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의 붕괴와 그 여파로 '대공황'이 불어닥쳐 1930년대 미국 전역이 시련을 겪을때 예술가들 역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933년 3월에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러한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하여 뉴딜 (New Deal)정책을 펼치면서 공공사업을 확충하고 농산물 수급을 조절하는 둥 고용증대및 여러가지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런 공공사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여 공공 예술 사업을 펼쳤다. 1933년 12월부터 1934년 6월 사이에 미 전역에서 3,749명의 예술가들이 15,663 편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들을 창조해 냈다. 회화, 벽화, 조각, 인쇄, 드로잉,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작품들의 공동의 주제는 '미국의 풍경 (American Scene)'이었는데, 경제 공황시기를 살아가는 미국의 풍경이라면 어떠한 소재라도 상관 없었다. 소재에 제한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자연풍경, 노동의 현장, 서민들의 삶의 모습, 당시의 유흥, 오락 장면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들 중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자신이 32편을 골라 백악관에서 소장했고, 다수의 작품들이 당시의 상원, 하원 의원이나 부유한 정부 관리, 기업인들에게 팔려 나갔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집무실에 걸린 이 프로젝트의 작품은 다음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연립주택'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이 그림 역시 백악관으로 간 작품이다.

제목: Tenement Flats (1933-1934 제작)
작가: Millard Sheets
Born: Pomona, California 1907 Died: Gualala, California 1989
유화: oil on canvas 40 1/4 x 50 1/4 in. (102.1 x 127.6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National Park Service 1965.18.48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현재 위치:1st Floor, West Wing
가로 127.5 센티, 세로 102.1 센티의 큼직한 크기의 그림 가득히 1930년 초반의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떤 서민용 연립주택의 풍경이, 사람들이 담겨있다. 앞쪽에 보이는 연두색 건물은 이층짜리 연립이고, 뒤편 윗쪽의 연립은 3층이나 4층짜리로 보인다. 언덕위에는 빅토리아 고딕 양식의 저택도 보인다.
이 그림의 부분 부분을 상세히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전체그림을 한꺼번에 볼때와 달리 작은 부문들에 집중하여 볼때 이 그림이 새롭게 다가오는데 전체적으로 볼때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들의 개성이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빈양동이를 허리에 끼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여인은 옆에서 조롱조롱 떠드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의 어린 소녀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있는데,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가 각자 한가롭게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있다. 플랑멩고의 분홍을 연상시키는 계단참의 분홍색이 전체 분위기를 경쾌하게 하는데 일조한다. 여인들의 흰옷이나 고양이의 털 빛도 역시 환하게 빛난다.

흰 고양이가 계단 아래 '반지하층'의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고, 역시 희게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여인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계단 그늘에서는 걸음마쟁이를 데리고 한 여인이 앉아있다. 누나인지 엄마인지 가늠이 안간다. 네 사람들의 시선이 왼쪽으로 향하고 있을때, 왼편의 흰 고양이는 뒷쪽을, 오른편 의자에 앉아있는 여성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시선의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 마치 계단이 오른쪽으로 경사지고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듯 시선도 한쪽으로 경사지는 듯 하지만 반대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있어 변화와 균형감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는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작업대에서 일을 하는 딸아이를 감독하고 있거나 일을 잘 하도록 잔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잔등의 X자 표시를 보아하니 앞치마를 입고 빨래를 하고 있는 듯. 그녀의 뒤에 빨랫줄이 걸려있고 희게 빛나는 빨래가 걸려있다. 옥외용 간이 침대인 것일까? 검은 고양이가 역시 소녀를 향해 앉아있고, 문이 열려있다.

2층의 오른쪽 집엔 엉성하고 남루해 보이는 빨래가 몇장 널려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 (서정주)'가 아닌가? 해진 옷을 입고,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지도 못하고 사는 형편이지만, 다섯개의 꽃화분이 이 집 사람들의 낙관적 심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왼쪽 집 유리창 밖으로 한 여인이 머리를 내밀고 이웃친구 두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빨래를 난간 손잡이에 걸쳐놓기도 했다.

이 초록색 연립과 통로를 함께 쓰는 윗편 연립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그곳에서도 여인들이 빨래를 널거나 혹은 오전의 일과를 마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 구석 계단 아래 뒷쪽으로 뒷모습만 보이는 두명의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뒷모습이지만 두 여인네가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된다.

이들의 머리 위로 더 높은곳에 빨랫줄이 연결되어 있고 빨래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 속에는 단지 두채의 연립이 보이지만, 이 연립들 주변에서 비슷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연립주택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듯 하다. 이건물에서 저건물로 빨랫줄을 연결하여 빨래를 널은 것 같다.

그리고 저 언덕위, 연립이 서있지 않은, 빅토리아식 고딕 주택 건물이 서있는 언덕위로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힌채 올라가고 있다. 언덕위에 고급 주택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한때 이곳은 부유층의 저택들이 서 있던 곳이었으리라, 그러다가 서서히 서민용 연립주택지로 변화해 갔으리라 추측된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이 그림에는 '소리없는 아우성(유치환)'과 같은, 혹은 깔깔대고 웃는 듯한 빨래가 휘날리고, 그 빨래를 해서 널었을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두런거림이 있고, 고양이의 양양 거리는 소리와, 아이 어르는 소리와, 햇살이 빨래에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가난뱅이 구역이지만, 경제공황으로 형편도 좋지 않지만, 이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붙잡으며 '햇살도 가득하니 잠시 쉬었다 가라' '그늘에 앉아서 바람이나 좀 쐬어가라' 하고 말을 거는 듯 하다.
유신시대의 아이였던 나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엄마 손에 이끌려 상경했을때, 우리 식구들은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나까지 포함하여 여섯명이 조그만 방 한칸에서 살았다. 우리가 살던 대지 30평의 무허가 건물에는 네개의 방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의 작은 방에서 살았다. 안방차지를 하던 사람은 트럭운전사네 집이었는데 그 집은 식구가 일곱이었다. 안방 건너 건너방에 살던 사람들은 새댁네였는데 세식구였다. 대문간 가까이 살았던 집은 네식구였는데, 그 작은 방에서 '무허가 미장원'까지 했었다. 그런 무허가 셋방살이 집에서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살았다. 그후로 우리는 장미꽃이 피고 잔디가 깔린 새장같이 예쁜 집으로 이사를 갔다. 내가 또다시 셋방살이를 하게 된 것은 결혼과 함께였다. 위의 그림과 아주 흡사한 연립주택에서 살면서 나는 때로 행복했고, 때로 불행했다. 때로는 빨래 한장 내다 걸수 없는 비좁음에 숨이 컥컥 막히기도 했고.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며 가끔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 울기도 했다.
이따금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가서 이 그림앞에 설 때마다, 나는 가난하고 우울했지만, 그래도 늘 햇살이 비치던 빈민가의 내 유년시절과, 역시 숨막히고 우울했지만,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나던 내 아이들 생각을 하면서 웃게 된다. 미국 사람이 그린 미국 풍경을 보면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인 내가 고향에 돌아온듯 공감할수 있는것, 이것은 예술이, 예술혼이 갖고 있는 보편성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림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약 두시간이 소모되고 말았는데,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웃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서 상세하게, 세세하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아, 나는 아마도 그래서 미국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아마도 그럴것이다...)
september 20, 2009 your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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