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926. Oil on canvas
29 x 34 in.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2010년 2월 20일 촬영
제가, 어제 머리 식히러 훌쩍 필립스 콜렉션에 분명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제 카메라를 우리집 작은도령이 멋대로 조작을 해 놓아가지고, 사진들을 모두 망쳤거든요. 제가 밤에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빨리 다시 가서 사진찍을 마음에 잠이 안왔어요. 왜 잠을 못자고 설쳤냐하면, 오키프 특별전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이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이거 아무때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무슨 말씀인가하면, 각 미술관들의 소장품들이 방대할경우 명작들이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수도 있고, 내가 아무리 그 미술관의 소장품을 보고 싶어도 전시가 안되면 볼수가 없는거죠. 필립스 콜렉션이 이 작품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것을 언제 전시장에 내 놓을지, 언제 그림을 바꿔 달을지 저로서는 알수가 없는겁니다. 이 작품이 지난 가을에는 분명 여기 없었어요. 이번에 가보니 사실주의 화가들 작품이 세개의 방에 제법 충실하게 전시가 되어있었더라구요. 그러니깐, 혹시라도 밤사이에 그림이 교체가 되면 안되니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잠이 안오는거죠...
이 방에는 왼쪽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두점이 나란히 걸려있고요
맞은편에 보이는 대형 초상화는 The Eight 의 Geroge Luks 의 작품
안보이지만 오른쪽 벽에는 벽난로 위에 Rockwell Kent 의 설원 풍경이 걸려있어요
창문이 있는 이쪽 구석에는 Robert Henri 의 인물화가 있고요.
저기 건너방에 다닥다닥 붙은 작품들이 Jacob Lawrence 의 남부흑인 이주 시리즈 30장.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실내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서 실컷...보는거죠..실컷...
예, 저는 그래요. 뭘 보고 싶으면 당장 가서 봐야, 안심이 되지요. 저는 훗날 같은거 안믿어요. 나중에 뭐 할거라는 것 별로 안믿어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을때 해야 하죠. 내가 내일 이 세상에 살아있을지 없을지 장담이 안되는데 뭘 미루고 할것이 없지요. 보고싶은건 당장 가서 봐야하는거죠.
아...그래가지고...달려가서 눈이 빠지게 보고 또 보고 했다는거죠. 작품들을...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에 둘러싸인 시간이. 내가 꼭 보고싶어서 환장했던 그림들속에서 서성이던 순간들이.)
아, 내가 오늘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들을 봤는지...풀어놓고 자랑질을 하는 것으로 염장질을 해야만 하는 것인데.하하하. 빨래도 해야하고 청소도해야하고, 아이구야. 염장질 할 시간이 없네~
나는 봤지롱~ 에드워드 호퍼의 썬데이를~
썬데이에 나오는 저 남자, 내가 한참을 앉아서 들여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20세기에 뉴욕 변두리에 나타난 쓸쓸한 소크라테스.
길에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다떨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햇볕을 쬐고 있는 대머리 소크라테스.
하하.
느림보
아니. 저 을씨년스런 그림이 이래 화사해 지다니요.
제 친구 느림보님의 코멘트가 인상적입니다. '을씨년' 스러운 그림이 '화사'하다는 '역설적'인 평을 하셨는데요. 이 한마디에 어쩌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의 전체적인 개성이 들어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Realism/EdwardHopper
위의 링크에 제가 에드워드 호퍼 이야기를 적어놓은 페이지들이 연결되어 있는데요. 각 페이지에는 제가 직접 미술관에서 눈으로 보고 찍어온 사진들과, 혹은 그림 설명을 하기 위해서 웹에서 자료를 빌려온 이미지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대개는 눈으로 봤지만 미술관 정책상 사진 촬영이 불가했던 작품들입니다.).
그런데요, 아마도 제가 찍은 사진들 - 예컨대 케이프 카드의 아침, 오후, 저녁 등 - 을 보시면 그림이 밝고 화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실 겁니다. 실제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봤을때, 그의 그림의 색조가 어둡다거나 암울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듭니다. 실내가 아닌 실외, 풍경 그림을 보면 오히려 눈이 부실정도로 색조가 환합니다. '빛'을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 화가도 많지 않을겁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햇살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해 냅니다. 그래서 빛 자체는 화사하고 눈부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휑하고 쓸쓸하다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막막하다
전체적으로 '을씨년 스럽다'고 할만하지요.
사실 정말 쓸쓸한 것은...비가 죽죽 오는 암울한 날의 풍경보다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날 세상에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듯한 막막함, 이런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실연을 당해서 죽고싶거나 살기가 싫을때, 그럴때 비오는 날보다 오히려 햇살 투명하게 맑고 화창한날이 더 견디기 괴로운겁니다. 햇살아래 혼자 우두커니 서있을때 그때 사실은 더 쓸쓸하죠. 더 고립감을 느끼죠. 세상은 유쾌해보이는데 나혼자만 암담한거죠.
