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history.org/Almanack/places/hb/hbbass.cfm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도시 Williamsburg (윌리엄스버그)는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이 형성했던 도시 제임스 타운과 더불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도시라고 할 만합니다. 메사추세츠 일대를 '퓨리턴'들이 장악했다면,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일대 (윌리엄스버그 포함)는 영국교도(성공회교도)들이 장악했다고 저는 해석하는 편입니다. 버지니아 인근 주였던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를 퀘이커교도였던 윌리엄펜이 건설하여 종교적으로 포용적인 정책을 취했던 것도 상기할 만 합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윌리엄스버그는 '작은 영국'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역사 유적지에 가보면 영국기가 꽂혀있기도 하고요. 처음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을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미국 개국 이전에).
윌리엄스버그에는 William and Mary College 라는 유서깊은 대학도 자리잡고 있고요, 미국 식민지시절 (미국 독립 이전)의 역사적인 건물들이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식민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유지된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20세기초반, 미국 최고의 갑부였던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록펠러 주니어 (http://en.wikipedia.org/wiki/John_D._Rockefeller,_Jr.)가 윌리엄스버그에 들렀을때,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건국의 역사가 담긴 이곳의 건물들을 복원하면 어떨까?" 그의 속삭임에 록펠러는 Bassett Hall 을 사들여 복원하는 것으로 화답했고, 인근의 수십채의 건물들을 복원하게 됩니다. 록펠러가는 바셋 홀을 그들의 별장으로 사용했고, 인근에 복원된 식민시절의 건물들은 아직까지도 미국의 역사 교육 지역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록펠러 주니어는 스탠다드 오일을 창립한 아버지 록펠러의 상속자였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이런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 몰두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벌어들였고, 그 아들은 그것을 '의로운 일에' 사용하느라고 바빴던 모양입니다. 소위... 그 아버지가 개같이 벌어서 그 아들이 정승같이 쓴 케이스로 보이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개같이 벌어서 개같이 탕진하는 것 보다는 정승같이 써주는 것도 값진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개 어마어마한 '부'뒤에는 노동자 계급의 고통이 숨어있게 마련인데, 우리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고통보다는 재벌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많이 했는가를 기억하는 편입니다. 카네기의 개인사를 봐도, 노동자들을 상대로, 얼굴을 들고 다닐수도 없을정도로 부도덕한 행동을 했음에도, 그의 훗날의 자선사업만을 역사는 기록하는 편이고 대체적으로 착취의 역사는 잊혀지고, 선행의 역사만 기록이 되는데요. 이런 현상을 보면서 - 최소한 나중에라도 사회에 환원이라도 하는 것이 그나마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식으로 스스로 의견조정(compromose)을 해버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부자들이 어떻게 차리고 살았나 구경하는 것이 또한 부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호기심이 아니겠습니까. 부자건 가난뱅이이건 하루 세끼먹는것은 피차 마찬가지이고. 지가 먹어봤자 얼마나 더 먹겠냐구. 이런 위안도 해가면서...
록펠러 주니어 부부가 봄 가을이면 와서 조용히 지내다 갔다는 집인데요, 처음에 이건물이 지어질 당시에 이 건물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식민지 초기에 집들이 아주 작고 소박했다는 것이지요). 록펠러가 이 집은 구입하여 보수하여 살 당시에 이 집은 그냥 작은 오두막 수준이었을겁니다. 마치 마리 앙토와테트가 화려한 궁궐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소박한 시골집을 지어놓고 놀이를 즐겼다고 하듯, 재벌 록펠러 부부가 소박한 시골의 집에서 소박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얼핏 둘러본 집의 규모는 지금 제가 세들어 살고 있는 이층집 보다도 작은 규모였고, 가령 록펠러의 서재였다는 방이, 제 서재보다 작아보였습니다. 헤헤. (나도 재벌인것이야~ 비록 며칠후에 쫒겨나갈것이지만~ )
미국 재벌 록펠러 주니어 부부의 시골 별장 실내 사진을 보시겠습니다. :)
(그런데요, 워싱턴 디씨에도 이런 재벌 집을 공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는 실내 사진 촬영이 금지가 되어 있거든요. 이곳은 공개되어서 고맙더라구요. 고맙죠 뭐 사진 찍게 해주니까.)
2층으로 이루어진 실내. 1층에는 양쪽으로 응접실, 거실 개념의 방이 있고, 덧지은 건물쪽에 커다란 식당과 부엌.
2층에 올라가면 양옆으로 침실이 각자 한개씩, 그리고 나중에 덧지은 쪽에 록펠러씨의 서재가 중앙 통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단촐하죠.
건물 밖에 부엌용 별채 세동 (훈제실, 바베큐실, 유제품실)이 따로 있고, 온실건물 따로 있고, 손님용 별채 건물 따로 있고, 마굿간과 차고 건물 따로 있고~~ 라라라~ (시간이 없어서 이 건물들을 직접 들여다보지는 못했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어르신들은 부엌과 동떨어진 사랑채에서 노닐었듯, 서양에서도 부자들은 냄새나는 부엌 부대시설은 별채에 따로 마련해놓고 유유자적 할수 있었지요 랄랄라~ )
1층 거실. 록펠러 부인이 수집했다는 민화들이 빼곡이 걸려있었지만, 갑부의 거실치고는 소박한 편입니다. 소파들도 아주 작고...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협소해 보입니다.

우리는 거실에 소파 세트 한세트만 놓쟎아요.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거실을 다양한 소파나 의자로 꽉 채우는것 같습니다.

가장 맘에 들었던 록펠러씨의 구석방. 서재.


2층 침실.


2층 침실. 이곳은 제가 Blue Room 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요소요소를 파란색으로 통일을 시켜놔서. 메리 커셋의 푸른 의자와 소녀 그림을 연상시키는 실내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유리창과 커텐에 대한 로망이 좀 있지요. 이렇게 창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

부엌일을 해야하는 여성들의 관심의 대상. 부엌. 아, 나도 이렇게 잘 정돈되고 넓은 부엌이 있다면....(일주일 안에 난장판이 될것이야~ 포기해~ ㅋㅋ)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