.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건 말건, 장농속에서 썩히건 말건, 아무튼 내가 공부한 학위는 내가 죽을때 관뚜껑속에 나하고 같이 묻힐거라는거죠."

 

결국, 내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내가 이 지구에 놀러왔다가, 공부한것. 그것이더라구요.  물론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친구'가 남았더라, '애인'이 남았더라, '재산'이 남았더라, '한권의 시집'이 남았더라, 명품 백이 남았더라,  '판검사 자식이 남았더라'  하고 다양하게 자신의 것을 살필수가 있겠는데, 내가 내것을 주판알 튕겨서 계산해보니 남은것이 '내가 공부한것, 내가 배운것'이더란 것이지요. 지금 당장 배를 곯고, 지금 당장 직장을 잃는다해도, 내가 깡으로 버틸수있는 기반이 뭔가 생각해보면, 나는 내 지식을 무기로 다시 전쟁터로 나갈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아, 내가 받은 교육이 나의 삶의 무기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지요.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중요한 무기가 있을수 있지요. 나로서는 나의 지식이 내 무기이지요. 그것이 박사학위인가, 석사학위인가, 학사학위인가, 고등학교 졸업장인가, 그런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내가 지구상에서 똑똑하게, 지혜롭게 살아갈 능력을 키워주는것 그것이 교육의 힘이거든요.  내가 핍박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핍박받는 타인을 돕기위해서라도 나는 영수증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잘못 씌어진 고지서를 보고 따질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브레히트의 시, 제가 종알종알 읊는것중에 또한가지가 있어요 (사실 많지요...)

 

 

임시 야간 숙소

           베르톨트 브레히트


듣건대, 뉴욕
26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 한 귀퉁이에
겨울철이면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동냥을 받아 임시야간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야간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그 책을 내려 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야간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1931년 作)

 

 

사실, 이 시에서 "책을 읽는 친구여, 그 책을 내려 놓지 마라"는 역설인지 아닌지 조금 헛갈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행동력을 상실한채 '글이나 읽는' 것을 비판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갈림길에서도 '책'을 읽으라는 것인지. 개인차원의 구제행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역설하는 싯귀는 오히려, 그럼에도 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임을 드러내고 마는데요.  책을 던지고 행동하라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책을 읽으라는 말씀일까요?  아무튼, 저로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건, 책을 덮건, 우리 양심의 소리에 따라서 행동을 하건 행동을 유보하고 사색을 하건간에 '비판정신'은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비판'은 '무관심'보다는 나은 것이지요.  빈민구제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나, 혹은 '그렇게 해봤자 소용없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나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또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데요 -- 아예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를 거부하거나...마찬가지입니다만. 코헨의 '잔인한 국가-외면하는 대중'에 그런 예가 잘 나와있지요).

 

단 한장의 그림만으로도, 우리는 벤 샨이라는 작가가, 사회의 밑바닥 빈곤층 (당시 유태인이면 사회 하층민입니다)사람의 삶의 한 장면을 통해서 뭔가 강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미국 사실주의 화풍에서도 Social Realist (사회적 사실주의자) 화가로 분류를 하는 것이지요. 미국미술사 책들마다 Social Realism 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책에서  Ben Shahn (1898-1969) 을 이들의 Social Realist 분류표에 끼워 넣는 편입니다.

 

 

 

 

 

 

벤 샨의 두장의 그림 사이에서.

디트로이트 미술관, 2009년 10월 31일

왼편에 책방그림,오를쪽에 살짝 보이는 큼직한 액자가 클라리넷과 호른 그림.

 

 

 

 

도시 서민들의 유희 풍경

Handball (핸드볼), 1939

Gouache on paperboard

2009년 9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촬영

 

 

 

 

 

 

 

해방이란 무엇인가?

