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8일 월요일

아주 사소한 것이 아주 소중하기도 하지

 

 

어제 내가 달인 대추차를 오늘 뜨겁게 덥혀서 보온컵에 담아왔다. 이 보온컵은 한국의 무슨 증권회사에서  고객들에게 살포한 것인데 (컵에 증권회사. 지점, 전화번호가 아주 진하게 찍혀있다), 한국집에서 세월 보내다가 전에 한국 짐 올때 묻어온것이다. 지난 몇년간 사계절 잘 쓰고 있다.  미국의 텀블러는 보온성도 없고, 밀폐성도 없고, 그냥 승용차에서 조금 안전하게 음료를 보관하는 기능만 한다.  이것은 보온성 확실하고 -- 당연히 밀폐성도 높은 보온 컵이다 (사이즈는 미국식 텀블러만하다).

 

특히 장거리 자동차 여행할때, 이 보온컵에 아이스티나 뜨거운 생강차 이런거 담아가면 온종일 놀다가 밤에 열어서 먹어도 그 냉기나 온기가 그대로 유지된것을 확인할수 있다.  대단하신 보온병이다. (중국산이지만 잘 만들었다).

 

그런데, 보온병 얘기하려는게 아니라,

보온병을 감싸고 있는 저 자주색 '코지(cozy)'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거다.

사실 이것은 내가 작년에 크리스마스 세일기간 지나고, 조지타운 반즈앤노블에서 덤핑세일할때 샀던 텀블러컵을 감싸고 있던 것이었다.  난 이 털스웨터같은 컵감싸개가 맘에 들어서 그걸 꽤 싸게 장만했다.  그리고는 어디 갈때나 그걸 차에 싣고, 들고 다녔다. 손으로 잡으면 포근하고, 예쁘고.

 

그런데, P선생은 이걸 굉장히 싫어했다.  귀챦다는거다.  왜 그가 귀챦아했냐하면, P선생이 설겆이를 자주 했는데, 내가 이거 부엌에 내 놓으면 컵에서 감싸개 벗긴후에 컵을 닦고, 그리고나서 다시 컵에 옷을 입혀주는 과정이 아주 번거로웠던거다.  그러니까 그 쓸데없는것을, 귀챦은 것을 왜 꼭 그렇게 감싸고 다니냐는거다.  그래가지고 P선생은 "이놈의것 치워버려!" 이러고 투덜투덜거리곤 했다. 

 

추운 겨울에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할때면, 고구마를 렌지에 굽고, 보온컵에 뜨거운 생강차를 담아서 내 점심으로 싸주곤 했는데, 내가 '고맙다'는 인사도 안하고, "내 컵! 컵데기 어디갔어? 내 컵 껍데기 어디다 갖다 버렸어? 빨리 찾아내!" 이러고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에, 그는 이걸 더 증오했다. ㅎㅎㅎ.

 

나의 이 '껍데기'에 대한 사랑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컵을 바꿀때도 이 자주색 껍데기를 고수를 했던 것이니....  나는 가끔가다가 우리집에 쌓여있는 털실을 꺼내어 이렇게 예쁜 껍데기를 몇개 더 짤까 생각만하다가 그만둔다.  될수있는대로 일을 벌이지 않고, 있는거 갖고 마르고 닳도록 쓴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오늘같이 쌀쌀한 아침에, 이걸 들으면 얼마나 따뜻한데.

 

 

 

 

댓글 4개:

  1. p선생님.. 엄청 자상하신가봐요.. 도시락 싸주는 남편이 그리 흔치 않아요..ㅎㅎ

    그리고 그 '껍데기' 보다가 좋은 생각이 막 났어요..

    몇개 만들어 연말에 선물하면 좋겠어요.. 그거 쪼끄만해서 금새 뜨겠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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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편 생각이 나시나보네요.

    저번에 남편 돌아가신 분 일주기에 갔는데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그 남편이 남긴 사랑이 여기 저기 아직도 남아 있다고.

    아름다운 미망인 언니가 하염없이 울어서 저도 울었습니다.

    사랑을 남기는건 사소한 일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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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과씨 - 2010/11/09 04:16
    p선생 유일한 낙이 저 따라다니면서 돌봐주는건데, 요새 그거 못해서 괴롭겠죠. 하하하. (그대신 장모님 열심히 돌보고 있으니까, 이런걸 꿩대신 닭~ 이라고나. ㅎㅎ)



    구글에서 knitted cup cozy 이미지 검색해보면 예쁜것이 많이 떠요.

    http://www.google.com/images?q=knitted+cup+cozy&um=1&hl=en&rlz=1G1GGLQ_ENUS276&ndsp=18&ie=UTF-8&source=og&sa=N&tab=wi



    그런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제가 볼때는 양말짜듯이 단순하게 끝낸것 보다는 단순하게 짜더라도 거기에 방울을 단다던가, 아니면 수를 놓아서 개성을 살려주거나, 꽃같은거 한장 짜서 단다던가 그렇게 장식을 하는것이 아기자기한 맛이 나더라구요. (이러다가 나 오늘밤에 하나 짤지도 몰라요. 손이 근질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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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laire - 2010/11/09 06:58
    살림 다 챙겨주다가 가버리니까, 내가 힘들지요

    커피 내려다 바치는 사람도 없고,

    잔치국수 말아다 주는 사람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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