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록을 살펴보면, 작년 이맘때는 뻔질나게 포토맥강을 드나들며 걷기 마일리지를 높이는 재미를 붙였었는데, 일년사이에 삶이 좀더 분주해진 것일까? 오후에 퇴근이 늦어져서인지, 강변으로 저녁산책을 나갈 여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날이 이울면, 개를 끌고 동네 천주교당까지 산책을 나간다. 왕복 2마일 거리. 왕복7-8마일, 두시간 정도는 되어야 걷는 맛이 나는데 2마일 거리는 좀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바람이라도 쐬려고 나갔다 온다.
전에는 천주교당에 가면 마당에서 놀다가 다시 개를 끌고 돌아오곤 했는데, 요즘은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묵상도 하고, 기도를 하는 시늉도 하고 그런다. 뭐, 들어오지 말라고 가로막는 사람 없으니까... 예배당 안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고요해서 잠시 앉아서 사색하기에도 좋다.
어제는 왕눈이를 데리고 예배당 입구 벤치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예배당 마당에 차를 세우고 중년 남자와 그 딸이 입구쪽으로 다가온다. 남자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고, 축구화를 신은 반바지 운동복 차림의 여학생은 예배당에 안들어가고 그대신 내 곁에서 멈춰선다. 왕눈이 때문이다. 여학생이 개를 만져봐도 되냐고 묻는다. 왕눈이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왕눈이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거는 일이 많다.
여학생은 왕눈이를 만져본 후에도 계속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내 곁에서 종알종알 말을 건다. 나역시 축구를 하는 여학생이 맘에 들어서, 애가 붙임성도 좋아서 서로 죽이 맞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너 아빠하고 예배당에 왔는데, 왜 안들어가니?" 내가 물으니, 자기는 일요일에 오는것으로 족한데, 아빠는 가끔 저녁 식사후에 예배당에 와서 머리를 식히고 가는것 같다고 종알거린다. 아빠를 따라 오기는 했으나 예배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고, 나하고 이야기나 하는 편이 좋다는 눈치다.
그래서, 나도 어른인데, 정말 머리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줬다. 나는 네 아빠를 이해할수 있다. 왜 저녁먹고나서 예배당을 찾았는지.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후 그 아빠가 나왔는데, 여학생이 여전히 내 곁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그 아빠까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냥, 객적은, 그러나 산들바람처럼 가벼운. 각자의 인종적 배경이라던가 문화. 여학생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떴는데,저만치 차가 출발하기 전에도 소리 질러 인사를 날렸다. "Bye, See you!" 애가, 붙임성이 정말 좋구나... (혹은, 그 애는 내가 대화상대로 편안했나보다. 내가 인상이 좋은걸까?)
며칠전에는 훤칠하고 키가 큰, 머리를 짧게 자른 내 또래 백인여성과 만날 일이있었는데, 사람의 인상이 하도 좋고, 내게 붙임성있게 미소를 보내길래, 그자리에서 친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이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러차례 나를 돌아봤다. (너하고 나하고는 생각이 통해. 그렇지?) 나는 어쩌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될것도 같다. 내가 의지할수 있는. 물론 나는 모임이 끝나자 마자 보따리 챙겨서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기는 하지만, 앞으로 만날일이 이어질 것이므로, 차근 차근 친구가 되면 될 것이다. '저 사람하고 친구가 되고싶다'는 느낌을 가져본것이 언제였더라? 아마 고등학교때 훤칠하고 근사한 친구를 발견했을때 그런 느낌을 가졌던 것도 같다. 아, 어쨌거나 내게도 '여자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1.전 어제 오랜만에 나갔더니 3마일도 채 못갔는데 기진 맥진 가던 길 그냥 되돌아 왔어요.. 개를 데리고 나가면 운동량이 훨씬 많다고 하던데요...
답글삭제2.안그래도 남편한테 그 소리 했드랬어요.. 요새 기운 빠지고 별로 재미 없는 몇가지 이유..식구들이 주는 이유들하고 마지막으로 제일 결정적인게 이런 얘길 할 친구가 없다는 거.. 그래서 출근하려고 아침밥 먹고 있는 당신 붙들고 이런 얘기하고 있는 거라고 했더니 마지막 이유에선 도와줄수가 없구만..하는거에요.. 그래서 도와달라는게 아니라 그냥 들어주면 된다고 했지요.. ㅎㅎㅎ..
하여간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 만나지고,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거는 좋은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