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 가면 미국의 역사에 빛나는 인물들 및,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만날수 있습니다. 역시 대통령 초상화 갤러리의 하일라이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엊그제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 이야기도 들려드린 마당에, 미국의 초대 대통령 초상화 이야기도 들려드려야겠지요. 우선 그의 초상화들을 보시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많은데요... 제가 사실, 미국 인물들에 대해서는 좀 아니꼬워가지고 관심 안가지려고 했는데 상식과 교양을 넓히는 차원에서 그냥, 좀 적어보겠습니다.
퇴임 1년전의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1732-1799)
미국 초대 대통령 (1789-1997)
화가: Gilbert Stuart (길버트 스튜어트) 1755-1828
Oil on Canvas, 1796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우리들이 잘 아는바와 같이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1대)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인류사에 '대통령제'를 탄생시킨 첫 국가이므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참 신기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대통령제'를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이 문제를 생각해보면 - 바로 이런 점에서 미국의 어떤 '저력'을 느껴요. 가진거 많고 부자 나라에 제국으로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을 하고 그런 행태를 보면 밉상이지만요, 이들이 고안해 낸 시스템을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지요. 세종대왕과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한것 만큼이나, 미국의 대통령제는 경이적인 일로 보입니다.
조지 워싱턴 (1732-1799)는 미국 독립전쟁당시 전쟁을 지휘했으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8년간 미국을 통치 했습니다 (1789-1797). 그가 대통령직을 맡던 해는 1789 ...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해 이군요. (제가 고등학교때 세계사 시험을 위해 외웠던 몇개의 년도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이 1789죠. 프랑스대혁명...) 아하 그렇군. 미국의 독립이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하쟎아요. 아, 그렇게 된거군요.
스미소니안 초상화 갤러리의 입구에서부터 초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들이 걸려있는데요,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중아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이 바로 위의 초상화입니다. 그림 앞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줄을 걸어 놨지만, 감상에는 문제가 안됩니다. 사람들이 이 앞에 서서 기념사진 찍기를 좋아하지요. 사진 촬영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이야기를 할때, 우리는 두가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1) 조지 워싱턴
(2) 이 초상화를 그린 길버트 스튜어트.
자 일단 초상화를 좀 들여다 볼까요? 조지 워싱턴은 초상화를 위해서 포즈를 잡고 서있는것을 무척 귀챦아 했다고 합니다. 이 초상화는 조지 워싱턴이 연임하여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중 퇴임하기 1년전, 그가 사망하기 3년전인 1796년에 그려진 것입니다. 그는 왼손에 장식용 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고, 오른 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고 있습니다. 왼손의 칼은 '무력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장식'에 가깝지요. 빈 손을 펼쳐 내민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시절을 이제 당신들에게 넘겨주고 싶다는 메시지처럼 보입니다.
책상위에는 펜과 두루마리가 있고요, 테이블보가 슬쩍 올라간 책상 아래에는 책이 두서없이 서 있습니다. 그의 뒷쪽에 있는 의자 보이시나요? 의자 등받이에 미국기가 새겨진것이 보이지요?
커튼이 드리워진 창을 보십시오. 왼편의 창으로는 구름과 푸른 하늘 일부가 보이고, 워싱턴 뒷쪽의 오른쪽 구석의 창으로는 무지가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비가 개이고 무지개가 뜬 광경이지요. '무지개'는 기독교 바이블의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요. 홍수가 지나고 무지개가 뜨는 것으로 희망의 새역사가 동틈을 알렸지요.
