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큰애의 생일이었다. 저녁에 동네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서 생일기념 '외식'을 했다. 카페 Tatti는 할아버지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동네 밥집'인데, 이 꺽다리의 생일이라서 기념하러 왔다고 말해줬더니 할아버지들이 (아니 .... 백발의 신사들께서) 일하다 말고 와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할아버지들이(아니 은발의 신사들이) 노래를 불러주었으니 큰애는 은발이 될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것이라고 상상을 해본다.
큰애는 어쩌면 나를 닮은것일지도 모른다. 큰애와 성품과 '리더십'의 문제에 대해서 그의 고민을 들어주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애는 몇가지 써클에서 회장을 하거나 부회장을 하거나 혹은 평회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큰애는 뭐든 성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스스로가 하는 고민의 양상을 종합해보면, 그는 주도적인 리더는 아닌듯하다. 그는 주로 주어지는 일을 충실하게 잘 해내는 편이지만, 스스로 일을 벌이거나 이를 주도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사람의 스타일을 단순무식하게 두가지로 나누면
(갑) 대책없이 일 벌이고 돌아다니는 무대뽀
(을) 꼼꼼하고 충실하게 일을 잘 마무리하는 성실파
이럴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갑과 을이 손을 잡으면 이들은 환상의 콤비가 된다. 하나는 일 벌이고 하나는 수습하고. 조화만 잘 된다면 좋을것이다.
갑과갑이 만나면 실속이 없고 난파선이 될것이다.
을과 을이 만나면 진전이 없고 제자리걸음을 하되 난파선은 되지 않을것이다.
내가 볼때, '조합'의 문제다. 갑과 같은 리더도 있을수 있고, 을과 같은 리더가 있을수도 있고, 리더의 스타일에 따라서, 그리고 조직의 스타일에 따라서 일의 성패는 달라질것이다마는 갑이 혹은 을이 더 나은 리더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 주변과의 역동성이 늘 존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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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 살아온 인생에서 '리더'가 된 경험이 별로 없다. 나는 그 초중고등학교때 반장을 한번도 해본적도 없다. 언젠가 우연히 부반장을 해본적은 있지만, 그것도 선생님이 그냥 그렇게 정한것이었지 내가 하겠다고 나섰던것도 아니었다. 대학교때 주간교수가 '네가 해야만 한다'고 우겨서 신문사 편집장을 일년 했고, 4학년때 (4학년때는 아무도 뭘 하고 싶어하지 않으므로 이리저리 밀리다가) 과대표를 억지로 시켜서 울며겨자먹기로 해본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장'이 된 이력은 선생님이나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수없이 책임을 받은것에 불과했다. 그것의 책임을 완수하는것 외에 내가 뭐 특별한 짓을 한것도 아니었다. 나는 리더가 되는 일에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왜 나는 리더가 되는 일이 흥미가 없었을까? 내가 돌아보면, 나는 '외로운 늑대'과라서 그렇다. 나는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없고, 내가 흥미로운 일에 몰두하기를 좋아한다. 책임을 맡으면 마지못해서 성실하게 수행해내지만, 조직의 일에 헌신할 생각이 별로 없다. 난 내 인생이 즐거운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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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이력을 돌아볼때마다 입가에 자동적으로 미소가 흐르는 대목이 몇가지 있는데 소설로 상을 하나 탔다는 기억, 그리고 영문학과에서 2년에 한번 막을 올리던 영어연극에서 주연배우를 했다는 기억일것이다. 영어 연극을 한다길래 뭐라도 하고 싶어서 오디션에 갔었는데, 쟁쟁한 선배들 잘난 동기생들도 많이 왔건만 (그래서 이거 엑스트라 자리 하나 얻기도 힘들겠다고 쫄아있었는데) 내게 주연배우역할이 주어졌다. 그때 나는 내 몸이 하늘로 붕 뜨는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가만, 그게 오르가즘이었나? 갸우뚱.) 나는 대사를 열심히 외웠고, 주인공을 성실하게 분석했고, 연기지도를 성실하게 받고, 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석달후에 나는 완벽한 '정신병자 술주정뱅이 남자'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하하. 어쩌면 그때 그 정신병자 술주정꾼 남자가 내 영혼에 깃들었을지도 몰라. 환상의 토끼와 즐거운 인생을 보내는 사나이. 나는 성실한 (게다가 인물도 좋은) 주연배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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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석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곳에 내가 처음 발을 디뎠을때, 첫학기에 내 수업을 듣기 시작한 1기 학생들은 여덟명이었다. 