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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과 작품과의 관계
(2) 작품과 작품 주변 배경과의 관계
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위의 두가지 주제 중에서 '작품과 작품 주변 배경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어떤 미술 작품 (혹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때, 작가를 의식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이 합리적인 예술 감상 방법 인 것일까요? 여러가지 의문이 생길수 있고, 저는 그 분야의 학자가 아니므로 전문가적인 소견을 펼칠수는 없습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사색을 해 볼 뿐입니다.
제가 '미국미술 블로그'라고 이름 붙인 블로그를 키우 나가면서, 주로 '미술가' 한사람의 작품들을 주루룩 나열하면서 보는 식으로 페이지들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 페이지에 잡다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가끔 어떤 그룹을 전체적으로 조망할때도 있지만) 주로 개인별 페이지들을 엮어 나갑니다.
개인별 페이지들을 엮을때, 가능하면 창작 시기 순서대로, 혹은 주제별로, 혹은 내 맘 내키는대로 대표적인 것 부터 때려 넣는 식으로, 다양한 순서대로 엮고 있긴 한데요. 순서가 어떠하건, 한 작가의 그림들을 몇 장 줄 세워놓고 살펴보면, 한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나 그 변천을 한 눈에 볼때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세장만 세워 놓으면 전체가 윤곽이 잡히더군요. 대충 감이 잡힌다는 뜻입니다. 물론 한장의 그림에서 그 사람 평생의 족적을 발견할수도 있겠지만, 한장 갖고는 안되죠. 앞뒤를 봐야 그것이 평생의 족적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니까요.
제가, 위에 뭐라고 적었습니까?
(1) 그림 한장에도 작가의 평생의 족적이 다 들어있는 경우가 있더라.
(2) 하지만, 달랑 그림 한장 보고 평생의 족적을 다 봤다고 하면, 그건 사기다. 앞뒤 합쳐서 최소한 세점은 봐줘야 그 그림 한장속에 평생이 들어있는지 아닌지 확인이 가능하다.
우리는 한 작가의 어떤 그림을 보면서, 그 제작 연도를 보면서 혹은 제목이나 그림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살피면서, 그 그림이 한 시대에 갖는 위상을 가늠해볼수 있습니다. 이전 페이지에서 뒤샹의 '샘' 작품 사진을 갖고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다시 그 사진을 끌어다 놓고 보겠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어떤 전시회에 출품 되었을때, 이 친구는 전시장 구경도 못해보고 문전 박대를 당했습니다. 왜냐, 당시 비평가들은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을 안한거죠. 하도 황당해서. 1917년에요. 지금으로부터 대략 1세기 전에요.
1세기 전에 우리나라에 삼일 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 남성용 소변기 뒤집어 놓은 것을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가지고 예술 이랍시고 출품을 한 '정신병자'가 있었다고? (놀랍죠...?...) 한마디로 이 작품은 1917년이라는 그 시간성 속에서 '미친' 혹은 '천재적'인 어떤 사건이 되었을만하죠. 이 작품을 같은 시간속의 다른 '평범하고' 아주 아주 '정상적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이 놈이 얼마나 튀는 놈인지 가늠이 되지요.
그런데요, 이 놈이 이것 한번으로 튀고 사라졌다면 이것은 예술로서 살아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이것을 제작하여 '작품입네'하고 껄떡거리고 나타난 그 뒤샹이라는 작가의 일련의 작품들이 모두 이렇게 상상을 초월한 - 예술에 종을 쳐대는 엉뚱한 것들이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일련의 예술작품들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예술로 받아들일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련의 작품, 그것은 통시성을 가리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주우욱 살펴보니 그 정신병자같은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니고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예술에 살을 찌워가는것 같다"라고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미루어 짐작컨대 앞으로도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겠구나...
