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예술 운동 작품

Gold is where you find it (1934)
황금은 당신이 찾는 곳에
Tyrone Comfort
Born: Port Huron, Michigan 1909 Died: Los Angeles, California 1939
oil on canvas 40 1/8 x 50 1/8 in. (101.9 x 127.3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National Park Service 1965.18.49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st Floor, West Wing
http://americanart.si.edu/collections/search/artwork/?id=5195
위의 이미지는 위에 링크된 스미소니안 콜렉션에서 찾아온 이미지이고 아래는 내가 캐논 카메라로 찍은 것. 색감이 많이 차이가 나는데, 내가 육안으로 본 색감은 내 카메라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물론 위의 것은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옮기는 전문가들의 작업을 거친 것이고, 아래의 내가 찍은 사진은 카메라라 기술적으로 미숙하다 할 수 있겠지만, 두가지 모두 '사진'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왜 사진들의 상태에 대해서 언급하는가 하면, 우리들이 '화집'이나 '그림책'을 통해 보게 되는 그림들이 이런 각기 다른 카메라와 사진가들을 통해 전달 되는 것인데, 때로는 약간의 색감의 차이에 따라서 원화가 줄 수 있는 감동이나 힘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예술의 맛을 가장 생생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직접 '그 것'을 만나 보는 일 일것이다. 그 외에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가령 어떤 작품이 있을때, 우선은 그 원작을 눈으로 보거나 경험하는 것이 가장 본질에 다가가는 길이고, 그외에 부가적으로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해, 그 작품을 더 잘 알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하는일, 혹은 그 방면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등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심심할때면 화집들을 들춰서 그림 설명을 읽는 일을 즐기는데, 똑같은 그림이라도 책마다 크기나 색감이 차이가 날 때가 많다. 화집속의 그림들은 '지도'속의 표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지도속에 깨알같이 박힌 지명들을 확인하면서 지도속으로 행군하게 되는데, 화집속의 그림은 '원화'가 아니라 지도속에 새겨진 지명같은 것이다. 평생 지도만 들여다보면서 거기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들, 지도속의 실재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는 지도 독자에 불과하다. 때로 우리는 현지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 땅을 만져보거나 그 하늘을 직접 올려다보고 그 바람을 느끼기도 하게 되는데,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가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일, 작품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도 너머에 실재하는 세계로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909년에 태어나서 1939년에 사망한 미술가 Tyrone Comfort (타이론 컴포트)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이 작품은 1934년 발표 된 것이므로 그가 25세 청년이던 시절 그린 것이다. (나는 어떤 작품을 볼때, 이 그림은 이 사람이 몇 살 때 그린것인가, 혹은 그 당시 시대 상황이 어떠했나, 이런 요소들을 생각 해 볼때가 많다.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러할지도 모른다) 25살 청년이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림 속의 주인공도 그러하고 청년의 '역동성'과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그림을 별 관심도 없이 몇차례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미국미술 박물관에 가도 눈에 띄고, 내가 갖고 있는 미국미술 관련 화집에도 이 그림은 '꼭' 등장을 했다. 그러나 한번도 '눈여겨서' 관심있게 들여다 본 적은 없다. 아마도 내가 '미국미술' 블로그를 열고 본격적으로 '미국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을 안 했다면 나는 평생 이 그림을 스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볼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미국 미술사 화집에도, 인터넷에도 별로 나오는 것이 없고, 스미소니안이 제공하는 자료가 가장 상세한 편이다. http://americanart.si.edu/collections/search/artwork/?id=5195 이자료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달러'가 휴지조각처럼 되고, 일자리도 귀해지고, 금 값이 치솟자 1849년에 캘리포니아에 금을 캐려는 광산업자들이 몰렸던 것과 비슷하게 1930년대에 캘리포니아에 다시 광산없자들이 몰리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즈음에 다섯, 여섯살 짜리 꼬마 아이들이 광산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굴을 크게 파면 무너져내리니까 아주 좁은 굴을 파고 아주 작은 아이들을 들여보내 일을 하게 했다고 하던가? 