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곤한 하루였다. 퇴근하는 길에 빵집에 들렀는데, 누군가가 "어머! 선생님!" 하면서 작게 외쳤다. 카운터에서 열심히 진열장을 문지르고 있던 아르바이트생. 내 학생이었다. 어찌나 반갑게 나를 맞아주던지... (이 낯선땅에서...나를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 일인지.) 단팥빵도 고르고, 주말에 가족들이 먹을 빵을 이것저것 골랐다. 단팥빵을 보면 지금 한국에 가신 어느 신사가 생각난다. 그 신사의 부인도 생각난다. 그 신사는 단팥빵을 유난히 좋아해서 뜬금없이 '팥빵이 먹고싶다' 하고 생떼를 쓰셨는데, 그때마다 사랑넘치는 그 부인이 차를 몰아 한참을 달려 그 빵집에서 단팥빵을 사다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줬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빵집에 들를때면 단팥빵을 한보따리 사다가 그 댁에 넣어주기도 했었다. 그 부인이 추운 겨울, 한밤중에 빵집으로 달려갈것이 딱해서. 그 신사가 참 미남이셨는데. 아...나를 기억이나 하실런지...
계산을 하는데, 진열장에 있던 작은 스폰지 케이크 하나를 그냥 가져가시라며 빵봉지에 넣어준다. (아이구. 학생한테 신세지면 안되는데, 큰일이다.) 내가 점수도 짜게 줘서 성적도 별로 좋지도 못한데, 그래도 반색을 하니, 내가 막 미안해지려고 그런다. (나도 그 학생이 이쁘고 장하고 그렇지만, 뭐, 원칙대로 점수 줘야 하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튤립을 한단 사왔다. 지난번에 산 장미가 시들어서. 초록, 빨강 꽃단이 물기를 머금고 참 싱싱하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구나. 오늘 일이 많아서 피곤했다. 하지만 내 학생이 나를 반겨줘서 무척 기뻤고, 그리고 내 곁에 튤립 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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