단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우리는 그것이 천재의 작품인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끔 농담으로 피카소가 줄을 하나만 그려도 억대 그림이 되는거고, 우리가 줄을 백개를 그려도 소용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데요. 왜 피카소가 한줄 휙 그은것은 예술이고, 내가 휙 그린것은 예술 대접을 못받나? 피카소의 한 획에는 그 획의 의미를 가늠하게 해주는 역사성이 들어있고, 내 한 획에는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한 획인지 증언해줄 기존의 쌓아온 무슨 실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술대학 입시생들이 '포트 폴리오'라는, 일련의 작품들을 정성껏 모아서 심사위원들에게 제출을 하는 것이지요. 일련의 작품들을 보여주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내 스타일을 창조해 냈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제가 미술관 돌아다니고 그림 구경하고, 그림 사진찍어오면서 몸소 체험한 것인데요, 미술관 한군데 가서 그냥 어떤 화가의 걸작 한두점 본것으로는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사람의 작품들이 여기 저기 걸려있는것을 구경하면서 나중에 그것들을 종합하여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들을 깨닫습니다. 단편적으로 이리저리 모아오던것을 한군데 몰아놓고 살펴볼때, 작가의 개성, 위대성, 어떤 변화나 흐름, 메시지 같은 것들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더란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작가의 일련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살피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전체적인 개성을 잡아내게 되는데, 그렇게 종합적인 시각을 갖춘후에 그 사람의 작품 '하나'만 봐도, 그 하나속에 스며있는 전체가 보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반복하지만
(1) 대개의 경우 작품 하나에 한 작가의 일생의 작업이 다 스며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만 봐더 전체를 다 볼수 있다는 뜻입니다.
(2) 그러나, 작품 하나만 보고 전체를 다 봤다고 말하면 그것은 사기 입니다. 전체를 다 보기전에는 그림 하나에서 전체를 다 살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처럼 들리지요? 제가 체험한 내용입니다. 물론 다른 식의 체험도 있겠지만요.
우리가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이름을 살핀다거나 제목까지 살피는 것은, 그림에 좀더 다가가기 위해서이고, 그림의 '작가'가 문제가 되고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그림을 그린 특정작가의 이력과 그 그림이, 그 그림의 앞뒤에 제작된 그림들과 그 그림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의 한 획은 수십년 공들인 끝에 나온 한 획인것이고 그 획속에 스민 땀이나 고민까지, 그 획 전후에 나타났던 작품들까지 우리가 상기할수 있으므로 그 획을 인정해주는 것이고, 획 너머의 고민까지 상기하는 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의 몫이 되는 겁니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알면 아는채로, 모르면 모르는채로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다가가야 하는 것이지요.
2010년 1월 14일. RedFox
제 친구가 해준 말이 생각나는데요. 보통 우리들이 말하는 대단한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미술사조'를 뛰어넘는,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가령 '고흐'같은 경우는 고흐의 표현방식이 당대에는 비록 인정을 받지 못하는 비주류였을 망정 어떤 미술사, 흐름을 뒤바꾸는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죠. 피카소도 마찬가지겠죠? 피카소의 추상화가 원래는 친구 그림이었다고 하는데 피카소로 인해 그 추상화가 주류로 편입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는 대단한 작가다..라는 얘기도 들은 것 같아요.(틀린 부분이 있으면 교정 바랍니다.)
답글삭제피카소의 한 획가 나의 한 획의 비교와 설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요, 문득 궁금한 게 생깁니다. 간혹 어떤 꼬마 아이가 그린 그림이 대단한 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기도 하고 이전까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작가가 어떤 한 작품에 의해 높은 가치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그들의 삶과 역사성에 의한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다기 보다 '한 작품' 자체로 인정을 받는 경우일텐데 그건 피카소의 예와 좀 다른 경우가 아닌가 하는데요. 그런 경우엔 저같은 사람은 미술계 비평가나 유명한 작가들(주류)이 대단하다고 하니 대단한가 보다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림을 다시 보게 되는거죠. 그럼 (1)번과 같은 경우가 되려나요?
미술작품은 구도, 칼라, 테크닉,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을텐데 작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어떤 게 더 중요하다는 식의 중요도를 따지는 경우가 있나요? 자꾸 질문만 해서 죄송합니다.