이런 열악한 상황, 인간 소외의 현상을 배경으로 마르크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1930년대 캘리포니아의 금광이 그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그림속에서 광부가 웃통을 벗어제낀채 쪼그려 앉아 채굴기를 붙잡고 있다. 청년이 앉아있는 배경을 살피면 청년의 머리 윗부분쪽에 이 막장의 디딤목들이 보인다. 거기까지는 사람의 손으로 굴이 무너지지 않게 안전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청년은 막장 너머 새로운 영역을 확보 하기 위해 굴을 파고 있는 중이다. 아직 안전조치가 취해지지않은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그림에 Gold is where you find it 이라고 붙여 놓았다. 이런 제목에서 'you'는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신이, 그대가, 우리가 라고도 해석이 가능하며, 주어가 생략되는 일이 흔한 한국어에서는 아예 이 경우 'you'에 대한 직접 해석을 생략해도 된다. 그러니까 이 영문 제목에 가능한 한국어 번역은
1. 황금은 당신이 찾는 그 곳에 있다
2. 황금은 그대가 찾는 그 곳에
3. 황금은 우리가 찾는 그 곳에 있다
이 제목은 어떤 속담의 댓구처럼 보인다. 영어 속담중에 Home is where the heart is 라는 말이 있다. 한국말에 '정들면 고향'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위의 속담과 비슷한 뉘앙스로 보인다. '마음이 가는 곳이 고향이지' '마음이 가는 곳이 내 집이지' 이런 의미이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이라고, 여우는 죽을때 머리를 고향으로 둔다고 하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고향, 집에 대한 애정은 본능과 같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이 내 집이고 내 고향이란 말이다.
Home is where the heart is. (마음 가는 곳이 내집이지)
Gold is where you find it. (찾는 곳에 금은 있지)
서로 가락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가?
만약에 이 그림의 제목이 '찾는 곳에 금은 있지'가 아니고 '막장' '노동' '금광' 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여전히 이그림의 효과는 동일 했을까? 나는 미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작품'과 '작품 제목'과의 관계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논의를 펼칠수는 없다. 미술 작품은 '제목'을 떠나서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만 평가받아야 옳은 것인지, 제목까지 포함된 것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옳은것인지? 가령 미술대회를 할때, 심사의원들은 '작품'만을 평가하는지 아니면 '작품 제목'까지 보고나서 평가를 하는지? 나로서는 잘 알수 없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막장'이었다면 이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가는 Gold is where you find it 이라는 제목을 달아 줌으로써, 관객에게 어떤 희망적인 것을 읽도록 인도하고 있다.
웅크리고 앉아 일하는 청년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그런데 이 청년의 단단한 옆모습, 상체의 근육들 (요즘은 초콜렛 근육이라는 유행어가 돌고 있다. 네모난 초콜렛 한판 같이 울룩불룩한 상체근육의 별명일 것이다, 옛날에는 임금왕자라고 했고, 그후에는 빨래판 근육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요즘은 초콜렛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언어 변천이다.) 기기를 지탱하고 있는 그의 팔과 다리는 힘이 넘쳐 보이고, 그가 지탱하고 있는 기기는 탯줄과도 같이 케이블에 연결되어 있다. 그가 파 나가고 있는 벽면은 이 남자의 상체 근육과 비슷한 무늬를 이루고 있다. 태초의 순결하고 건강한 땅덩어리를 역시 건강한 인간이 파 들어가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제목이 Gold is where you find it 이다.
이 그림은 일견 열악한 노동의 현장을 그리는 것 처럼 비칠지도 모르고,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단단하게 다져지는 노동자의 현장을 그대로 묘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파 들어가는 이 청년의 모습이 미국 건국 초기에 '서부로 서부로' 향해 나아가던 '서부개척의 역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부개척은 미국 지도에서 보면 동부에 정착한 유럽계 이민자들이 서부를 향해 나아간 역사인데 미국 지도상 오른편에서 왼쪽으로 들불처럼 퍼져 간 형상이라, 그림의 방향과 일치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열악한 노동환경의 '우울'이나 '사회 고발'의 성격보다는 '희망' '개척정신' '불굴의 의지'같은 메지지들이 더 힘있게 드러나는 것 같아 보인다.
원 작자가 어떤 의도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에서 읽은 자료에 의하면 작가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제발 기억해 달라'고 했다 하는데... 이 그림에서 무엇을 읽어내는가 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건 순전히 보는 사람 '맘대로'이다. 그것이 대중에게 공개된 '작품'의 운명이다. 그것이 그림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타인에게 공개되는 순간 그것은 보는 사람에 의해 재해석 될 운명인 것이다. 한국인인 나는 이 작품에서 미국정신, 미국의 프론티어리즘 (Frontierism) 을 읽는다.
