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6일 토요일

Guitar: 첫곡 Cae, Cae, Balao

 

 

 

그레고리팩이 숙제로 주고간 첫곡.  내가 손가락이 굳어서 (핑계) 잘 못치겠다고 하자 아주 쉬운것으로 시작하자며 이 곡의 악보를 던져주고 갔다.  동영상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성인과 소년이 연주하는데, 내 파트는 소년이 연주하는 파트이다. 동일한 악보로 보인다. 비교해보니 나도 멜로디는 정확히 잡았는데, 그래도 둘이 맞추는것을 보니 실감이 난다.  다음주에 그레고리님하고 만나서 이렇게 맞추면 되겠다.

 

내 계획은 이것을 오늘 내일 연습해서 눈감고 칠 정도로 외워가지고

그 다음에는 유튜브 틀어놓고 이 속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함께 연습을 하는거다.

그 다음에 학교에 가서 그레고리팩하고 맞춰보면 좀 덜 떨릴거다.

(난 누구하고 화음 맞추는거 참 힘들다. 특히 연습부족일땐 여실히 드러난다.)

 

 

이거 계속 진도나가면, 기타 페이지가 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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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쳐보면, 내가 slow learner 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것은 내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혹은 '스포츠'를 할때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수학'공부를 할때도, 나는 선생님의 말을 바로 바로 알아듣기보다는 수업중에 말귀를 잘 못알아듣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나중에 나 혼자 공부하면서 차츰 차츰 이해할때가 많았다.  나같은 학생의 경우, 나는 정말 예습 복습이 필요한 학생이다. 예습을 하고 가서 전체적인 윤곽중에 어딘가 미진한것을 수업중에 알아듣거나 혹은  수업중에 말귀 못알아 들은것을 수업 마치고 다시 상기하면서 깨닫거나 그래야 한다.  그러니까, 나같은 유형의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반짝이는 천재성보다는 '노력파' 근성으로 승부를 봐야 할거다.

 

나는 내게도 천재성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살펴보면 사람들은 '천재성'이 발휘되는 분야가 분명있다.  나도 어딘가 천재적으로 빛나는 부분이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 천재적인 분야가 음악이나 수학이나 그런 분야는 아닌것이다. 체육 분야도 아니다. 나는 기타로 곡 한가지 간단한것 치는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학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특히 체육 몸동작을 남들처럼 잘 하기 위해서 좀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대부분의 경우 천재가 아닌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살면서 경험한것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천재의 반짝임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끈기있게 추구하는 정신이다.  '공부가 제일 쉽다'는 논리는, 사실 공부라는 것이 보통사람이 노벨상이나 필드 메달을 받을 정도의 수준까지는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웬만큼 노력하면 노력한것 만큼 확실히 보장을 받을 분야가 '공부'라서 그런것이다.  아이큐 150 짜리가 삼십분에 풀어버릴 문제를 아이큐 백인 내가 세시간에 푼다해도, 크게 서러울것은 없다. 나도 문제 풀수 있으니까.  저 아이가 백미터를 10초에 뛰고, 내가 20초에 뛴다해도 서러울것은 없다. 나도 백미터 잘 뛸수 있으니까.

 

우리 삶의 승부는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조금 느려도 아주 늦는것은 아니며, 저 친구가 나보다 머리좋고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나보다 더 잘해내리라는 보장도 없는거다.

 

나는 slow learner 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제 오후에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기타를 집어 들었을때, 내가 처음 쳐보는 이 단순한 멜로디가 참 어렵게 느껴졌었다. 갑자기 박자감도 안잡히고 뒤숭숭한 혼돈의 상태. (멜로디를 모르니까 일단 그것을 흥얼거려보면서 장단 맞추느라 뒤숭숭).  그래서 연습하다가 '아이고 골치야' 이러고 기타 팽개치고 다시 일하다가,  주말에 집에서 연습한다고 기타를 갖고 왔는데.

 

만 하루가 지나고 오늘 기타를 열어서 쳐보니 의외로 멜로디가 손끝에서 정확히 부드럽게 나와준다. 어제는 미치겠더니 오늘 잡으니까 술술 풀린다.  이것이 뭔 조화다냐?  어제 엉망이고 뒤숭숭한 상태에서 팽개쳤는데, 오늘은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수월한가? (중간에 연습을 안했는데)

 

내가 추측하는바, 내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각종 인지학 이론을 응용하여 이 현상을 해석해보면,

  1. 내게 새로운 정보가 던져지고, 내가 그것을 마스터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의 뇌신경은 혼란해졌다. 머릿속으로 멜로디와 음의 장단을 계산해야 하고 손끝에 명령도 보내야하고 오른손은 튕기고 왼손은 기타줄을 이리저리 찾아 움직여야하고, 머릿속에 쓰나미가 일듯이 파도가 일었다.
  2. 내가 기타를 안치고 딴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머릿속에 파도치던 새로운 정보의 조각들이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이 과정을 뜸들이는 시간이라고 설명할수도 있겠다). 결국 내 머릿속 컴퓨터는 내가 다른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이 작업을 혼자서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시간이 지나고 내가 기타를 다시 잡았을때, 이제 안정된 정보가 체계있게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기타치는 것이 수월해졌다.)

이런 이유로, 학습을 할때는

  1. 휴식 시간도 필요하고
  2. 리뷰 (재 학습, 복습) 시간도 필요한거다.

머릿속의 지식의 체계는

  1.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2. 그것을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일시적 혼란에 빠지기도 하며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혼란은 아니다)
  3.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4.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탑을 쌓아간다.

 

어떤 사람이 '머저리'같아 보이고 '말귀 못알아듣고 쩔쩔맬때' 그때, 그 사람을 바보라고 구박하거나 꾸짖으면 안된다. 그 사람은 지금 맹렬하게 지식의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는 중이라 바쁜것이다.

 

나 역시 내가 조금 멍청하거나 답답하게 여겨질때 나를 꾸짖거나 나를 빈정대면 안된다. 나는 잘 해나가고 있는것이다. 비록 천재가 아니더라도 섭섭할것은 없다. 현실을 잘 견뎌나가는 것 자체가 위대한 진화인것이다.

 

 

 

 

댓글 4개:

  1. 언젠가 본 책에서 폭스님과 비슷한 논리를 봤는데 공감이 가더군요.. 맞게 보신 거 같아요, 대단..

    꿈 속에서도 그동안 집중해온 일들이 정리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능력은 집중해서 반복할 수 있는 순수한 정신이지요... 슬로우러너라니요..ㅎㅎ 평범한 나 역시 진리는... 꾸준히 되새김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알게 됐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거 반복해서 읽고 보고 .. 불필요한 거 아예 멀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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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로 - 2010/03/07 10:52
    예, 머릿속 컴퓨터는 내가 잘때도 일을한다는 이론은 제가 생각해낸 가설은 아니고, 책에서 많이 논의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문득문득 삶속에서 체험하게 될때, 참 신기하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한거죠. (사람의 뇌가 하는 일이 참 신기해요. 그런 면에서 나도 신기한 존재라서 들여다볼수록 재미있지요...심심할 틈이없지요...)



    이런 생각하면, 이 신기한 기계가 망가질까봐 술먹고 담배피는 일을 하면 안될거라는 자각을 하게 되지요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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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지막 2줄을 어디다 적어놓고 매일매일 보고 싶어요.. 전 매일 저를 못살게 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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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진정한 아마추어리즘
    (러스킨의 그림 추가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결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에서만 자주 나타나거나, 계절과 빛과 날씨가 보기 드물게 조화를 이룬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어떻게 공중에 뜬 열차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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