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이월이 오면, 나는 그로서리 구석의 꽃집에서 3-4달러쯤에 살수 있는 작은 구근화초의 화분 하나를 사다가 책상위에 올려놓고 봄을 기다렸었다. 대개는 히아신스. 히아신스 화분을 보면서 기다리던 봄날.
나는 이제 봄날을, 여름을, 가을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무엇을 기다리면서 사는지 모른다. 나는 나머지 삶을 묵묵히 견디기로 했다. 착하게 견디기로 했다. 책상위에 작은 구근을 올려놓고 봄을 기다리는 일은 더이상 하지 않을것이다. 나의 봄은 갔다.
이태전 봄에 꽃이 다 지고 시들시들하던 히아신스 화분을 그대로 내버리려다가, 아직 살아있는 생명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기가 미안해서, 앞마당, 쓰레기통 옆 화단에 그냥 심어놓은적이 있다. 히아신스는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시들거리다가 죽었을것이다. (나는 내가 심은 히아신스를 잊었다.). 그리고 작년 봄에 나는 그 히아신스가 꽃봉오리를 맺고 서있는것을 발견했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질고도 딱딱한, 불친절한 환경속에서 그 히아신스는 꽃봉오리를 맺은채 진땀을 내며 서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참 장하지 않은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속에서 그는 살아서 버티고 있었고, 봄이 왔을때 힘겹게 꽃을 피우고 있었으니까.
오늘, 나갔다 오는길에 혹시 그 히아신스가 아직 살아있는지 살펴보았다. 역시 새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었다. 진흙을 뒤집어쓴채.
너는 내 봄날의 추억처럼 거기서 힘겹게 자라고 있다. 나는 곧 이사를 할 것이고, 이 집에서 보낸 나의 시간과 나의 추억과 모든것을 송두리째 남겨두고 나는 이 공간에서 사라질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히아신스 화분을 사지 않을것이고. 나는 내게 남겨진 삶을 잘 견뎌낼것이고.
오늘은 장갑을 끼고 나가서 꽃삽으로 이놈을 사뿐히 들어다가, 뒷동산, 물 잘 빠지고 양지와 그늘이 교차하는 곳에 이 놈을 심어줘야겠다.
밤에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도로를 휙 뛰어 건너는 여우를 이따금 본다. 나의 아기여우들도 이제는 자라나서 어딘가에 새끼들을 낳아 키우겠지. 나는 매일 내다보지만 뒷동산, 나의 여우굴은 잠잠하다. 가끔 도로를 건너는 여우를, 여우의 그림자를 발견할때, 혹시 나의 여우가 돌아와줄까 상상을 하다 그만두고 만다. 기다리면 올까? 오지 않아도, 나는 기다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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