나는 나 혼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나혼자서 그 학기 전 과정을 다 가르쳐야 했다. (학기 중간에 꽤나 명문대 출신 미국인 강사가 강의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요구를 하여, 그들의 의견이 합당하길래 그만두게 하고 내가 나머지 땜빵까지 해야 했으니까.) 이번 봄학기는 정규과정 네번째 학기. 이번 학기에 내 석사프로그램 학생수가, 30명이 넘는다. 전공 개설과목 여섯가지. (내가 다니던 주립대에서도 한학기에 전공 개설과목이 여섯가지가 된 적이 없었다.) 나는 각 분야의 전문 강사들을 영입해오느라 분주했다. 내가 스카웃해온 교수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이력도 화려하고, 선배라고 불러야 할 분들이다. 여섯과목중에서 세 사람들이 한과목씩 맡아서 수업하고, 내가 세과목을 가르친다. (그래도 여전히 내 수업에 학생들이 몰린다. 신기한 일이다. 지겨울법도 한데. 기말의 학생들이 하는 내 강의평가는 체계가 서있다는 쪽이다. ) 내 코리안 액센트 때문에 나도 신경을 쓰곤 했는데, 이제 나는 내 영어 (코리안 액센트가 섞인 영어)에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강사 두사람으로 시작한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이제 네명의 강사가 투입되었고 그중 절반은 박사급이다. 나는 이번학기부터 이 프로그램의 수업에서 빠져나왔다. (연구 할동 할 시간을 좀 벌은 셈이다).
첫학기에, 이 학교에 들어섰을때 내 석사과정과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허허 벌판에 혼자 깃발 꽂은 형상이었다. 지금 나는 세명의 학자들의 조력을 받고 있고, 그리고 네명의 영어강사들의 오야붕(?)이 되어 이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학사 석사 박사급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다.
내가 수학했던 플로리다 주립대의 풋볼팀의 상징은 세미놀 인디언이다. 해마다 풋볼시즌이 되면 우리들은 세미놀 인디언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며 열광했다. 우리학교의 오프닝 세리모니는 미 전역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것이다. 세미놀 인디언 추장이 점박이 말을 타고 경기장에 나타나서 알록달록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창을 힘차게 경기장에 꽂는 것이 이 세리모니의 하일라이트이다. 이땅은 내땅이다 이거지. 내가 깃발 꽂았다 이거지. 그러면 우리들은 오오 오 오 인디언 합창을 하면서 열광했다. (심지어 상대팀조차도 이 세리모니에 넋이 나가곤 했다. 아, 얼마나 근사한가!)
어느날 나는 워싱턴 바닥에 나타나 허허벌판에 세미놀 깃발을 하나 꽂았고 나는 내 영역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적고보니 꽤나 드라마틱 하고 뭐 그렇군. 난 내 이야기를 과장하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내가 관리하는 두가지 프로그램을 보면서, 플래닝을 하거나 학생이나 교수들의 상담을 들어주다보면 나는 가끔 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심한 피로를 느낀다. 내가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커버린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어쩌다 이런 자리에까지 온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평가하기에 나는 (갑)형의 리더는 아니다. 난 내 관심 분야에 몰입할뿐, 일을 벌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을)에 가깝다. 그런데 내가 갑이건 을이건간에 내 일에 몰두하다보면 내가 '갑'의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난 리더가 되고 싶었던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진두지휘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니 사람의 일은 알수가 없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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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촉매'의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촉매. 화학 작용이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보조하는 물질. 아...반응과정에서 나 자신은 소모되지 않는것이 촉매의 속성이구나. 나는 닳아없어지는것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카탈리스트. 촉매.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주변이 활성화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받을만하다. 아, 내가 선생질로 뛰어든것은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들은 촉매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니까.
