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한국빵집에서 며칠전에 사온 '꽈배기' 하나로 때웠다. 점심을 늦게 많이 먹은데다가, 찬홍이도 학교에서 축제 했다고 많이 먹고 왔다고 해서, 피차 저녁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아서 가볍게 아무거나 굴러다니는 것으로~
내가 한국빵집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 제과점)에 가면 꼭 사는 빵은
* 한국 꽈배기
* 한국 팥 도나쓰
* 곰보빵.
전에는 한때 팥빵을 사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단팥빵 속에 들어가는 단팥이 성가셔서 잘 안먹는다. 어떤 신사분과 그 부인 때문에 팥빵을 자주 산적도 있지만, 지금은 팥빵 좋아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으므로, 나도 살 일이 없다. (나는 팥빙수의 단팥도 숫가락으로 걷어 내고 먹는 편이다. 귀챦아서... ) 팥밥이나 팥죽이나 혹은 팥시루떡 등, 우리나라 전통 음식에 들어가는 팥은 좋은데, '단팥'이라는 것은 너무 달아서, 그래서 내가 성가셔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수원에서 몇년간 가게 (상회)를 운영하신 적이 있다. 내가 아주 어릴때이다. 대략 내가 네살부터 아홉살 정도까지. 그러니까, 한 오년 수원에서 상회를 하셨다. 가게 이름은 '원천 상회'였다. 그 가게에는 네모네모난 나무 상자가 있고, 나무 상자 위에 유리 덮개가 있었는데, 그것이 빵 진열장이었다. 며칠에 한번씩, 자전거 화물칸에 층층이 빵을 담은 아저씨가 빵 배달을 왔다. 할머니는 꽈배기 몇개, 팥 도나쓰 몇개, 곰보빵 몇개, 앙꼬빵 몇개 달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면 빵배달 아저씨가 그의 빵 상자에서 빵의 수효를 채워서 유리 상자에 담아주고, 묘기를 하듯 그 높다란 빵상자를 자전거 뒤에 싣고 사라졌다.
아, 나는 아직도 그 빵 냄새를 잊을수가 없다. 앙꼬빵이라고 불리던 단팥빵은 껍데기가 반지르르 윤이 났다. 꽤배기와 팥도나쓰는 온통 굵은 설탕으로 뒤덮여 있었다. 곰보빵을 곰보였다. 우리집 빵 진열대에서는 향기로운 빵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당시에 우리 이웃 아이들은 내가 '가겟집' 아이 이기때문에 가게에 있는 것은 뭐든 다 먹을거라고 상상을 했겠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맘대로 먹을수 없었다. 그것은 파는것이지 내가 먹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네살짜리 어린 아이라도 알것은 안다. 게다가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나는 감히 그 빵 하나를 달라는 말을 할 엄두도 못해고 살았지만,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빵 한개를 통째 얻어 먹은적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마루끝에 앉아서 신문 보시다 말고, 그 빵 진열대를 들여다보고 있는 어린 손녀를 발견하면, 아무 표정도 없이 "아가, 하래비가 도나쓰 하나 주랴?" 이러시고는, "아무거나 하나 꺼내 먹어라" 하신다. 그러면 나는 유리 덮개를 열고 꽈배기를 하나 꺼내가지고는 너무 좋아서 입이 있는대로 찢어져가지고 할아버지한테 내민다. (하도 엄한 집안이라서 애들이 음식을 제 입에 먼저 넣는 법이 없었다. 뭐든 어른 한테 먼저 바치는것이 도리였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손을 이렇게 훠이 훠이 저으시면서 "너나 먹어라, 하래비는 단거 안먹는다" 하고 마셨다.
