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아카시아

 

 

 

오후에 퇴근하려고 주차장에 나왔는데, 내 차 뒷창문에 아카시아 꽃이 반사되어, 꿈속같이 황홀하였다.

 

한국에서는 아카시아 꽃이 필때, 초록잎사귀와 꽃이 함께 피는데, 버지니아의 아카시아는 마치 벚꽃이나 목련처럼 나뭇가지에서 흰꽃이 하얗게 매달리고, 잎사귀는 그 후에 돋아난다.  (물론 한국의 아카시아 같은 종류도 보인다).

 

내 연구실 창밖에도 사철 죽은것처럼 키만 껑충하고 잎도 안보이던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꼭대기가  눈온것처럼 하얗게 꽃송이들로 덮여있었다.  나는 작년에 왜 그 꽃을 보지 못하였을까?  내가 기억을 되짚어 보면 아카시아도 해걸이를 하나보다. 작년에는 이렇게 눈부시게 희게 무리지어 피는 아카시아를 보지 못했다. 올해는 아카시아가 눈온것처럼 세상을 덮고 있다.

 

향기는, 밤이 될수록 진해져서, 취할것 같다.

한국에서는 5월 중순쯤에 아카시아 향이 진했었다.

뻐꾸기도 그때쯤 울어댔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산책] 4월 27일 물고기와의 조우

 

 

밤길에, 수로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났다.  검은 물에서 저벅저벅

비버님이 돌아다니는가 생각하며 들여다보니 비버가 아니다.

물고기다.

사진속의 물고기는 실제로는 내 팔뚝 (아랫부분: 손에서 발꿈치까지) 정도의 크기이다.

그만한 물고기들이

수로에서 물이 빠져나가니까

결사적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으로 저벅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고 있다가, "Hey!" 하고 소리를 질러보았다.

사람 목소리가 나니까

저벅거리며 물고인 흙바닥을 '쓸며' 지나가던 물고기들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진다

이럴때는 물고기도 짐승과 다를바가 없다.

물위로 몸을 드러낸채, 몸을 활처럼 움직이며 흙바닥 위를 이동하는 딱한 물고기.

 

잠시 고요하던 물고기들은 또다시 바삐 흙위를 이동한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얼마나 더 갈지...

물은 자꾸 빠지고

팔다리도 없이 몸으로만 어떻게 움직여서 갈것인가.

 

둑 너머 수풀 지나면 저만치에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포토맥강이 유유히 흐르는데

하필 너희들은 왜 물이 마르거나 빠지는 이 수로를 고향으로 삼은 것이냐?

 

 

 

 

 

내가 딱히 도와줄 방법도 없고,

그냥 어둠속을 걷고 있는데

수로 여기저기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물고기들이 살겠다고 저렇게 몸부림을 치며 이동하는구나.

절망적으로 보이는 행렬...

 

집에 와서 사진을 보여주며 내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지금 수로위를 행진하고 있다고 했더니

우리집 남성동지들: "거기 어디야? 뜰채로 뜨러가자!"

 

내가 보기에 뜰채도 필요없다. 그냥 들어가서 두손으로 잡을수도 있겠더라...

 

난 물고기 생각하면 슬프고 딱하고 그런데, 이 남자들은 잉어찜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다. 

 

 

오늘,

용맹하게

혼자 강변에 나가서 여러가지를 보고, 경험하였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거나

살아있는 생물과 만나게 될때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신의 선물'이라는 느낌을 가질때가 많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황혼에 혼자 서있다 훌쩍 날아오르던 블루 헤론

아카시아

오동나무꽃

저녁이 되자 꽃잎을 꼭 닫고 휴식을 취하는 버터컵 (butter cup) 꽃

물이 빠져서인지 불안하게 돌아다니는 비버들

허덕이는 팔뚝만한 물고기들

그리고 나를 부르던 둥근 달, 내 뒤를 쫒던 그 달.

차가운 공기

어두움

어둠속에 이따금 지나치던 조깅복 차람의 늘씬한 청년들

휘청이며 날아오르는 박쥐들

그리고 저만치 유유하게, 바다처럼 흐르는 포토맥강

그리고 어둠속에 들짐승처럼 걸음을 재촉하는 나 자신.

 

나 혼자였기때문에

이 모든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혼자 밤길을 걷는 일이 무섭지 않아.

나는 신의 섭리속에 존재하니까.

 

 

 

 

[산책] 4월 27일 비버 (Beaver)님 안녕하세요!

 

해가 아직 지기전에, 수로에서 돌아다니는 비버를 발견했다.  조지타운 방향으로 걷던중 세마리나 보았다. 

왜 이렇게 비버가 보이나? 생각을 해보니, 수로의 물을 관리하는 팀이 물을 빼는 모양이었다. 수로에 가득찼던 물이 빠져나가면서 바닥이 드러나니까 비버가 살 방도를 찾느라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비버는 우리집 뒷마당의 우드척 (woodchuck)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꼬리에서 차이가 난다. 꼬리가 밥주걱같이 납작한 모양이다.

 

 

키브리지에서 반환하여 돌아오는 길은 달이 떠서 훤하게 밝혀주긴 했으나 아홉시가 넘은 밤이었다.

그런데 수로의 물이 빠져서 얕아진 물에서 헤엄치는 비버가 보였다.

내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멀리서 사진을 찍는데, 비버가 물에서 나오더니 내가 서있는 길 위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내가 걷는 길과 수로 바닥사이에는 1미터 높이의 둑이 있는데 (내가 둑길을 걷는 셈인데) 이 비버님이 글쎄, 플래시가 터지는 쪽으로 부지런히 올라오시는거다.

 

 

 

 

 

 

 

비버님이 다가오니까, 카메라에 이놈을 잘 잡기 위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어둠속에서 이정도의 화면을 얻은것만도 고맙게 생각한다. 미니 디카로 찍어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글쎄

비버님이 길위로 올라오더니, 우리집 왕눈이처럼 (덩치도 우리집 왕눈이만하다. 사진상에는 조그마한 설치류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집 왕눈이만한 중개 정도 크기이다)  앉아서는 나를 쓱 올려다보는거다.

 

밤에

어둠속에서

물에서 나온 강아지만한 비버님이 내게 다가와서 나를 올려다보는데

나 솔직히 겁이 났다.

내가 아직 비버에 대해서 연구를 안해서

이분의 성격이나 취향을 잘 모르는것이다.

인간에 대해서 공격적인지 아닌지 모른단 말이지...

