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9일 화요일

하라 켄야 워크샵

관심있게 보는 이웃 블로그 (http://lifelog.textcube.com/)에서 발견한 '놀라운' 수업 내용.  이 페이지를 보면서 몇번이나 혼자서 숨을 몰아쉬며, '놀라워라, 놀라워라'를 외쳤다.

 

http://lifelog.textcube.com/48

 

너무나 인상적인 내용이라 트랙백 해놓기로 했다. 나도 수업중에 유사한 작업을 해봐야지...

 

내가 겨울 단기과정으로 몰아서 수업을 진행하는 과목이 Grammar Teaching 이다. 언어 교육 영역중에서 '문법 교육'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문법교육 관련 책과 논문들도 읽고 토론하며, 시중에 나와있는 각종 영문법 교육교재들을 리뷰하고, 문법교육 교재 만들기및 문법교육 모형도 짜는 활동을 한다. '문법'과 관련된 전방위 수업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들과 함께, '집에서 각자 공부하는 숙제'로 내가 내 준것이 이 '문법 연습문제 책' 전체를 '연필'로 다 풀고, 형광펜으로 틀린부분을 모두 표시하여 학기말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Grammar in Use Intermediate Workbook with answers

 

 

이 책은, '문법 연습 문제 책'으로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기 전에, 한국에서 나 혼자 공부할때도 한번 내 손으로 전체를 풀어본 적이 있는 책이다.  이번에 학생들에게 self-study 숙제로 이 책을 내주면서, 나 역시 새로 한권 사서 학생들이 하는것과 똑같이 연필로 문제 풀고, 형광펜으로 나의 실수를 바로잡아가는 행동을 하고 있다.  선생이 직접 학생들이 사용하는 레벨의 문제를 풀어봐야 이들의 학습 과정을 이해할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사람이 '학습'을 하는 과정속에 '몸'으로 하는 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뭔가 '휘리릭' 읽고 지나가기 보다는, 중요한 내용을 밑줄치거나 여백에 요점정리를 하는 식으로 기록을 하거나, 혹은 문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풀어본다거나 그런 행동들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평가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양 얼버무리거나 뭉뚱그리고 지나가는 태도이다.  물론 나역시 이렇게 안이한 삶을 살기는 하는데,  학생들이 뭔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 책에 씌어진 내용을 - 앵무새처럼 떠들고 지나갈때,  "그거 무슨 뜻?"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고 어물거릴때, 이때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사람을 대개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입'으로만 떠든다는 것을.  자신이 '입'으로 떠들면서 스스로는 알고 있다고 믿는다. 정말 알어?  정말? "그게 무슨뜻인데?"  확인하면, 대개 "알지만 설명이 힘들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설명할수 없다면, 아는것이 아니다. 적어도 학문의 장에서는. 안다면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 설령 잘 못 알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잘못 알고 있다면 내 설명에서 잘못된 점을 누군가가 지적해줄것이다.  내가 설명할수 없다면 나는 모른다는 뜻이다.  사람은 많은 경우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안다'고 착각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해도 어마어마한 '자각'이다.

자신이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깨닫는것도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학생들에게 내 준 숙제를 나도 똑같이 하면서 -- 나는 내 학생들이 무엇을 경험할지 짐작하게 된다. 이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주 미세한 것에서 내가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 어떤 것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다. 그밖에 여러가지를 나는 경험하게 된다.

 

내가 손으로 직접 써가면서 공부를 할때, 나는 아주 미세한 것까지 사색하게 된다.  연필로 쓰는 작업은 아주 '느린' 작업이고, 이렇게 느리게 작업하다보면 평소에 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것이다.

 

어떤 대학원생은 이 문제집을 풀다가, 자신의 '무지'를 절감하고, 동일한 제목의 '문법 안내서'를 사다가 그것을 참고해가면서 문제를 풀고 있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 안내서가 꽤 잘 만들어졌다고 내게 그 책 자랑을 했다. ...그렇지...  내가 숙제로 내주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아 가야 하는 것이지. 어떤 대학원생은, 고등학교 교사이기도 하고, 인근 전문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 책이 좋아서 수업에 사용하고 싶다고,  연습문제를 별도의 공책에 따로 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책은 고스란히 놓아두고 따로 공책에 답만 표시하겠다고 (책 아끼겠다고).  그래서 내가 '반드시 책에 답을 적으라'고 지시했다.  책이 좋으면 돈주고 또 사면 되는거고, 일단은 책에다 문제를 다 풀어와야 내가 숙제를 한것으로 인정을 해주겠다고 했다.  "책도 소모품일수 있는거다. 좋으면 쓰고, 또 필요하면 또 사 쓰면 되는거다.  학습을 하는데 20달러도 안하는 책값을 딱히 아껴야 할 정도로 빈곤하지 않다면 말이다.  사실 그정도는 다른데서 아낄수 있을것이다. 책값 20달러를 아끼지 말라. 그 책이 좋으면 또 사면 될일이다."

 

위에 나의 이웃이 소개한 '하라 켄야 워크샵'의 깊은 의미를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라 켄야의 워크샵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우선 손으로 작업한다는 면에서 나의 방법과 상통하기도 하거니와,  무지의 인식, 오류의 비워냄, 새로 채워넣음의 의식에서도 배울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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