암튼, RedFox님 덕분에 여러가지들을 알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자유인 - 2010/01/16 01:30
답글삭제단 하나의 작품만 가지고 천재의 탄생을 알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문제에 대하여 저는 '회의적'입니다. 물론 단 하나의 작품으로 천재의 출현을 알릴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후속타가 없으면 그것은 해프닝으로 끝날것입니다. 돌아봅시다, 우리 어릴때 천재 소리 안들어본 사람 있나요? =)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화가가 갑자기 어떤 작품으로 높은 가치평가를 받는다 --는 현상을 들여다보면, 그 '하나의 작품'에서 그의 위대성이 탄생했다기보다는, 여태까지 묻혀있던 그가 그 한작품을 계기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풀이하는 것이 합당할것으로 봅니다. 그 하나의 작품으로 스타탄생을 알리게 되면 그의 이전작품들도 일제히 각광을 받게 되는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화가들은 자신의 습작들을 다 태워버리기도 하고 그래요. 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사실, 미술사에는 참 많은 '대가'들이 줄을 서 있지만, 미술사에 명함도 내밀어 보지 못한 미술가들의 수는 먼지만큼 많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천재들도 부지기수 일 것입니다. 어찌보면 오로지 '운좋은 천재'들만이 생전에 혹은 사후에 그나마 '인정'을 받는 것이겠지요. 저는 미술책에 들어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을 '운좋은 사람들'로 분류를 하는 편입니다. 노력도 남 달랐고, 특별한 재능도 있었겠지만, 운도 좋아서 비평가나 미술사가나 대중의 눈에 띄고 사랑도 받는 것이겠지요.
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한데, 저는 앞서 이야기 한것처럼 '단 하나'로 운좋게 대가가 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어쩌다 눈에 띄어 '천재' 대접을 받을수는 있겠지만, 후속타 없으면, 해프닝으로 끝나는거니까요.
아, http://americanart.textcube.com/69 이 페이지에 소개된 작품의 경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집무실 벽에 걸어놓을 정도의 영예를 얻는 작품인데요, 화가가 25세때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가는 30세에 요절을 했기 때문에,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이 작품 외에 드러나는 작품이 없어요. 어찌보면 단 하나의 작품을 알리고, 사라져간 작가라고 할수 있지요. 이 경우에 안타깝지만 우리로서는 '어쩌면 거목으로 컸을지도 모르는 한 청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 지나치고 마는거죠. 단 한편의 그림으로 역사에 남기는 힘들어요... (제 극히 한정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생각에 불과하지만요.)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때 미술에서 어떤 요소가 중요하다는 이론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제가 전문가한테 물어보고, 공부하고 논의하기로 하지요. 헤헤. 몰라요~ 공부해보고 알게되면 마저 이야기 하지요~ (숙제 마치고 쉬려는데 또 숙제를 주시네요...하지만, 저는 질문을 환영하는 편입니다. 화두거든요. 길을 가다가도 생각해보고, 운전하면서도 생각해보고, 질문이 저를 공부하게 만들지요. 말하자면 자유인님이 제 과외 선생님인거죠. 숙제 자꾸 내주는.)
(이 대화 내용도 본문으로 편집해서 올리고 싶은데, 실례가 안될는지요?)
먼저, 대화내용을 편집해서 본문으로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송구할 뿐입니다.
답글삭제링크 걸어주신 Tyrone Comfort에 대한 글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과 '그림'에 대한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답글로 달아주신 '단 한 작품의 불가능성'과 '후속타' 관련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RedFox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순수)미술과는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미술의 어떤 '흐름', '사조', '부흥'과 관련된 움직임이 일어나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면이 있었음에 자성을 해봅니다.
미술이나 기타 문화예술 등은 그걸 만들어 내는 작가들에게 (반드시) 일종의 혜택과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예술작품'은 대중(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일반대중들에게 더 많은 권리가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 자신이 개인의 예술적 성취, 예술작품을 통해 궁극의 경지에 다가서기 위해 작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죠.) 소위 '경매'라는 것을 통해 작품의 가치가 자본주의적 가치로 치환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거든요.
RedFox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건 절대로 아니구요. 예를 들어 루즈벨트 대통령 집무실에 걸리는 '영예'와 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만한 영향을 줄 '영예' 중 작가들의 선택은 어떤 것이 될까...하는 생각과 작품 자체가 주류/비주류로 나뉘고 작품을 즐기는 계층(계급)에 따라 평가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은 왜일까...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평가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권위있는 단체에서 주는 상'과 '고가의 가치로 팔리는 것'에 더 많은 방점과 의미를 두는 경우가 있는 걸 생각하면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고민과 생각이 많아질 뿐이네요.
본의 아니게 숙제를 드리게 되어 죄송스럽지만 질문을 환영하신다니 다행스럽습니다. 공부하는 것에 열정적이신 RedFox님 덕분에 저도 자극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