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9일 월요일

냉면

 

RSVP로 예약되어 있었던, 디씨의 워크숍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전철에 한발 올려놨다가,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와버렸다.

아무래도 일정을 소화할 자신이 없어서. (감기가 지독하게 떠나지 않고 있다)

 

내가 옷 차려입고 나갔다가 되돌아온 '꼴'을 보고 박국장이 깨소금맛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요즘들어 나의 위엄이 낙하 일로를 걷는 고로, 아주 보기에 흐뭇하다는 것이다.

내 연구에 중요한 워크숍이었는데, 감기때문에 포기를 하다니...

 

'우래옥'에서 점심 모임이 있다고 노래를 부르며 나가는 박국장의 등에대고

"이러다 내가 아무래도 죽으려나보다, 죽기전에 우래옥 냉면이나 한사발 먹고싶구나~"

역시 노래를 불렀더니, 박국장이 정말 냉면 이인분을 테이크아웃으로 싸왔다.

음식 먹고 남은 찌꺼기라며, 새우전, 명태전도 따로 담아왔다.

찌꺼기라도 좋다 먹을수만 있다면!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어쩐지 음식이 넘어가지를 않아서 냉면 몇 젓가락에 새우전 하나 집고 말다.

 

그래도

내가 애를 밴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는 말로 냉면타령을 했는데

염두에 두었다가 챙겨다 주니, 고맙기가 이를데 없다.

(근데 우래옥 냉면은 진짜 맛이없다....아니, 내가 입맛을 잃은 탓이리)

 

나는 작은 친절에 약하다.

아마, 사람들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사물의 실상은 아주 작은데 깃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냉면 한사발이나 혹은 먹다 남았다고 싸오는 부침개 몇장 같은것.

 

감기몸살이 영 회복이 안되고 질질 끄니까

처량한 기분이 들면서

문득, 옛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평생 나하고는 '상극'처럼 서로 소통이 힘들었던 관계였는데

(어떤 어른 말씀으로는 서로 뭐가 안맞는 사주라서, 만나면 피하는 사주라나 뭐라나)

아무튼 서로 참 불편해 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아버지도 나를 무서워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입덧이 심해서 나날이 피골이 상접해가는 꼴을 보고

어느날 자전거 끌고 '노룬산시장'에 나가셔서 찐옥수수를 사갖고 오셨다.

내가 옥수수 좋아하는걸 아시고는 그걸 먹이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그걸 몇 알 먹다가 물론 다 토하고 말았는데

아버지가 그 꼴을 보고 짜증을 내면서 돌아서셨다.

그 짜증.... (그 짜증에 대한 나의 반사 짜증... 영원한 짜증 부녀)

 

그때, 아버지의 짜증에 나도 반사적 짜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토하면서도 목이 메었다.

그, 평생 한두번 볼까말까한, 아버지의 '잔정'에 목이 메었다.

 

 

살인의 동기...들여다보면 별것도 아니다.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동앗줄

그 것 역시 들여다보면 참 미미하고 하챦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어터진 테이크아웃 냉면 한사발

혹은 먹고 남은 찌꺼기라고 들고 오는 부침개 몇장

토할줄 알고도 사오는 찐옥수수 한자루

 

 

거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줄을 엮어 제 몸집보다 몇십배 큰 먹잇감을 잡는다.

 

 

 

댓글 2개:

  1. 맞아요.. 우래옥 냉면 맛 없어요..안 불어도 맛없어요...ㅡㅡ;



    감기들어 입맛 없을때 멸치 다시 국물에 된장 살작만 풀어 시금치 넣고 쌀죽 끓이면 좋을텐데..

    몇년 전에 동네친구가 엄마 돌아가시는데 한국에 못가보고 병이 나버려서 밥도 못먹고 며칠이나 누워 있는 걸 저리 죽을 한번 끓여다 문 앞에 두고 왔더니 나중에 전화해서 막 울더라구요..

    아마 그걸 해다 문 앞에 두고 온 나는 정작에 그런거에 목이 말라서 그 갈증이 보였던건데.. 그러니까 결국에 나를 위해 그러고 왔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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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과씨 - 2010/04/20 07:09
    우래옥이, 음식이 감칠맛이 없죠... 주로 한국의 고관대작들 오면 연회장소로, 혹은 지역 한인들 회동장소로, '회관'의 의미가 더 강하지요.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음식. (도무지 어떤 감칠맛이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 아이구 너무 냉소적인 평인가.





    옛날에 우리 언니가 며칠 앓고 누웠던적이 있었는데, 그때 언니도 애기엄마, 나도 애기엄마였는데, 큰애를 업고 언니네 가서 (하하하) '다시다' 듬뿍 풀고 콩나물국을 한 솥 끓였거든요. 언니가 (하하하) 다 죽어가다가 콩나물국이랑 흰쌀밥이랑 먹더니, 그걸 먹으니까 살겠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리고 두고 두고 그 콩나물국 얘기를 해요. 그거 어떻게 끓인거냐. 그렇게 맛있는 콩나물국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먹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언니의 일생에 '세상에서 콩나물국을 가장 잘 끓이는 인물'로 남게 되었는데, 비결은 ...뭐...조미료 '다시다'를 많이 풀었다는 (절대비밀) 하하하.



    미국와서 합성조미료 없이 대충대충 끓여먹고 사니까, 이제는 조미료 들어간 음식먹을때, 느끼한 이물감 같은게 느껴지긴 하는데, 조미료가 들어가건 안들어가건 오가닉이건 아니건 음식은 '감동'으로 먹어주면 장땡인거죠 하하하. :D



    그런데, 그, 여자들간의 그 아기자기한 잔정, 그거, 참 보배로운거죠. 여자들만의 어떤 향기같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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