 

 

관련 이야기 :  http://americanart.textcube.com/85

Liberation (해방), 1945

Gouache on Board

2009년 9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촬영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http://americanart.textcube.com/196

Franklin Delano Roosevelt,  (30 Jan 1882 - 12 Apr 1945)

1944년 제작

Color Lithographic Poster

 

 

워싱턴 디씨, 국립 초상화 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은 국립 미국 미술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과 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음자 건물의 통로를 따라 다니다 보면 초상화관과 미국미술관을 통과하게 되는 구조이지요. 이 작품은 초상화 미술관의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들이 걸려있는 한켠에 있는 작품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5년에 사망했는데, 이 초상화 포스터 작품은 1944년 작품이군요. 

 

벤 샨은 러시아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이었고,  그 자신 사회주의적인 이념을 갖고 있던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화가들은 죄다 러시아 출신 유태인들이다 라는 농담섞이 설도 있습니다.)  그는 경제 암흑기에  강력한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을 펼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1930년대 1940년대에 걸쳐서 강력한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의 여러가지 미술 관련 사업에 참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위의 초상화 포스터속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아버지와 같이 인자하고 믿음직하게 그려져 있지요.

 

 

광부의 아내

 

 

 

Wives of Miners (광부의 아내들), 1947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제 사진파일을 실수로 지워버려서...엉엉...언라인에서 빌려왔습니다.)

 

1947년 3월 25일 일리노이주의 남부 Centralia 의 광산에서 폭파사고로 광부 142명이 매몰되는데 그중 31명이 구조되고 111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의 참상을 그린 벤샨의 작품중에, 남겨진 가족에 촛점이 맞춰진 것입니다.  아기를 안은채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도 있고, 깍지낀 손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여인도 그려져 있습니다. 문밖의 하얀 마당에는 검은 옷의 사나이 두명이 보입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머리위에, 선반같은 것이 있고, 선반에 대충 걸린 옷가지는, 어쩌면 매몰된 광부가 남기고 간 유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꾹다문 입, 강하게 깍지낀 두손.  그것이 이들이 가진 '전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각예술의 시각화

 

Composition for Clarinets and Tin Horn, 1951

Tempera on Panel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itroit Institute of Art Museum)에서 촬영

 

 

벤샨의 그림중에는 악기, 음악을 소재로 한 것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요, 그는 시각예술 작품속에 청각예술적 요소들, 소재들을 도입시키고 싶었던걸까?  이런 상상을 혼자 해 본적이 있습니다.  이런 악기 그림을 보면,  우리 상상속에 어떤 음악이 흐르지요.  우리의 상상력의 영역까지 그가 닿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런에 이 그림속에 두주먹을 얼굴에 기댄 이 사람 --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는 얼굴을 상상할수 있지요. 그것도 어쩐지 주먹의 표정으로 - 그가 고뇌에 찬 표정일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지요?  우리는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사람의 움추린 어깨, 꽉 쥔 주먹, 이런것들을 통해서 이 그림속의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듯 인상을 쓰고 앉아있는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참 신기하죠?

 

주먹쥔 손을 통해, 그려지지도 않은 사람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는가하면

그려진 악기를 통해서 그 악기 소리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림을 보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상상력의 주인은 관객이고

벤 샨은, 벤 샨의 '회화 (시각적 예술 장치)'가 그것을 유도해내는거죠.

 

 

 

 

 

사람들

Six (여섯), 1952

Tempera on Linen stretched over Plywood

2010년 1월 23일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촬영

 

 

저는 이 6인 (여섯) 그림의 배경이 궁금 합니다. 여기 함께 앉아 있는 여섯명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것입니다.  당시의 어떤 사회적 사건의 주인공들일지도 모르고요.  사연이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마땅히 이 그림을 설명해줄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차후에 자료가 발견되면 이야기를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사람들의 주먹, 손을 유심히 보는 것만으로 지나치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의 삼단계: 늑대 --> 사자 --> 개

 

 

After Titian (티티안 따라하기) 1959

Tempera on Fiberboard

136 x 77.3 cm

2009년 12월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티티안 (Titian, c.1485-1576)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기의 화가입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 중 티티안의 영향을 받은 이가 다수입니다.  그러면 티티안이 무슨 그림을 그렸길래 티티안을 따라 그려본 것일까요?

