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6일 화요일

안녕~

ESL 클래스의 미국인 강사 '토드'가 수업 마치고 나가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내게,

방긋 웃으며

"안녕~"

이런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쯤 되는 청년인데, 나보고 "안녕~"

 

그래서 내가 픽 웃고 말았다.  왜 웃냐고 묻길래 설명을 해줬다.

"너 나한테 bye bye 개념으로 안녕! 이라고 말한거지?"

"응"

"그런데 그 한국어 작별 인사 '안녕'은 애들 사이에서, 혹은 어른이 나이어린 사람한테 가볍게 날릴수는 있어도 너하고 나사이에 '안녕'하고 날리기에는 부적절한거다. 너하고 나하고는 격의없는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는데?"

"너는 지금 일 마치고 나가는 길이고, 나는 아직 학교에 있으니까, 너는 가고 나는 남아있는거쟎아. 이 경우에 너는 --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말하는거다.  영어로는 헤어질때 good bye 한가지면 되지만, 한국어에서는 가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의 표현이 다르다. 떠나는 사람은 '안녕히 계세요' 하는거고 남아있는 사람은 '안녕히 가세요' 하는거다."

 

토드는 '안녕'이라는 말을 자신의 절친한 한국인 친구에게서 배웠는데, '안녕'이라는 말의 이런 구체적인 맥락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한국인 친구는 자신이 '안녕'이라고 말할때 '안녕'이라고 말하면서 킥킥 웃기만 했다고.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이런 맥락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내가 언어 선생 아니냐..토드야...)

 

그래서 토드 녀석과 문을 가운데 놓고 들락거리며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연습을 반복했다.

 

이번엔 내가 떠나는거야, 넌 나한테 뭐라고 그러지?

"안녕히 가세요"

그렇지. 이번엔, 나는 남고 네가 떠나는거야. 넌 나한테 뭐라고 그러지?

"안녕히 계세요."

그렇지.

 

토드가 마지막으로 문을 밀어젖히며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서 내가 빙긋 웃고, 혀짧은 소리로 말해줬다,
"안뇽~"

 

 

 

 

댓글 4개:

  1. ^^우리 아이들도 아직 그걸 헷갈려 해요..~계세요...인지 ~가세요...인지...

    다음에 그렇게 설명해주면 되겠어요..^^

    답글삭제
  2. @사과씨 - 2010/04/07 05:09
    아, 자녀분들께서 한국어가 약간 서툰가보지요? (제가 1.5세 2세 이민자 언어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언어와 정체성 문제 연구하고 있거든요.... 사과씨님의 언어정체성도 궁금해지고요...그, 언어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스...)

    답글삭제
  3. @RedFox - 2010/04/08 10:57
    큰아이는 지금 20살인데 1살에 미국에 왔어요. 그리고 작은 아인 여기서 태어났어요.. 그래도 작은 아이가 더 잘하는데 저와의 거의 모든 대화가 한국말로 가능하고 읽을줄 알고 한국 티비를 보고 잘 이해하고 간단한 작문을 하는 정도인데.. 큰애는 그냥 알아듣고 간단한 말을 하는 정도에요..(이녀석은 원래 엄마가 하라면 뭐든 안하고 보는 쪽이라 많이 못배웠죠..ㅡㅡ)

    저요 그냥 법적인 미국사람일뿐.. 영어는 딱 필요한 만큼.. 밋치 앨봄이나 댄브라운의 책을 그럭저럭 읽을 정도..ㅎㅎ..

    답글삭제
  4. @사과씨 - 2010/04/07 05:09
    전에요, 1.5세 학생들과 그 어머니들을 몇 케이스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걸로 논문 쓰려고. 그러다가 다른 케이스로 논문을 쓰긴 했는데, 제가 언어 정체성 연구할때 인터뷰 했던 케이스들을 보면 -- 참...논의 되어야 할 현상들이 많더라구요. 사과씨님이 몇줄로 정리해주신 내용을 봐도, 그 속에 의미있는 사항들이 여러가지 보이거든요...



    전에 플로리다에 있을땐, 사실은 주변에 한인 1.5세 2세들이 별로 없어서 연구하기가 편하지 못했지요. 워싱턴 인근에는 한인 1.5/2 인구가 많으니까 정말 연구해볼만하지요... 이런 연구들이 모이면 '한인/한국계미국인 권익'에도 기여를 하게 되고요...

    (혹시 제가 본격적으로 작업 들어가면, 인터뷰 해달라고 졸라야지~~~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