...아 그러면 나는 마루끝에서 신문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 무르팍 옆에 단단히 붙어 앉아서 그 꽈배기를 먹고,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여기서 먹고, 먹고, 먹고 또 먹었다는 말은, 꽈배기 하나를 오래오래오래 먹기 위해서, 일단 꽈배기 껍데기에 붙어있는 설탕조각들을 조심조심 손끝으로 찍어서 먹는데,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이걸 떼어먹어야 설탕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내 손에 붙는다는 원리와, 온갖 원리를 동원해서 빨아먹고, 뜯어 먹고, 핥아먹고, 야금야금 야금 야금 야금 온종일 그거 하나를 뜯어먹었다는 것이지... 할아버지 옆에 딱 달라 붙어서. 왜 할아버지 옆에 딱 달라붙어있냐하면, 내가 꽈배기 먹는 것을 할머니가 발견하시면 -- 레미제라블의 불쌍한 코제트처럼 무섭게 치도곤을 당할텐데, 그때 내가 할아버지를 꽉 잡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내 바람막이가 되어 줄 것이고, 모든 것은 할아버지가 책임져 주실거라는 것을 나는 이미 네살때부터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니...
아, 신문 보시던 할아버지 무르팍 옆에만 딱 달라 붙어 있으면, 나는 세상에 겁나는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안계시니까, 내가 매달릴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스스로 나를 지켜야만 한다....
그래서 한국 빵집에 갈때마다 나는 어릴때 환장하게 먹고 싶었던 그 유리상자속의 빵들을 사는 것인데, 그걸 야금야금 먹을때마다, 자동적으로 할아버지가 떠오르고, 할아버지 상회의 그 양지바른 앞마당이며,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빵, 과자들. 그것이 먹고 싶어서 군침을 흘리며 들여다보면서도 감히 허락없이는 뚜껑을 열지 못하던 어린 마음까지 일제히 떠오르고 마는데...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느날 밤에, 오줌 누러 나왔다가, 어둠속에서 진열대에 손을 넣어 초코렛 한알을 꺼내가지고 그걸 가지고 냉큼 방으로 와서 할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자는척 하면서 껍질을 벗겨서 우물우물, 한밤에 미치게 환락적인 그 초콜렛을 먹었는데 (그 초콜렛 속에는 하얀 크림이 들어있었다. 조그만 원뿔형. 하나에 오원). 이틑날 아침에 방을 쓸던 할아버지가 은박 초콜렛 껍데기를 발견하시고는 고개를 갸웃 하다가 그냥 잘 펼쳐서 책갈피에 꽂아 놓으셨다. (옛날에는 은박지 같은것을 버리지 않고 잘 모았다). 물론, 할머니 역시 내가 뭘 먹는다고 크게 야단을 치셨을것 같지는 않다 (어른이 되어 회상해보니). 그런데, 어릴때 나는 할머니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고, 할아버지 잔등 뒤에 숨는것이 유일한 생존의 방법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오늘 저녁을 꽈배기로 때웠다는 것이다.
도나쓰라 하시니 어릴때 같이 살던 셋째 이모가 월급날이면 꼭 사오던 코스모스 백화점 길에 있던 생 도나쓰집에서 팔던 그거 생각나요.. 제가 대학 다닐때도 그집이 여전히 있었는데 작년에 가보니 없어졌더라고요.. 전 빵집 들리면 꼭 사는 거 찹쌀도나쓰하고, 곰보빵, 단팥빵..ㅎㅎ..
답글삭제그리고 그 원뿔형 쵸콜렛도 생각나고요.. 미국에 와서 그래서 키세스 잘 사먹었어요.. 엣날 생각나서..^^..
@사과씨 - 2010/11/04 09:22
답글삭제예...그 찹쌀도나쓰요...그게 놓아두면 굳쟎아요. 그러니까, 그거는 많이 안사고, 꼭 한개만 사요. 한개 사가지고, 그건, 차에 타자마자, 빵 봉다리 뒷좌석에 던져 놓고, 그 찰도나쓰 꺼내 가지고 아기작 아기작 냠냠 먹는거죠. 아무도 안주고 혼자서, 차창밖 보면서 아주 쫄깃거리고 먹는겁니다. (아, 나도 모르던 나의 습관을, 이렇게 적어놓으니까 알게 되는군요. 하하).
그 원뿔 초콜렛. 옛날엔 그걸 낱개로 팔았어요. 우리 가게에서. 지금 아무리 비싼 고디바 초콜렛을 먹어도, 그 미치게 환장하게 좋던 그 원뿔 초코렛 맛이 ...안 나요. 이 세상의 어떤 초콜렛도, 그 옛맛을 충족시킬수가 없는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