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4일 일요일

부활절에 일어난 일들: 새와 노인

작년: 나무에 매달린 새 한마리

 

작년 부활절날 아침의 일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쌀쌀한 4월 초의 날씨였다.  쌀쌀했다. 코끝이 시릴정도의 쌩한 초봄의 날씨. 맑은 하늘. 마치 시월의 가을날씨같은 그런 쾌청한 이른 봄날.  그날 조지타운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포토맥강변의 나무에 '새'한마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것이 보였다. 이상도 하지. 허공에 새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니.

 

다가가서 보니 투명한 낚싯줄이 높다란 나뭇가지와 새의 발을 뒤 엉키게 하여 새가 거꾸로 매달려 퍼덕이고 있었다.  내 옛일기를 찾아보면, 거꾸로 매달린 새의 사진이 남아있겠지...   낚시꾼이 아무렇게나 방치한 낚싯줄에 발이 엉켜 허공에 디룽디룽 매달린 새 한마리.  그때 나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베드로를 떠올리고 있었다.  화창한 4월의 아침. 부활절날이라고 하는 그 일요일 아침에 멀쩡한 새가 거꾸로 매달려 헛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치며 근심하였고, 한숨을 쉬며 쳐다보다가 속수무책으로 가버리곤 했다.  내가 태어나서 911에 전화를 건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911을 부를일은 없을것이다...).  "포토맥 강변에...체인 브리지와 키 브리지 사이의 강변 나무에 새 한마리가 낚싯줄에 엉켜서 매달려 있다...구해달라..."  여러차례 시도끝에 마침내 연결된 포토맥강 야생동물 보호센터 직원에게 애매한 위치를 설명하고는 그 강변에서 꽤 한참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속으로 절망하고 있었다.  '이런 새 따위 강변에 널려있는 수백마리의 동종의 새무리중의 하나에 불과한데. 이따위 새 한마리를 구조하기 위해서 뭐가 와주겠어?  소용없는 일이지...'

 

결국 나도 한참을 어정거리며 그 새만 쳐다보고 있다가 자리를 떴었다.

 

그리고, 조지타운을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길,

나는 보았다.  새가 매달려 있던 나무 아래에, 그 새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투명한 낚싯줄이 아직도 나뭇가지에서 풀어지지 않은채 바람이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새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내 추측으로는, 야생동물 구조대가 나타나서 허공의 낚싯줄을 끊어내어 새를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남아있는 낚싯줄 나머지는 어쩌지 못하고 그냥 가버렸을것이다. 새는 구제되었을것이다.  만약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새는 아직도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가고 있었을테니까.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는,

애면글면하지 말고, 지나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갖을것 없이

그냥 내 길을 가는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해결할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것.

결국, 누군가가 와서 새를 구해주지 않았는가?

책임회피를 해서도 안되지만, 억지스럽게 책임감에 눌려 살아서도 안되는 것이지.

 

올해: 어둠속의 노인

 

올해 부활절 일요일은 5월의 날씨처럼 따뜻하고 화창하였다. '천국'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거리에 꽃들이 피어나고, 연두빛 물감을 풀은듯 나무에 물이 오르고, 온종일 태양이 빛나고. 아주 따뜻하고 좋았다.

 

저녁을 먹고나서 해거름에 우리개 왕눈이와 남편과 함께 포토맥 강변에 나갔다.  작년과 같은 산책 코스. 돌아오는 길은, 밤이라서 어두웠다. Fletcher's Cove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로 향하는데, 어둠속에 서성이던 사나이가 남편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그는 70대 노인이었는데,  자동차 열쇠를 차에 두고 내려서, 뭔가 연장을 가지고 자동차 문을 열어야 한다며 연장을 빌려달라는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연장은 버터나이프같은 작은 손칼 같은것이라고 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서 문을 열려면 꼭 손칼같은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차에는 아무런 연장이 없었다. (앞으로는 나도 연장 공구함 하나 정도는 갖고 다녀야겠다.)

 

날은 어둡고, 지나치는 사람도 없고,  손칼같은 연장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특히나 어두운 밤에 ... 지나치는 사람을 보기도 힘든데...

 

결국 그에게 도움을 주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가 손칼 같은것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인에게 제안을 했다. "여기서 우리집이 가까운데, 내가 차로 가서 필요한 연장을 갖고 오겠다. 20분 안에 도구를 갖고 오겠다. 기다릴수 있겠는가?"  노인은 두시간이라도 기다려야 할 처지라며 웃었다.  그래서 20분안에 연장을 갖다 주기로 하고 자리를 떠나면서 전화번호를 메모해 주었다.  "만약에 20분 안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문제 해결을 해주면, 내게 전화를 하시길. 그러면 나도 안심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부랴부랴 집으로 와서 도움이 될만한 연장들을 챙겨서, 약속대로 20분 안에 도착하기 위해 운전을 하던중, 강변 못미쳐서 전화를 받았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 와도 된다고.   그래서, 강변에서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작년에도, 나는 그 새에게 별 도움이 되어주지 못 한 것 같고

올해에도, 나는 문제에 빠진 그 노인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새가 고통을 겪고 있을때, 나는 한참동안 거꾸로 매달린 새 곁에서 새에게 말을 걸어주며 서 있었고

한 노인이 문제에 빠졌을때, 어둠속에서 그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고, 그리고 도움이 되기위해 서둘렀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역시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노력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거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것 같아...

 

 

내년 부활절에는 또 어떤 생명이 내게 도움을 청할지

나는 또 어떤 헛짓을 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

 

 

 

 

 

댓글 2개:

  1. trackback from: 부활
    두 해 연속으로 부활절마다 누군가를 도울 일이 있었던 이웃님의 일화를 보고 든 생각. (참고로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배움에 경계가 없었으면 한다.) 일화를 간단히 인용하자면, - 지난 해에는 낚싯줄에 걸린 새를 구하기 위해 911에 전화를 했다가, 구조반이 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돌아갔는데, 다음에 와 보니 낚싯줄은 그대로 있고 새만 없더라는. 그러니 그 사이에 구조반이 새를 구한 것. - 올해에는 차 문을 열지 못해 낑낑대는 할아버지를 위해 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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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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