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일 월요일

3월, 사슴

 

3월의 첫날. 오전 여덟시쯤.  며칠동안 흐리고 바람불고 눈이 펄펄 날리기도 하더니, 오늘은 모처럼 날이 개이고 뒷동산에 태초의 아침처럼 햇살이 투명하게 꽂혔습니다.

 

그리고 뒷곁에 사슴 한쌍이 기웃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마리는 우리 옆집 뒷곁에, 한마리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우리집 뒷마당으로 왔습니다.

 

건너집 뒷마당에는 아직도 잔설이 쌓여있고,  뭔가 푸릇한 잎을 찾아 온듯한데, 사철나무 잎 밖에는 딱히 먹을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눈더미 때문에 부러져 떨어져있는 사철나무 가지를 발견하더니 우물우물 잎사귀를 뜯어먹다가는 우리집 개가 멍멍 짙는 서슬에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사슴이 정면을 향하고 쳐다볼때, 이편에서 볼때, 오른쪽에 뿔이 없어요.  사슴은 외뿔이랍니다.  외뿔이 사슴.  한쪽 뿔이 왜 없어진것인지, 나뭇가지에 걸려서 부러진 것인지, 다른 숫놈하고 싸우다가 부러진 것인지... 딱해서 한참 쳐다봤는데

 

한편 생각해보니

 

뿔이 하나밖에 없으니 '유니콘'이군요.  유니콘 사슴.  나의 유니콘 사슴.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러 나타난 나의 유니콘 사슴.

 

 

 

 

 

 

 

 

 

 

 

 

 

 

댓글 2개:

  1. 사진을 내려보다가 정면사진에 저도 모르게 움찔.. 꼭 저 사슴하고 눈이 마주친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하나뿐인 뿔이 좀 안쓰럽네요...어쩌다 그랬을꼬...

    답글삭제
  2. @사과씨 - 2010/03/02 01:31
    사과씨님. 제가 '오두막'이라는 소설을 며칠전에 읽었쟎아요. 그 이야기속에 연쇄살인범한테 살해당한 소녀와 그 아버지 얘기가 나오는데요, 아버지가 너무너무 가슴이 무너지쟎아요.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런데 뚱뚱한 흑인 아줌마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느님하고, 목수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님이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 작은 아이가 고통받던 순간에 내가 함께 있었다... 그아이는 아주 용감했다..."



    한쪽 뿔이 없는 사슴을 보고 저도 가슴이 무너졌는데, 얼른 그 이야기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래도 저 사슴이 이 겨울에 눈속에서 굶어 죽지도 얼어죽지도 않고 버틴것이 장하지 않은가. 차에 깔려 죽지도 않고 여기까지 와서 내게 인사를 보내는 것이 장하지 않은가. 떨어져 나간 뿔의 자리에 대 자연의 손길이 머무르며 위로해주지 않겠는가. 나를 보호해주는 대 자연은, 똑같은 손길로 저 떨어져나간 상처를 보살펴줄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안녕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저 사슴을 보면서 특별한 슬픔과 애정을 보내듯, 모든 상처받은 것들은 다른 양식으로 특별한 애정을 받는것은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아픔에 신의 숨결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슬퍼도 아주 슬프지 않게, 아파도 아주 아프지 않게.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유니콘이죠 뭐. :)



    사슴은 상처받아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제 뒷마당에 나타났다고 해석하기로 한거죠 :) 그는 오히려 조심조심 더 잘 살아갈거에요. 하이웨이에서 늠름한 뿔사슴들이 차에 치어 죽어있는것을 자주 보거든요. 오히려 외뿔사슴은 조심조심 살아나갈걸요 아마도...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