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8일 일요일

[Film] Be Kind Rewind (2008)

 

http://www.imdb.com/title/tt0799934/  (2008)

 

 

오랫만에 잘 만들어진 코메디 영화를 봤다는, 흡족한 느낌이 드는 작픔입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작품을 보게 된것은 이것이 네번째 인것 같습니다. (1) Enternal Sunshin of the Spotless Mind (2) The Science of Sleep (3) Tokyo - 레오 까락스, 봉준호와 함께 제작한 단편 삼부작중 한편, 그리고 (4) Be Kind Rewind.

 

그의 전작 '수면의 과학'에서 선보였던 '종이공작' 작업들이 이 영화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는데, 저 역시 사람의 손으로 찢고 오리고 색칠하고 만드는 작업을 '디지털'보다 상위에 두는 취향이라서 내내 미소를 띄고 장면들을 살필수 있었고,  줄줄이 이어지는 '추억의 영화들' 장면을 보면서 웃을수 있었고, 대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런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계기로 새롭게 발견한 배우는 Jack Black.  여태까지 이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꽤 여러편 봤지만, 한번도 이 사람을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저 사람이 나오면 나오는구나 했지 한번도 이 사람을 눈여겨 보지도 않았었지요.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문득, 아, 저 배우 정말 연기 잘한다. 연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돌이켜서 회상해보니, 이 사람이 출연했던 영화들 속에서 이 사람이 꽤나 생생하게 움직였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아무래도 내가 이 배우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여태까지 연기했던 역할들에 대해서 제가 어떤 거부감 같은것들을 갖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School of Rock 에서, 그 등장인물 자체가 내 맘에 안들었었고, 킹 콩에서 나쁜놈이었고...뭐 그런식이지요.  그런데, 이 영화를 계기로 잭 블랙을 '연기력 있는 좋은 배우'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감독과 배역을 잘 만나야 인정을 받아요...하..하..)

 

이 영화는, 말하자면 미국판 시네마 파라다이스.

포복절도 패러디 시네마 파라다이스.

 

The Great Gatsby http://americanart.textcube.com/417  에서 이십대 젊은 여인으로 분했던 미아 페로가 이 영화에서는 노년의 연기를 펼쳤는데, 제 눈에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개츠비에서 '데이지'로 연기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Driving Miss Daisy 라는 영화의 패러디에서 미스 데이지로 잠깐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영화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꽤 웃었어요. 감동도 주고요.  좋은 감독과 역량있는 배우들과 그리고 스토리가 만들어낸 좋은 영화라고 할 말 합니다.

 

 

 

 

[Film] The Great Gatsby


 


 

 

http://www.imdb.com/title/tt0071577/

 

 

1974년에 제작되었던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 – 1940) 의 소설 The Great Gatsby (1925)의 영화를 온가족이 둘러앉아 DVD로 보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직접 보기는 처음입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적은 많았지만 영화를 본 적은 없습니다.

 

영화를 보게된 사연도 어정쩡합니다. 대학때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한국의 영문과에서 배우는 과정은 (1) 영어 (2) 영국문학 (3) 미국문학 대략 이러합니다. 영미문학을 모두 대충 더듬고 지나가게 됩니다. 제가 미국의 하이스쿨에서 근무하면서 알게된 사실 - 내가 대학 영문과 학생때 읽었던 작품들은 미국 고등학생들의 필독서였던 것이구나... (^^) 고등학생때 읽거나 대학 교양학부에서 읽거나.  (아무튼 우리가 기초 교양을 그런식으로 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학생인 우리집 큰도령이 문학 수업중에 이 The Great Gatsby를 읽고 토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집에는 내가 대학생때 갖고 있던 책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다 있는데, 녀석이 20년도 더 된 그 나의 대학시절에 읽던 책을 찾아가지고 학교에 다닙니다.  그 책에는 내가 한번 정독했던 날짜, 또다시 읽었던 날짜, 그리고 여백에 내 생각들을 정리해놓은 메모가 빼곡하다고 하는데,  녀석 왈,  다른 친구들이 새책 갖고 다닐때, 자기는 20년도 더 된 옛날 책, 그것도 메모로 가득한 책을 갖고 다니니까 '간지'가 난대요.  문제는, 내가 전체적인 윤곽만 기억할뿐, 이제 세세한 내용들을 다 잊어버리고 만 겁니다. 

 

그래서 문제의 이 영화를 빌려다 온가족이 보게 된 것이지요.

 

옛날에, 내가 스무살이었을때, (그 책을 읽으며 혼자 이생각 저생각을 적던 그 시절 나는 스무살이었던 겁니다) 나는 미래에 내 몸에서 나온 다른 생명체가 그 책을 또 읽게 되리라는 상상이라도 했었을까?  나의 상상속에 내 아이가 존재했었을까?  어쩌면 훗날 저 책을 또 다른 미래의 아이가 읽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삶의 신비감을 생각하는 동안, 우리집 아이는, 저 노털 엄마에게도 스무살 시절이 있었다니! 하면서 신기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녀석은 엄마의 책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을 썩 유쾌하게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스무살의 엄마와 대화라도 하는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요. (이건 마치 개츠비를 매개로 한  '동감' 영화 같군...)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아 정말 화딱지가 나서 혼 났습니다.  내가 소설을 읽고 분석하면서 상상했던, 그 상황이 영화속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니, 소설을 읽으며 내가 많은 세세한 것들의 뉘앙스를 놓쳤었다는 느낌도 들고 (스무살 어린 나이에 독해력도 대단치 않았을 것이고), 뭐 그래서 피상적으로 분석을 하던 것들을 생생하게 보면서,  "아 저 못된년!  아 저 못된놈!  아이구 불쌍한 개츠비" 뭐 이런 푸념이 이어지는 겁니다.

 

 

 

이 소설은 1925년에 발표된 것인데요, 그 시기가 어떤 시기냐하면 1차대전이 끝나고 30년대 대 공황이 오기 전, 그러니까 반짝!하고 미국 경기가 불 일어나듯이 일어나면서 재벌들이 돈을 흥청망청 써대고, 건물들을 짓고, 유럽의 명화들을 사모으고, 졸부 근성을 제대로 여실하게 보여주던 바로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학생때는 소설의 전개에 집중해서 개츠비를 읽었지만, 지금은 미국사속에서 1920년대가 갖는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망가져나가던 '순수'들에 집중하게 되고, 그리고 1920년대 사실주의 그림속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려진것인지 파악을 하게 됩니다.

 

 

 

코메디안 앤디 카우프만의 일대기를 영화화 했던 Man on the Moon (1999) 에서 앤디 카우프만으로 분했던 짐 캐리가 영화속에서 보여준 에피소드 중에는 카우프만이 무대위에서 The Great Gatsby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는 것으로 자신의 쇼를 채우던 장면이 나옵니다. 스무살이 아니라 마흔은 한참 넘긴 나이가 되어 이제 이 작품을 다시 실피니,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사의 어떤 한 시절을 정확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어찌보면 개츠비의 죽음과 함께 미국의 순수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할 만도 합니다. 지금 이 소설을 한줄로 정리한다면 "개츠비와 함께 순수는 죽었다"

 

 

1974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손색이 없습니다.  음악도, 화면처리도, 그리고 원작에 충실한 대사 처리도.  (아아 등장했던 주요인물들이 지금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지요.)

 

 

 

 

엄마

어제는 온가족이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페로우가 주연했던 1970년대 영화 The Great Gatsby 를 디비디로 보고 있었는데 한국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서 보름 명절이라고.  남미에 지진이 일어났다는데 미국의 자식들은 잘 있는지 모르겠다고.  (엄마는, 남미가 뭐 우리 옆집 쯤 된다고 상상하시는걸까?)

 

엄마는 이웃에 사는 내동생 (막내아들)네 식구들하고 영화도 보고, 하루를 즐겁게 보내셨다고 하시길래 "엄마 무슨 영화 봤어?" 하고 내가 습관대로 '타이틀'부터 확인을 하러들자 "몰라, 무슨 영화 봤는지 제목은 잘 몰라" 하신다.  어르신들은 대개 이런식이다. 영화봤다고해서 제목 물어보면 모르신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의 설명을 대충 옮기면

"근데 어떤 여자가 사람을 죽였어...

그런데 애들이 그러는데 그 여자가 글쎄 사람을 갈어 죽였대.

      (이대목에서 나, Fargo 나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에 나온, 사람 갈아버리는 장면 연상)

그 여자가 감옥에 가서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그만 사형을 당하는구나 글쎄. 딱하기도 해라. 그래서 나도 울고, 사람들도 울고, 너무 딱해서 엄청 울었어."

