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6일 수요일

나, 그리고 가상의 존재 나

 

 

새학기 입학 상담을 하러 온 학생을 면담 할 때의 일이다.  내 수업은 주로 토론, 발표, 프로젝트 만들어내기, 아티클 써오기등, 가시적으로 뭔가 자꾸 말하고 만들어내야 살아 남을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입 꼭다물고 책만 파는 사람은 내 수업을 견디기 힘들것이다. 책은 혼자 보는것이고 - 수업에서는 공부 해 온것을 발표하고 심화시켜야 하는거니까.

 

한국에서 번듯한 대학원까지 마치고, 이곳에서도 인근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이 내 수업을 듣겠다고 찾아 왔는데, 이 인재를 앞에 앉혀놓고, 이런 저런 수업을 잘 따라올것 같은가 물으니, 이 영특하고 진지해보이는 학생이 아주 유창한 영어로, "I am not good at speaking English." 딱 이런다. (영어도 잘 해요...)  I am not good at speaking English.  발음도 좋고 억양도 나무랄데가 없고, 잘 하는데, 이건 겸양인걸까? 겸양도 아닌것 같다. 그 사람은 자신없는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다. 이런 말 하는 똑똑한 한국인을 한두사람 본것도 아니고, 한숨이 나오다 말고 한가지 생각을 해 냈다.

 

나는 내 오피스 책상에 마주앉아있는 이 학생에게 텅빈 그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지금 당신 옆에 누군가 앉아있다고 상상하라. 

거기 앉아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이방에는 당신이 두사람 있다.

이제부터 당신은 옆에 앉아있는 또다른 당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거다.

 

 

 

당신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또다른 당신에 대해서

He is not good at speaking English 라고 단언할수 있는가?

당신이 옆에 앉은 사람에 대하여 그렇게 평가하고 단언할 자격이 있는가?

 

당신은 진지하고 예절바른 사람이므로 옆에 앉은 낯모르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그런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을것이다. 당신은 남에 대하여 함부로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런데 왜 자기자신을 그렇게 깎아내리는가?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릴때, 옆에 앉은 또다른 자신이 상처받을거란 생각은 안해봤는가?

남에게 무례하면 안되듯이, 자기 자신에게도 무례하면 안되는거다."

 

그 학생은 봄학기부터 내 수업을 들을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을 내보내고 난 후에, 내 방에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한 여자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내가 다가가서 물으니 그 여자가 사나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