그래가지고 약간 쫄아서 슬쩍 비켰더니,

내 인기척에 비버님이 놀랐는지 다시 둑을 내려가 물속으로 유유히 가시다~

 

그런데,

그렇게 비버님과 조우한후, 나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나는 가끔 혼자서 '정신나간년'처럼 엉뚱한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가령, 새벽에 사슴이 창가에 와서 인사를 하듯 나를 쳐다볼때

혹은 오늘처럼 비버가 한밤에 다가와 나를 멀거니 올려다볼때

이럴때 나는 마치 영화 Seraphine 의 주인공 '미친 화가'처럼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사슴을, 비버를 보내주는것은 아닐까...

그런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다가와서 나를 쳐다봐주고 가버리는 비버가, 그냥, 고맙다.

왜 고마운지는 모르겠는데

비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을것 같다,
"용기를 내. 내가 지켜줄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 내가 너를 지켜줄게."

혹은

"물이 빠져서 걱정이야. 나좀 도와줘. 물이 빠져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러면 나는 말해줄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다시 물이 채워질거야."

 

 

 

 

 

 

 

 

비버야 오늘 내 발치까지 와서 나를 쳐다봐줘서 고마워.

나는 네가 나를 그 튼튼한 앞니로 꽉 깨물까봐 약간 겁을 먹었지 (^^)

 

 

[산책] 4월 27일 아카시아의 계절

 

 

요즘 버지니아, 북 버지니아 일대에 아카시아가 한창이다.

내 연구실 밖에도 아카시아가 만발을 했는데, 목련이 가득핀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철쭉이 피다 지치면 아카시아가 피어나고

아카시아가 말라서 떨어질 무렵이면

오동나무 꽃이 만발을 하면서 초여름이 온다.

오늘 포토맥 강변에도 오동나무 꽃이 활짝 폈다. (어두워서 사진을 못 찍었다.)

 

인생은 짧고

봄날은 휙 지나가고 만다.

꽃이 피어날때, 그것을 보며 순간순간 기뻐하는 것이 이 허망한 삶을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산책] 4월 27일 : 달님이 기다려

 

오후 아홉시 반쯤의 달 (산책 마치고 산 기슭에서)

 

 

아침에 분명히 나하고 약속해놓고, 남편이 저녁이 되자 일이 바쁘다고 산책을 못 가겠다고 한다. 저녁에, 해가 떨어지기전에는 얼마든지 나혼자 돌아다니지만, 밤에 혼자 강변에 나간적은 없다. 남편이나 아들놈이나, 친구나. 누군가가 동행 할때만 밤길에 나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약속을 안지켰다.  밥벌이 하느라 약속을 못지키는데 내가 골을 낼 수는 없고.  이 경우 동네 산책이나 슬슬 나갔다 오면 되겠으나, 나는, 강변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혼자 나갔다. 일곱시 반에 나갔다가 아홉시 반에 돌아왔다.

일곱시 반에는 환했는데,

걷다보니 달이뜨고

그리고 밤이 왔다.

 

그렇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전에 읽은 책을 생각했다. 하버드에서 진화심리 연구하는 여성이 쓴 책.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강도를 만날 확률과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을 비교해보면,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다 사고 당할 가능성은 실제로 아주 미미한거다. 우리는 논리가 결여된 공포에 떨고 있는 셈이다.]  맞어. 난 겁이 너무 많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 게다가 요즘 성서의 복음서를 열심히 읽는데, 예수께서 '누누히'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누히 말씀하셨단 말이지. 

 

 

내가 경거망동하는것도 아니고, 밤에, 그냥 강변에 산책가고 싶은데, 그 밤에 그 강변길에서 혹시 강도라도 만날까봐 두려워서 못 나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어리석은' 공포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강변에 밤에 쏘다니기로 했다.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결국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있어. 조금 빨리 죽는가, 나중 죽는가 문제이지.  그러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뭘 안하거나 그러지 않겠다고 요즘 생각한다. 그냥 순리대로... 두려움 없이... 살겠다.

 

 

내일이 보름이다. 오늘은 열나흘달.

달이 어찌나 크고 환하던지

 

 

 

오후 여덟시반. 키브리지 위에 뜬 달. 

키브리지의 휘황한 조명등도, 달을 가릴수는 없었지

저 환하고 너그러운 달을 가릴수는 없었지

 

 

 

 

이 환한 달을 등에 진채 반환하여 돌아오는길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봐라 달이 쫒는다'를 떠올렸지

마루야메 겐지의 소설에 빠져 지내던 시절

내 삶의 한때.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산책] Turkey Run Park April 26, 2010

 

밤새 비. 아침에도 보슬비가 뿌리는둥 마는둥

이렇게 보슬비가 내리는둥 마는둥 하는날은 산책하기에 적합하다.

새벽에 일어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언라인으로 처리하고

아침 산책을 터키런으로 다녀왔다.

 

그저께 '우산꽃'으로 소개한 꽃.  잎사귀 아래 줄기부분에 수줍게 피는 하얀꽃.

오늘은 비도 보슬보슬 뿌리는지라, 정말 꽃이 우산을 쓰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강 가운데 작은 섬처럼 몇그루 나무. 그 나무 그림자

 

 

 

아침 이슬과 빗방울이 서로 만나서 종알거린다.

 

 

 

포토맥강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

 

 

 

 

숲속의 아기똥풀꽃.  포토맥강변에서 내 어릴적 고향집 그늘진곳에, 변소 주변에 피어있던 이 '똥꽃 (우리는 이것을 똥꽃이라고 불렀다)'을 보니  사라진 고향이 내게 다시 다가온듯 그렇게 반가웠다.  꽃모양이나 잎사귀 모양새가 필시 '아기똥풀꽃'인데, 정말일까?  궁금해서 잎사귀 하나를 따 보았다 (꽃 목을 똑 따서 확인하면 확실하겠으나 꽃이 너무 고와 목아지를 꺾을수가 없었다).  잎사귀 잘라진 곳에서도 노란 액즙이 배어나왔다.  똥꽃이 맞구나... 아기 설사한듯한 노란 물이 스며나온다.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어린 시절, '나의 숲'이라는 숲에서 보낸 신비한 시간들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숲의 생명력, 치유력에 대해서 그만큼 아름답게 쓴 글을 만나기 힘들다. 

커다란 나무를 안아보거나 나무에 뺨을 대보면, 나무가 의외로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무는 따뜻하다.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문득, 숲길을 걷다가 생각했다.

 

괜챦아...

나무가 있쟎아...

숲이 있쟎아...

결국 우리가 죽어서 이렇게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일은 푸른 숲이 있는한,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사랑이 떠나가도 괜챦아.

나무가 있쟎아...

(나무는 떠나가지 않으니까)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산책[ 2010년 4월 24일 Turkey Run Park 나는 초록이다.