 

       (이대목에서 나, 엄마 엄마 사람을 갈아죽였으면 저도 죽을 생각 해야 하는거지 뭐. 죽을 짓을 했구만...깔깔깔)

 

그런데 엄마는 아무튼 무척 울었댄다. 뭔지 모르지만 최루성 한국영화를 보셨나보다.  내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최루성 한국영화 보러갔나보다. 내동생은 정말 효자다. 엄마를 극진히 모시고 다닌다.

 

엄마는 이제 일흔 다섯이신데, 육순에 중풍을 맞아 재활했고, 그 후에 두가지 암 수술을 극복하신 분인데, 나는 우리 엄마가 두가지 암을 겪는 시기에 미국에서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었다.  엄마가 이번 전화에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너는 언제 올 수 없는거냐?  어제는 내가 인선이하고 시골 소학교 동창회에 다녀왔는데, 내가 니 자랑을 많이 했지. 내 막내 딸이 미국에서 교수한다고.  그래가지구 사람들이 니 칭찬을 많이 하더라. 근데 니 생각이 나니까 막 눈물이 쏟아지는거야... 니가 보구싶구나... 너 언제 올 수 없니?"

 

 

엄마가 생전 '니가 보고싶다'거나 '언제 올거냐 말거냐' 묻는 분이 아닌데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엄마는 왜정때 소학교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이므로 동창회라고 해야 그 소학교 동창회가 전부이다. 그런데 고향 마을 소학교 동창회이므로 그곳에 가면 어릴적 함께 자란 고향의 친구들이며 (씨족 부락에서 친구는 대개 피를 나눈 친척이기도 하다) 일가친척의 안부를 모두 접할수 있다.  그러므로 두루두루 식구들 안부를 주고받고 자랑도 하고 그러다가 웃고 헤어지는 식인데, 아마 친척 어르신들이 멀리 떨어진 사람의 안부를 좀더 묻고 했으리라. 엄마가 내 얘기를 하다가 울었다니까,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올 여름에 한국에 잠깐이라도 다녀오는 일을 계획해봐야겠다.  학기 조정을 잘 하고, 여름에 서울에서 특강하는 일도 구체적으로 계획을하고...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바람과 지진

지난 이틀간 버지니아 워싱턴 메릴랜드 일대에 폭풍처럼 온종일 바람이 일었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413  오죽하면 신경쇠약증 환자처럼 이방 저방으로 옮겨다니며 잠을 청해보기도 하고, 바람소리가 수상쩍어서 멀미가 났었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는 남미 칠레에 무시무시한 지진이 일어나서 현재 많은 사상자가 나고 있다고 하고, 쓰나미가 태평양 연안에 몰아칠 기세라고도 한다.  지난 아이티 지진의 천배에 가까운 지진이라면 어떤걸까? 

 

어쩌면 나는 짐승의 감각처럼, 혹은 새끼를 거느린 암컷 동물의 감각과도 같은 더듬이가 있어서 저 땅속의 울렁임 때문에 멀미를 일으켰던 것은 아닌지. 나의 불안은 지구의 신음소리에 닿아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10여전 전에도 혼자 앉아서 "아파트가 흔들려서 잠을 잘수가 없어"하고 탄식을 했었는데, 아침 뉴스에서 서울 경기 일대에 미진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곳을 때리던 바람은 태평양으로 옮겨갔을것이다.  지구가 앓고있나보다.  모두들 무사하시길 빈다.

 

 

The Shack

 

 

동일한 날짜에 집으로 그리고 학교로 날아온 동일한 책 한권.

 

이 책을 어제 졸업한 내 학생이 내게 선물이라고 주고 간 것이다. 그 학생은 사실은 나를 무척 '무서워'하는 학생이었다.  언젠가 내게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정중하게 초대를 했는데, 학생하고 교수가 학교에서 만나서 할 얘기 하면 되지 바깥에서 뭐하러 밥값을 축내는가.  학생은 돈이 없으므로 교수 밥사주기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교수가 학생 밥을 사줘야 한다면 그 모든 학생을 내가 무슨 수로 밥을 사주는가. 내가 돈도 많이 못버는데,  그러므로 나하고 식당에 가서 밥먹을 생각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내가 성질도 되게 이상해서 선물 갖다 주면 오히려 이상한 시선으로 거절을 해버린다는 것을 아는지라 고민을 좀 했을것이다.  그냥 떠나기는 서운했을테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 책 한권이었을것이다.  이거는 꼭 받으시라고. 그래서 내가 고맙게 받았다. 받으면서 내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졸업하는 마당에 지도교수한테 선물을 하는건가?" 물으니 뭐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간 책인데, 너무너무 감동적인 이야기이고, 그리고 내가 읽으면 흡족해 할 만한 내용이라고.

 

그래서 읽어봐야지 했는데

 

집에도 똑같은 책이 아마존에서 배달되어 있었다. 그건 또 누가보낸건가하면 윌리엄 앤 메리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이 보내준거다.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은 버지니아에 있는 주립대학중의 하나인데, 그 대학은 특이하다.  대학의 순위가 최고 수준이라고 할수는 없는데 입학생 뽑는 기준이 좀 특별해가지고, 아이비리그에서 어드미션 받는 애들도 이 학교 입학에 실패를 하기도 하고,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 무난히 들어가기도 하고 그런다.  좀 특별한 학교다.  그리고 그 여학생도 내게는 좀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딸이나 그런 며느리나 그런 친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현재는 딸도 며느리도 친구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이다. 그 친구가 보내준 책이 집에 있다.

 

집에, 학교에, 똑같은 책이 있다.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서문만 읽어봤다.)

 

동영상 강의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관계로 내가 스트레스를 콱 받아가지고 현재로서는 소설책 잡을 마음의 여유가 없고, 한 보름쯤 후에 모든것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 여유를 갖고 읽어보고싶다.

 

아주 사려깊은 여학생이 보낸 책이니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있을거라 기대한다.

Thank you.

 

 

*****   ******

 

지난 수요일에 나는 이 글을 작성 했을 것이다.  나는 동영상 강의를 준비중이었고, 소설책을 집어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http://americanart.textcube.com/414  씨름 페이지에 서술한바와 같이,  동영상 프로젝트에서 내가 부당한 처우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되었고, 그 정보는 내게 선택의 자유를 선사했다.  한마디로 "이따위 일에서 난 빠질테니까 맘대로 하셔!" 로 결론짓고, (이것은, 동영상 안 만들거다 이 종간나 새끼들아 라고 선언했다는 뜻이다.  헤헤헤 )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한 일이 뭔가하면

 

골치도 아프고 바람도 불어대니 방구석에 처박혀서 따끈따끈한 전기담요 속에서 '소설책이나' 읽는거였다.

 

소설책을 읽으면서 뚱뚱한 흑인 아줌마로 등장하는 신의 이미지나, 털털한 목수 총각 예수님 캐랙터에 동화가 되어가지고 흥미진진하면서도 나의 인간적 나약함과 오류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우연한 사건이긴 하다. 

동시에 각기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달된 한권의 소설책

그리고, 그 소설책을 읽을 여유가 없을때 벌어진 작은 해프닝

그리고 일 다 집어치고 소설책을 읽으며 쉴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

소설책을 읽는동안, 내가 침대속에서 이야기를 읽으며 웃고 울던 시간에

  나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이리저리 일 처리를 해 놓은 사람들

소설책 읽기를 마쳤을때,

내 어깨를 짓누르던 프로젝트는 사라져있었고

나는 편안한 가운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되도록 정리가 되었다.

 

이 책은 내가 과제들을 해치울 보름의 시간을 기다리는 대신에, 우선 책부터 읽어달라고 내 과제들을 모두 제거해준 격이다.  책도 잘 읽었고, 내 문제도 정리가 되었고. (Thank you Papa!)

 

커피나 한잔 마시고, 소설책 읽느라 밀린 집안 일이나...

 

윌리엄 앤 메리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책 잘 읽었다. 고맙다."  (아, 그런데, 나도 이 책을 누군가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어진다. 우리 가족들도 읽게 하겠다.)

 

 

 

2010년 2월 27일 토.

 

 

 

아아 번역서가 벌써 있었던 것이니~ 

(세상이 다 아는데 나만 몰랐었나보다 ㅋㅋ)

 

2010년 2월 26일 금요일

바람 불어도 꽃은 피고

 

 

 

 

우리집 이층 지붕을 훌쩍 넘을 정도로 키가 크고 무성한 목백일홍 나무는 가지가 조밀하고 잎이 무성하기때문에 새들의 은신처가 되기에 좋습니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동안에는 이 나무에 새집이 매달린것도 몰랐습니다. 겨울이 되어 잎을 다 떨구자 이 나무에 새집 세채가 지어진것을 알았습니다.

