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식구들중, 아무도 집 뒷동산에 나간 적이 없다. 앞마당 눈을 치우느라 바빠서, 뒷마당은 아예 손도 못대고 있다. 가끔 왕눈이만 뒷문 앞에 나가서 어슬렁거리다가, 쌓인 눈만 쳐다보다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내 여우가 살던 여우언덕에, 마치 오솔길같은 길이 생겨났다. 그 길은 우리집 뒷문에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아무도 뒷문밖에 안나갔으니까. 그 길은 언덕쪽에서 생겨나서 다른 숲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추측하기에 우리집 뒷마당에 살던 ground hog (=우스척 = woodchuck) 들이 눈속을 헤치고 돌아다니느라 오솔길이 생긴 것 같다. 작은 짐승이 '도로공사'라도 한듯, 삽으로 판듯, 선명하게 길이 나 있다.
나는 이들의 '도로공사' 결과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웃는다. 땅두더지같은 놈들. 눈길을 파고 돌아다녔다 이거지... (상상하니 귀엽다).

그냥, 책도 다 팽개치고, 배낭하나 어깨에 지고, 카메라하고, 공책, 연필 이렇거 갖고 다니며 한 일년 쏘다니고나면, 나를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이 절망감, 우울감, 남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나도 유혹을 받는 이 얼치기 삶의 자세가 개선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해본다.
아니 아니, 우드척이 눈을 파고 돌아다니듯, 나도 내 공부를 들이 파야 하는거지. '너 개강준비 안했쟎아!' 그래, 공부해야 할 시간이다. 공부...
내가 공부 열심히 하면, 여우가 돌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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