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moke Hounds (싸구려 술꾼들) 1934
Egg Tempera on Mesonite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Savoy Ballroom (사보이 무도장) 1931
Tempera on Masonite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 Museum)에서 촬영

Conie Island Beach 1932
Tempera on Masonite
2009년 10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아이고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이라, 유리에 전시장에 걸린 다른 작품들이 반사되었습니다....

Down at Jimmy Kelly's 1936
Tempera on Masonite
2009년 11월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Naked Over New York (뉴욕 상공의 나신) 1938
Tempera on Masonite
2009년 10월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 Museum)에서 촬영

Erie R.R. & Factories, 1930
Etching
2009년 10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Reginald Marsh (1898-1954)
음...제가 가진 사진 파일만 정리해서 제목과 함께 올려놓았는데요. 에칭 판화가 하나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템페라화인데요. 그림들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특징들을 한번 찾아 보세요, 그리고나서 마시가 어떤 화가인지 이야기를 해보죠...
제가 미국미술을 공부하면서, 작가별로 그림들을 엮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뭔가하면,
1. 화가들은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일관된 어떤 스타일을 유지한다.
2. 그런데 그 화가의 작품 두세점을 보면, 그 화가의 스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3. 그 화가의 작품에 공히 나타나는 특징들을 찾아서 열거하다보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떠오르게 된다
4. 이렇게 우선 내 눈으로, 나의 감각대로 관찰하고 기록한 후에 비평서적이나 참고자료를 찾아서 살펴보면 '놀랍게도' 내가 파악했던 것들을 비평가들이 정리하고 넘어가더라.
5. 결국, 평범한 관객으로서 나 자신이 관찰하고 느낀것이 비평가들의 시각과 별 차이가 안나더라.
6. 따라서, 내가 내 안목을 훈련을 시키고 성장시키면, 나 스스로 비평적 안목을 발전시킬수 있다
뭐 대략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세상에 날때부터 전문가는 없습니다. 공부하고 들이 파다보면 전문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코피 쏟아가면서 공부한 예술비평 전문가들을 낮춰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나의 모든 판단력과 비평적 감성을 '전문가'들에게 맡길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작품들을 보면서, 대략 보니, 이 그림들엔, 이러저러한 특징이나 개성들이 있다고 정리를 해보는 겁니다...
그럼 나중에.....~
아아, 학생들을 위한 겨울학기 스터디 가이드를 모두 만들어서 배포하고 다시 블로그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일 하는 체제는, 책상앞에 앉아서 제가 할일을 하다가 - 주로 수업준비나 공부나 뭐 일을 하다가 싫증이 나면, 그림 파일을 꺼내서 들여다봅니다. 다듬기도 하고. 그러다 뭔가 생각나면 글을 적기도 하고, 혹은 머리를 식힐겸 미술사책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일을 하기도 하고, 노닥거리면서 글을 적기도 하는거죠. 올 한해는 책상앞에 꼭 붙어 앉아서 생산성있는 일들을 하기로 했거든요. 놀아도 책상앞에서 논다 이거죠. 학자로 대성하려면 데이타를 모으는 시간 외에는 사실, 책상 앞에 붙어 앉아서 읽거나 쓰거나 사색하거나... 책상이 나의 몸이 되고 나의 몸이 책상이 되는 경지가 되어야...ㅎㅎㅎㅎ...책상인간...다른 말로 책상물림. 백면서생. 딴따라 서생. )
자, 컴백했습니다.
위의 그림들에서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눈에 보이는대로 열거해보겠습니다.
1. 색채가 전체적으로 노리끼리하다.
2. 전체적으로 노리끼리가 주조를 이루고 붉은 색조가 포인트로 작용을 하는것 같다 (사보이 댄스홀에서는 붉은색조도 두드러지지만)
3. 등장 인물들은 상류층이나 귀족층이 아니고 주로 일반서민이나 하층민으로 파악된다.
