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3일 수요일

미술안내인의 덕목 (2)

미술 안내인의 덕목 (http://americanart.textcube.com/309) 페이지에서, 내가 '관객'으로서 미술 안내인에게 기대하는 몇가지 사항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후로도 나는 미술관에 갈때마다 프로그램 확인하고, 내 방문시간에 진행되는 도슨트의 안내를 듣곤 했는데 (요즘 블로그에 이야기를 적어야 하므로 미술책이나 미술 안내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읽거나 듣고 메모하는 편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열심히 공부중.)  이제 나는 어떤 '전형'을 정리 할 수도 있다.  내가 겪었던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던 안내인'들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안내인'들의 행동 양식을 대략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두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겠는데 (1) 준비된 안내인 (2) 관객을 잃는 안내인 으로 제목을 붙일수 있겠다:

 

 

준비된 안내인

 

1. 관객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중간에 관객이 불어난다.

2. 소요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그 시간안에 안내를 마친다.

3. 자신이 정한 동선을 정확히 알고 있다. 헤메지 않고 동선을 안내한다.

4. 그는 이미 계획이 서있고, 그 흐름이 일관된 어떤 주제를 따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5. 손에 참고할 인덱스 카드가 일목요연하게 들려있고, 뭔가 역사 이야기를 할때는 연도를 정확히 말하고, 누눈가의 말을 인용할때는 카드에 적힌 것을 정확히 읽어준다.

6. 종종걸음으로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을 치며 이동하는 중에도 관객과 대화를 주고 받는 식으로 interaction 을 취한다.

7. 그는 스스로 고지한 시간 안에 그의 임무를 완수하고 작별 인사를 날린다.  작별 인사 후에도 남아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따로 남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화를 나눈다.

 

 

관객을 잃는 안내인

 

1. 그의 관객들이 이미 초기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끝마칠 즈음에는 한 두사람만 남게된다 (이경우 한두사람 남는 이유는, 다 빠져나가버려서, 이제 나마저 빠져나가면 너무나 참혹하므로, 미안해서 못빠져나가는거다.)

2. 소요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3. 뭔가 처음 모였을때부터 중언부언하고 흐릿하다 (이때 감 잡고 그냥 자리를 뜨는 눈치빠른 사람도 있다.)

4. 그에게는 계획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안내하는 스타일일것이다.)

5. 4번의 영향으로, 계획없이 흘러가는대로 가는 스타일이므로 뭐 바쁠게 없고, 뭐 원래 미술관 작품들은 다 걸작이므로 특별히 챙겨서 설명하는게 불가능하다는 태도이다. 뭐 다 좋다 이거다.

6. 계획이 없으므로 특별히 전달할것도 계획이 서있지않아서, 관객이 뭔가 좀 체계있는 질문을 던지면 중언부언하며 하나마나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이  기획전의 작품들에 일관하는 어떤 주제같은 것이 있는가? 이 기획전의 의도가 뭔가?" 하고 물으면 "여기 소장품이 오만점이 넘는데, 그냥 다 걸작인거다." 이런 설명을 한다.  이건 동문서답인것이지. 이쯤에는 이미 과반수의 청중이 바람빠져나가듯 사라지고 없다.

7. 기획전 안내를 맡은 사람이 기획전 안내를 전혀 못하고는, 여기 이것 말고도 좋은 작품들이 많으니 구경시켜주겠다고 끌고 아무데로나 이동한다. (이때 역시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8. (나는 사람이 꽤 차고 야멸찬데, 빠져나갈 시기를 놓치거나, 혹은 상대방이 인간적으로 뭐랄까...좀..버리고 가버릴수가 없는...뭐 그런 느낌이 들때, 도망을 못간다.) 이때쯤 안내원은 이제 두사람 남은 청중을 돌아보며 모두다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도망갔지....)  Oh, they abandoned me...oh...where are they?  그는 탄식한다.  이때 내가 도망간다면 나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9. 그는 이제 단 두사람 남은 청중에게 뭔가 '특별 서비스'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남아있는 착한 청중(?)에게 좀더 봉사해줘야 한다!  좀더 봉사를!  그래가지고 세월아 가던지 말던지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만약에 당신이 미국인하고 '영어 회화' 연습을 하고 싶다면, 그것도 공짜로 연습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당신이 워싱턴 근처에 산다면) 이런곳에 가면 된다.  두서없는 미술관의 안내인을 찾아내는거다.  그러면 분명, 성질급하고 인간성 안좋고 까탈스럽고 오만방자한 애들은 건방을 떨면서 이 착한 안내인을 버리고 도망을 갈거다. 하지만 당신은 인격자다. 절대 착한 안내인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은 고결한 인격자이므로 이 안내인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살려줘야 하는거다. 그래가지고  착한 안내인의 미술 안내를 받으며 한시간, 두시간 걍 내리 시간을 보내며 떠듬, 떠듬, 영어 회화 연습을 하는거다. 듣기 연습도 하고. (공짜로.)   이분은 당신이 부탁만 한다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하루종일 당신을 안내해줄수도 있을것이다. 어차피 이분은 '시간관념'을 초월한 분이므로.