초콜렛꽃: 

꽃의 색상이 짙은 자주색, 혹은 초콜렛 색에 가까워서 내가 초콜렛꽃이라고 부른다.

꽃봉우리는 연두색이다.

꽃의 크기는 '고염'만하다, 감꽃보다 약간 작거나, 감꽃 크기이다. 나무에 드문 드문 피어난다.

조지타운 가는 포토맥강변에서도 몇그루 이 나무를 봤는데

터키런에 이 나무가 많이 있다.

잎사귀도 적고, 꽃도, 마치 고염 매달린것처럼 드문드문 피어난다.

 

 

 

 

우산꽃

 

숲길을 걷다 보면 종아리나 발목 정도 높이로 자라는 식물이 있는데, 그 눈에 익은 식물의 기름진 잎사귀 아래에 이 꽃이 핀다.  대부분의 꽃들이 잎사귀 사이로 줄기를 길게 뽑아서, 가장 눈에 띄는, 높은 곳에서 피어나는데, 이 식물의 경우 줄기가 올라오고 줄기 맨위에 기름진 잎사귀가 있고, 꽃은 그 잎사귀 아래, 줄기 가운데에서 피어난다. 그래서 마치 잎사귀가 우산처럼 꽃을 가려주는 모양새다.

 

 

 

 

 

 

나는 초록이다.

열흘전에 갔을때, 내 무릎높이이던 양치식물이, 오늘 가니 가슴높이까지 자라있다. 이보다 더 웃자라지는 않을것이다.

푸른 강물을 옆으로 보면서, 다채로운 초록숲의 길을 걸을때

'나는 초록이다' 이런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게 된다.

나는 초록이다.

헐렁한 셔츠, 헐렁한 바지를 입고

이 초록길을 걸으면

초록색 바람이 헐렁한 틈으로 들어와 온몸을 만져준다.

나는 초록으로 물든다.

 

 

 

 

 

강변의 나무가 베일같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수채화중에 이런 풍경이 하나 있다. 레지오날 다리 근처의 포토맥 강 풍경.

 

 

 

 

포토맥 강으로 이어지는, 숲속 계곡에 앉아서 물이 깔깔대며 흘러가는 소리를 한참 들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우리 귀에 즐겁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는 '물'에서 왔으니까.

 

 

 

들꽃에 햇살이 사선으로 금을 그어놓았다. 햇님이 들꽃하고 장난하는거다.

 

 

 

 

 

나는 초록이다

나는 초록 뱀이다

나는 초록 강이다.

나는 초록 문이다.

나는 숲속에 난 초록 문이다.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들어주는 사람

책하고, 사람하고 들여다보는 일이 내 일의 주요 속성일 것이다.

공부하는거하고, 사람 가르치는거 하고, 사람 상대하는일.

 

최근에 ESL학생들이 특정 강사에 대해서 뭔가 불평이나 '코멘트'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들이 내게 와서 하는 이야기는 어느정도 강도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누군가는 매우 조심스럽게, 누군가는 드러내놓고 적대감을 표시하는 식으로, 혹은 당장 교체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들의 불평의 내용은 일관된 면이 있다.

 

이들의 불만사항을 한가지로 정리하면: "그 강사는 혼자 떠들고 학생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문제를 내가 객관적으로 정리하자면

  1. 학생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2. 학생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살피거나 감지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3. 본인은 자신이 매우 훌륭한 선생이라고 상상하거나 환상에 빠져있다.

학생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는 사례는

  1.  뭔가 발표 시켜놓고 듣지도 않고 돌아선다
  2. 수업 자료를 토해내듯 던져주고는 그것으로 끝이다. 관련 활동이나 피드백이 연결되지 않는다.
  3. 혼자 떠드는 시간이 많다
  4. 학생의 말이나 발표를 귀기울여 듣지 않고 잡담하다가 발표 끝나면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한다.

 

이 강사는 매우 유려한 뉴욕 영어 구사자이고, 언어를 구사함에 있어 매우 아름다운, 예의바른 화법을 쓰고 있다. 언어 자체는 아주 좋은 모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유려한 언어에 대해서 학생들은  지겨움을 토로하고 있다. 선생이 아무리 아름다운 말씨를 구사하는 좋은 언어 모델이라고 해도, 그것이 '듣기 자료'로 아주 쓸만한 것이라고 해도, 학생들은 그의 말을 지겨워한다.  그의 말에서 '동감'이나 '진정성'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나는 교사의 주요 덕목인 rapport 를 형성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편이다.

 

 

(이 사람의 케이스를 보면, 이 유려한 WASP 영어 구사자의  수업에 학생들이 진저리를 치면서, 아시안 액센트가 여전한, 영어 원어민이 아닌 내가 그들의 수업에 들어와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면,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발음이나 액센트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로 분류 해 볼수도 있겠다. 연구 차원에서라도 ESL수업에 일부 시간을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에, 어떤 입학 희망자를 상담하는데, 이분이 참 할말이 많아 보였다. (난 상담이고 뭐고, 말이 늘어지는 것을 매우 피곤해 하는 편이다. 시간도 없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그런데 이 사람이 뭐랄까 할말이 너무 많은 표정이 - 갈증 처럼 보였다.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듯한 표정.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다 들어줬다. 가끔 추임새만 넣어주고, 그의 시선을 마주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가끔 웃어주면서 그냥 들어주기만 했다 (들어주는 일에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들어주는 일은 그냥 가만히 있는게 아니니까. 들어야 하니까...얘기 내용을 정확히 알아듣고, 공감을 표시해줘야 하니까.)

 

지겹지만 꾹 참고 다 들어주자, 그 학생이 말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미국에 와서 누굴 만나도 몇마디 밖에 못하고, 내 사정을 충분히 설명을 못해봤는데,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이제 속이 시원하다고. (하하하)

 

나 사실 남의말 경청하거나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니다. 남의 말 듣느니, 성현들의 책에 코를 박는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원래 내 태도가 그렇다, 의미없이 이사람 저사람 만나느니 훌륭한 책 한권 더 보는것이 내 성격에 맞는다. 그런데, 직업상, 사람을 대할때는, '나는 온 마음으로 저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들어준다는 것은 온마음으로 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수업 중에 학생을 대할때는, 전심전력으로 학생 개개인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뭐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직업 현장에서는 이런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학생들은 내가 혼자 '가르친다'고 강의하는 것보다 토론 시키고, 발표 시키고, 의견을 경청하고 사이사이 잠깐 질문을 던지거나 간단한 평을 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 강의를 어떤 '정형'으로 이미지화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온종일 서서 강의를 한다거나, 말을 안들어주거나  그러면 '미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학생들은 선생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말'하고 '설명'하고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는 수업중에 별로 말을 많이 안하면서, 주로 듣는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그럭저럭 학생들이 여전히 늘 인원초과로 수강신청을 해주는 고로 밥 굶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런데, 온마음으로 들어주는 일, 참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더욱 노력해야 한다.

