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7일 토요일

돈봉투...그 너절한 유혹

 

감기약 기운에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몇자 끄적.

 

첫학기 종강하던날, 수업 마치면서,

종강파티겸 간단히 potluck으로 음식을 차려 나눠먹고

학생들과 작별했는데,

잠시 오피스를 비웠다가 돌아와보니

내 책상에 봉투가 하나 남겨져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학생들 연명으로 가르쳐줘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달러 지폐 여러장. (얼마였더라...)

 

학생들이 나모르게 푼푼이 모아서 '선물'로 놓고 간 모양이었다.

 

편지는 고마운데,

달러지폐...는...학생들의 '선의'와는 상관없이 내 기분을 망치는데 일조했다.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기분이 저조해졌다고 할 만하고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선생이 아닌 일반인으로 돌아가 내 성질대로 표현하자면)

기분 아주 더러웠다.

 

 

그렇다고 달려 나가서 봉투속의 돈을 학생들에게 각자 돌려주기에도 마땅치가 않고

이걸 갖고 있자니

똥물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기분을 벗어날수가 없고

 

 

그래서 1차적으로, 그자리에서 한 일:

 

(1) 학장님한테 편지봉투를 갖고 가서 편지와 돈을 보여드렸다--"학생들이 이런걸 놓고 갔네요." 학장님은 학생들이 간단히 성의표현 한것인데 선물로 그냥 받으라고 하며 웃었다.  문제는, 그것이 평범한 선물이었대도 나는 똥바가지 뒤집어쓴 기분이었다니깐...

 

(2) 그 다음날, 사회봉사단체에 가서 학생들의 편지와 현금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돈을 학생회 이름으로 기부를 할테니, 기부금으로 받아주세요" 했다.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학생들의 뜻을 존중하는 뜻에서 나도 내 돈을 더 꺼내서 보탰다. 우리 학생들 학생회 이름으로 영수증이나 하나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그 사회단체에서 영수증을 한장 받아왔다.

 

(3) 나는 그 사회단체에서 발부한 영수증을 강의실 벽에 붙여놓았고, 학생들에게도 전체 공지를 띄웠다. 몇몇 학생이 돈을 거둬서 내 책상에 놓고 갔는데, 내가 잘 받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돈에 몇푼 더 보태서 어디로 보냈다. 그 사회봉사단체에서 요긴하게 잘 쓸것이다. 앞으로도 내 책상에 현금봉투가 올라오면, 그리 보낼것이언즉, 내 책상 거칠것 없이 그냥 그리 가서 기부하면 더 좋으리~ 

 

 

(4) 얼마후에는 그 사회단체에서 공식 세금보고서에 제출할 정식 문건으로 다시한번 영수증 비슷한것을 학교로 발송을 해왔다. 그 문건은 아직도 강의실 벽에 붙어있다.

 

 

그런데 그 후로 내 책상에 돈봉투 갖다 놓는 사람이 없다.

 

 

(다시 약 먹고 뻗으러 퇴장)

 

 

 

 

 

 

 

댓글 8개:

  1. 요며칠 일교차도 너무 많이 나고, 바람 많이 불고...감기 걸리기 딱이에요.. 언능 나으셔요...

    답글삭제
  2. @사과씨 - 2010/04/18 08:10
    제가 일년의 삼분지 일은, 감기 몸살이네 뭐네 해서 타이레놀이나, 아무데서나 파는 감기약을 달고 살아요. 제가 '청순가련형'은 아닌데, 그렇다고 '돌쇠'처럼 무쇠같은 건강체질도 아니고....꿈은 청순가련형인데 말이지요 하하하...



    아이고, 나이 먹을수록, 일교차 견디기가 어려워요 (나이를 속일수가 없어요 깽깽~)

    답글삭제
  3. @Ovwrd - 2010/04/19 02:05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신이 납니다.

    답글삭제
  4. 봉투에 대한 대응은 훌륭한 방법이셨던 것 같습니다. 봉투를 드리기 전까지 그 나름 혼란스러웠을 학생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는..



    감기 얼른 나으시길..

    답글삭제
  5. @encounters - 2010/04/19 02:44
    예, 저는 그때 그 행동을 두고두고, 스스로에게 고맙게 생각을 한답니다. (내 머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기특한 생각이 나왔는지! 신의 가호로다! )



    사실, 그런 돈봉투 생각을 모든 사람이 한게 아니겠죠. 어떤, 뭔가 인생을 잘 못 배운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였겠죠. 그 한사람의 생각에, 다른 사람들까지 말려들수 있는거죠 (그래야 하나보다..이러고...). 그리고, 제가 만약에 그 몇 푼 안되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더라면, 저 역시 인생 잘 못 배운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에 말려들어가는거죠. (완전히 똥통에 빠지는거죠...)

    그거 잘못 말려들면, 헤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앉았을때 가끔 이런 농담을 해요.

    "나한테 현금 한 백억만 갖고와봐. 그러면 내가 받는다. 받고, 몇달 감옥살이 하지 뭐, 그러고 나와서 그돈 갖고 떵떵거리고 살아주마. 사회단체에 기부도 하고, 좋쟎아. 그 이하로는 액수가 너무 작아서 못받겠다..."



    제가 도둑이 되어도 큰도둑을 해먹지

    비럭질은 안하겠다는거죠 뭐... (^^)

    답글삭제
  6. 이것이 어언 2년전쯤 일이니까,

    그 후에 노대통령 돌아가시고...

    노대통령 당시에 총리하시던 한 아무개씨 수뢰혐의로

    들락날락 하시고...

    생각해보면

    일개 서생인 나도, 돈이 우스운데 (사실 기초적인 밥벌이 해결되면 돈은 우스워질수 있습니다...)

    나보다 현명한 분들이, 그렇게 호락호락 했을까 싶은거죠...



    돈 많지 않아도, 우리가 지조를 지키기에 필요한 돈은 그리 큰 액수는 아니거든요. 세끼먹고 살만하면 남의돈은 우스워보이거든요. (골프 안쳐도 되고, 샤넬백 없어도 되고.)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 공자 이분들 골프 안치고 벤츠 안몰고, 샤넬백이나 아르마니 양복 없어도 인류의 스승이신거보면~~~ ~~ (^6^)

    답글삭제
  7. 멋있어요 ! 님 좀 킹왕짱이심..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