 

http://en.wikipedia.org/wiki/Allegory_of_Prudence

 

그림을 위에 링크된 위키피디아 페이지에서 빌려왔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티티안은 '사려 (prudence)'의 우화를 위의 그림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세 사람의 얼굴과 세가지 동물의 얼굴이 나오는데요, 오른편에서부터 보면, 유년기에는 늑대, 장년기는 사자, 노년기는 개에 비유 되었습니다.

 

티티안의 세가지 얼굴에서 노인의 얼굴이 티티안이고 가운데는 아들, 오른쪽은 사촌이라고 합니다.  벤 샨의 그림은 61세가 된 벤 샨, 노년의 벤 샨은 이를 드러낸채 웃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벤샨은 아직 이가 나지도 않은것처럼 보입니다.  티티안의 그림에서는 오른쪽, 유년기의 늑대의 이빨이 보이는데, 벤 샨의 유년기의 늑대는 이빨이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쪽이 노년기인가 고민을 좀 했는데, 머리카락을 보고서야 유년기 노년기를 확실히 구분할수 있었지요).  티티안의 그림에서는 왼편, 노년기에 이빨 빠진 개가 그려져 있는데, 벤 샨의 노년기는 이를 드러낸채 웃고 있는 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61세의 벤 샨에게 노년은 이빨빠진 힘없는 시기가 아니었을겁니다.  세상을 살아본 노년을 맞이하는 화가가 돌아보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이빨이 나지도 않는 어린 늑대 혹은 어린 강아지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송곳니조차 드러낼 필요도 없던 순수의 시대.  성년이 되어 세상과 겨뤄보고 파도를 겪은 그는 노년을 맞이하면서 삶에 대한 여유와 느긋함과, 미소지을수 있는 정신적 풍요를 찾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티티안에게 노년이 이빨빠진 늙은 개의 양순함이었다면,

벤 샨에게 노년은 권력을 가져본 자의 한가로움, 느긋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티티안과 벤 샨 그림에서 가장 현격한 차이가 나는 곳은 어디일까요?  저는 벤 샨 그림의 '손'에서 그 차이를 찾고 싶습니다. 벤 샨의 그림에는 깍지 낀 큼직한 손이 그려져 있지요?

 

 

 

 

 

손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위에 제가 미술관에서 사진찍어온 작품들중에서

 1. 배움을 찬양함

 2. 루즈벨트 대통령 초상화 포스터

 3. 광부의 아내들

 4. 클라리넷과 틴 혼의 구성

 5. 여섯

 6. 티티안 따라하기

 

 

작품들의 공통점으로 들 수 있을것을 저는 '커다란 손'에서 찾습니다.  제가 구경한 벤 샨의 그림들에서는 기이하게 '손'이 과장되게 그려져 있어요.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 초상화에는 '대중'을 상징하는 '손들'이 그려져 있지요.  이 그림의 손들은 리베라의 디트로이트 미술관 벽화 (http://americanart.textcube.com/150 ) 를 연상시킵니다.

 

 

http://fs.textcube.com/blog/1/13644/attach/XLqmAQGN5t.jpg

 