특히나 이런 자세가 직장에서는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

집에 가면 긴장이 풀리면서 독불장군 행세를 하고 꽥꽥대고, 성질 다 드러내기 때문에 식구들이 애로가 많다...

 

 

(남의 말을 듣는것과, 책을 읽은 것과는 거의 동일한 행동이다. 책 읽을때 집중 안하면 읽어도 모른다. 저자와 교감이 불가능하다. 남의 말 들을때 집중하지 않으면 들어도 듣는게 아니다. 역시 교감은 불가능하다.)

 

 

 

 

 

 

 

i swear

 

감기에서 벗어난 것 같다 (일주일 걸렸군.)

이제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주말에는, 무빙세일 아이템들을 사진 찍어서 올리고, 최대한 살림을 줄이는 작업을 하고

이사와 관련된, 필요한 연락들을 취하고

유홀 렌트하고

홈디포에서 청소도구와 땜질 용품 사다가 처리하고

음. 할게 많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완료될것이고 얼마후 나는 새 집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을것이다.

i swear

 

 

 

아침에 집에서 나오기 전에, 전자렌지에 고구마를 5분 돌려가지고 가방에 휙 넣어서 학교에 오는데

학교에 와서 꺼내면 고구마가 아직도 따끈따끈하고 참 좋다.

고구마의 따뜻함이 꽤 오래 지속된다.  (열전도율이 낮은거지 그러니까...)

 

뭐 꽤 여러달, 하루 한끼니는 고구마로 때울때가 많았다. (아직도 싫증이 안나고 있다.)

뭐...손질거리가 없으니까... 고구마 사다 놓고 하루에 한개씩 그냥 렌지에 돌려서 먹으면 끝나니까

설겆이거리도 없고, 접시도 필요없고 상 차릴것도 없고, 나름, 건강식품이고.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하루

Dr. Politte 가 위내시경 검사를 하러 가야 한다고, ESL 수업 두시간을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침 내가 ESL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작업을 계획하고 있던 차라서, 잘 되었다 생각하고)

그 두시간을 내가 채워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오늘이었다. 폴리트 박사는 프로그램 디렉터인 내가

대체수업을 해주겠다니까 미안해 했다 (내가 시간 달라고 할 판이었는데. 하늘의 가호로다~ 하하)

 

대학원생 한명이 프로포절 작성한것을 봐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봐주기로 했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출근하여, 그 학생으로서는 중대한 프로포절인 만큼, 나도 신경써서 다듬어주고나니

ESL 수업을 할 시간이 돌아왔다.

 

두시간 수업 (말이 수업이지, 사실은 내 연구 작업이었다)을 물흐르듯이 진행했다.  학생들이 '너무 재밌다'

고 또 하자고 (얼씨구~), 또 수업에 들어와서 그것좀 다시 해보자고 일제히 요구를 하길래, 그러기로 했다.

(내가 연구에 참여 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판에, 저쪽에서 또 하자고 하니, 복이로다, 신의 가호로다~)

 

실험이면서,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학습이 되는 그런 것들을 짜 내는 것이 내가 요즘 들이 파는 일이다.

원래 내가 엔터테이너, 흥행사적인 스타일이라서, 학생들이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education 이 entertainment 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가니 오후 두시인데, 학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뭐 평소에 프로그램 디렉터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는지 종알종알.  그래서 그분들 개인 발언을 세심하게 들어주다보니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심도 못먹었는데... 점심으로 싸온 고구마를 뒤늦게 꺼내 먹고, 곧바로 퇴근.

 

그렇게 나의 하루가 갔다.

 

집에 와보니 작은놈 성적표가 와 있었는데, (입에서 욕나오게 생겼다) C하고 B가 들어있으니 ㅅㅂ 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아이구.

 

좀 쉬다가, 졸업해 나가는 제자를 위해서 추천서 한부를 작성을 했다.  이 친구가 아주 어렵게 와서 아주 어렵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길래, 조목 조목 물었다.  어느 학교에 보내는거냐. 무슨 선생 자리냐. 거기서 그대가 하는 일이 뭔가.  내가 조목조목 물으니 학생이 어리둥절 해 한다.  ...바보... 그 추천서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내가 추천서를 써줄수 있는것 아닌가.  토플 선생 자리에 보내는 거면 이 사람이 얼마나 유능한 토플 선생이 될지를 정확히 써줘야 하고, 이솔 선생 자리면, 이 사람이 왜 훌륭한 이솔 선생 후보인지를 설명해야하고, 자리에 따라서 추천서의 내용이 달라질수 있는데, 무작정 추천서라니...

 

그래서 내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무거나, 전에 다른 학생 써준것과 동일한 내용에 이름만 바꿔서 싸인해줄까? 난 좀 특별히, 구체적으로 작성해주려고 했는데~" 하고 농담을 해줬다.  이 착한 학생이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웃는다.  아이고 이쁜녀석. 이 학생이 졸업해 나가면, 내가 좀 쓸쓸하겠다. 내 며느리 삼고 싶은 녀석이었는데. (나이 차이가 좀 나도 확 그냥 데려다가 메누리나 삼으면~~  )  아 그래서 녀석을 위해서 머리 써서 추천서 한장을 썼다.

 

저녁이다. 배고프다.  한것도 없는것 같은데 이렇게 하루가 간다.  아, 온라인 수업, 그거 피드백 못하고 며칠째 미루고 있다. (오늘 밤엔 그걸 해줘야...)  이러다 언제 보따리싸서 이사가나...이사가 걱정이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뭐 달라질것이 없으므로, 걱정하는 대신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자...)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other-regulation to self-regulation

어제는 전기담요 뜨겁게 켜놓고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서 대학원때 읽고 지나갔던 Vygotsky 관련 논문집을 한권 정독을 했다.  내가 찾아볼게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가, 슬금슬금 읽다보니 수록된 논문들을 모두 읽게 되었다 (전에 몇차례 정독하면서 밑줄 긋고, 생각하고, 메모 하고 그랬으니까 읽기가 빠르고 수월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촘스키 책을 읽다보니 수면제라서, 촘스키를 수면제로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다가 생각하니, 여태까지 내가 갈팡질팡하던 문제가 선명하게 정리가 된다.

어제 읽었던 내용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내 데이타에 대한.