 

간밤에는 미칠듯이 바람이 불어서, 창을 덜컹거리게 만들고, 소나기 소리처럼 시끄러운 그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이 방 저 방 옮겨다녀보았지만 꿈도 서럽고, 깨어 있기도 서러운 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여전히 바람은 잠들지 않을 기세인데, 마당에 나가보니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이리저리 쓸리고, 자동차에도 나뭇가지가 떨어져 쌓여있고 그랬습니다. 아마 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면 자동차 지붕이 찌그러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잠을 못자 부스스한 제 눈에 저 새둥지가 보였습니다.  어쩌면, 밤새 그렇게 모질게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부러지고 쓰러졌는데도, 목백일홍 나무에 앉아있는 새집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새집은 탄탄하게 자리를 틀고 변함없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새들은

바람이 불때 어디가 안전한지,

배우지 않아도 아는가봅니다.

새들은

집을 어떻게 지어야 튼튼한지

배우지 않아도 아는가봅니다.

 

나도 이 세상 어딘가에, 누군가의 가슴에

바람이 불어도 변함없이 거기 있어줄

둥지 하나를 틀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혹은,  내가

바람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튼튼한 둥지가 되어

늘 그자리를 지킬수 있기를.

 

바람때문이 아니라, 피로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려서, 타이레놀이나 왕창 먹고.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Build Me Up Buttercup...don't break my heart....~~

 

 

 

무서운꿈: 그곳에 들어가면 끔찍한 일이 기다릴거라고 생각되는 암울한곳에 나 혼자서 저벅저벅 들어가서 어둠속을 정면 응시하면서, 공포때문에 잠에서 깨어날때.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지만 어둠속에서 혼자서 암담.

 

괴로운꿈: 한없이 쌓여있는 일거리들을 해나가는데 옆에 보면 여전히 일이 줄어들지 않고 쌓여있고...아무리 아무리 일을 해도 끝이 안니고.  꿈에서 깨어나면 몹시 피곤.

 

슬픈꿈: 끝없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찾아헤메도 아무데서도 내가 찾는 사람을 발견할수 없을때.

 

오늘 새벽의 꿈은 괴로운꿈과 슬픈꿈을 합쳐놓은 것이었기때문에, 잠에서 깨자마자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푸념이 나왔다. 가슴에 바윗덩어리가 올라앉은것처럼 무거운데, 창밖에서는 새가 지저귀더라. 3월이 오니까 짝짓기의 계절이 다가오는지, 청아한 새소리.  나는 이른봄의 새소리가 싫더라.  어쩐지 슬프더라.

 

아무튼 그래서 새벽부터 '아 이놈의 세상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하다가, 기분전환을 위해서 예쁜 구두나 하나 질러버릴까보다 --> 이런 엉뚱한 결론.  술도 싫고, 담배도 싫고, 구두도 다 싫고, 운전을 해가지고 멀리 멀리 멀리 멀리 가고 싶다.

 

난 그래..아 제발, 꿈속에서라도 좀...행복하면 안될까?  꿈은 공짜인데, 왜 꿈마저 나를 괴롭히냐구. .. (아이구 힘든 이세상.)  꿈속에서라도, 가짜 행복이라도, 좀 좀 행복하면 안되는거냐구.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Edward Hopper: Sunday

Sunday  1926. Oil on canvas
29 x 34 in.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2010년 2월 20일 촬영

 

제가, 어제 머리 식히러 훌쩍 필립스 콜렉션에 분명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제 카메라를 우리집 작은도령이 멋대로 조작을 해 놓아가지고, 사진들을 모두 망쳤거든요. 제가 밤에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빨리 다시 가서 사진찍을 마음에 잠이 안왔어요. 왜 잠을 못자고 설쳤냐하면, 오키프 특별전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이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이거 아무때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무슨 말씀인가하면, 각 미술관들의 소장품들이 방대할경우 명작들이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수도 있고, 내가 아무리 그 미술관의 소장품을 보고 싶어도 전시가 안되면 볼수가 없는거죠.  필립스 콜렉션이 이 작품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것을 언제 전시장에 내 놓을지, 언제 그림을 바꿔 달을지 저로서는 알수가 없는겁니다.  이 작품이 지난 가을에는 분명 여기 없었어요.  이번에 가보니 사실주의 화가들 작품이 세개의 방에 제법 충실하게 전시가 되어있었더라구요. 그러니깐, 혹시라도 밤사이에 그림이 교체가 되면 안되니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잠이 안오는거죠...

 

 

이 방에는 왼쪽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두점이 나란히 걸려있고요

맞은편에 보이는 대형 초상화는 The Eight 의 Geroge Luks 의 작품

안보이지만 오른쪽 벽에는 벽난로 위에 Rockwell Kent 의 설원 풍경이 걸려있어요

창문이 있는 이쪽 구석에는 Robert Henri 의 인물화가 있고요.

저기 건너방에 다닥다닥 붙은 작품들이 Jacob Lawrence 의 남부흑인 이주 시리즈 30장.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실내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서 실컷...보는거죠..실컷...

 

 

 

 

 

 

예, 저는 그래요. 뭘 보고 싶으면 당장 가서 봐야, 안심이 되지요. 저는 훗날 같은거 안믿어요. 나중에 뭐 할거라는 것 별로 안믿어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을때 해야 하죠. 내가 내일 이 세상에 살아있을지 없을지 장담이 안되는데 뭘 미루고 할것이 없지요. 보고싶은건 당장 가서 봐야하는거죠.

 

아...그래가지고...달려가서 눈이 빠지게 보고 또 보고 했다는거죠. 작품들을...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에 둘러싸인 시간이. 내가 꼭 보고싶어서 환장했던 그림들속에서 서성이던 순간들이.)

 

아, 내가 오늘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들을 봤는지...풀어놓고 자랑질을 하는 것으로 염장질을 해야만 하는 것인데.하하하. 빨래도 해야하고 청소도해야하고, 아이구야. 염장질 할 시간이 없네~

 

나는 봤지롱~  에드워드 호퍼의 썬데이를~

 

썬데이에 나오는 저 남자, 내가 한참을 앉아서 들여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20세기에 뉴욕 변두리에 나타난 쓸쓸한 소크라테스.

길에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다떨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햇볕을 쬐고 있는 대머리 소크라테스.

 

하하.

 

 

 

느림보

아니. 저 을씨년스런 그림이 이래 화사해 지다니요.

 

 

 

제 친구 느림보님의 코멘트가 인상적입니다.  '을씨년' 스러운 그림이 '화사'하다는 '역설적'인 평을 하셨는데요.  이 한마디에 어쩌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의 전체적인 개성이 들어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Realism/EdwardHopper

 

위의 링크에 제가 에드워드 호퍼 이야기를 적어놓은 페이지들이 연결되어 있는데요. 각 페이지에는 제가 직접 미술관에서 눈으로 보고 찍어온 사진들과,  혹은 그림 설명을 하기 위해서 웹에서 자료를 빌려온 이미지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대개는 눈으로 봤지만 미술관 정책상 사진 촬영이 불가했던 작품들입니다.).

 

그런데요, 아마도 제가 찍은 사진들 - 예컨대 케이프 카드의 아침, 오후, 저녁 등 - 을 보시면 그림이 밝고 화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실 겁니다.  실제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봤을때, 그의 그림의 색조가 어둡다거나 암울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듭니다. 실내가 아닌 실외, 풍경 그림을 보면 오히려 눈이 부실정도로 색조가 환합니다.  '빛'을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 화가도 많지 않을겁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햇살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해 냅니다.  그래서 빛 자체는 화사하고 눈부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휑하고 쓸쓸하다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막막하다

전체적으로 '을씨년 스럽다'고 할만하지요.

 

사실 정말 쓸쓸한 것은...비가 죽죽 오는 암울한 날의 풍경보다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날 세상에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듯한 막막함, 이런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실연을 당해서 죽고싶거나 살기가 싫을때, 그럴때 비오는 날보다 오히려 햇살 투명하게 맑고 화창한날이 더 견디기 괴로운겁니다. 햇살아래 혼자 우두커니 서있을때 그때 사실은 더 쓸쓸하죠. 더 고립감을 느끼죠. 세상은 유쾌해보이는데 나혼자만 암담한거죠.

 

 

미술책이나 웹에 떠도는 호퍼의 많은 그림들이 대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암울해보이는 색감을 띄고 있는데요...사실 직접 가서 보면 호퍼의 색감이 암울하지는 않습니다. 눈이 부시게 환해요. 그런데 그 눈부신 빛속에 쓸쓸한 바람이 불어요, 기이하게.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간단한 아저씨가 아닌거죠 :)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습니다. 책이 전하는 이미지는 '허상의 허상'이죠. 미술작품이 허상이라면 그 작품을 담아놓은 책은 허상을 담아놓은 또다른 허상이지요. 제 페이지 역시, 허상을 다시 담아온 허상에 불과합니다. 직접 보는 것이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지요. 책도 마찬가지이지요. '원전'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가장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곳까지 가보는 것이지요. 남이 전하는 말 대신에 내가 확인하는 방법이지요.