제가 썼던 페이지에서 사진을 끌어다 놨는데요.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벽화에서 제게 인상깊었던 것이 저 거대한 손들이었습니다. 주먹을 쥐었거나, 뭔가 쥐고 있거나 혹은 펼친, 다양한 사람의 손들.  리베라는 남쪽, 북쪽 벽화의 중앙 상단을 거대한 손들로 장식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마친 이후에 리베라가 뉴욕의 록펠러 센터의 벽화 작업을 하러가는데, 그때 벤 샨이 록펠러 센터 벽화 작업에 합류를 하여 리베라의 작업을 돕게 됩니다. 벤 샨 역시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여러가지 벽화 작업을 이끌기도 했고요.  그러한 대형 벽화 작업에 리베라의 영향이 있었지요.  글쎄요, 벤샨의 '커다란 손'들이 반드시 리베라 그림의 영향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벤 샨이 그려낸 '손'들의 의미는 리베라의 의도와 흡사한듯 해 보입니다.  리베라의 벽화에서 '손'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상징이었다고 할수 있거든요. 

 

손 - 도구

손 - 노동

손 - 창조

손 - 책을 들고

손 - 아기를 안고

손 - 고뇌하고

손 - 기도하고

 

사실 우리들은, 저같은 보통사람은 '얼굴'에 신경을 쓰고, 얼굴에 화장을 하고, 얼굴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하고, 얼굴로 어떤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지만, 의외로 우리의 '손'이 우리의 얼굴보다 더 많은 표정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벤 샨의 그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특히 깍지 낀 손들을 잘 보셔요.

 

광부의 아내가 깍지낀 손은

(1) 어쩔지 몰라 고민하는것 같기도 하고요

(2) 기도하는 것 같기도 해요

(3) 마음을 단단히 잡기 위한 제스처로 보이기도 하고요

 

여섯사람의 깍지 낀 손들은 어떤 판결 앞에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제스쳐로 보입니다. 인생의 삼단계를 그린 '티티안 따라하기' 그림의 깍지 낀 손은 '신중함'을 상징하는 장치 같아요. 

 

어떤가요? 손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지요?

 

 

 

어느 사회주의 사실주의 화가의 영광의 세월

 

Ben Shahn (1898-1969)은 1898년 러시아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1906년 온가족이 미국의 뉴욕으로 이민을 하여 정착하게 됩니다. 그는 석판화 기술을 익히기도 했고, 한때는 뉴욕대학에서 생물학 공부를 하기도 했었는데, 후에 National Academy of Design 등 미술 학교로 가서 미술 수업을 연마하게 됩니다. 유럽등지를 여행하며 당시의 미술 사조에 눈을 뜨기도 하거니와 유럽의 미술을 익히기도 했는데, 그는 유럽의 미술을 익힌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만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지요.  일찌감치 좌익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돌린 그는 사회 비판적인 작품 Sacco and Venzetti (1932) 사건을 일련의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화단의 주목을 받으며 그의 이름을 일찌감치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이 사건은 1920년에 있었던 일로 이탈리아 이민자 였던 두명의 사나이가 온당치 못한 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한 일로, 벤 샨은 미국 기성 세대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에 문제의 작품 이미지를 빌려다 올렸습니다. 이 작품은 벽화로도 제작되었는데요, 관속에 누워있는 두명의 사나이가 문제의 사코와 벤제티이고, 그의 주변에 서있는 세명의 사나이가 당대에 재판과정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이라고 합니다.  두명의 시민이 억울한 사형을 당할때, 이를 방치한 지식인들의 '표상'이지요.

 

 

 

http://www.usc.edu/schools/annenberg/asc/projects/comm544/library/images/367.jpg

The Passion of Sacco and Venzetti (사코와 벤제티의 수난), 1931-1932

Tempera

7x4 feet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소장

 

 

 

 

1932년 이 출세작을 시작으로, 벤 샨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 딜 정책을 지지하고, 리베라의 벽화 작업에 동참을 하기도 하면서 1969년 사망할때까지 영광의 한 세상을 삽니다. 다채로운 미술 활동및, 저술, 강의까지 하면서 당대의 영예를 누렸지요. 사회주의 사실주의 화가로서 미국에서 당대의 영광을 생존시 누릴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한 알이지요?