 

 

헤헤헤. 아 사실, 내가 도망을 못 쳐가지고 (의외로 내가 마음이 약하단 말이지...) 꾸역꾸역 견디다가 가까스로 헤어졌는데 (나중에는 나 외에 하나 남은 일행마저 쓱 빠져나간거라...) 아무튼 결국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허둥지둥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보러 돌아다니다가, 글쎄, 아이고 또 그 분을 만난거다. 사실 나는 그분이 저만치 보이길래 얼른 싹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를 부르시는거다! 아주 반색을 하면서! (되게 심심하셨군...) (아, 나는 너무 인상이 좋은게 탈이야. 어딜가나 이놈의 인기...)

 

그런데, 사실 미술관을 하도 다니고 안내인들도 하도 많이 겪다보니, 이제는 안내인 얼굴만 딱 봐도,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대충 감이 잡힌다. 가끔 '아이고 저 사람 저 세월족이다 (여기서 세월족이란...세월아 네월아 시간관념없이 흐지부지하게 흘러가는 안내인)' 하고 감이 팍 오는데도 내가 도망을 안가고 시간을 죽일때가 있는데, 인정상 그럴때가 있는것이다.

 

관객을 잃는 안내인의 미덕

 

이건 이야기의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인데, 내가 위에 혼자 킥킥 웃으며 관객을 잃는 안내인 이야기를 하자니, 혼자 킥킥거린게 미안해서 이분들의 미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것으로 어떤 형평성을 유지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저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계획성없이 행동하시는 분들도, 사실은 다 계획대로 행동하시는거다.  이분들은 무계획의 계획을 갖고 있는거다.

 

이분들은 그냥 전체적인 어떤 흐름을 머릿속에 갖고 있되 상세한 계획을 짜지 않는 것이다. 이런분들의 행동의 특징은, 사람들과 미술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어미새가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새의 주둥이에 넣어주는 '일방적인'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자는 것이지.  사실은 이런 분들의 사고방식이 좀더 차원높은 것일수도 있다.  상세하게 계획 세워서 시간 딱딱 맞춰서 동선까지 미리 계획해서 정확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것이 오히려 한차원 낮은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에서 뭐 그렇게 자로 잰듯이 돌아다니며 일초를 다투며 감상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미술관에 올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대화를 나눌 여유도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일초를 다투며 작품 감상한다는게 그게 어불성설아닌가?  이런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이런 세월아 네월아 안내인들이 훨씬 고차원적인 분들이다.

 

전에 어떤분이 내게 충고를 하신적이 있다.  내가 시간 딱딱 맞추는데 강박증을 보이고, 남들 지각하는것에 대해서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것도 병'이라고 지적을 하셨다.  남들 지각하고 늦고 그러는거, 시간관념 흐릿한거 그거  사실 '삶의 여유'로 좋게 봐줘도 된다는거다. 늦고 지각하고 그러는 사람은 게을러보이지만 한편으로 너그럽고 후덕한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맞는 말씀같은데,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시간 약속 안지키고 흐릿한 사람하고는 잘 섞이질 못한다. 