제가 해석하기로, 책상밑에 이리저리 서있는 책은 '옛날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식민지' 사람들에게 유럽은 옛 역사이지요, 그것은 이제 발치로 내려가고, 신생국 미국은 두루마리 위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것입니다. 무지개가 걸려있는 새로운 육지에서. 이쯤되면 여기 손을 내밀고 서있는 조지 워싱턴이 '노아' 같기도 하고 혹은 노아를 방주로 이끈 '신'과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이 초상화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는 미국의 4대 대통령이었던 James Madison 의 부인 Dolly Madison 에 관한 것인데요. 1812년에 영국이 미국을 침략하여 워싱턴 디씨가 함락될 지경에 이르렸을때 (미국의 독립도 간단하게 이루어진것이 아니지요), 백악관의 안주인이었던 돌리 메디슨이 백악관의 귀중품들을 챙기면서 이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챙겼다는 것이지요. 그거 '초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챙겼다는 얘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한국 출신의 제가 볼때는, '선대의 위업'을 존중해주는 태도 혹은 그 분위기 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내가 한국의 대통령부인이 된다고 치고, 대통령 관저에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여 귀중품을 챙겨야 할 때에, 내가 전임 대통령의 사진을 챙길까요? 아니죠. 오히려 관저에 들어서자마자 전임자들의 흔적을 싸그리, 깡그리 지워버리러 들지도 모르죠. ㅎㅎㅎ . 어떻게 해서든지 전임자들의 위업에 흠집을 내가지고 그를 서툰 다이빙선수로 만들어버리거나 지구를 떠나게 만들어버리거나, 그럴지도 모르죠. 내가 본 역사가 그런식이었으니까. 전임자 흠집내기. 그리고 이런 전임자 흠집내기의 악순환.
돌리 메디슨은 이미 3대 제퍼슨 대통령시절부터 (당시에 남편인 메디슨은 국무장관이었는데) 이미 백악관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제퍼슨이 홀아비였기때문에 안주인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4대, 메디슨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식으로 백악관의 안주인이 된 것이지요. 제가 사는 동네의 도로 이름중에도 Dolly Madison 도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지요. 재임시에 남편보다도 부인의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매디슨과는 재혼이었지요. 서양역사에 보면 위인들 부인중에 '재혼한 여성'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조지 워싱턴의 부인도 아이가 있는 미망인이었지요. 조지 워싱턴은 초혼이었고. 워싱턴과 그 부인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요. 부인인 메리에게 있던 자식들은 본래 아버지의 성을 유지한 상태로 워싱턴과 살았지요. (얘기가 또 딴데로 새고 있군요.) 서양 역사에서 여성이 남편을 잃거나 이혼을 한 후에 번듯하게 다시 결혼을 하여 잘 살아간 예가 많은데요, 이런 역사도 보기가 좋지요.
이 작품은 길버트 스튜어트 본인이 복제한 작품 12점이 더 있다고 하는데, 주로 미국의 여러 주, 주 빌딩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일달러 지폐속의 초상화

George Washington (The Athenaeum Portrait) 1796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이 초상화는 '아테나움 초상화'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보스톤의 아테나움 도서관에 오랫동안 걸려있었던 것이라 그런 별명이 붙은 듯 합니다. 부인 메리 워싱턴이 남편과 자신의 초상화를 갖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초상화 작업을 하게 된 것인데요. 미완성이죠. 왜 미완성인가하면, 이렇게 일단 얼굴만 실제 모델을 세워놓고 완성 시킨 다음에, 이 그림을 토대로 초상화들을 복제 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길버트 스튜어트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주문을 받아 고가에 판매하는 재미에 그만, 죽을때까지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가령, 제가 참고하는 Smithsonian Q & A: The Ultimate question and answer book: American Art and Artists, by Tricia Write) 워싱턴이 서있는 초상화도 원래는 이 '얼굴 초상'의 얼굴을 옮겨다 놓고 나머지는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냥 알아서 그린 것이라고도 합니다. 설이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요. 제가 정리를 해보면, 길버트 스튜어트는 조지 워싱턴 초상화 작업을 세번을 했다고 합니다.
(1) 현재는 원본이 사라지고 없고 복제본만 남아 있는데, 조지워싱턴의 오른뺨이 드러나는 각도의 초상화를 제일 먼저 그렸습니다.
(2) 그 초상화가 메리 워싱턴의 맘에 들어서, 메리 워싱턴이 이번에는 남편과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얼굴만 완성된 이 두 사람의 초상화 입니다.