 

제가 미술 이야기를 하는것은 사실은, 내가 본것을 남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보다는, 내가 본것을 내가 기억하기 위한 장치이지요.  이런 '대화'를 통해서 더 의미있는 기억을 하게도 되고,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호퍼는 화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을씨년스러웠지요... 느림보님이 아주 정확히 꿰뚫어보신겁니다.  제가 호퍼에 대해서 여러페이지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저도 생각해내지 못했거든요. :)

 

 

팬서비스 차원에서 (자랑질 혹은 염장질 차원에서 ^^)

 

자, 저 그림속의 사나이...웹에 무수하게 걸리는 조그만 이미지로는 저 '남자'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실겁니다.  저 사람 그냥 햇살속에 앉아있는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요 제가 가서 들여다보기 전에는 저도 잘 몰랐던것이 있습니다.

 

 

 

이남자 입에 씨가를 물고 있어요~  그냥 멀리서보면 '씨가'는 안보이죠. 생략되어버리죠.  가서 들여다봐야 보이지요. 저 남자의 뺨에 굵게 새겨진 주름이라던가, 관자놀이. 그리고 그의 귓바퀴에까지 정확히 꽂힌 햇살....  우리들이 미술책을 통해서 보는 이미지들은 많은 부분 생략되고, 변색되고, 뒤틀리고, 그런거죠 (물론 제 페이지의 이미지들도 그런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미술관에 가서 두눈으로 본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것도, 최소한 이 남자의 얼굴 만큼의 '정직성'이라도 갖추기 위해서이지요.  웹에 떠있는 자료 대충 긁어다가 아는척 이야기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고. 정말 내 눈으로 만진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그래서, 시간만 나면 '사냥'을 나가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지는거죠. 헤헤.

 

 

encounters 2010/02/22 04:00

물리적, 감정적 '온도'의 대비이기도 한 것 같네요. 아저씨 포즈로 봐서 쌀쌀한 날인데, 햇빛은 따스하게 비치고. 그런데도 빈 가게? 주변에 사람도 아무도 없어서 담배 한 대의 온기가 그립고.

 

음, 제가 10년가까이 위키 시스템을 사용해오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지향하는 성격이라서...그리고 사실 dialogic process 라는 바흐친적 신비주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서, 어떤 사람의 코멘트에 많은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제 생각의 실타래를 풀게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릴수가 없고, 그냥 댓글로 남겨두기에는 의미심장하게 여겨질 경우, 본문으로 텍스트를 옮기는 편이지요.

 

'물리적, 감정적 온도의 차이'라고 정리한 encounters 님의 커멘트도 역시 제가 '한수 배워야 할' 시각으로 보입니다.  차이.

 

이 코멘트를 읽고, 제가 어떤 상상을 했냐면요... '어쩌면, 저 사나이 주변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 사나이는 혼자 앉아있는것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눈에 보였을것이다. 저 사나이는 (아니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남녀는, 결국) 호퍼의 자기 투사에 불과할것이다.  호퍼는 어디에 가서 무얼하건 저 사나이처럼 저렇게 혼자 있는듯한 느낌을 견지했을것이다.  그리고, 호퍼의 그림을 이런 식으로 읽는 나 자신은 나를 호퍼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에게 '호퍼'적인 것이 존재하기에 그 거울을 통해 호퍼를 읽는 것이리라.'

 

저는 상상속에서, 저 그림의 주변에 이런 저런 사람들을 채워보았는데요, 그렇다 한들 저 그림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저 사나이인한은.

 

그런데, 제가 저 풍경과 비슷한 조지타운 거리를 일요일 아침에 나가보면요...정말 거리가 텅 비었어요.  정말 텅텅 비어있어요. 마치 텅빈 거리를 걷는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러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는데요. 아마도 한적한 도시 변두리의 거리는 여전히 일요일이면 저렇게 '텅 빔'을 연출할겁니다.  미국이란데가 참 쓸쓸하고 휑한 곳이에요. 특히나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가는 차량이나 보일뿐 대개 늦잠을 자거나 집에 처박혀 있거나... 저 사나이는 일요일에도 가게를 열어놓은 작은 그로서리 점포 주인이거나, 뭐 그럴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타날때까지 여유롭게 해바라기나 하면서 씨가나 물고 그냥 한가롭게...

 

(이 사람을 쓸쓸하게 보는것은 우리 자신이죠. 저 사나이는 사실 쓸쓸하지도 않을걸요 헤헤.) 쓸쓸한것은 우리 자신이죠...

 

 

 

 

 

 

 

RedFox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Forget everything

"Forget past mistakes. Forget failures. Forget everything except what you're going to do now and do it."

 

과거의 실수를 잊으라

실패를 잊으라

모두 잊으라

 지금 내가 무엇을 할것인지만 기억하고, 그리고 실행하라.

 

 ~~ William Durant

 

 

 

Gustave Courbet: Winter in the Jura (1877)

 

Winter in the Jura, 1877, oil on canvas

Gustave Courbet (1819-1877)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에서 2010년 2월 20일 촬영

 

구스타브 꾸르베의 겨울풍경 작품인데요, 제작 년도와 그의 사망년도가 일치해요. 그가 생존하던 마지막해에 그려진 작품이겠지요. 겨울철이라서 꾸르베의 겨울 풍경이 걸려있었던것 같은데, 아마도 3월이오면 다른 그림으로 바뀔것 같아요. 

 

그림이, 아주 조용하고, 크게 눈에 띄는것도 아닌데요.  그림이 사람을 잡아 당겨요... 다가가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림이지요.

 

꾸르베는, 프랑스화가이지만, 아마도 제가 어떤식으로든 한페이지 만들고 지나가게 될 것 같아요.  꾸르베는 프랑스의 '사실주의'운동의 주요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미국의 사실주의 화단에 끼친 영향이 지대해요.  아주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꾸르베없이 미국 사실주의 없다' 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결국, 제가 미국미술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지만, 하다보니까 유럽미술 공부 다시하는 꼴이에요...미술사 전체를 알지 않으면 미국미술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져요...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배경은 일단 제끼고.  오늘은 이 그림만 얘기할래요.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속의 풍경이 낯설지 않고요. 저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스르르 떠올라요.  내 할머니 같기도 하고, 내 어머니 같기도 하고, 전설속의 수많은 여인들이 저렇게 눈쌓인 길을 걸어갔겠지요.  저것이 꾸르베 생의 마지막해에 그려졌다는것도 나름 의미심장하고요... 저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정감이 있는지...  정말 아릅답죠...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지난 개강주의 피로가 결국 터져버려서, 눈가에 포진이 생겼군요 (눈가가 벌겋게 붓고 말았.. 그래서, 어제 사진 보면 눈가가 붓고 얼굴도 뭐랄까 빵처럼 부풀어가지고 딩딩하고...아주 막장으로 가는구나~  어쩔거나... ). 바로 금요일밤에도 나갔다와서 수업연구하고 새벽까지 컨벤션에 보낼 자료 두가지나 작성해서 날렸거든요. 눈을 비벼가며 머리를 짜내며 작업을 했더니만, 포진이 눈가로 와버렸어요.  열나고 쑤시고.  아마, 열이 뻗쳐서 어제도 기를 쓰고 나가서 구경을 다닌것 같아요. 열이 뻗치면 집에서 쉬어야하는데, 자꾸 나가게 되지요. 열이 뻗치니까.  이럴땐 센트룸 두알을 강력하게 먹어주고, 열 뻗치는김에 몰아서 공부하고 일하는거지요.  아, 다음주에도 총장님 면담도 있고 (공식행사 있는데 눈에 안대하고 나갈수도 없고~~  어쩔거나), 일이 쌓였는데, 난감.  뭐, 한주 지나면 봄이 오겠지...

 

 

 

 

 

 

 

Linn Meyers: at the time being 고전과 '현재'의 만남

필립스 콜렉션에서 2010년 2월 11일부터 5월 2일 (대략 3개월간) 까지 전시되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Linn Myers 라는 워싱턴 출신의 젊은 작가의 '벽화'작업 입니다.

 

 

필립스 콜렉션 2층 중앙홀에 도착하면 바로 왼편 중앙벽에 빈센트 반 고흐의 The Road Menders (도로 보수하는 사람들 1889)라는 작품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갈때마다, 이 그림속에 사람이 '몇명'이 있나 세어보죠.  세어보고, 잊고, 또 세어보고, 또 잊고....이 그림속에는 열명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속의 선도 색도 들여다보게 되지요.  (그림 속에서 사람 찾아내는것은 저의 그림 보는 취향의 문제일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찾아내려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있어야 이야기가 벌어지지요...)  아무튼, 들여다볼수록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 그림 뒷쪽 벽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세요. 고흐의 그림 뒷쪽 통로의 양쪽벽에 벽화로 보이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Linn Meyers 라는 현역 작가가 최근에 작업한 작품입니다. 혼자 사다리 하나 갖다 놓고 이 벽화 작업을 하는데 꼬박 2주가 걸렸다고 하는데요.

