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7일 일요일

비오는 일요일. 편지 쓰는 날

 

다음달에는 '설날'이 있고, 가까운 가족들 생일도 많이 있고. 나는 어릴때부터 '크리스마스'와 상관없는 문화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때 카드를 보내는 일이 별로 없다. (참 썰렁한 인생을 살아왔는데,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대신, 음력 설날 부근에 '연하장'을 보내는 편이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내가 성장할무렵에, 우리집에 와서 쌓이던 우편물들이 크리스마스 부근부터 음력 설날 전후까지 어어졌던 기억이 난다.  주로 아버지한테 오는 연하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카드를 주고받는 양력 연말쯤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음력 설날이 다가올 즈음이면, 그것도 기분이 동하면,  가까운 가족 (엄마와 형제들)에게 뭐 간단히 소식을 띄우는 편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직접 날짜 따져서 제사도 지내고, 제사를 음력으로 챙기니까 가족들 생일도 자동으로 음력으로 챙기는 시스템이라서, 음력 인생을 사는, 별중스런 인생이다. 마치 현대문물 속에서 살면서 몽골 초원의 의식을 갖고 있는듯한 (ㅎㅎㅎ).

 

나는 현대의 교양있는 한국인들이 양력설을 '신정', 음력설을 '구정'이라고 부르는것에 대해서 약간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내 주변 사람들이 일컫기를 "네가 이상한거야. 네가 별중스러워서 그런거야"라고 하기 때문에 가끔 혼자서만 쭝얼거릴 뿐이다.  설은 설인것이지. 설이란 말 놔두고 딴 말 하기 싫다구~  설은 설이고, 나는 음력설에 떡국을 끓여먹어야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고 생각하며,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야 마땅하고, 연하장도 당연히 설에 보내는것이 타당한것이지~  적어도 나로서는.

 

설날은, 까치까치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 단 하루 뿐인거다. 

 

오늘은 마치 곧 봄이라도 오겠다는 양, 온종일 비가 내리고, 앞집 마당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초록 잔디가 드러난다.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는 봄 기운을 느낀다. 설날이 오면 봄이 오니까.

 

서울에 있는 언니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서운하겠다.  나는 언니가 금쪽같은 아들녀석을 한겨울에 군대에 보내놓고 가슴 '아려' 할것이 눈에 선하게 보여서, 언니한테 안부 전화도 못하고 벌벌떤다.  옛날에 우리 오빠가 군대에 가던날, 우리 엄마가 휑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일이며, 입영전야에 역시 텅빈 표정으로 내게 뭐라뭐라 오빠로서 잔소리를 하던 오빠의 표정도 생각이 난다.  오빠도 추운날 입대를 했었지. 엄마는 뭐 아들이 죽으러 가는것도 아닌데 통곡을 했었고, 아버지는 화난 표정으로 통곡하는 엄마를 나무라셨다. 그러니까, 언니에게는 용기를 주는 시를 한편 써보내야 하고...  막내동생녀석에게는 세명의 꼬맹이 자식들이 있는데,  요놈들에게  '미국고모'는   '영어를 기가막히게 잘하는' -- 미국인과 한국인을 합체시킨 무적의 막강 마징가제트 같은 존재이며 (!!!)  어떤 '상징'같은것이다. 하하. 요놈들에게도 몇자 적어야 하고. 셰익스피어 뮤지엄에서 산 사슴그림은 오빠에게 보내야지. 왕관을 쓴 사슴처럼 영예로운 한해를 맞이하시라고.

 

 

 

그래서 나는 온종일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다니다가 기념으로 사 모았던 예쁜 카드들을 꺼내어 온종일 편지를 썼다.  (오늘 나는 매우 사람답게, 착하게 살았다고 정리해도 좋으리라.)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비.

 

댓글 4개:

  1. 한국사람들은 음력1월1일을 보내야 한 살을 더 먹는 거잖아요. ㅎㅎ 근데 벌써 백호랑이띠 아기가 태어났다고 하고,,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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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평화청년 - 2010/01/18 10:50
    기준점을 무엇을 인정하는가에 따라서 다르지요. 날이 갈수록 '양력'이 우세해지는 추세이긴 한데요, 저는 음력의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그냥 내가 익숙한 문화대로 하겠다는 것이지요. 뭐, 양복에 상투트는 격인데, 뭐 내 멋이니까요. {^^] 제 잘난맛에 사는 인생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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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아, 퇴근길에 우체국에 들러서 편지들을 부쳤습니다. 한통에 1달라 약간 못미치는 금액이던데. 엄마가 그걸 받으시면 친구분들께 자랑도 하고, 들여다보고 읽어보고, 그리고 심지어 엄마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한의원이며 치과에 갖고 가서 의사선생님들께도 보여주면 자랑을 하실텐데....내가 게을러서 항상 미루기만 했군요.



    음. 일주일에 하루 날을 정해서 가령 오늘같은 화요일, 수업 마치고 퇴근길에 우체국에 들르는 것을 '습관'화 하면 어떨까. 매주 엄마한테 카드를 보내는거야... 그러면 엄마가 참 기뻐하실텐데...





    아, 카드 보낼 애인이 있는것도 아니고, 엄마를 애인삼아~ 매주 지극정성으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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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 CNN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보고 있는데, 서울 언니가 전화를 걸었다. 내가 부친 카드를 잘 받았노라고. 아들을 군대를 보내고 심란해 있는데 마침 용기를 주는 시를 받았다고, 너는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느냐고. (나두 사람인데...알건 알지...)



    언니네집에 카드가 무사히 도착했으면 다른 곳에도 도착을 했겠다. 카드를 자주 부쳐야지. (나두 사람같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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