(3) 그 후에 조지 워싱턴이 서있는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일설에는 이 서있는 초상화는 이미 그려놓은 얼굴 부분을 옮기고, 나머지 몸이나 배경은 길버트 스튜어트가 알아서 그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1)번 원본은 사라져 버렸고 (2)번은 부부가 화가 앞에서 그려진 것이고 (3) 번은 조지 워싱턴이 모델로 서줬는지 안서줬는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략 미술사 책에서는 조지 워싱턴이 길버트 스튜어트 앞에서 초상화 작업을 위해서 세번 서줬다고 정리를 하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바로 이 '얼굴만 완성한 초상화'가 미국의 1달러 지폐에 사용된 원화이지요. 판화작업을 해야 했으므로 방향이 달라졌지요.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이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은 원화 그대로 복제가 되어 여기저기 주문을 받고 팔려나가는데 백여점이 넘는 초상화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길버트 스튜어트는 딸들과 함께 이것만도 130점을 복제를 했다고 하지요. 사진기술이 아직 미미하던 시절, 초상화를 하나 그려놓고서 그와 동일하게 복제해 내는 것은 '큰 사업'이었을겁니다. 우리가 사진 작품 하나 찍어가지고 '저작권'을 행사하듯, 잘 그려진 초상화 하나 그리면 여기저기서 '나도 그것 하나 그려줘?'하고 주문이 올것이고 주문대로 그려주면서 돈 받아 챙기면 되는 것이지요. 사진이 없거나 귀한 시절의 얘기 입니다.
다음은 그렇게 해서, 길버트 스튜어트가 수십장 복제 판매한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중 하나 입니다. National Gallery of Art 에 걸린 것인데요.

George Washington c. 1821
Oil on Wood
화가: Gilbert Stuart (1755-1828)
2010년 1월 20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자, 저 위의 아테나움 초상화의 제작 년도가 1796 년인데, 위의 초상화 제작 년대는 1821년 경으로 추정되죠. 그러니까 초상화 원화를 그린 25년후에도 스튜어트는 워싱턴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이런걸 '자기 복제'하고 하나요? 내가 내것을 복제하는거죠. 초상화는 그런 영역의 작업이었던것 같습니다. (이거 슬슬 재미있어 지는데, 서양 초상화 관련 역사 자료를 뒤져보고 싶게 만듭니다.)
조지 워싱턴을 앞에 앉혀놓고 (혹은 세워놓고) 초상화 작업을 한 사람은 길버트 스튜어트 외에도 찰스 필, 램브란트 필등 소수의 화가가 있는데 길버트 스튜어트의 초상화가 그중에서 가장 유명해 진 것이지요. 미국인이 매일 사용하는 일달러 지폐에도 들어갈 정도록. 그러니까, 미국인들 가슴속에 혹은 조지 워싱턴에 대해서 들어본적이 있는 세계인들의 뇌리에 저장된 조지워싱턴의 초상, 그것은 길버트 스튜어트의 작품입니다.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17세 청년 화가가 그린 조지 워싱턴
이 작품은 1795년, 조지 워싱턴 퇴임 2년전에 17세의 Rembrandt Peale 가 대통령을 앉혀놓고 초상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위에 길버트 스튜어트가 1796년에 그린 초상화하고 비교해보면, 이 초상화속의 조지 워싱턴이 좀더 사실적으로 보이지요. 이것에 비하면 길버트 스튜어트의 작품은 일명, 사진 편집 방법중에 '뽀샤시'처리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17세 청년이 그린 그림이 좀더 정직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노련한 초상화가보다는. 렘브란트 필은 아버지 Charles Peale 를 이어 화가가 된 사람인데요, 전에 한번 간단히 스친적이 있습니다.

1795년 제작, Oil on Canvas
Rembrandt Peale (1778-1860)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http://americanart.textcube.com/60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발견한 찰스 필의 작품중에서 계단의 청년들 그림이 있었는데요. 여기 그려진 청년들은 찰스 필의 아들들, 라파엘과 티티안. 렘브란트도 찰스의 세 아들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림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그리고 이 그림을 발견한 조지 워싱턴이 이들에게 가볍게 모자를 들어올려 인사를 보냈다고 하쟎아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60
젊은날의 조지 워싱턴 장군

George Washington after the Battle of Princeton 프린스턴 전쟁직후의 조지 워싱턴 (1732-1799)
1779, Oil on Canvas
화가: Charles Wilson Peale (1741-1827)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조지 워싱턴은 1775년에 영국과의 전쟁에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요, 수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1776-1777년, Trenton과 Princeton 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면서 식민지였던 미국의 독립을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Charles Wilson Peale 도 이 전쟁터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조지워싱턴보다 아홉살 어리군요). 미국이 이렇게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독립을 선포하고 국가의 기초를 잡아갈때, 유럽 열강에 미국을 알릴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었을까요?
18세기말 당시 아직 사진기술도 없던 시절, 그림, 초상화가 사진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미국 독립 영웅 조지 워싱턴의 대형 초상화를 그려서 유럽 열강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복제작품이 수십장이 그려져서 여기저기로 보내진 것입니다.