내가 비디오 촬영하면서 데이타를 모은것을 어떤 각도에서 해석을 하면 논점이 분명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other-regulation 상태에서 self-regulation 상태로 전환할때, 비디오 리플레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촛점을 맞추면 된다는 결론.  Lit Review도 이쪽에서 정리하면 논점이 분명하고 간결할 것 같다.

 

other regulation to self-regulation

self-transformation

the effect of reflective video replay

 

그러면, 이 연구는 psycholinguistics, sociocultural theories, instruction, and CALL 까지에도 해당될수 있다. sociocultural theories 와 CALL의 연결에 관한 아티클 타이틀을 본적이 있으므로 그것을 살펴보면, 내가 아직 들여다보지 않은 분야에까지 확장이 가능하겠다.

 

내가 갖고 있는 Vygotsky 와 Bachtin 의 책들을 다시 훑어볼 시간이다. 조금씩, 끝까지 해야지. 올해 안에 최소한의 결과라도 나오도록.

 

이미지를 구체화하다보니, 고민하던 object-regulation 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군! 바로 이거야!)

그러면 video-replay 과정에 일어나는 인지적 현상들을 잘 규명하면 될 것이다.

 

 

 

 

All 4 One : Someday

 

Someday when we are wiser,
When the world's older,
When we have learned.
I pray someday we may yet live to live and let live.

Someday life will be fairer,
Need will be rarer
Greed will not pay.
God speed this bright millennium on its way.
Let it come someday.

Someday our fight will be won then,
We'll stand in the sun then,
That bright afternoon.

Till then, on days when the sun is gone,
We'll hang on,
Wish upon the moon.

There are some days dark and bitter
Seems we haven't got a prayer
But a prayer for something better
Is the one thing we all share

Someday
When we are wiser,
When the world's older,
When we have learned.
I pray
Someday we may yet live
To live and let live

Someday
Life will be fairer,
Need will be rarer
Greed will not pay.
God speed
his bright millennium
On its way.
Let it come
If we wish upon the moon
One day
Someday soon

One day
Someday soon

 

지난주 목요일에 골치 아픈 머리를 싸쥐고 나온이래 금..토..일..월...화. 오늘에야 다시 나온 오피스.

남들은 얇은 옷 입고 돌아다니는데, 나혼자 겨울 누비 옷 입고 앉아있긴 한데, 그래도 상태는 어제보다 좋다.  이렇게 또 봄이 가는가보다. 오늘 데이타 콜렉팅 작업이 있는데, 잠시 컴퓨터 카메라 테스트. 오늘은 빨간 옷을 입어서 그런가, 실제 나보다 이쁘게 사진이 찍힌다. (이러면 기분이 좋다 하하하.)

 

손에, 일용할 양식.  고구마 (전자렌지에 5분 돌려서 익힌것.)

Someday, All 4 one 의 노래.  이노래 들으면 좋더라.

이 노래하고 분위기 비슷한 노래로 역시 좋아하는 것은 - I swear, by the moon and the sun in the sky 이 노래... 오늘은 종일 someday 모우드로... 그냥...언젠가..언젠가...보고싶은 사람을 보고, 언젠가 가고 싶은 곳에 가보고, 언젠가 언젠가...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냉면

 

RSVP로 예약되어 있었던, 디씨의 워크숍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전철에 한발 올려놨다가,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와버렸다.

아무래도 일정을 소화할 자신이 없어서. (감기가 지독하게 떠나지 않고 있다)

 

내가 옷 차려입고 나갔다가 되돌아온 '꼴'을 보고 박국장이 깨소금맛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요즘들어 나의 위엄이 낙하 일로를 걷는 고로, 아주 보기에 흐뭇하다는 것이다.

내 연구에 중요한 워크숍이었는데, 감기때문에 포기를 하다니...

 

'우래옥'에서 점심 모임이 있다고 노래를 부르며 나가는 박국장의 등에대고

"이러다 내가 아무래도 죽으려나보다, 죽기전에 우래옥 냉면이나 한사발 먹고싶구나~"

역시 노래를 불렀더니, 박국장이 정말 냉면 이인분을 테이크아웃으로 싸왔다.

음식 먹고 남은 찌꺼기라며, 새우전, 명태전도 따로 담아왔다.

찌꺼기라도 좋다 먹을수만 있다면!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어쩐지 음식이 넘어가지를 않아서 냉면 몇 젓가락에 새우전 하나 집고 말다.

 

그래도

내가 애를 밴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는 말로 냉면타령을 했는데

염두에 두었다가 챙겨다 주니, 고맙기가 이를데 없다.

(근데 우래옥 냉면은 진짜 맛이없다....아니, 내가 입맛을 잃은 탓이리)

 

나는 작은 친절에 약하다.

아마, 사람들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사물의 실상은 아주 작은데 깃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냉면 한사발이나 혹은 먹다 남았다고 싸오는 부침개 몇장 같은것.

 

감기몸살이 영 회복이 안되고 질질 끄니까

처량한 기분이 들면서

문득, 옛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평생 나하고는 '상극'처럼 서로 소통이 힘들었던 관계였는데

(어떤 어른 말씀으로는 서로 뭐가 안맞는 사주라서, 만나면 피하는 사주라나 뭐라나)

아무튼 서로 참 불편해 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아버지도 나를 무서워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입덧이 심해서 나날이 피골이 상접해가는 꼴을 보고

어느날 자전거 끌고 '노룬산시장'에 나가셔서 찐옥수수를 사갖고 오셨다.

내가 옥수수 좋아하는걸 아시고는 그걸 먹이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그걸 몇 알 먹다가 물론 다 토하고 말았는데

아버지가 그 꼴을 보고 짜증을 내면서 돌아서셨다.

그 짜증.... (그 짜증에 대한 나의 반사 짜증... 영원한 짜증 부녀)

 

그때, 아버지의 짜증에 나도 반사적 짜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토하면서도 목이 메었다.

그, 평생 한두번 볼까말까한, 아버지의 '잔정'에 목이 메었다.

 

 

살인의 동기...들여다보면 별것도 아니다.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동앗줄

그 것 역시 들여다보면 참 미미하고 하챦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불어터진 테이크아웃 냉면 한사발

혹은 먹고 남은 찌꺼기라고 들고 오는 부침개 몇장

토할줄 알고도 사오는 찐옥수수 한자루

 

 

거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줄을 엮어 제 몸집보다 몇십배 큰 먹잇감을 잡는다.

 

 

 

2010년 4월 18일 일요일

Do you want cancer?

 

영화 Up in the Air 에서,

 

우리의 영원한 미남 조지 클루니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스튜어디스가 사람들한테  Do you want cancer?" 하고 묻는거다.

