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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나 갖고 노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루종일 허리가 아프게 눈을 치웠다...
일단 우리집 국장님께서는 연일 폭설보도에 녹초가 되어서 몸살약 먹고 누웠고, 애들도 연일 눈치우느라 녹초가 되었고.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나가서 눈을 치우고, 아이들이 드나들며 눈을 치우고 그랬다.
우리집에서 눈을 치우는 식은...좀..미국인들 보기에 특이해 보일것이다.
눈삽, 스댕 다라이, 쓰레받기
일단 눈삽(snow shovel)이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개발해 낸 방식은, 김치 담글때 사용하는 스댕다라이 (stainless tray)를 가져다가 '삼태기'처럼 퍽퍽 눈을 담아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연일 눈을 치우다보니 그 눈삽에 금이가고 힘을 못쓴다. 그거 깨지면 정말 큰일이다 싶어서 살살 다뤘다. 큰 아이가 나를 거들어 나오길래 눈삽을 녀석에게 넘기고, 나는 그림을 가지고 놀다가, 일단 내 방을 한번 치우고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사용한 '쓰레받기'가 딱 삽모양인거라. 그래서 그 쓰레받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쓰레받기가 예상외로 효과적이었다.
서서 눈삽으로 눈치우면 눈의 무게와 눈삽의 무게 모두를 받쳐야 하므로 힘이 많이 든다. 그런데, 밭매는 식으로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받기로 눈을 퍼내면 눈이 바닥까지 반짝 들어지면서 잘 퍼진다. 큰애는 서서 눈삽으로 눈을 펐고, 나는 조선여인의 밭매는 스타일로 쪼그려 앉아서 삽작삽작 눈을 파서 옮겼는데, 큰애가 눈삽으로 눈파다 말고 외쳤다, "와, 엄마 쓰레받기질하고 내 삽질하고 속도가 똑같네!"
나중에 작은애도 나왔길래, 나는 쪼그려앉아 쓰레받기로 스댕다라이에 눈을 퍼 담고, 작은애는 그걸 옮겨다 버렸다. 눈퍼담은 내 속도가 내다 버리는 애들 속도보다 고속이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밭에서 밭매고 뭐 그런 농사일 지겨워하면서 컸는데, 그 농사짓던 근력이 내 몸 어디엔가에 그대로 남아있었나보다. 거의 반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눈을 팠다. 호미들고 밭을 매듯.
조선여자, 미국에서 눈치워주기 용역을 하다.

허리가 뻐근하게 온종일 일을해서, 커피나 좀 먹으려고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그림갖고 놀고 있는데, 큰애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찾는다. 눈을 치우고 있는데 이웃집 할아버지가 오더니 다짜고짜 20달러짜리 돈을 내밀면서 자기네 문앞 눈을 치워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큰애는, 이웃집 노인이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기꺼이 도와드릴수 있는데 돈을 내밀고 눈을 치우라니까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웃집은 남미계 노동자들이 오전에 여럿이 와서 눈을 치우고 갔다. 아마 120달러쯤 줬을것이다. 그런데 우리집 앞 도로를 제설차가 다니면서 눈을 밀어대는 통에 집 입구에 '담'처럼 눈이 쌓였다. 옆집도 담처럼 눈이 입구를 막고있고. (그래도 제설차가 다니며 집앞 도로를 치워주니, 눈을 집 입구쪽으로 밀어놓는다해도 우리는 고마워할 처지이다.) 아무튼 옆집 할아버지는 아침에 눈치우고 나갔다 저녁에 와보니 집앞에 눈이 쌓여있는거라.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러니 길에서 일하는 우리집 애들을 보고 다짜고짜 돈을 내밀고 눈을 치워달라고 한 모양이다.
큰애가 기분나쁘다고 중얼거리길래, 내가 큰애를 달랬다.
이웃집 할아버지의 제안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이유:
(1) 이웃집 할아버지는 그리스계 이민자이다. 그리고 그가 미국시민이라고 해도 이민자들은 특유의 액센트가 있고, 영어를 사용하는 매너도 달라서, 아마도 퉁명스럽게 용건만 말하는 식으로 의사전달을 했을 것이다. 말이 퉁명스러워보일뿐 본 뜻은 그게 아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면 그렇게 말을 안했겠지만, 이민자의 영어구사 상황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2) 할아버니는 눈을 치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도움이 필요하다
(3) 우리들은 그 할아버지를 도울 힘이 있다.
(4) 게다가 할아버지는 노동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힘이 있으면 눈을 치워주면 된다. 그러면 그 할아버지를 돕는거다. 우리가 눈을 안치워주면 그 할아버지는 집에도 못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큰애에게 할아버지 집앞의 눈을 치워주라고 말했다. 우리집 애들은 우리집 마당의 눈을 치우다말고, 집에 못들어가는 할아버지를 위해 이웃집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러 뛰어갔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딘가게 갔다가 한시간 후에나 오시라고 말해줬다. 나도 쉬다가 말고 '스댕 다라이'를 들고 이웃집으로 뛰어갔다. 우리 셋이서 한시간쯤 일을 하니 이웃집 입구에 막힌 눈이 모두 제거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눈을 치웠냐하면,
(1) 작은애는 삽질을 하고
(2) 나는 밭매는 조선여자 폼으로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받기로 열심히 눈을 다라이에 퍼 담고
(3) 큰애는 허벌나게 그 양동이의 눈을 멀리 옮겨다 버리고
우리동네에서 이렇게 눈 치우는 팀은 조선출신 우리식구밖에 없을거다.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삽질보다, 쭈그리고 앉아서 하는 쓰레받기질이 더 효율적이더라. (아, 내 몸에는 수천년 쪼그리고 앉아서 밭을 맨 고조선, 삼한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무쇠같은 여인들의 유전자가 유유하게 흐르고 있었던거다...)
그래갖고, 옆집 입구 눈을 한시간만에 싹 치워주고, 다시 우리집 마당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 선사시대의 유물을 파내는 고고학자처럼, 혹은 금을 캐내는 광부처럼, 콩밭매는 아낙처럼 쭈그리고 앉아 눈을 치우는 사이에 이웃집 할아버지가 나타나더니, 큰애에게 40달러를 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하하. 고학력 고급인력이 '신기술'을 이용해서 눈을 치워줬으므로 그정도는 받아야~ 하하하~
큰애는 눈치워주고 돈 받는 것에 대해서 '도의적'인 어떤 부담감을 갖는것같다. 녀석이 코리안이라서 그렇지. 일을 해주고 댓가로 팁을 받는것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어쩌면, 이웃집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할때 부담없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 애들에게 용돈조로 푼돈을 쥐어주는 식으로. 뭐 그것도 서로 돕고 사는 방법이다. 돈 받는 것을 죄악시 할 이유가 없다.
그대신 나는 우리 셋이서 한시간 노동해서 벌은 그 돈을 자선단체에 보내기로 아이들과 의논을 했다. 어차피 돈받기 위해서 눈치워 준 것은 아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전에 앰뷸런스에 실려 간 적도 없고, 그 집에는 젊은이가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냥 치워드릴수도 있었다. 그런데 수고비를 주실때는 받는것이 서로간의 예의이다. 그분도 무작정 남의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만고의 게으름뱅이인 내가, 내 집 눈도 치우기가 싫은 판국에, 이웃집 눈까지 치워주게 될지는 나도 몰랐다.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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