 

벤 샨의 예를 봐도 그렇고, '사회주의 사실주의' 하면 대개는 '사회주의 (social)'라는 말에서 러시아식 빨갱이 사상을 연상할수도 있겠지만,  미국 화단에서 보였던 '사회주의' 사실주의 운동은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선'에서 대개 잠잠해진 편 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의미의 '사회주의'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이를 '미국식 사회주의'라고도 정리를 하곤 하는데,  프링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식의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지요.  난세에, 국가 주도의, 국민 복지를 위한, 노동자를 위한, 그런 미국식 사회주의.

 

제가 수집한 그림을 중심으로한 벤 샨의 페이지를 대충 이쯤에서 정리하겠습니다. 시라큐즈 대학에도  벽화로 존재 한다는 위 작품을 제 눈으로 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습니다.  훗날 혹시 벤 샨의 문제 작을 볼 기회가 생기면 그때 이 페이지를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 1월 29. RedFox

 

 

 

 

 

 

 

 

 

 

 

 

 

 

 

 

 

 

 

 

 

 

댓글 5개:

  1. 브레히트의 '임시 야간 숙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군요. '책을 내려놓지 말라'는 것이 '실천'과 '행동'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겠다는 RedFox님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저는 제목에서 읽히는 '임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깨어있는 정신과 비판정신에 대한 독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혼의 양식을 구하는 일은 임시일 수가 없으니까요. 오랜 역사 속에서 책을 통해 전해지고 학습하게 된 수 많은 정신과 영혼들은 때론 '임시'와 '일시적'인 현상으로 행동의 취사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행위들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뿌리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여쭙는 질문인데요. 그림을 보면서 제목과 시대, 작가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정확한 그림보기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림을 그림으로서만 보는 행위는 한계를 지니게 되는 걸까요.



    '음악'은 작곡가와 시대배경을 알지 못해도 선율이 전해주는 감성적인 부분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소통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림 그 자체로만 소통하는 경우는 쉽지 않은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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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행복한 자유인 - 2010/01/14 15:18
    자유인님



    제목과 작품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 아주 '중대한' 실마리이기 때문에 자유인님의 의견을 포함하여, 아예 새로운 페이지에서 의논을 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생각을 좀 해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 이야기를 해보지요.



    새 페이지 만들었습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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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예술 작품과 제목과의 관계
    http://americanart.textcube.com/300 Ben Shahn 페이지에서 제 블로그 이웃 친구인 자유인님이(http://yfwp.textcube.com/)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져 주셨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제목과 시대, 작가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정확한 그림보기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림을 그림으로서만 보는 행위는 한계를 지니게 되는 걸까요. '음악'은 작곡가와 시대배경을 알지 못해도 선율이 전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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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벤샨의 유명한 하트 그림을 시립미술관 수장고에서 봤는데... 저 책방 그림 좋네요.. 그나저나.. 미술관순례하는 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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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로 - 2010/01/16 16:04
    책방 그림에 대해서, 할말이 많은데, 오히려 '너무 할말이 많으면 암말두 못해요.' (그래서 페이지 완성을 못하고 뜸을 있는대로...)



    미술관 순례는, 제가 복받은 인생이라, 하필 미술관 지천으로 널린 곳에 사니까, 아까워서, (대개 국립, 공짠데...공짜라면 쥐약인들~) 아까워서, 기를 쓰고. (공짜라서) 헤헤.



    구경좋아하고, 공짜좋아하고, 혼자 내 멋대로 노는데 익숙하니까 (산에 혼자 다니면 곰이 물어갈수도 있고, 강도나 성폭행범등...불안요소가 많아서 힘들쟎아요, 미술관은 안전하죠.) 결국 여러가지 요소가 만난 부분이 '잘난척'할수 있고 '교양인인척 사람 사기치기 좋은' 두루두루 형편에 적합한 ... 부러우시죠? 헤헤헤. 저도 이게 꿈이냐 생시냐 그래요. (부러우면 지는거래요 나로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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