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내가 달인 대추차를 오늘 뜨겁게 덥혀서 보온컵에 담아왔다. 이 보온컵은 한국의 무슨 증권회사에서 고객들에게 살포한 것인데 (컵에 증권회사. 지점, 전화번호가 아주 진하게 찍혀있다), 한국집에서 세월 보내다가 전에 한국 짐 올때 묻어온것이다. 지난 몇년간 사계절 잘 쓰고 있다. 미국의 텀블러는 보온성도 없고, 밀폐성도 없고, 그냥 승용차에서 조금 안전하게 음료를 보관하는 기능만 한다. 이것은 보온성 확실하고 -- 당연히 밀폐성도 높은 보온 컵이다 (사이즈는 미국식 텀블러만하다).
특히 장거리 자동차 여행할때, 이 보온컵에 아이스티나 뜨거운 생강차 이런거 담아가면 온종일 놀다가 밤에 열어서 먹어도 그 냉기나 온기가 그대로 유지된것을 확인할수 있다. 대단하신 보온병이다. (중국산이지만 잘 만들었다).
그런데, 보온병 얘기하려는게 아니라,
보온병을 감싸고 있는 저 자주색 '코지(cozy)'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거다.
사실 이것은 내가 작년에 크리스마스 세일기간 지나고, 조지타운 반즈앤노블에서 덤핑세일할때 샀던 텀블러컵을 감싸고 있던 것이었다. 난 이 털스웨터같은 컵감싸개가 맘에 들어서 그걸 꽤 싸게 장만했다. 그리고는 어디 갈때나 그걸 차에 싣고, 들고 다녔다. 손으로 잡으면 포근하고, 예쁘고.
그런데, P선생은 이걸 굉장히 싫어했다. 귀챦다는거다. 왜 그가 귀챦아했냐하면, P선생이 설겆이를 자주 했는데, 내가 이거 부엌에 내 놓으면 컵에서 감싸개 벗긴후에 컵을 닦고, 그리고나서 다시 컵에 옷을 입혀주는 과정이 아주 번거로웠던거다. 그러니까 그 쓸데없는것을, 귀챦은 것을 왜 꼭 그렇게 감싸고 다니냐는거다. 그래가지고 P선생은 "이놈의것 치워버려!" 이러고 투덜투덜거리곤 했다.
추운 겨울에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할때면, 고구마를 렌지에 굽고, 보온컵에 뜨거운 생강차를 담아서 내 점심으로 싸주곤 했는데, 내가 '고맙다'는 인사도 안하고, "내 컵! 컵데기 어디갔어? 내 컵 껍데기 어디다 갖다 버렸어? 빨리 찾아내!" 이러고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에, 그는 이걸 더 증오했다. ㅎㅎㅎ.
나의 이 '껍데기'에 대한 사랑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컵을 바꿀때도 이 자주색 껍데기를 고수를 했던 것이니.... 나는 가끔가다가 우리집에 쌓여있는 털실을 꺼내어 이렇게 예쁜 껍데기를 몇개 더 짤까 생각만하다가 그만둔다. 될수있는대로 일을 벌이지 않고, 있는거 갖고 마르고 닳도록 쓴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오늘같이 쌀쌀한 아침에, 이걸 들으면 얼마나 따뜻한데.
p선생님.. 엄청 자상하신가봐요.. 도시락 싸주는 남편이 그리 흔치 않아요..ㅎㅎ
답글삭제그리고 그 '껍데기' 보다가 좋은 생각이 막 났어요..
몇개 만들어 연말에 선물하면 좋겠어요.. 그거 쪼끄만해서 금새 뜨겠구만요..
남편 생각이 나시나보네요.
답글삭제저번에 남편 돌아가신 분 일주기에 갔는데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그 남편이 남긴 사랑이 여기 저기 아직도 남아 있다고.
아름다운 미망인 언니가 하염없이 울어서 저도 울었습니다.
사랑을 남기는건 사소한 일인가봐요.
@사과씨 - 2010/11/09 04:16
답글삭제p선생 유일한 낙이 저 따라다니면서 돌봐주는건데, 요새 그거 못해서 괴롭겠죠. 하하하. (그대신 장모님 열심히 돌보고 있으니까, 이런걸 꿩대신 닭~ 이라고나. ㅎㅎ)
구글에서 knitted cup cozy 이미지 검색해보면 예쁜것이 많이 떠요.
http://www.google.com/images?q=knitted+cup+cozy&um=1&hl=en&rlz=1G1GGLQ_ENUS276&ndsp=18&ie=UTF-8&source=og&sa=N&tab=wi
그런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제가 볼때는 양말짜듯이 단순하게 끝낸것 보다는 단순하게 짜더라도 거기에 방울을 단다던가, 아니면 수를 놓아서 개성을 살려주거나, 꽃같은거 한장 짜서 단다던가 그렇게 장식을 하는것이 아기자기한 맛이 나더라구요. (이러다가 나 오늘밤에 하나 짤지도 몰라요. 손이 근질근질....)
@claire - 2010/11/09 06:58
답글삭제살림 다 챙겨주다가 가버리니까, 내가 힘들지요
커피 내려다 바치는 사람도 없고,
잔치국수 말아다 주는 사람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