 

 

 

 

작가가 작업하는 광경의 사진을 필립스 콜렉션 홈페이지에서 한장 빌려왔습니다.  이렇게 혼자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http://www.phillipscollection.org/exhibitions/intersections/index.aspx

http://linnmeyers.com/index.html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이런 문양입니다.  (위에 빌려온 사진과 제 사진의 색감이 차이가 나는 것은 전시장의 조명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전시장에서 직접 본 색감은 제가 찍은 사진과 흡사 합니다.)

 

 

그래서,  반 고호 그림하고 이 벽화하고 무슨 상관이라도 있다는 건가?  (이렇게 묻고 싶으시죠?)

 

 

 

 

이 작품은 린 메여스가 반 고흐의 Starry Night 이라는 작품과 이 The Road Menders 라는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입니다. 바탕색이 되는 짙은 청색은 고흐의 '별밤'의 배경이 되는 색이고요 (지금 제 책상앞에도 고흐의 별밤 - 엽서 그림이 붙어있군요) 그 위에 미색 (연한 노란빛)과 연분홍이 섞인 잉크로 그려진  물결무늬같은 곡선이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이 벽화는 앞의 고흐의 그림과 함께 있을때 더욱더 살아 움직일수 있지요.  그리고 고흐의 그림 역시 이 벽화로 인해 더욱 생생해지고 탄력을 받게 됩니다. 

 

회오리바람

소용돌이

파장

산들바람

흥얼거리는 콧노래

별 빛

 

또 뭐가 느껴지나요?

 

"My work relies on the beauty of imperfection. I often use the word slippage to describe this."

내 작품은 불완전의 아름다움에 의거한다. 나는 종종 내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미끄러짐 (미끄러져 사라짐, 혹은 멸(滅)' 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도 한다.

 

안내 자료에 나온 작가의 말을 그래도 인용해보았습니다. Slippage 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을 하다가 제가 생각해 낸 것이 滅 인데요. 사라져 없어지는 것.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보여주는 찰나의 불완전한 아름다움.  작가는 그것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사라져 없어지는 것의 그 역동성.

 

이쯤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얼핏 티벳 승려들의 예술작업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인데, 티벳의 승려들은 여러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아주 세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다음에 그것을 그냥 물에 흘려버리거나 쓸어버리거나 그런다고 합니다. 공을 들여 작업을 한 후에 그것을 순식간에 다시 無로 환원 시켜 버린대요. 우리 삶도 결국 비슷하죠. 정말 서로 잡아먹을듯이 경쟁하며 으르렁대며 살다가, 그러다가 죽으면 그걸로 게임오버.... 참, 내, 그러려고 아득바득 사는걸 생각하면... 이게 뭐 하는짓인가 싶기도 한데요.

 

그 티벳승려의 작업과 같은 찰나의 아름다움,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과 흘려보냄의 여유, 이런것들을 이 미국작가가 담으려 했던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요 안내지에 2010년 5월 2일까지 전시가 된다길래, 그러면 전시기간이 지나면 이 벽화는 어떻게 되는건가,  작품 앞에서 망보고 서있는 안내인한테 물어봤거든요. 아마도 미술대학생인데 인턴십하러 나온듯한 영특해보이는 안내인이 "아마 그냥 페인트칠 새로 해서 덮어버릴걸요" 하더라구요.  아이구야 이렇게 정성들인 것을 세달후에는 그냥 날려버린다고? (그냥 여기 계속 있어도 좋을것 같은데...)

 

세달후에 정말 날려버리는지 가서 살펴봐야겠어요.

 

 

 

 

 

 

 

 

 

 

 

 

 

 

 

 

 

2010년 2월 20일 필립스 콜렉션에서 촬영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Phillips Collection: Gene Davis 의 색동

 

2010년 2월 20일 필립스 콜렉션에서 촬영

 

 

미국에서요. 이런식의 색동 줄무늬 작품이 미술관에서 보이면, 함께 간 여자/남자친구한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음... 진 데이비스 가 저기 있군...워싱턴 디씨 출신 화가지..." 하면 됩니다. 헤헤헤.  Gene Davis 의 색동무늬는 특히 한국인한테 강하게 어필 할것 같아요.  이건 우리의 색동문양하고 통하쟎아요.

 

우울할때는요, 미술관에를 가는겁니다. 가서, 색깔 치료제를 듬뿍 먹는겁니다. 우리가 색에 노출될때, 그 색을 흠뻑 내 몸에 받아들일때, 그때 어떤 치유가 일어난다고 저는 상상하는 편입니다. Color Field Paintings 를 볼때 저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진 데이비스의 알록달록함, 그리고 약속을 어기지 않는 연인처럼 일관성있게 죽죽 뻗은 선, 절대 변치 않을듯한 저 일관성, 그런것이 저를 안심시키기도 하고요.  잭슨 폴락의 카오스가 매력적이듯, 진 데이비스의 일관된 수직선도 제게 위안을 줍니다.  약속을 어기지 않을 믿음직한 연인같은 그림입니다.

 

 

 

Phillips Collection: The Sun and the Moon 햇님 달님

2010년 2월 20일 필립스 콜렉션에서 촬영 (1층)

제가 필립스 콜렉션에 갈때마다, 꼭 사진을 찍는 작품입니다.

 

Elizabeth Murray (1940-2007), The Sun and the Moon

http://americanart.textcube.com/29

 

이 작품은 역동적이고 발랄하고, 그리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제가 2008년 봄에 처음 이곳에 왔을때는 이 작품이 2층에 걸려있었는데, 근래에는 1층에 있어요. 

 

예, 제 머릿속에서는 온갖 일이 벌어지고, 그리고 가능하면 이렇게 밝고 유쾌한 색조가 되길 바라는거죠. 저는 암울함, 우울 그런거 피하는 편입니다. 그림도, 어두운것은 피합니다. 죽으면 암흑과 정적이 기다리고 있을터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은 밝고 유쾌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촛불을 끄지마, 어두운 건 싫어~ (산울림)

 

 

 

 

 

 

 

 

 

Phillips Collection: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방

예, 여기가 바로 오늘 저의 천국이었습니다.

 

제가 The Eight 멤버들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을 인물별로 페이지를 열어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요, 복습해볼까요. 왼편의 뉴욕 고가 기차그림: 이거 누구것일까요?  미국 사실주의 그림에서 뉴욕 고가 기차가 나오면 자동으로 떠올릴만한 화가가 한명 있지요.  맞은편의 (오른쪽 첫번째) 그림도 같은 작가의 작품입니다.

 

 

 

 

왼편에 보석을 박아놓은듯 아른아른하게 그린 작품. 이 작품의 작가는 누구일까요? 

(저한테 - "너 이방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작품 하나 가져가라" 하고 이 집 주인이 제안한다면, 저는 바로 이 작품을 가져오고 싶어요. 아름답고 행복해보이니까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지요.

 

 

저 건너방에 유리상자 안에 뭔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보석같이 아른아른한 색감의 화가가 그린 작품이 모셔져 있어요.

 

 

 

이렇게 앉아서 작품을 실컷 보는거지요.

 

 

 

호퍼 맞은편 벽에는 벽난로가 있고요. 벽난로 위에 Rockwell Kent 의 설원 풍경이 걸려있습니다.  (겨울이라 겨울작품을 걸은듯해요)

 

여기 걸린 구체적인 작품들은 별도로 정리를 할것입니다. 하나 하나. 보석을 들여다보듯.

 

뭐 돈도 없고, 가진것도 별로 없고. 그럭저럭 먹고 살수 있는 직장과, 공부 한 것이 밑천의 전부인데, 그래도, 내 기억속의 명작들과 내가 가진 사진 파일들을 생각하면 별로 남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제일 부자 같아요. 헤헤. (필립스 콜렉션, 이 집도 다 내집이다. 내가 가끔 가서 둘러보는 별장이다. 뭐 이렇게 상상하면 되는거죠.)

 

 

 

 

 

Georgia O'Keeffe Abstraction Feb6-May9,2010 필립스콜렉션

필립스 콜렉션 입구입니다.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죠.

이 사진에 나도 있어요. ^^

2010년 2월 20일

 

 

2010년 2월 6일부터 5월 9일까지 세달간 워싱턴 디씨의 필립스 콜렉션에서 조지아 오키프의 추상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대형 미술관을 돌며 오키프의 작품들을 꽤 많이 보고 지나쳤었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이의 추상미술을 한눈에 휙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후원인이었다가 남편이 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자필 편지며, 스티글리츠가 '애정'을 기울여서 찍은 오키프의 각종 사진들도 흥미를 불러일으킬만 한데요 (제가 미술전공생이 아니고 문학전공생이다보니,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인물사적 에피소드에 오히려 솔깃하기도 합니다. )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특별 기획전'의 경우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지요. 그래서 전시장의 사진을 찍을수는 없었고요.  필립스가 자체소장하는 영구소장 작품들은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그것들은 찍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간단한 스케치만 전하고요, 조지아 오키프 관련 페이지를 따로 열었을때, 제가 '수집'한 작품 사진들을 풀어놓기로 하겠습니다.