http://ko.wikipedia.org/wiki/%EC%B4%89%EB%A7%A4
촉매(觸媒) 촉매(catalyst)란 반응과정에서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을 말한다. 반응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를 변화시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촉매의 역할이다.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어서 반응속도를 높여주는 촉매를 정촉매, 활성화 에너지를 높여 반응속도를 낮추는 촉매를 부촉매라고 한다.
수업할때, 강의를 하는 날은, 나는 옷차림도 신경을 쓰고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나는 수업 하는 일이 연극무대에서 연극을 하는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강단에 설때, 나는 선생이다. 선생의 역을 하는거다. 집에 앉아있을때, 나는 한없이 게으른 아무개 갑 혹은 을이다. 그러니 무대가 아닌가. 배우는, 가수는, 혹은 무대인생은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여러가지 신경을 써야하는거지. 무대인생. 무대의상이 화려한 이유는, 그들이 그 화려한 의상을 선호해서 그런것만은 아니다. 보는 사람 눈이 즐거우라고 그러는거다. 말하자면 무대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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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연극이라면, 삶의 각 장면이 무대와 같은거라면, 나는 그 연극의 감독보다는 '배우'쪽인것 같다. 나는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것이 신난다. 나머지는 감독에게 맡기는거다. 단 무대는 내것이다. 어떤이는 무대위의 배우보다는 감독이 되고 싶어한다. 종합적으로 신경쓰고 기획하고 이끌어나가는 존재. 감독. 나는 그런거 말고 그냥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게 더 재밌다.
내 삶은 이따금, 내게 '이제 감독도 하고 배우도 하고 원맨쇼 할 시간이 온것 같구나'하고 일러주기도 한다. 나는 리더가 될 생각이 없지만,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할 시기도 있는것이다. 잘 해내면 되는 것이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을 저 높은 하늘에서 보면, 그냥 엑스트라 갑, 을, 병에 불과하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이다. 내가 오늘 죽는다고 이 세상에 달라질것은 별로 없다. 나는 먼지이고, 공깃방울이고 엑스트라이다. 그런데 하나의 비누거품 공깃방울에도 우주 삼라만상이 반사된다. 찰나지만 나는 감독이고 주연배우이기도 한거다. 만사는 찰나에 흘러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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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School of Athens 그림의 일부. 오른쪽의 대머리 사나이. 누런 옷을 입고 서서 두 손을 내밀고 '수다'를 떨고 있는 못생긴 아저씨가 쏘크라테스님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철학자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저씨이다. 소크라테스. 거리의 백수 수다쟁이 아저씨. 사실 나의 꿈은 햇살 내리쪼이는 황톳길 어디쯤에서 이렇게 한가롭게 햇볕이나 쪼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는거다.
어제, 사회언어학 수업 개강을 했는데 그때 잠시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했었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댔고, 그리고 그의 대화상대는 스스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대개는 짜증나는 결론. 처음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결론. 자기 자신의 모순을 자각하는 경험. 그걸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저 짜증나는 대머리 녀석! 사회언어학은 내가 석사과정 중에서도 최고과정 (다른 모든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마지막에 들을수 있는 과정)으로 설정한 것이고 그만큼의 고민과 사색을 요구하는 실러버스를 짜 놓았다. 고민하고, 사색하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모순을 발견하고, 자각하고, 그런 과정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다보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다. 그리고는 죽여버린거지 하하하. 등에. 나를 괴롭히는 등에를 내 학생들에게 보내는거다. 내 학생들도 나처럼 괴로워봐야 하는거지.
힘들었던 봄학기 오프닝 행사가 모두 끝났다. 오늘은 금요일. 파란하늘. 연극이 끝나면 조명이 꺼지고,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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