4. 한 개인보다는 모여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5. 인물 묘사 방법이 코믹하다. 만화적이다.
6. 가난뱅이 술꾼, 흑인들의 무도회, 비치에서 뒤섞여 노는 하층 젊은이들, 스트립 댄서와 구경꾼들등 사회의 하층, 이면을 묘사하였다.
7. 인물들의 표정이 대체로 발랄하다 (위의 코믹,만화적이라는 내용과 상통한다.)
대충 이러한 특징들은 누구라도 잡아 낼 만한 것들이지요. 제가 처음으로 레지날드 마시를 만난것은 2009년 10월 3일 코코란 미술관에서였습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137 이 페이지에서였지요). 그때, 제 눈에 레지날드 마시의 '노리끼리한'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복도 끝에 걸려있는 그의 코니 아일랜드 그림을 발견했을때, 이미 멀리서부터 저는 '아, 그 사람이다!'하고 알아볼수 있었습니다. (그땐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냥 '노리끼리한 그림'을 기억했던 것이지요). 그 후에도 디트로이트나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이 나타났을때, 멀리서도 알아볼수 있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레지날드 마시라는 작가가, 그 이름이 제 기억장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레지날드 마시의 작품들이 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합니다. 그런데, 그의 색감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제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냥 보면 그 사람 그림인줄을 바로 알아보겠거든요. (아, 작가가 이런식으로 강렬한 개성을 남기면 일단은 살아 남겠죠. 그렇게 인상을 심기도 어려운 것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노리끼리하게 그림을 그린 동시대의 화가가 또 한명 있습니다. 바로 앞서 지역주의 화가로 소개드렸던 John Steuart Curry (http://americanart.textcube.com/254 )입니다. 특히 그의 1938년 작 Parade to War (전쟁터로 향하는 퍼레이드) 이 작품은 색조나 분위기가 레지날드 마시의 그림들과 비슷합니다. 저는 미술책에서 이 그림을 발견하고 레지날드 마시의 그림이라고 착각을 했었으니까요. 그 참 사람 헷갈리게 만드네, 하면서 혼자 한탄을 했는데요. 이들이 저를 헛갈리게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Reginald Marsh (1898-1954) 와 John Steuart Curry (1897-1946)은 한살차이나는 친구로 Jacques Maroger의 문하생으로 동문수학하고 함께 작업했던 사이였던 것입니다. (아, 그러니 이들의 화풍이 비슷한 작품에서 제가 헛갈려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계속....
유럽 고전 미술과 20세기 뉴욕의 마시
위의 코니 아일랜드 그림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제가 떠올린 것은, 자신 할 수 없지만, 유럽의 기독교화에서 많이 보이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밤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문득 기억해냈습니다.). 제가 관심있게 본 분야가 아니라서 장담할수 없지만요, 비슷한 구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루벤스의 그림이고요

아래의 것은 카라바지오의 그림입니다.

두 작품 모두 십자가에서 사망한 예수를 내리를 장면인데요. 영문으로 Descent from the Cross (십자가에서 하강) 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기독교에서 예수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할때 (마치 절에가면 십우도가 있어서 차례차례 순서대로 해탈의 과정을 보여주듯) 차례차례 '주제'가 있는데 그 주제마다 제목이 붙는것 같습니다. Crucifixion (십자가에 매달림) 이라던가 Decomposition (십자가에서 내림) 이라던가. 사실 대형 미술관들 순례할때, 전시작품들중에 기독교 관련 작품들이 많죠. 특히 중세, 르네상스기를 지나칠때 기독교 미술을 제외하면 볼게 없을 정도인데요. 제가 이부분을 '상식'수준에서 대충 휙, 쌩, 보면서 그냥 고속으로 지나쳐버리는 편이라서 기독교 그림 볼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레지날드 마시의 '코니 아일랜드' 그림은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는 그림과 구도가 꽤나 비슷해요. (아니면, 이와 비슷한 또다른 그림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릴때, 카라바지오의 그림처럼 머리부터 거꾸로 들려진 그림들이 여럿 있었던 것 같거든요. 다음엔 미술관에 갔을때 기독교화 부분도 좀 신경써서 봐야겠습니다. 교양 차원에서라도 꼼꼼히 봐둬야 할 것 같아요. 대충 볼것이 아니라...)