 

조지 클루니 차례가 되었는데 역시

Do you want cancer?  (너 암을 원해?)

 

조지 클루니가 기가 막혀서

뭐라구? 하고 물으니까

스튜어디스가 음료수 캔을 들어올리며

Do you want a can, sir?

 

 

 

이거, 영화보다가 무릎을 쳤는데, 나중에 혹시 발음 강의할때 예화로 쓰려고.

우리가, 외국어로 영어 배우면서, '듣기'가 어렵다 그러는데

사실 조지 클루니한테도 영어 알아듣기가 쉽지만은 않은거다.  :)

 

영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은, 영어 잘 안들린다는 이유로 기죽을것 없이

알아 들을때까지, 끝까지 집요하게 물어봐야 하는거다. 

 

 

우리집 철쭉

다음달에 이사 나가면, 이집을 지나칠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겠지.

그래서 요즘은, 내가 사는 이 집을, 이미 떠나간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볼때가 있다.

이 집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봄. 마지막 철쭉.

이집을 떠나면,

내 창가에 와서 노닐던 내가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수 없는 새들

그리고 철철이 피어나던 꽃들

내 뒷마당에서 새끼를 낳아 키우던 여우

그리고 우드척들

그런 생물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 이다.

 

 

 

 

 

 

 

 

 

 

 

 

손님 : Wren

 

이 새의 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다. 

어찌보면 참새의 암놈, 혹은 어린 참새와 흡사하기도 한데

날렵하고 길다란 부리, 그리고 길다란 꽁지는, 내가 아는 참새와 약간 달라보이기도 한다.

 

   ===> 아, 정체를 밝혀냈다. 이 새는 Wren 이다. 뤤.

 

이 새는

희게 올라간 선명한 눈썹이 매력적이고

그리고 옆모습이 예술이다.

꽁지가 날렵하고 길다.

 

 

왕눈이 드나들으라고 식당에서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았는데

그 문틈으로 이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그거야 얼마든지 환영인데,

문제는 이 작은새가 갑자기 실내에 들어와서는 어리둥절해져가지고

나갈곳을 못찾고 실내의 유리창으로 자꾸만 돌진을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새가 유리창에 자꾸 부딪치고

개가 호기심에 쫒아가니까

놀라서 막 아무데로나 돌진하고...

 

새가 유리창에 여러차례 돌진하고 떨어지고 그랬다.

그래서, 그대로 놓아두면

왕눈이가 물어 죽이거나

저러다 죽거나 할 것 같아서

새 구출작전을 펴야 했다.

 

 

내가 국수 삶아서 물에 헹굴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가지고 살금살금 새에게 다가가서

바구니로 새를 생포한 후에

바깥으로 나가서 '방생.'

 

문밖 포치 난간에 풀어줬는데도

이 새는 놀랐거나 어딘가 다쳤는지

날아가지도 않고

한쪽다리를 (사진에서 오른쪽) 들고 멀거니 앉아있는거다

한참을 그자리에 앉아있길래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몇장 근접 촬영을 했다

(새를 이렇게 가까이서 찍어보기는 처음이다.)

 

조금 있다가 정신을 차렸는지, 가까운 나뭇가지 속으로 날아가 숨더라.

다행이다. 다친데는 없는듯 하다.

 

 

 

 

 

 

 

 

 

 

 

 

옛날에 플로리다에 살때는, 이맘때쯤 박쥐떼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잔치를 했었는데...

요즘도 가끔 저녁에 포토맥 강변에 가면 술취한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박쥐를 보기도 한다.

박쥐를 보면 그냥 반갑다.  (난 박쥐가 무섭지 않다, 그때 박쥐 공부 많이 한 덕분에.)

 

단지 집에 날아 들어온 새 한마리를 다치지 않게 내보내 준 것 뿐인데

마치 한 생명을 탄생시킨듯 기분이 좋아진다.

독한 감기약을 며칠째 먹고 있다.

오늘은 일어나 움직일만하다. (일을 해야 한다...)

몸이 아프면 드러눠 쉬고, 기운 나면 일하고... 뭐, 그럴수 있으니까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2010년 4월 17일 토요일

돈봉투...그 너절한 유혹

 

감기약 기운에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몇자 끄적.

 

첫학기 종강하던날, 수업 마치면서,

종강파티겸 간단히 potluck으로 음식을 차려 나눠먹고

학생들과 작별했는데,

잠시 오피스를 비웠다가 돌아와보니

내 책상에 봉투가 하나 남겨져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학생들 연명으로 가르쳐줘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달러 지폐 여러장. (얼마였더라...)

 

학생들이 나모르게 푼푼이 모아서 '선물'로 놓고 간 모양이었다.

 

편지는 고마운데,

달러지폐...는...학생들의 '선의'와는 상관없이 내 기분을 망치는데 일조했다.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기분이 저조해졌다고 할 만하고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선생이 아닌 일반인으로 돌아가 내 성질대로 표현하자면)

기분 아주 더러웠다.

 

 

그렇다고 달려 나가서 봉투속의 돈을 학생들에게 각자 돌려주기에도 마땅치가 않고

이걸 갖고 있자니

똥물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기분을 벗어날수가 없고

 

 

그래서 1차적으로, 그자리에서 한 일:

 

(1) 학장님한테 편지봉투를 갖고 가서 편지와 돈을 보여드렸다--"학생들이 이런걸 놓고 갔네요." 학장님은 학생들이 간단히 성의표현 한것인데 선물로 그냥 받으라고 하며 웃었다.  문제는, 그것이 평범한 선물이었대도 나는 똥바가지 뒤집어쓴 기분이었다니깐...

 

(2) 그 다음날, 사회봉사단체에 가서 학생들의 편지와 현금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돈을 학생회 이름으로 기부를 할테니, 기부금으로 받아주세요" 했다.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학생들의 뜻을 존중하는 뜻에서 나도 내 돈을 더 꺼내서 보탰다. 우리 학생들 학생회 이름으로 영수증이나 하나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그 사회단체에서 영수증을 한장 받아왔다.

 

(3) 나는 그 사회단체에서 발부한 영수증을 강의실 벽에 붙여놓았고, 학생들에게도 전체 공지를 띄웠다. 몇몇 학생이 돈을 거둬서 내 책상에 놓고 갔는데, 내가 잘 받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돈에 몇푼 더 보태서 어디로 보냈다. 그 사회봉사단체에서 요긴하게 잘 쓸것이다. 앞으로도 내 책상에 현금봉투가 올라오면, 그리 보낼것이언즉, 내 책상 거칠것 없이 그냥 그리 가서 기부하면 더 좋으리~ 

 

 

(4) 얼마후에는 그 사회단체에서 공식 세금보고서에 제출할 정식 문건으로 다시한번 영수증 비슷한것을 학교로 발송을 해왔다. 그 문건은 아직도 강의실 벽에 붙어있다.