 

 

필립스 콜렉션 영구 소장품, 뉴멕시코의 풍경화가 걸려있는것이 보이지요.

이 통로에서 (뒤로 돌아서면)  특별전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전시장부터는 사진을 못 찍지요.

 

 

전시장 입구에 관람객이 간단한 평을 남길수 있도록 공책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영어군요. 호호호.)

 

제가 얘기 했쟎아요.  오키프의 누드사진이 흥미로웠다고요. 저 안쪽에 보이지요...

 

 

제가...좀..이상한데서 집요해요 헤헤헤

통로 입구에서 안쪽이 보이는데요. 전시장 안에서 사진 찍는것은 금지 되어 있지만

전시장 바깥에서 뭐 사진 찍는것을 뭐라고 말할수는 없쟎아요. 

제 카메라 렌즈가 그래도 제법 쓸만한거거든요.

입구 통로에서 그냥 줌업을 해가지고 찍었죠 뭐.

왼쪽은, 오키프가 벌서듯이 팔을 올리고 있는데 겨드랑이 치모가 꽤 섹시하게 찍혔습니다.

오른쪽은 엉덩이 사진인데, 치모까지 드러나는 꽤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직접 사진을 보면 참 '예술'적으로 보입니다. 누구더라 그 '김기덕' 감독의 '섬' 마지막 장면같은.

한마디로, 오키프는 인물도 예술 인생도 예술이었다 이거죠 뭐. (부럽다  ^^).

 

 

 

 

저 리어왕같은 신사분과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에요~  헤헤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 나들이

 

나흘 내내 골치 아프게 일했으므로, 오늘은 오전에 바람을 좀 마시러 나갔다. 필립스 콜렉션에서 조지아 오키프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 그것도 볼겸. 워싱턴에 눈쌓인것 구경도 할겸. 휙~ 나갔다 왔다. 

 

작은 녀석이 카메라를 빌려다 썼는데 뭔가 손을 댄 모양이다. 작품 사진 찍은것 상태가 엉망이라, 쓸것이 없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 유명한 Sunday 가 있었는데 사진 상태가 모두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카메라를 잘 손봐서 다시 가봐야지. 아무튼 내가 사용하는 것을 남이 건드리면 뭔가 말썽이 생긴다.

 

워싱턴 매사추세츠 애비뉴, 외교거리에 들어서면 한국 대사관이 있고, 거기서 한블럭 더 가면 한국 홍보관 (벽돌건물)이 있다.

 

 

 

또 한블럭 더 가면 총영사관이 있다.  서재필 박사 동상이 있는 건물이 총영사관.

그러니까 이 거리에 한국 관공서 건물에 세동이 있다. 회색의 우중충한 대사관 건물은 그냥 통과했고, 차는 홍보관  쪽에 세웠고, 서재필박사가 서 계시는 총영사관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필립스 콜렉션이 있다.

 

 

 

 

 

 

서재필 박사 동상.

 

 

 

필립스 콜렉션 입구

 

 

오키프 특별전은, 좋았다.  작품들은 평소에 공부도 하고 구경도 많이 했던 편이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조지아 오키프의 누드사진들.  예술적으로 찍었더라.  원래 인물이 근사하니까...  사람들이 '나도 오키프같이 찍어달라'고 주문을 했다고도 하던데. 아무나 그렇게 찍을수는 없지...  대상이 오키프니까 가능했던 것이지.

 

 

 

에드워드 호퍼: Sunday

 

지난 가을에 갔었고, 올해 들어 처음 가보니 전시물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겨울동안 공부한 사실주의 작가들도 주요작품들이 나와 있던데, 사진 상태가 모두 엉망이라, 조만간 다시 가봐야겠다. (보고 싶던 작품들을 흡족하게 볼 수 있었다.)

 

 

 

 

필립스 콜렉션에는 평일에는 무료입장이고, 주말에만 입장료를 받는다. 특별전을 하면 12달러를 따로 받는다.  그러니까 특별전을 안보면 무료 입장도 된다.  오키프 특별전 입장료를 내니까 뜨거운 코코아를 무료로 준다고 하길래, 구경 마치고 카페에서 코코아 한잔을 받아 먹었다.  카페 너머로는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휙 갔다오는데 딱 세시간 걸렸다.  번개같이 다녀왔다고 할수 있다...   그래도 잠시라도 나갔다 오니까 머리가 가뿐하다. 이제 공부해야지.

 

 

 

감독과 주연배우, 그리고 리더십

 

 

어제는 큰애의 생일이었다.  저녁에 동네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서 생일기념 '외식'을 했다.  카페 Tatti는 할아버지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동네 밥집'인데, 이 꺽다리의 생일이라서 기념하러 왔다고 말해줬더니 할아버지들이 (아니 .... 백발의 신사들께서) 일하다 말고 와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할아버지들이(아니 은발의 신사들이) 노래를 불러주었으니 큰애는 은발이 될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것이라고 상상을 해본다.

 

큰애는 어쩌면 나를 닮은것일지도 모른다.  큰애와 성품과 '리더십'의 문제에 대해서 그의 고민을 들어주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애는 몇가지 써클에서 회장을 하거나 부회장을 하거나 혹은 평회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큰애는 뭐든 성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스스로가 하는 고민의 양상을 종합해보면, 그는 주도적인 리더는 아닌듯하다.  그는 주로 주어지는 일을 충실하게 잘 해내는 편이지만, 스스로 일을 벌이거나 이를 주도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사람의 스타일을 단순무식하게 두가지로 나누면

(갑) 대책없이 일 벌이고 돌아다니는 무대뽀

(을) 꼼꼼하고 충실하게 일을 잘 마무리하는 성실파

 

이럴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갑과 을이 손을 잡으면 이들은 환상의 콤비가 된다. 하나는 일 벌이고 하나는 수습하고.  조화만 잘 된다면 좋을것이다.

 

갑과갑이 만나면 실속이 없고 난파선이 될것이다.

 

을과 을이 만나면 진전이 없고 제자리걸음을 하되 난파선은 되지 않을것이다.

 

내가 볼때, '조합'의 문제다. 갑과 같은 리더도 있을수 있고, 을과 같은 리더가 있을수도 있고, 리더의 스타일에 따라서, 그리고 조직의 스타일에 따라서 일의 성패는 달라질것이다마는 갑이 혹은 을이 더 나은 리더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 주변과의 역동성이 늘 존재하므로.

 

                ***

 

 

나는 여태 살아온 인생에서 '리더'가 된 경험이 별로 없다.  나는 그 초중고등학교때 반장을 한번도 해본적도 없다.  언젠가 우연히 부반장을 해본적은 있지만, 그것도 선생님이 그냥 그렇게 정한것이었지 내가 하겠다고 나섰던것도 아니었다.  대학교때 주간교수가 '네가 해야만 한다'고 우겨서 신문사 편집장을 일년 했고, 4학년때 (4학년때는 아무도 뭘 하고 싶어하지 않으므로 이리저리 밀리다가) 과대표를 억지로 시켜서 울며겨자먹기로 해본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장'이 된 이력은 선생님이나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수없이 책임을 받은것에 불과했다. 그것의 책임을 완수하는것 외에 내가 뭐 특별한 짓을 한것도 아니었다. 나는 리더가 되는 일에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왜 나는 리더가 되는 일이 흥미가 없었을까?  내가 돌아보면, 나는 '외로운 늑대'과라서 그렇다. 나는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없고, 내가 흥미로운 일에 몰두하기를 좋아한다. 책임을 맡으면 마지못해서 성실하게 수행해내지만, 조직의 일에 헌신할 생각이 별로 없다. 난 내 인생이 즐거운 사람이므로.

 

              ***

 

 

내가 내 이력을 돌아볼때마다 입가에 자동적으로 미소가 흐르는 대목이 몇가지 있는데 소설로 상을 하나 탔다는 기억,  그리고 영문학과에서 2년에 한번 막을 올리던 영어연극에서 주연배우를 했다는 기억일것이다.  영어 연극을 한다길래 뭐라도 하고 싶어서 오디션에 갔었는데, 쟁쟁한 선배들 잘난 동기생들도 많이 왔건만 (그래서 이거 엑스트라 자리 하나 얻기도 힘들겠다고 쫄아있었는데) 내게 주연배우역할이 주어졌다.  그때 나는 내 몸이 하늘로 붕 뜨는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가만, 그게 오르가즘이었나? 갸우뚱.)  나는 대사를 열심히 외웠고,  주인공을 성실하게 분석했고, 연기지도를 성실하게 받고, 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석달후에 나는 완벽한 '정신병자 술주정뱅이 남자'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하하.  어쩌면 그때 그 정신병자 술주정꾼 남자가 내 영혼에 깃들었을지도 몰라.  환상의 토끼와 즐거운 인생을 보내는 사나이.  나는 성실한 (게다가 인물도 좋은) 주연배우였을 것이다.