코니아일랜드에서 무리지어 노는 젊은이들과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혹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이런 장면들을 밤새 자면서 회상해낸 이유는, 아마도 레지날드 마시가 유럽에 가서 루브르 박물관이나 다른 곳들을 구경하면서 '루벤스' '미켈란젤로'등 고전 미술에 흠뻑 매료되었다는 단서 때문입니다. 마시의 아버지도 미술가였고 아버지의 작업실에는 이러한 고전 미술 카피들이 널려있었다고도 합니다. 후에 그가 스승으로 모신 Jaques Maroger 는 화가이면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술품 보수 관리는 하는 감독이기도 했습니다. 마시가 20세기를 살아가면서도 고전미술의 영향권안에서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코니 아일랜드의 그림 구도는 그가 익숙히 보아온 예수 십자가에서 내림 주제의 구도를 바닷가에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군중들에 투사한 것은 아니었을지 만화처럼 유머러스하게. 루벤스의 그림 구도 (중앙가 좌, 우 포함) 와 코니아일랜드 구도가 거의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거 자다말고 무슨 잠꼬대인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아아, 알았다. 그러면 저 위의 그림도 정리가 되는군요. 맨위에 소개한 '싸구려 술꾼들' 그림도 가닥이 잡힙니다. 이 그림에 십자가가 보이지요. 그리고 십자가 밑의 간판에 All Night Mission No.8. Bowery 라고 씌어 있습니다. '바우어리가 8번지 철야 미션'입니다. (이곳이 정말 미션인지 술집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Bowery는 뉴욕시의 도로 이름인데 이곳에 싸구려 술집, 여관들이 모여있다고 합니다.) 자, 여기 술주정뱅이로 보이는 사나이 하나가 막 주저앉으려하고 있고, 주위에서 사람들이 부축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을 싹 생략하고 이 쓰러지려는 남자와 주변 사람들만 들여다보면, 역시나 사망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있는 제자들 모습입니다.

레지날드 마시는 1930년대 대 공황으로 피폐한 뉴욕 뒷골목의 사람들을 스케치하면서 그가 즐겨 보았던 르네상스기 기독교화의 주제와 구도를 옮겨다 놓았던것이군요! (아이 참, 내가 미국미술 공부하다 말고 유럽 기독교화에 대해서 종알거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이래서, 서양 문화 예술, 철학을 논할때 기독교적 모티브나 소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기독교 그림의 구도를 갖다 놓고 보니까 척척 맞아떨어지쟎아요... 마시가 의도했는지 안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 권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 권역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것이지요. 어쩐지 마시는 기독교적 구도를 희화적으로 차용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 그는 대중속에서, 빈민가 뒷골목에 모인 사람들 속에서 수난당하는 예수를, 그리고 역시 수난당하는 예수의 제자들을 발견했던걸까요? 사실 예수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 당시에 별볼일 없는 사회의 변두리의 사람들이었쟎아요. 번듯한 아무개가 아니었죠. 보잘것없고 볼품없는 사람들이었죠... 이 싸구려 술꾼들 그림이 처음 제 눈에 띈 후에 선명하게 각인된 이유는, 아마도 그림속에 감춰진 이런, 아직 내가 감지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내가 발견하게 될 어떤 요소들이 나를 잡아 당겼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뭔가 끈적하게 잡아당기던 요소. 이제 그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이 그림은 John Sloan 이 그린 뉴욕의 고가 기차, 그 기찻길 아래의 풍경같죠? 이들의 머리위로 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기도 할겁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1937년작, 뉴욕 상공의 나신들 그림은 제가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묵시록적인 그림인걸까? 뭘까? 한참 고민을 해 봤는데도 실마리가 안잡힙니다. 얼핏 보기에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벽화속의 인물들이 공중을 떠나니고 있는 형상인데요. 그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뉴욕 강변의 배와 시커먼 하늘을 그려넣으며 거기에 왜 이런 사람들을 그려 놓은 것인지. 그림 맨 왼편에 서있는, 벽에 붙어있는듯한 사나이의 정체는 무엇인자? 아무래도 미국의 대공황 (Great Depression)당시의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묘사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노란 안개
아, 그런데 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노리끼리한 색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생각하다가 어떤 시를 떠올렸습니다. 해마다 4월 첫날이 되면 사람들은 '4월은 잔인한달'이라고 중얼거리는데요. T.S.Eliot 의 '황무지 The Waste Land'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지요. 그런데 그 엘리오트의 또다른 장시로 The Love Song of J. Alfred Profrock (알프레드 프르프록의 연가 1917)가 있습니다. 그 시의 전체적인 색조가 노랑이었어요...