현재 스미소니안 초상화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이 대형 초상화는 1782년 스페인의 귀족이 사들여서 1918년까지 스페인에서 보관되었다가 미국의 수집가에게 넘겨졌다고 합니다.
그림을 좀 들여다 볼까요? 1779년에 그려진 그림이므로 조지 워싱턴 47세때의 모습입니다. 이보다 16년후에 그려진 '1달러 초상화'속의 워싱턴보다 젊어보이죠? 무관의 복장을 하고 있고, 왼손은 대포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의 왼쪽 뒷편으로 별이 열세개 박힌 깃발이 날립니다. 미국은 13개 주 연합으로 독립 선포를 했던 것이지요. 그림 왼편, 그의 발치에는 영국기가 땅에 늘어져있습니다. 승리자 조지 워싱턴 장군의 모습이지요.
찰스 필이나 길버트 스튜어트나 당대의 쟁쟁했던 초상화가들 이었는데요, 미국인들이나 세계인이 기억하는 조지 워싱턴의 이미지는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얼굴이지요. 길버트 스튜어트를 모르는 사람도 그가 그린 작품 - 1달러 지폐속의 사람의 그림에는 친숙하지요. 그러면 왜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초상화가 사람들에게 좀더 다가갈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겠지만, 제가 해석하기에는, 사람들은 '평화시'의 조지 워싱턴에 좀더 호감을 품게 된것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전쟁의 영웅은 전쟁이 끝나면 잊혀집니다. 평화가 지속되는 시기에 전쟁 영웅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평화롭게 그려진 워싱턴의 초상화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겠지요. (아니면 뽀샤시 표과의 승리인걸까요?)
사실, 이 페이지에 나열된 초상화들은 시간순으로 보자면 제가 '역순'으로 배열을 한 것입니다. 순서대로 배열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연순으로 해봤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부터 줄을 세워봤지요. 뭐 정치적인 어떤 의도는 없었습니다. :) 실제로 스미소니안 초상화 박물관에 가시면 입구에 이 젊은날의 조지 워싱턴이 실제 사람보다 더 큰 모습으로 서서 우리들을 맞아줍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중앙에 퇴임 1년전의 조지워싱턴이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요, 그 양옆에 얼굴만 그려진 부부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렘브란트 필이 그린 초상화나 그 밖의 자료들이 구석쪽에 배치가 되어 있지요.
제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에 얽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로 알게된것이, 18세기 (사진이 보편화 되기 이전) 초상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었다기보다는 어떤 홍보수단이기도 했으며, 우리가 사진을 인화하여 여러장 만들어내듯 당시의 사람들이 초상화를 수십장씩 복제하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작가가 얼굴 하나 달랑 그려 놓은후 주문이 들어오면 그 얼굴을 토대로 몸뚱아리는 제멋대로 그림을 그려서 '납품'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초상화라는 하나의 장르는 사진이나 판화와 같은 '복제 가능한' 미술과 연결된 특수 분야같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제,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그린 길버트 스튜어트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볼까요? (아...한숨 나오네요. 저 사실 초상화 전문 화가에 별 흥미를 못 느껴서요. 나중에 심심할때 간단히 정리하기로 하지요. 아, 난 초상화가 재미가 없어요....)
2010년 2월 5일 RedFox.
얼굴만 그리고 나머지는 알아서 그렸다는 게 참 재밌네요. 늘 궁금했던 게 초상화(인물화)에 등장하는 사람은 화가가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포즈를 취해줬을까...였는데 역시 얼굴만 그릴 시간을 주는 경우도 있었군요. 영화 속 풍경을 보면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도 하니 아마 유명하고 바쁜 사람은 얼굴 그리는 시간조차도 견디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답글삭제디지털 시대보다 아날로그 시대에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은 이유는 분명히 있는 것 같네요. :)
@자유인 - 2010/02/06 01:43
답글삭제예, 그러니까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초상화를 팔았던 초상화가들은 아예 배경과 몸통을 미리 제작해갖고 다니다가 거기다가 사람 얼굴 그려 넣어주었고요, 조지 워싱턴급의 인물은 얼굴만 얼른 그려 놓았다가 나머지는 나중에 화가가 알아서...
아 물론, 그 중간 급: 초상화를 위해 한참동안 포즈를 취해준 신청자들도 있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