 

     ***

 

막 석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곳에 내가 처음 발을 디뎠을때, 첫학기에 내 수업을 듣기 시작한 1기 학생들은 여덟명이었다. 나는 나 혼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나혼자서 그 학기 전 과정을 다 가르쳐야 했다. (학기 중간에 꽤나 명문대 출신 미국인 강사가 강의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요구를 하여, 그들의 의견이 합당하길래 그만두게 하고 내가 나머지 땜빵까지 해야 했으니까.)  이번 봄학기는 정규과정 네번째 학기. 이번 학기에 내 석사프로그램 학생수가, 30명이 넘는다.  전공 개설과목 여섯가지. (내가 다니던 주립대에서도 한학기에 전공 개설과목이 여섯가지가 된 적이 없었다.)  나는 각 분야의 전문 강사들을 영입해오느라 분주했다.  내가 스카웃해온 교수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이력도 화려하고, 선배라고 불러야 할 분들이다. 여섯과목중에서 세 사람들이 한과목씩 맡아서 수업하고, 내가 세과목을 가르친다.  (그래도 여전히 내 수업에 학생들이 몰린다. 신기한 일이다. 지겨울법도 한데. 기말의 학생들이 하는 내 강의평가는 체계가 서있다는 쪽이다. )  내 코리안 액센트 때문에 나도 신경을 쓰곤 했는데, 이제 나는 내 영어 (코리안 액센트가 섞인 영어)에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강사 두사람으로 시작한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이제 네명의 강사가 투입되었고 그중 절반은 박사급이다. 나는 이번학기부터 이 프로그램의 수업에서 빠져나왔다. (연구 할동 할 시간을 좀 벌은 셈이다).

 

 

첫학기에, 이 학교에 들어섰을때 내 석사과정과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허허 벌판에 혼자 깃발 꽂은 형상이었다. 지금 나는 세명의 학자들의 조력을 받고 있고, 그리고 네명의 영어강사들의 오야붕(?)이  되어 이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학사 석사 박사급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다.

 

 

 

내가 수학했던 플로리다 주립대의 풋볼팀의 상징은 세미놀 인디언이다. 해마다 풋볼시즌이 되면 우리들은 세미놀 인디언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며 열광했다. 우리학교의 오프닝 세리모니는 미 전역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것이다. 세미놀 인디언 추장이 점박이 말을 타고 경기장에 나타나서 알록달록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창을 힘차게 경기장에 꽂는 것이 이 세리모니의 하일라이트이다. 이땅은 내땅이다 이거지. 내가 깃발 꽂았다 이거지. 그러면 우리들은 오오 오 오 인디언 합창을 하면서 열광했다. (심지어 상대팀조차도 이 세리모니에 넋이 나가곤 했다. 아, 얼마나 근사한가!)

 

어느날 나는 워싱턴 바닥에 나타나 허허벌판에 세미놀 깃발을 하나 꽂았고 나는 내 영역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적고보니 꽤나 드라마틱 하고 뭐  그렇군. 난 내 이야기를 과장하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내가 관리하는 두가지 프로그램을 보면서, 플래닝을 하거나 학생이나 교수들의 상담을 들어주다보면 나는 가끔 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심한 피로를 느낀다. 내가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커버린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어쩌다 이런 자리에까지 온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평가하기에 나는 (갑)형의 리더는 아니다. 난 내 관심 분야에 몰입할뿐, 일을 벌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을)에 가깝다.  그런데 내가 갑이건 을이건간에 내 일에 몰두하다보면 내가 '갑'의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난 리더가 되고 싶었던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진두지휘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니 사람의 일은 알수가 없는거다.

 

      ***

 

나는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촉매'의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촉매. 화학 작용이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보조하는 물질. 아...반응과정에서 나 자신은 소모되지 않는것이 촉매의 속성이구나.  나는 닳아없어지는것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카탈리스트. 촉매.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주변이 활성화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받을만하다.  아, 내가 선생질로 뛰어든것은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들은 촉매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니까.

 

http://ko.wikipedia.org/wiki/%EC%B4%89%EB%A7%A4

촉매(觸媒) 촉매(catalyst)란 반응과정에서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을 말한다. 반응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를 변화시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촉매의 역할이다.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어서 반응속도를 높여주는 촉매를 정촉매, 활성화 에너지를 높여 반응속도를 낮추는 촉매를 부촉매라고 한다.

 

 

수업할때, 강의를 하는 날은, 나는 옷차림도 신경을 쓰고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나는 수업 하는 일이 연극무대에서 연극을 하는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강단에 설때, 나는 선생이다. 선생의 역을 하는거다. 집에 앉아있을때, 나는 한없이 게으른 아무개 갑 혹은 을이다. 그러니 무대가 아닌가. 배우는, 가수는, 혹은 무대인생은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여러가지 신경을 써야하는거지. 무대인생.  무대의상이 화려한 이유는, 그들이 그 화려한 의상을 선호해서 그런것만은 아니다. 보는 사람 눈이 즐거우라고 그러는거다. 말하자면 무대서비스다.

 

  ***

 

인생이 연극이라면, 삶의 각 장면이 무대와 같은거라면, 나는 그 연극의 감독보다는 '배우'쪽인것 같다. 나는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것이 신난다. 나머지는 감독에게 맡기는거다. 단 무대는 내것이다. 어떤이는 무대위의 배우보다는 감독이 되고 싶어한다.  종합적으로 신경쓰고 기획하고 이끌어나가는 존재. 감독.  나는 그런거 말고 그냥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게 더 재밌다.

 

내 삶은 이따금, 내게 '이제 감독도 하고 배우도 하고 원맨쇼 할 시간이 온것 같구나'하고 일러주기도 한다. 나는 리더가 될 생각이 없지만,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할 시기도 있는것이다.  잘 해내면 되는 것이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을 저 높은 하늘에서 보면, 그냥 엑스트라 갑, 을, 병에 불과하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이다. 내가 오늘 죽는다고 이 세상에 달라질것은 별로 없다. 나는 먼지이고, 공깃방울이고 엑스트라이다.  그런데 하나의 비누거품 공깃방울에도 우주 삼라만상이 반사된다.  찰나지만 나는 감독이고 주연배우이기도 한거다. 만사는 찰나에 흘러가버린다.

 

 

   ***

 

 

 

 

 

라파엘로의 School of Athens 그림의 일부. 오른쪽의 대머리 사나이.  누런 옷을 입고 서서 두 손을 내밀고 '수다'를 떨고 있는 못생긴 아저씨가 쏘크라테스님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철학자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저씨이다. 소크라테스. 거리의 백수 수다쟁이 아저씨.  사실 나의 꿈은 햇살 내리쪼이는 황톳길 어디쯤에서 이렇게 한가롭게 햇볕이나 쪼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는거다. 

 

어제, 사회언어학 수업 개강을 했는데 그때 잠시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했었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댔고,  그리고 그의 대화상대는 스스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대개는 짜증나는 결론. 처음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결론. 자기 자신의 모순을 자각하는 경험. 그걸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저 짜증나는 대머리 녀석!  사회언어학은 내가 석사과정 중에서도  최고과정 (다른 모든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마지막에 들을수 있는 과정)으로 설정한 것이고 그만큼의 고민과 사색을 요구하는 실러버스를 짜 놓았다.  고민하고, 사색하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모순을 발견하고, 자각하고, 그런 과정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다보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다. 그리고는 죽여버린거지 하하하.  등에.  나를 괴롭히는 등에를 내 학생들에게 보내는거다. 내 학생들도 나처럼 괴로워봐야 하는거지.

 

힘들었던 봄학기 오프닝 행사가 모두  끝났다. 오늘은 금요일. 파란하늘. 연극이 끝나면 조명이 꺼지고,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Chuck Close & Sol Lewitt at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8년 12월 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촬영

 

 

 

새 학기들어서, 심기일전하여, 연구 작업에 충실해보려고

전에 사용하던 노트북을 꺼내서 데이타 파일들을 정비하던중 우연히 발견한 사진.

 

2008년 12월 4일.  나는 내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었는데요.  내 친구는 빽도 좋아서 거기를 무료 입장을 시켜주었지요. 차도 공짜, 입장료도 공짜. (만고의 김삿갓 놀음이었어요 랄라~  )

 

퀴즈:

 

(1) 저~만치 있는 왕따시 커다란 사진같은 초상화 (힌트, 사진같은 초상화)의 작가는 누구일까요?