 

 

그런데 그 후로 내 책상에 돈봉투 갖다 놓는 사람이 없다.

 

 

(다시 약 먹고 뻗으러 퇴장)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fast feedback <--> slow feedback

기민한 대처를 간단히 fast feedback 이라고 내 편의대로 규정한다면

느릿한 늑장 대처를 slow feedback 이라고 대충 규정해볼수 있겠다.

 

일단, 나는 성질이 무척 급한 사람이다. 불같고 급하고 바로바로 해결봐야 직성이 풀리고 (대략). 내가 축지법 쓰듯 걸음이 빠른 이유도, 내 급한 성질 때문이지 뭐 신체가 특히 건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동차 운전에서 과속딱지를 먹은 적은 없다. 그건 생사의 문제이므로 법을 철저히 지키니까.)

 

나는, 가령 숙제도 마감시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짜서 일찌감치 끝내야 하고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야하고

그러므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은 '죄악'이고

뭐든 시간안에, 가능하면 재빨리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근래 2년사이에, 매우 게으른 사람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매우 게을러지고 있다.

 

일단 계획 세운 일을 잘 안하고, 그냥 지나가거나

일하기위해, 혹은 공부하기 위해 책상앞에 앉았을때,

딴전피우며 '예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내 할일을 자꾸만 연기하거나 느려지거나, 이런 형상이다.

전에는 앞장서서 후딱후딱 해치우고, 일 마친 후의 여유를 즐겼는데

요즘은 막판까지 미루다가 막판에 해결보러든다. (혹은 안해버린다...)

 

일 뿐만이 아니다.

대인관계에서도 나는 느릿해졌다.

게을러진 것이다.

...   ....

 

 

옛날에 우리 사남매가 오글오글 자라날때,

우리들이 어울려 놀다가 서로 다투거나 마음이 상하면

엄마한테 가서 징징거리며 '고자질'을 하곤 했다.

가령 "오빠가 내 머리에 간장으로 세례를 했다. 혼내 달라" 이런 진지한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그렇다, 우리 오빠가 간장종지를 내 머리위에서 부어가지고 간장 세례식을 한적이 있다.)

 

엄마는 간장냄새가 진동하는 내 머리를

설겆이 하던 젖은 손으로 한번 '툭' 치면서, "알았어, 알았어, 저리 가 있어"

(이것이 엄마의 피드백이었다. 그게 다 였다.)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우리 엄마는 내가 아무리 달려가서 징징대며 고자질을 해도,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일관된 것이었다.

사남매중 누군가가 가서 징징거리건, 엄마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알았어, 알았어, 저리 가 있어."

 

...  ....

 

사실 이러면 맥이 빠져서, 엄마한테 달려가 '고자질'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고자질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두가지 상이한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고 보면

그 조직이 아무리 잘 굴러가는 조직이라도

혹은 아무리 미미한 조직이라도

늘 여기 저기서 뭔가가 발생하고

내 오피스를 두드리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 나의 태도는 방관자와 같기도 하다.

대개 어디선가에서 툭탁거려도 나는 '모르쇠'로 처박혀 있는 편이다.

 

 

처음에 나는 나의 '모르쇠' 태도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 같은것을 가졌었다.

내가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조용히 있는것이 책임 회피는 아닐까?

온갖 생각을 거치고 일년이 넘어가면서

요즘은 약간의 자신감을 쌓아가는 중이다.

 

나의 결론,

프로그램 책임자의 입장에서,

나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존재하는 것이 낫다.

봐도 안본것으로 치부하고

알아도 모르는 것으로 치부하고

들어도 못들은 것으로 치부하고

말 하려다가도 그냥 딱 입 다물어버리고

상황이 잠잠해지기를

시간이 좀더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즉석에서 개입하여 나서서 뭔가 해결하겠다는 태도보다 더 효과적일수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저쪽이 간절히 내 조언을 구할때

결정의 시간이 다가와서 내가 전체평가를 해야 할 순간에

그때까지 내 판단을 유보하고

게으르게 앉아있는것이

더 나은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우느라 매우 바쁘다. 하하.

 

개인의 삶이나, 조직 사회에서나

fast feedback 만큼이나 slow feedback 도 들여다 봐 줄만한 가치인듯 하다.

시간 혹은 '냉각기'가 해결해주는 문제들도 많이 있고, 이경우에는 '슬로우'가 더 효과적인데

시간을 놓쳐서 인생을, 사랑을, 기회를 놓치는 일도 많으므로 '슬로우'가 능사는 아니고,

...게으른자에게는 늘 이런식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할 방법이 널려 있는 것이야~~~ 랄라~

 

나는 많이 느긋해졌거나

혹은 매우 게을러졌다.

(서두를 무엇이 내 삶에 남아있지 않아서일지도 몰라...)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그 옛날 어느 별에서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어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냉정한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 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되어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

 

 

 

 

심각한 면담 - 특히나, 내가 별로 내키지 않는 면담을 의무적으로 해야만 할때, 내가 나를 달래기 위해서 미팅전에 틀어놓고 흥얼거리는 노래.  성질 드러내지 말고, 친절하자, 친절하자, 친절하자.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으아아악 (난 사랑주기 싫어!!! 사랑이라면 지긋지긋해!) 으 아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어느정도 효과 있다.)  그런데 그런, 싫은 면담 끝내면, 몸살난다.

 

 

 

그리운 내 별나라로 가고싶다. 내 별나라로 돌아가 이 사바세계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고싶다.  아 피곤해.

 

 

강사님 한분이 수업중에 '성질을 터뜨렸는데 lose temper' 하필 그 순간을  내가 목격을 했다.  글쎄, 문화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연수받은 미국땅에서는 수업중에 선생이 '성질'드러내면 '실격'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이 어딜 감히 학생들 앞에서 성질을 내는가 성질을  (인터네셔널 학생이 만만해?  영어 못하면 니 성질 다 받아줘야 하는줄 알어?)  그래서, 차분하게 말해줬다, "한번 더 그런식으로 히스테리 부리면 프로그램에서 아웃이다. 학생을 존중하지 않고, 개인 성질을 드러내는 교사는 내 프로그램에서 용납 안된다"고 설명해줬다.  어딜 감히 학생한테 성질 드러내면서 월급을 받으러 들어?  교실이 니 안방인줄 알어? (내 성질대로라면 이렇게 말해줬겠지만, 그냥 상냥하게 주의를 줬다. 나도 성질 죽이고 말하기 힘들다구...)