미술책이나 웹에 떠도는 호퍼의 많은 그림들이 대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암울해보이는 색감을 띄고 있는데요...사실 직접 가서 보면 호퍼의 색감이 암울하지는 않습니다. 눈이 부시게 환해요. 그런데 그 눈부신 빛속에 쓸쓸한 바람이 불어요, 기이하게.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간단한 아저씨가 아닌거죠 :)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습니다. 책이 전하는 이미지는 '허상의 허상'이죠. 미술작품이 허상이라면 그 작품을 담아놓은 책은 허상을 담아놓은 또다른 허상이지요. 제 페이지 역시, 허상을 다시 담아온 허상에 불과합니다. 직접 보는 것이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지요. 책도 마찬가지이지요. '원전'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가장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곳까지 가보는 것이지요. 남이 전하는 말 대신에 내가 확인하는 방법이지요.
제가 미술 이야기를 하는것은 사실은, 내가 본것을 남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보다는, 내가 본것을 내가 기억하기 위한 장치이지요. 이런 '대화'를 통해서 더 의미있는 기억을 하게도 되고,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호퍼는 화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을씨년스러웠지요... 느림보님이 아주 정확히 꿰뚫어보신겁니다. 제가 호퍼에 대해서 여러페이지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저도 생각해내지 못했거든요. :)
팬서비스 차원에서 (자랑질 혹은 염장질 차원에서 ^^)
자, 저 그림속의 사나이...웹에 무수하게 걸리는 조그만 이미지로는 저 '남자'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실겁니다. 저 사람 그냥 햇살속에 앉아있는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요 제가 가서 들여다보기 전에는 저도 잘 몰랐던것이 있습니다.
이남자 입에 씨가를 물고 있어요~ 그냥 멀리서보면 '씨가'는 안보이죠. 생략되어버리죠. 가서 들여다봐야 보이지요. 저 남자의 뺨에 굵게 새겨진 주름이라던가, 관자놀이. 그리고 그의 귓바퀴에까지 정확히 꽂힌 햇살.... 우리들이 미술책을 통해서 보는 이미지들은 많은 부분 생략되고, 변색되고, 뒤틀리고, 그런거죠 (물론 제 페이지의 이미지들도 그런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미술관에 가서 두눈으로 본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것도, 최소한 이 남자의 얼굴 만큼의 '정직성'이라도 갖추기 위해서이지요. 웹에 떠있는 자료 대충 긁어다가 아는척 이야기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고. 정말 내 눈으로 만진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그래서, 시간만 나면 '사냥'을 나가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지는거죠. 헤헤.
encounters 2010/02/22 04:00
물리적, 감정적 '온도'의 대비이기도 한 것 같네요. 아저씨 포즈로 봐서 쌀쌀한 날인데, 햇빛은 따스하게 비치고. 그런데도 빈 가게? 주변에 사람도 아무도 없어서 담배 한 대의 온기가 그립고.
음, 제가 10년가까이 위키 시스템을 사용해오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지향하는 성격이라서...그리고 사실 dialogic process 라는 바흐친적 신비주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서, 어떤 사람의 코멘트에 많은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제 생각의 실타래를 풀게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릴수가 없고, 그냥 댓글로 남겨두기에는 의미심장하게 여겨질 경우, 본문으로 텍스트를 옮기는 편이지요.
'물리적, 감정적 온도의 차이'라고 정리한 encounters 님의 커멘트도 역시 제가 '한수 배워야 할' 시각으로 보입니다. 차이.
이 코멘트를 읽고, 제가 어떤 상상을 했냐면요... '어쩌면, 저 사나이 주변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 사나이는 혼자 앉아있는것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눈에 보였을것이다. 저 사나이는 (아니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남녀는, 결국) 호퍼의 자기 투사에 불과할것이다. 호퍼는 어디에 가서 무얼하건 저 사나이처럼 저렇게 혼자 있는듯한 느낌을 견지했을것이다. 그리고, 호퍼의 그림을 이런 식으로 읽는 나 자신은 나를 호퍼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에게 '호퍼'적인 것이 존재하기에 그 거울을 통해 호퍼를 읽는 것이리라.'
저는 상상속에서, 저 그림의 주변에 이런 저런 사람들을 채워보았는데요, 그렇다 한들 저 그림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저 사나이인한은.
그런데, 제가 저 풍경과 비슷한 조지타운 거리를 일요일 아침에 나가보면요...정말 거리가 텅 비었어요. 정말 텅텅 비어있어요. 마치 텅빈 거리를 걷는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러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는데요. 아마도 한적한 도시 변두리의 거리는 여전히 일요일이면 저렇게 '텅 빔'을 연출할겁니다. 미국이란데가 참 쓸쓸하고 휑한 곳이에요. 특히나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가는 차량이나 보일뿐 대개 늦잠을 자거나 집에 처박혀 있거나... 저 사나이는 일요일에도 가게를 열어놓은 작은 그로서리 점포 주인이거나, 뭐 그럴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타날때까지 여유롭게 해바라기나 하면서 씨가나 물고 그냥 한가롭게...
(이 사람을 쓸쓸하게 보는것은 우리 자신이죠. 저 사나이는 사실 쓸쓸하지도 않을걸요 헤헤.) 쓸쓸한것은 우리 자신이죠...
Red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