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7일 화요일

[산책] 4월 27일 : 달님이 기다려

 

오후 아홉시 반쯤의 달 (산책 마치고 산 기슭에서)

 

 

아침에 분명히 나하고 약속해놓고, 남편이 저녁이 되자 일이 바쁘다고 산책을 못 가겠다고 한다. 저녁에, 해가 떨어지기전에는 얼마든지 나혼자 돌아다니지만, 밤에 혼자 강변에 나간적은 없다. 남편이나 아들놈이나, 친구나. 누군가가 동행 할때만 밤길에 나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약속을 안지켰다.  밥벌이 하느라 약속을 못지키는데 내가 골을 낼 수는 없고.  이 경우 동네 산책이나 슬슬 나갔다 오면 되겠으나, 나는, 강변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혼자 나갔다. 일곱시 반에 나갔다가 아홉시 반에 돌아왔다.

일곱시 반에는 환했는데,

걷다보니 달이뜨고

그리고 밤이 왔다.

 

그렇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전에 읽은 책을 생각했다. 하버드에서 진화심리 연구하는 여성이 쓴 책.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강도를 만날 확률과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을 비교해보면,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다 사고 당할 가능성은 실제로 아주 미미한거다. 우리는 논리가 결여된 공포에 떨고 있는 셈이다.]  맞어. 난 겁이 너무 많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 게다가 요즘 성서의 복음서를 열심히 읽는데, 예수께서 '누누히'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누히 말씀하셨단 말이지. 

 

 

내가 경거망동하는것도 아니고, 밤에, 그냥 강변에 산책가고 싶은데, 그 밤에 그 강변길에서 혹시 강도라도 만날까봐 두려워서 못 나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어리석은' 공포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강변에 밤에 쏘다니기로 했다.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결국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있어. 조금 빨리 죽는가, 나중 죽는가 문제이지.  그러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뭘 안하거나 그러지 않겠다고 요즘 생각한다. 그냥 순리대로... 두려움 없이... 살겠다.

 

 

내일이 보름이다. 오늘은 열나흘달.

달이 어찌나 크고 환하던지

 

 

 

오후 여덟시반. 키브리지 위에 뜬 달. 

키브리지의 휘황한 조명등도, 달을 가릴수는 없었지

저 환하고 너그러운 달을 가릴수는 없었지

 

 

 

 

이 환한 달을 등에 진채 반환하여 돌아오는길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봐라 달이 쫒는다'를 떠올렸지

마루야메 겐지의 소설에 빠져 지내던 시절

내 삶의 한때.

 

 

 

 

댓글 2개:

  1. 언제고 죽는거니 죽는건 괜찮은데 곱게 죽고 싶은 바램이어요...안그래도 어제 뉴욕 시내에 길에서 피흘리고 죽어가도 다들 그냥 지나가는 동영상을 보니 침대에 누워 가족들 보는데서 눈 감는 것도 축복이다 싶어져요..



    가로등에 달빛에 몹시 몽환적인 그림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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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과씨 - 2010/04/28 21:58
    카메라로 달 사진 찍으면, 우리 육안으로 볼때만큼 그렇게 크게 안나오고 깨알만하게 나오쟎아요 (우리는 눈의 조리개를 당겨서 그것만 보니까 커보이는거죠). 그래서, 달 사진을 찍으면서도 별 기대는 안했는데, 예상외로 달이 훤하게 잘 찍혔어요. 내 디카로 달을 이렇게 이쁘게 찍어보긴 처음이라 혼자 '자랑스러워'하는중. :)



    사과씨님이 찍으시면 '작품'이 나올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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