 

 

 

계획: 할것이냐 말것이냐

 

나는 직업상,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어딜가서 누구를 만나건, 어떤 상황에 있건 늘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어떤 교사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수업에 들어가면, 그 수업은 어떻게 될까?  하버드대학의 어느 저명한 교수는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여성이었는데) 수업계획없이 수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계획을 짜서 들어가면 창의성있는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업계획'없이 수업하는 일을 설계도도 없이 건물을 짓는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수업 계획 없이 교육을 한다는 학자나, 건축설계하듯 수업계획을 짜는 학자나 이들의 공동 목표는 '좋은 교육'이다.  그런데 취하는 노선이 다르다. (표면적으로 달라 보인다). 사실 계획을 짠다는 사람이나, 계획을 안 짠다는 사람이나 계획을 세우는것은 동일하다. 계획이 없다는 사람도 머릿속으로 어떤 일관된 그림을 그린다. 그런 그림도 없이 멀거니 수업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차원이 저급이건 고급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저들이 내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저들의 희망사항을 수용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내인에게는 청중이 필요하고, 청중에게는 안내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안내인은 효과적으로 안내를 할 책임이 있고, 청중은 예의바르게 안내를 받을 책임도 있지만,  아니다 싶을땐 도망을 가는거다, 남들이 다 빠져나가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바람이 새나가듯~~ 

 

 

 

 

 

 

댓글 5개:

  1. trackback from: 미술 안내인 (Docent) 의 덕목
    Delaware Art Museum 에서 활동하는 미술 안내인 박물관이나 미술관등, 공공 전시장을 다니다보면, 자원봉사로 전시 안내를 해주시는 분들을 만날수 있다. 이런분들을 미국에서는 Docent (도슨트)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이런 분들은 대개 미술관이나 해당 전시관에 자원 봉사자로 등록을 하고, 관련 교육을 받은후 활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전시장을 찾을때, 전시장 전반에 관한, 혹은 특정 전시 행사에 대한 안내를 받고 싶다면, 사전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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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요즘 오랜만에 학부생 강의를 하나 하는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강의를 못따라가겠다는 학생이 나와서 걱정입니다. 실력이 좀 떨어지는 학생인 것 같긴 하지만, 최소한 그런 학생들도 열심히 하면 따라갈 수 있는 여지는 만들어줘야할텐데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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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hakii - 2010/02/07 06:50
    제가 대학원에서 고급 통계학 과정 수업 들을때, 처음부터 재앙이었거든요. 결국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냈는데 그때 '학생'으로서 저의 전략은

    (1) 조교들의 도움을 최대한 이용한다

    (2)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시간당 20달러주고 튜터링도 받았다

    (3) 팀 프로젝트로 진행된것에 열심히 참여하고 기여하려 애썼다



    결과적으로 약자에서 시작해서 기여자로 마칠수 있었지요.



    제가 가르치는 입장에서 실력 모자라는 학생을 지도 할때는

    (1) 충분히 상담한후에,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 적함한 과제를 주고 별도의 채점을 합니다.

    (2) 별도의 과제를 통해서 그 사람이 성장하도록 유도합니다.



    이것은 제 과정에서나 가능한 방법이고 '엄정한' 기준이 요구되는 과목은 이러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며칠전에 학교에 감사가 나왔는데, 감사도 그걸 묻더라구요. "너한테 기준이 있는데 네 학생이 그 기준에 미달할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래서, "난 기준에 못미치는 학생에게도 똑같이 공부할 권리가 있다고 보고, 내가 기준을 조정하여 사람을 키운다"고 대답해줬습니다. 감사관으로부터 제가 받은 교수평가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학교나 학과의 방침을 살펴보시고, 허용되는 범주 안에서 뭔가 조정을 하면 어떨까요. 결국 상생하자는거죠...



    (학생들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런 고민 한다는거 잘 상상을 못할겁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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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감사합니다. 일단 그 다음 시간에 알록달록하게 슬라이드를 만들어서 그동안 한 걸 정리해 주고, 강의 속도를 좀 줄였더니 좋았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 학생이 열살된 아이도 있는 아주머니 학생이에요. 제가 가르치는 과목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게 아닌데 (원리상은), 그 전에 들어야 했던 과목이 매우 어려운 과목이거든요. 그걸 어쨌든 통과한 분이니까 이 과목도 가능하리라고 믿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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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khakii - 2010/02/10 04:06
    아 아, 저는 뭐, 아무것도 도움이 된것이 없는데요. :)



    그런데 가끔, 좀 답답할때,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저절로 스스로 어떤 답을 생각해내게 되지요.



    저는 요새도 고민을 많이 해요. 내가 내 강의스타일을 점검해보면, 굉장히, 위협적이에요... 감추려고 하는데, 잘 감춰지지가 않아요. 힉생들이 '제대로 할 생각 없으면 나가라'는 식의 위협을 느낄것 같아요. 부드러워지려고 애를 쓰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K님은, 저하고 정반대이실걸요 아마. 잘 하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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