http://www.bartleby.com/198/1.html (시 전문을 보고 싶으시면 링크를 클릭하세요)
LET us go then, you and I, | |
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 |
Like a patient etherised upon a table; | |
Let us go, through certain half-deserted streets, | |
The muttering retreats | 5 |
Of restless nights in one-night cheap hotels | |
And sawdust restaurants with oyster-shells: | |
Streets that follow like a tedious argument | |
Of insidious intent | |
To lead you to an overwhelming question … | 10 |
Oh, do not ask, “What is it?” | |
Let us go and make our visit. | |
우리 이제 가자, 너와 나 저녁이 하늘로 펼쳐질무렵 테이블위에 마취된 환자처럼 우리 가자, 반쯤 버려진 길을 통과하여 하룻밤 싸구려 호텔의 휴식없이 웅얼거리는 은신처를 지나 굴껍질이 쌓인 식당을 지나 악의를 가진 지루한 언쟁같이 이어지는 길들이 너를 압도하는 의문들로 인도할것이라 오, 묻지 말라, "이것이 무엇인가?" 우리 이제 가자 가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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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room the women come and go | |
Talking of Michelangelo. | |
방에서는 여자들이 왔다 갔다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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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ellow fog that rubs its back upon the window-panes, | 15 |
The yellow smoke that rubs its muzzle on the window-panes | |
Licked its tongue into the corners of the evening, | |
Lingered upon the pools that stand in drains, | |
Let fall upon its back the soot that falls from chimneys, | |
Slipped by the terrace, made a sudden leap, | 20 |
And seeing that it was a soft October night, | |
Curled once about the house, and fell asleep. |
노란 안개는 창틀에 그의 등을 문지른다
노란 연기는 그의 입마개를 창틀에 문지른다
저녁의 모서리 안으로 혀를 날름댔다
하수구에 고인 물 위에서 서성댔다
굴뚝에서 떨어지는 숯검댕이를 그의 등에 떨어지게 했다.
테라스를 통과했다, 급작스럽게 뛰었다.
그리고 이제 보다라운 시월의 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집 주위를 한바퀴 맴돈후, 잠이 들었다.
T.S.Eliot 는 미국태생이지만, 신생국 미국의 문화적 척박함을 '멸시'하고 영국으로 귀화해버린 시인인데요. 제가 이 시의 앞부분만 대충 한국어로 옮겨 보았습니다. 이 시의 노란 나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와, 시에 언급된 미켈란젤로가 20세기에 레지날드 마시를 통해 이런 그림으로 형상화 된 것 같군요.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는 마비된듯이 노곤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있고, 영문과 학생들이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강독을 하고 지나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엘리오트는 1917년에 이 시를 썼고, 마시는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때, 뉴욕에서 노란 안개처럼 스멀거리며 살아가는 도시 빈민의 풍경을 묘사했는데요. 문득 드는 생각은, 제가 엘리오트를 고향을 헌신짝처럼 버린 인간이라고 흘겨보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요, 엘리오트의 위대성만큼은 인정을 해줄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맙니다. 시인은 앞서서 세상을 읽었던 것이지요.
