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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눈이 내리고, 사방이 온통 눈에 싸여 있으니까, '러브레터' 영화 생각이 난다. 따끄한 오댕을 보면 소주 생각이 나듯이, 눈이 내리니까 화면가득 눈덮인 겨울이었던 영화가 생각이 나는 것이지.
온집안을 뒤져서, 결국 내가 아무렇게나 방치해두던 영화 디비디를 찾아냈다. 역시, 눈오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야. 게다가 주인공 남자는 이미 죽고 없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쫒고 쫒기는(?) 기억의 잔치. 우리가 알 수 있는게 뭘까. 홍상수의 '오 수정'을 보면 사람들 각자 각기 차이가 나는, 상이한, 가려진, 말하지 않는 기억들을 각자 보관하고 있던데.
나는 어릴때, 밤에 불끄고 누워서 어둠속에서 잠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무서운 시간' (나는 어릴때 밤에 불끄는게 참 무서웠다) 내가 상상하던 무서운 상황들이란 이런거다:
* 언니와 내가 쓰는 이 방에서 언니가 바로 옆에 누워있지만, 나는 언니를 볼 수 없다. 사실은 내 옆에 있는것은 언니가 아닌지도 몰라. 어떻게 알 수 있겠어?
* 마루 건너 안방에 아빠, 엄마, 내 동생이 누워있지만, 지금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어? 마루 건너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엄마 아빠 동생은 내 눈앞에 보일때만 잠시 존재하는 '꿈'같은걸지도 몰라.
내가 어른이 되었을때, 내가 사랑에 빠졌을때, 내게 보고싶으나 볼수 없는 사람이 생겼을때, 내가 고민했던 사항은
* 정말 그 사람이 지금, 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그 사람이 밥을 먹거나, 길을 걷거나 그러고 있을까? 내가 아는 그 사람의 모습은 그 사람의 일생에서 극히 미미한 찰나가 아닐까? 그 나머지 시간에, 내가 볼수 없는 시간에 그 사람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저기 길을 가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저 군상들과 같이 길을 걷거나 할까? 그 사람이 저 의미없는 저 군중들 속에 끼어 있을때, 그 사람은 정말로 존재하는걸까?
나는 지금도 가끔 이런 하품나는 의문에 빠지곤 한다. 내가 '내 아이들'이라고 칭하는, 혹은 내 '가족'이라고 칭하는, 늘 거기 있어줄것 같은 존재들이, 내 시야에서 벗어났을때, 정말로 존재하는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쓸쓸해진다. 거울이 없다면, 나는 평생 내 얼굴을 보지 못할것이다.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내 얼굴을 볼 뿐. 나의 존재감은 내 얼굴이 아니라, 내가 따박따박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에서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 손을 볼 수 있으므로. 내 손이 나같기도 하다.
아 그래서 조용필의 노래는 여전히 호소력이 있다.
"당신 눈속에 내가 있고, 내 눈속에 당신이 있을때, 우리 서로가 행복했노라."
내 눈으로 볼 수 있을때만 나는 안심할수 있었다. 대개.
그런데 이제, 죽어버려서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미련은 뭔가? 어쨌거나, 저것은 나의 얘기가 아니므로, 나는 개의치 않고 눈내리는 영화속의 아름다운 소년 소녀들을 즐기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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