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에 몰에 들러서 J Crew 매장에 가서 셔츠 한장과 카디건을 한장 사가지고 왔다. 지난주 우리학교 Spring Break 였지만, 나는 감기를 시름시름 앓거나 뭐 그러느라고 여행도 못갔고, 집에 처박혀서 일이나 했다. (내가 좀 딱하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 '오랫만에' 출근해서 연구실 청소도 싹하고, 물걸레질까지 열심히 해 대고, 그리고 일찌감치 퇴근하는 길에 아들 학교에 가서 픽업하고, 그냥 딱 J Crew 매장으로 향했다. 얌전한 정장스타일의 바지 한장과 역시 얌전한 드레스셔츠를 한장 사려고 했는데, 바지가 맘에 드는것이 안보여서 포기하고, 얌전한 (늘 그저 그모양인) 면셔츠 한장. 그리고 유독 이곳에서만 할인 판매를 하는 캐시미어 카디건을 '덥석' 물어줬다. (그저께 조지타운에서 봤을때도 정가를 받았단 말이지...)

옷을 왜 샀냐하면, 이번주 말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열리는 학회 행사에 가는데, 내가 너무 후줄근해보일까봐. 명색이 지도교수인데 영 '똘마니'처럼 행색이 남루해보일까봐 약간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뭐 번듯하게 뭘 입을까 생각해봤는데. 나의 문제는, 내가 '정장'을 아주 못견뎌 한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내게는 변변한 정장이 없다. 그냥 간신히 생 날라리를 면 할 정도의 복장일 뿐이다. (그런데, 사실 학회 행사에 가봐도, 유명한 학자들도 구질구질하게 입고 나타나는 것이 이곳의 문화라서... 나도 뭐 눈치볼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어쩐지...대강 아무렇게나 입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면 안될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뭐 역시나 생날라리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 되고 만다.
연한 푸른색 전통적인 셔츠, 저거 입고, 얌전한 감색 바지 (학회나 파니에 갈때면 늘 입는것, 그게 한 오년 넘었지 아마...) 그거 입고, 아니면 회색 스커트 (역시 늘 교복처럼 입는것인데, 아 작년 봄에 학회 발표하러 갈때 입었는데, 조교녀석이 기억할거야 아마...). 에라 몰라~ ~ 난 정장을 입으면 숨이 막히는것 같아서, 못입는다. (없다.)
오랫만에 학교에 나가서 'Spring Break는 잘 쥐었는가' 행정조교에게 물으니 - 학생들이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진을 치고 공부를 하는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알려준다. 학생들이 시험준비와 학회 발표 준비를 하느라 고생들을 했던 모양이다. (진짜 공부에 미친 분들이시군...하하하.) 고맙다. 공부 열심히 해 줘서... 아, 뭐라도 사먹여주고 싶다. 나의 작은 별들.
아들녀석이 내 옷 고를때 코치를 해주면, 의지가 된다. 녀석에게도 얌전한 면바지 한장을 사줬더니 입이 찢어진다. 그것 입고 아르바이트 한다고 급히 뛰쳐나갔다. 돈 벌면 버는대로 봉투째 갖다 던져주고는, 바지 한장 얻어 입으면 좋아 죽는다.
아 나도 저 퍼런 셔츠 입은 모델처럼 살을 쭉 빼고, 옷을 저렇게 근사하게 소화를 시켜보고 싶다.

어제 산 카디건 착샷.
중간고사 시험치는 날이라서, 미리 준비한 시험지 가지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시험공부 때문에 날새고 후줄근한 몰골의 학생들이 야유를 보냈다.
자기네는 시험으로 고문을 당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봄을 만난것 같다고.
그래서, '억울하면 공부해서 교수가 되시죠'라고 말해줬다. ㅎㅎㅎ
세시간짜리 수업인데, 학생들은 한시간 반만에 에세이 작성들을 완료하고 어울려서 나갔다. 인근 카페에 가서 일단 이 시험을 마친것을 축하하는 분위기. 이제부터 나는 에세이 읽으면서 채점하고, 답안 전체 평가하고 분석해서, 다음 수업에서 토론할 거리를 정리해야 한다. 학생들의 답안 에세이를 읽다보면
- 학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사항들 (공통적인,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 기발한 아이디어
- 공통적으로 주의해야할 에세이 작성요령
등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는데, 이런 것은 수업중에 토론을 하고 지나가야 한다.
열 여섯명의 대학원생들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끙끙거리며 답안 작성을 한 두사람은, 이분야 혹은 타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들.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제 나는 채점이나 차근차근...
오랜만에 뵈어 반갑습니다...
답글삭제저 면셔츠가 보기엔 후줄근한거 같아도 입으면 나름 멋스러워요.. 가디건은 봄색이에요.. ^^
아니 저런 아들이 요즘 어디 있어요..아르바이트한 돈 통채로 엄마 주는...
포스팅 많이 하셔서 찬찬히 둘러보려구요...^^
@사과씨 - 2010/04/06 11:18
답글삭제아 사과씨님, 이제 좀 다니실만 하신가요? 알러지때문에 고생하시는데 저만 멀쩡한것 같아서 죄송했지요. 그런데 그 알러지가, 스트레스하고도 상관이 있는것 같아요. 제가 전에 공부때문에 무척 스트레스 받을때, 그때 잠시 알러지를 겪었는데, 스트레스 안받으니까 다시 본래의 '원시인'상태로 돌아오는것 같았어요.
자식에 대해서는, 남의 자식하고 비교 안하고, 그냥 이쁜것만 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져요...
역시 쇼핑은 이렇게 종알종알 서로 이거 이쁘다 안이쁘다 주고 받는 맛이지요. (아, 제가 다시 살아난것 같아요. 슬슬 쇼핑을 하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