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한 대처를 간단히 fast feedback 이라고 내 편의대로 규정한다면
느릿한 늑장 대처를 slow feedback 이라고 대충 규정해볼수 있겠다.
일단, 나는 성질이 무척 급한 사람이다. 불같고 급하고 바로바로 해결봐야 직성이 풀리고 (대략). 내가 축지법 쓰듯 걸음이 빠른 이유도, 내 급한 성질 때문이지 뭐 신체가 특히 건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동차 운전에서 과속딱지를 먹은 적은 없다. 그건 생사의 문제이므로 법을 철저히 지키니까.)
나는, 가령 숙제도 마감시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짜서 일찌감치 끝내야 하고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야하고
그러므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은 '죄악'이고
뭐든 시간안에, 가능하면 재빨리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근래 2년사이에, 매우 게으른 사람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매우 게을러지고 있다.
일단 계획 세운 일을 잘 안하고, 그냥 지나가거나
일하기위해, 혹은 공부하기 위해 책상앞에 앉았을때,
딴전피우며 '예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내 할일을 자꾸만 연기하거나 느려지거나, 이런 형상이다.
전에는 앞장서서 후딱후딱 해치우고, 일 마친 후의 여유를 즐겼는데
요즘은 막판까지 미루다가 막판에 해결보러든다. (혹은 안해버린다...)
일 뿐만이 아니다.
대인관계에서도 나는 느릿해졌다.
게을러진 것이다.
... ....
옛날에 우리 사남매가 오글오글 자라날때,
우리들이 어울려 놀다가 서로 다투거나 마음이 상하면
엄마한테 가서 징징거리며 '고자질'을 하곤 했다.
가령 "오빠가 내 머리에 간장으로 세례를 했다. 혼내 달라" 이런 진지한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그렇다, 우리 오빠가 간장종지를 내 머리위에서 부어가지고 간장 세례식을 한적이 있다.)
엄마는 간장냄새가 진동하는 내 머리를
설겆이 하던 젖은 손으로 한번 '툭' 치면서, "알았어, 알았어, 저리 가 있어"
(이것이 엄마의 피드백이었다. 그게 다 였다.)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우리 엄마는 내가 아무리 달려가서 징징대며 고자질을 해도,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일관된 것이었다.
사남매중 누군가가 가서 징징거리건, 엄마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알았어, 알았어, 저리 가 있어."
... ....
사실 이러면 맥이 빠져서, 엄마한테 달려가 '고자질'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고자질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두가지 상이한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고 보면
그 조직이 아무리 잘 굴러가는 조직이라도
혹은 아무리 미미한 조직이라도
늘 여기 저기서 뭔가가 발생하고
내 오피스를 두드리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 나의 태도는 방관자와 같기도 하다.
대개 어디선가에서 툭탁거려도 나는 '모르쇠'로 처박혀 있는 편이다.
처음에 나는 나의 '모르쇠' 태도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 같은것을 가졌었다.
내가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조용히 있는것이 책임 회피는 아닐까?
온갖 생각을 거치고 일년이 넘어가면서
요즘은 약간의 자신감을 쌓아가는 중이다.
나의 결론,
프로그램 책임자의 입장에서,
나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존재하는 것이 낫다.
봐도 안본것으로 치부하고
알아도 모르는 것으로 치부하고
들어도 못들은 것으로 치부하고
말 하려다가도 그냥 딱 입 다물어버리고
상황이 잠잠해지기를
시간이 좀더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즉석에서 개입하여 나서서 뭔가 해결하겠다는 태도보다 더 효과적일수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저쪽이 간절히 내 조언을 구할때
결정의 시간이 다가와서 내가 전체평가를 해야 할 순간에
그때까지 내 판단을 유보하고
게으르게 앉아있는것이
더 나은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우느라 매우 바쁘다. 하하.
개인의 삶이나, 조직 사회에서나
fast feedback 만큼이나 slow feedback 도 들여다 봐 줄만한 가치인듯 하다.
시간 혹은 '냉각기'가 해결해주는 문제들도 많이 있고, 이경우에는 '슬로우'가 더 효과적인데
시간을 놓쳐서 인생을, 사랑을, 기회를 놓치는 일도 많으므로 '슬로우'가 능사는 아니고,
...게으른자에게는 늘 이런식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할 방법이 널려 있는 것이야~~~ 랄라~
나는 많이 느긋해졌거나
혹은 매우 게을러졌다.
(서두를 무엇이 내 삶에 남아있지 않아서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