 

집에서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 문열고 나설때 '성질'은 문안에 던져 놓고 나오는거라구...

 

 

내별로 가고싶다. 골치 아프다.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새의 선물

 

오후가 되어 빨래며, 집안 청소를 하다가,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는데, 내 방 창밖의 나뭇가지에 '카디널 (Cardinal)새가 그린듯이 가만히 앉아있다.  날아가지도 않고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있다.

 

남편과 서서, 아이들 학비 문제며, 다가올 날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은 정직하게 쌓아온 월급쟁이, 그의 연봉을 생각하며 '이룬것이 없다'고 한숨을 내 쉬었고, 나는 창밖의 새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벌 수 있으니까, 몇 푼 안되는 평균이하의 교수월급이지만, 그래도 벌이가 있으니까, 앞으로 내가 얼마나 '엄청난' 돈벼락을 맞을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 우리 둘이 벌면 애들 학비나 노후 단칸방정도는 나와 주지 않겠는가 주절거리며 웃었다.

 

새는 여전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창밖을 봐봐. 카니널이 아까부터 앉아서 여길 쳐다보고 있어. 창밖을 봐봐!"

 

내가 창밖의 새를 보라고 하는데도 남편은 창밖에 새가 안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를 내 자리로 끌어다 놓고 내 눈높이로 몸을 낮추게 했다. 그의 시야에 빨간 새 한마리가 들어왔다.

 

"지금은 돈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 창밖에 와서 앉아있는 저 빨간새를 쳐다볼 시간이야.

잘 나간다는 세계적인 대기업의 이사급 형제들이나 친구들 만큼의 연봉과 자신의 연봉을 비교 할 필요는 없어. 그 사람들에게는 저 빨간새가 없어. 지금 우리에게는 저 빨간새가 있다구.

그리고 나도 있어.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없어. 내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나는 창밖에 날아오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까마귀, 새빨간 카디널, 가슴이 주황색인 로빈과 오리올, 몸집이 작지만 노랫소리가 명랑한 와블러, 그리고 구르르구르르 산비둘기들을 내다보면서, 생각한다.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면, 공평하다면,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면, 하늘은 나에게 저 새들과, 꽃들과, 내내 흐르는 강물과, 그리고 이 모든것을 내가 선명하게 응시할수 있도록 건강한 두눈을 선사했다.  나는 내게 주어진것을 즐기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내 삶에 필요한 요소는

건강한 두눈

건강한 다리와 육신

맑은 기억과 사고력

평상심

책상

노트북 (종이와 컴퓨터)

카메라

먹을것

잠잘곳

입을 옷과 씻을 물...

약간의 돈

이정도일 것이다. 이것외에 다른 것으로 남을 부러워 할 일은 없을것이다.

 

내가 안가진 것에 대하여 남과 비교하여 부러워하며 삶을 낭비하기에는, 내가 쳐다봐야 할 아름다운 친구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아. 나는 그들과 소통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마워, 내 창앞에서 한참 동안 나를 쳐다봐줘서.

 

 

[산책] 2010년 4월 14일 Turkey Run Park

 

 

네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지금은 혼자 걸을때 생각한다. 내 눈에 비치는 모든것속에 깃든 시간에 대해서.

 

어제는 기온이 내려갔고, 온종일 비가왔고, 나는 저녁을 먹고 죽은듯이 자느라 산책을 나갈수 없었다. 오늘은 수업이 없으므로 출근 대신에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터키런에 다녀왔다.  가을학회에 보낼 프로포절을 어제 종일 끙끙거리며 썼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손보는 작업을 했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도망가듯 강변으로 갔다.

 

4월에 터키런에 가본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나보다. 4월에는 이런 꽃이 발치를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왕복 5마일 내내. 그래서 숲이 연보라빛으로 물이 들은것처럼 보였다. 예전같았으면, 나는 북버지니아 식물도감을 뒤져서 이 꽃의 이름을 알아냈을거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꽃의 이름을 알려고 애쓰는 일이 ...어쩐지 맥빠지는 일처럼 여겨진다. 꽃의 이름을, 나무의 이름을 안들, 세상이 달라질까?

 

 

 

비가 오고 난 다음날 4월의 아침. 강변은 이렇게 차분하고 촉촉했다.

흙은 쌀가루처럼 포근포근하고 상냥하여, 발목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짙은 자줏빛, 혹은 초콜렛색 들꽃을 보았다. 아직 아침이라 꽃봉오리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

 

 

 

 

아직 아침이슬이 그대로 굴러다니는 나뭇닢들, 그 포개진 그림자들을 네게 보여주고 싶었다.

 

 

 

 

매달린 이슬이 보이지?  포개진 그림자가 보이지?

이속에 내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지.

나는 소리내어 웃지 않았지만 혼자 깔깔거리고 있었다.

좋아서.

그래, 난 이런 것들을 보면 좋아서 혼자 웃는다.

 

 

 

 

공룡시대를 연상시키는,

내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치식물의 길도 지났다

공룡시대 이전부터 나는 바람으로, 혹은 빛으로 이 지상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너 역시.

혹은 내가 죽은 다음에도.

 

 

 

늘, 거기 서있는 휘어진 나무. 숲속의 '문'처럼 거기 서서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이 나무를 오늘도 나는 통과하였다.

 

 

 

 

 

이리저리 쓰러진 고목들을 잘라내 길을 터준 산림관리원에게 나는 감사를 보낸다.

누군가가 이 숲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지.

 

 

 

나무에 덮인 이끼를 들여다보면,

그 보드라움 때문에 꼭 한번 손으로 쓸어보게 된다

부드럽고

그리고 상냥해.

촉촉하기도 하고.

이끼는 촉촉한 곳에서만 살수 있으니까.

 

 

 

나는 이 연두초록을 Wilmer Dewing 의 초록이라고 부른다. 미국 화가중에서 미국의 초록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 Dewing.

 

 

내 손톱 크기만한 작은...흰 꽃들

 

 

 

이쁘지?

그런데 이제 나는 새삼스럽게 꽃의 이름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꽃의 이름을 안들

나무의 이름을 안들

...그것이 무엇을 달라지게 할까.

시간을

시간을 돌이킬수가 없다는 것을

매일

매일 강변에 나가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나는 확인하고 마는걸.

 

 

 

계절은 돌아오고

꽃은 또 피고 지는데

흘러간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저 흰꽃은 참 귀엽구나.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괜챦다.

아무래도 상관없는일.

 

꽃은 또 피고,지고, 할것이다.

 

이제 프로포절을 최종 점검하여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