엘리오트의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라는 시를 회상해내는 순간 레지날드 마시의 풍경속의 노란 색이 해석이 됩니다. 노곤한, 무기력한, 삶 전체에 스며드는, 안개같은.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제가 직접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이 있는데요. 그의 에칭 판화작품 Bread Line (빵을 타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이 레지날드 마시의 사회주의적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John Sloan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 도 1905년 The Coffee Line 이라는, 무료로 커피를 배급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뉴욕 사람들을 그린적이 있지요.

http://hirshhorn.si.edu/visit/collection_object.asp?key=32&subkey=9966
Bread Line: No one has starved (빵을 받기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 아무도 굶지 않았다) 1932
Etching (39.3 x 32.9 cm)
그런데 이 작품의 부제가 눈길을 끄는군요. 제목 빵을 받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부제 '아무도 굶지 않았다.' 반어적이죠.
레지날드 마시, 요점 정리
아버지도 화가였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마시는 예일대학을 졸업할때까지도 미술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예일대 재학시절 학보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싣기도 했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했던것 같습니다. 유화도 재미없어했고, 수채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의 부유층 젊은이들이 그러하였듯 유럽으로 가서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등을 돌아보며 그곳에서 미켈란젤로나 루벤스의 미술에 흠뻑 빠져들었고, 후에 미국으로 돌아와 Thomas Hart Benton 으로부터 '템페라화' 기법을 소개받고 이에 몰두하게 됩니다. 위에 적은대로 르네상스기의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스승을 만나 사사를 받은것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가 본 그의 채색화는 모두 템페라화 였지요.
마시는 여러가지 잡지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하였고, 판화작업, 템페라화 위주의 회화, 그리고 벽화 작업까지 골고루 활동영역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자신은 물려받은 유산과, 그림을 그려서 생기는 수입으로 평생 부유롭게 살 수 있었다고하는데요, 그의 관심은 뉴욕 뒷골목의 술집, 빈민들의 삶에 맞춰져 있었고, 이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유쾌하고 익살맞게 묘사를 해 나갔습니다. 위의 Down at Jimmy Kelly's (지미 켈리 술집에서) 작품에서 보이듯, 그가 묘사하는 뉴욕의 여성은 술집에서 일하는 무희, 여급들인데, (혹은 하층 직업 여성들) 이들의 태도나 자세는 이들이 갖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와는 상반되게 당당하고 위엄이 넘치기까지 하지요.
자 이제 다시 정리해볼까요? 레지날드 마시의 그림에 나타나는 요소들
1. 군중들
2. 도시 (뉴욕) 이면에서 살아가는 빈민들, 실업자, 무희, 술꾼, 하층 젊은이들
3. 노리끼리한 안개가 낀듯한 전체적인 분위기 (무기력, 나른함)
4. 빈곤
5.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같이 암담한 삶의 조건
6. 르네상스 템페라화에 대한 집착
7. 미켈란젤로나 루벤스의 구도
8. 예수와 그 제자들을 뉴욕 거리의 빈민들과 병치시켜 바라봄
9. 빵을 타기위해 줄 선 사람들을 통해 당시의 시린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
10.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활기
대충 이러한 것들이 잡히지요. 이것이 레지날드 마시 그림의 특징들이라고 할만하고, 이 그림들에 나타나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빈민층에 대한 애정담긴 시선, 혹은 빈민층이 견뎌야했던 혹독한 삶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그의 화풍을 일컬어 'Social Realism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고 정리해 볼수 있겠습니다.
2010년 1월 8일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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