(2) 이 가까이에 보이는 하얀 골재 네모탑, 이거는 누가 디자인을 했을까요?

 

제 최근 페이지들을 보셨다면 짐작이 가실겁니다.  (아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씀, 그것은 진리~  )

 

(개강하는 첫주라서 정신이 없네요. 수업준비도 해야하고, 컨벤션 발표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바쁜 하루

지난 주 내내 눈(snow)때문에 나는 집에 갖혀 있었고, 그래서 개학전의 몇가지 미팅이 모두 취소되었다. 대학원 강의할 교수들과의 미팅도 취소되었고,  ESL 프로그램 강사 미팅도 취소되었고.  이메일로만 필수적인 사항들을 논의하다가, 오늘 개강.

 

오늘 대학원 개강하면서 내 수업이 아침에 있었는데

동일한 시각에 ESL 프로그램도 개강.  그것도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서, 신임 강사에게 첫날 오리엔테이션에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해주고 나는 나대로 내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내 수업 이후에는 그레고리팩이 첫 수업하는 날이라서, 그레고리팩이 차질없이 수업할수 있게 살펴야했고, ESL 오리엔테이션이 잘 되어가는지 감독도 해야 했고. 그래서 첫날 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나는 일에 지쳐가지고 어제까지 내가 앓고 있었다는 것 까지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너무 바쁘니까 아픈것도 잊어버리더라.

 

큰애의 생일이 내일 모레라서, 퇴근후에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생일 선물을 미리 골라서 샀다.  얌전한 면바지 (정장 대용으로 입을만한것)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줄무늬 면 셔츠.  말끔하게 보일수 있게.  우리집 아이들은 너무 멋을 안부려서 (하긴, 우리식구중에 멋부리는 사람이 없다...) 어느때는 애들한테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멋도 부리고 좀 그러면서 살아라, 생날라리급은 아니어도 남보기에 준수해보일 정도로 갖춰입는게 좋다."  멋도 부릴줄 알아야 하는거지.  

 

설날 차례를 정성껏 지냈는데, 피로해서 얹혔는지 뭐 다 토하고 울렁거려서 이틀간 두통약과 냉수만 먹고 앓다가 오늘 출근했던 것인데, 울렁증은 가라앉았다.  피곤한건 참겠는데 머리아프고 속 울렁거리면 참기가 힘들다. 아, 이틀전에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머리를 붙잡고 쩔쩔맸었다.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리고. (아마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거다).

 

 

 

최근에 어떤 문제로, 좀, 돌쇠짓을 했다. 나는 원칙대로 사는 편이고, 내 원칙에 벗어난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그냥 차분하게 다 집어 던지는 경우도 있다.  위 아래 눈치 안보고, 내 원칙을 선언하는것으로 선을 확실히 긋는 편이다.  멜 깁슨이 감독했던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에서 보면 예수님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가지고 흙바닥에 금을 긋는 장면이 나온다. 금을 긋고 뭐 그 유명한 대사를 했을것이다,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던가?  아무튼 금을 휙 긋는 장면이 나왔었다. 이 금을 넘을 자신이 있으면 넘어보라 이거지.  아무도 그 금을 못 넘었다.  아 그 영화 장면에 견주려는 것은 아니다 (어딜 감히...).   아무튼 나도 내 식대로 금을 그어놓고, 이 금을 넘고 싶으면 어디 넘어봐라~  했던 것 같다.  일단 그렇게 선언을 해버리자, 상황은 굉장히 단순하게 정리가 되었다.  나는 오히려 여유로워졌다.

 

 

옛날에, 내가 아주 어릴때,  아버지가 중책을 맡고 계실때인데, 두번인가, 아버지가 사표를 쓰고 집에서 칩거하신적이 있었다.  우리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사표를 쓰고 직장을 잃으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사나, 걱정이 되었고, 집안은 매우 침울하게 흘러갔는데,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버지는 출근도 안하시고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 며칠이고 꼼짝도 않으셨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내가 아는 얼굴. 내가 모르는 얼굴.  그리고 마침내,  어느날 엄마가 어린 우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매우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셨다.   말하자면, 최고 책임자가 직접 아버지를 만나러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런식으로 사표를 내고 칩거하여 최고책임자가 느추한 우리집에 나타난 것을 두번인가 보았다.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직장을 떠나지 않았다 :)  하하.   아버지는 장군처럼 보였다.  우리가 가난한 가운데서도 어떤 자존심을 잃지 않고 프라이드를 갖고 살 수 있었던 근거로는, 가난뱅이 가장이었을 망정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여준 장군의 기개.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기운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이었다.  겁날게 없었다. 아버지가 있는한은.

 

돌아보면, 그 때 아버지 속이 얼마나 착잡했을지, 얼마나 막막했을지... 이제 조금 짐작이 간다. 아주 약간 짐작이 갈 뿐이지만.

 

 

내가 가끔 단호한 표정을 짓고 어금니를 앙다물때, 나는 어느새 젊은날의 우리 아버지가 된다.  나는 하루 하루 단단해져 간다.  나는 인생의 전투에서 한걸음 한걸음 승리해 나간다. 나는 침착하게 잘 해나가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나는 우리아버지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아버지가 참 외로우셨겠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아버지만큼만 해 내면, 아마 패자는 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내 꿈은, 내가 우리아버지보다 더 큰나무로 자라는것이다.

 

 

설 차 례

 

한국의 내 손아래 동서는 "형님이 정말로 미국에서 제사며 차례를 지내셨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집에 와서 나 사는 것을 보면서.  내가 지내지도 않은 제사를 지냈다고 거짓말할 정도로 실없는 사람으로 보였나?  물론 거짓말을 잘 치긴 하지만, 뭐 제사가지고 거짓말 칠 정도로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차롓상이나 제삿상 차리는 것이 대수인가, 배운대로 차리면 되는 것이지.

 

 

이번에 차롓상을 차리던중 큰애가 묻는다,

"엄마 왜 우리집은 고조까지 제사를 지내나요?" 

"아버지가 종손이니까." 

"왜 종손이 제사를 다 지내나요?"

"대개는 그 집안의 큰 아들이 재산을 물려받거든.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거지." 

"아버지는 물려받은 재산이 없쟎아요."

"아버지가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큰아들이다. 아버지가 큰아들인데 부모가 가난해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제사를 안지내면 너무 치사하지 않니? 응?  그나저나 큰아들아. 나도 재산이 없어서 너 물려줄게 없을듯 한데, 너 나 제사 안지내줄거니? 치사하게..."

"(속을 들킨듯 미안한 표정으로) 아니, 지내드릴게요..."

 

 

차롓상을 차리면서 내가 시댁 부엌에서 작은어머니들에게서 들은 시댁의 내력을 기억해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묻는다: "어떻게 아버지 집안 일을 엄마가 더 많이 알아요?"  왜냐하면, 나는 기억의 저장소이고 스토리 텔러니까.

 

큰애가 발렌타인데이라고 나를 위해서 장미도 한묶음 사왔으므로, 그것도 차례상에 올리고

 

 

식당에서 차례를 지내므로 식당이 있는 뒷문밖에 쌓인 눈을 치우는 P국장.  조상님 오시는데 길을 열어드려야 한다고. (조상님이 날아오지 걸어오시는가? ㅎㅎㅎ)

 

 

 

작은애가 절하는데 엉덩이가 솟아 있어서 "야 이놈아 머슴절을 할래? 엉덩이를 종아리에 딱 붙이고 납작 엎드려라!" 호령도 하고. (우리 할머니가 엉덩이가 솟아오르면 머슴절이라고 야단을 치셨었다).

 

 

 

술은, 경주 법주인거다.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것이 경주 법주였다.)  일찌감치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위해서는 맥주도 한잔 올리고 (맥주를 좋아하셨다고).

 

향은 일심향. (나는 깡패아저씨들중에 팔에 문신으로 일심이라고 새긴 아저씨들 볼때마다 픽 웃는다. 일심. 헤헤헤).

 

 

 

 

 

새로운 영어강사

 

 

ESL센터에 역시 심혈을 기울여 새로 영입한 강사.  투철한 신앙심과 봉사정신이 결합하여, 헌신적인 교사상을 첫날부터 보여주었다.  이번학기부터 나는 ESL 수업을 유능한 강사들에게 일임하고 프로그램 관리만 하게 되었다.  수업에서 벗어나니 한결 어깨가 가볍다. (수업이 재미있긴 하지만, 강의가 끝난다음에는 늘 진이 빠진 느낌이 들곤 해서, 내가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역시 믿을만한 인재를 모셔다  놓는것이 만사의 근본이라.  이 친구 덕분에 내 수업 부담이 줄어들었다.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