그런데, 이 그림을 이런식으로 해석 하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리노어 루즈벨트 (Eleanor Roosevelt)가 남편이 집무실에 걸어 놓을 그림으로 뽑았다고 한다.
september 23, 2009 your redfox.

사족이지만, 뉴딜 정책기의 예술기금으로 탄생한 이런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70년대의 아이'였던 내가 성장할때 우리집에 걸려 있었던 그림들이 생각난다. '70년대의 아이'는 '새마을 시대의 아이' 혹은 '유신시대'의 아이와도 상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아예 이쪽 세대론을 하나 적어 올려야...하하..) 우리 할아버지의 모자가 갑자기 생각난다. 초록색 새마을 표시가 붙은 모자. 우리는 아침이면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런 노래소리에 발을 맞춰 학교로 향했었다. 그런 새마을 시대에, 그 경제개발 오개년 계획 시대 덕분에 가난뱅이 서생이었던 우리 아버지도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염불의 힘으로 잘 살아보게 되었는데, 일전에도 적었지만, 우리 아버지 주위에는 '예술인'들이 많았고, 그냥 '미술학도'들의 작품도 가끔 선물을 받곤 하셨다. 그당시에 '미술학도'들의 작품으로 우리집 벽에 걸렸던 작품들이 대개 '공장풍경,' '농촌 개발 풍경'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왜 우리집 벽에는 저렇게 재미없는 그림들이 걸리나?' 불평을 하고 있었는데, 내눈에 영 살벌하고 재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그저 왕자공주가 나와줘야~ (어린 마음에).
유신시대에 미술학도들은 산업의 현장이나 개발의 현장, 농촌이 변해가는 풍경등을 그리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당시의 시대상황이 미술계에도 영향을 끼쳐서 그런 성향의 그림이 장려가 된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사회성이 있는 그림이긴 한데 어쩐지 '관제' 냄새가 나는.
뉴딜 정책의 미술 기금으로 제작된 그림들도, 분명 '사회성'이 보이기는 하되,어쩐지 '고발'이나 '비평'보다는 '어둡지만 희망을' 식의 '관제 희망'이 스며든 그런 작품들처럼 얼핏 보이기도 한다. '관제 희망.'
원작이 아닌 복제품(사진을 포함해서)이 지도속 지명이라는 표현, 훔쳐가고 싶은 비유이군요! 최초로 외운 외국가요인,클레멘타인이란 노랫속에 forty-niner라는 단어가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어요..ㅎ
답글삭제그림 속에 일단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건강한 노동 등을 노래하는 그림은 아닌 거 같고.. 그러나, 힘찬 근육 등을 볼 때는 공공미술 성격인 거 같기도 하고.. 아마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할 듯 하네요...개인적인 판단.
답글삭제@나로 - 2009/09/24 13:44
답글삭제어릴때, 집에 유명 박물관 도록이 꽤 있었는데, 소설책이나 동화책은 없고 그런 책들만 있으니까 불만스러운대로 (하는수없이) 그 도록들을 들춰본거죠. 일본책이라 글씨는 읽지도 못하고 그림만 보니까 제목도 알수가 없고, 답답한거죠. 까막눈이 얼마나 답답한지 알수 있지요.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루브르에 갔을때, 아, 그 책이 루브르 도록이었구나 했던거죠 하하하. 화집속의 작품과 현실의 작품은 많이 닮았으면서도 각기 정체성을 달리 하고 있더라구요.
워싱턴 인근에 사니까 비행기타고 구경하러 오는 친척들이 있는데, 아이들 데리고 오는 애들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죠. 영화에서 테레비에서 미국 많이 봤을거 아닌가. 그거 다 책 본거다. 이제부터 눈으로 직접 보고, 실컷 보고, 경험하고, 그리고 맘이 생기거든 '책'을 사라. 그러면 장차 책을 보거나 읽을때, 지금 본것들이 머릿속에 지나갈 것이다.
제가 학부때 영미문학을 전공했는데, 미국소설중에서 '마녀사냥'의 배경이 되는 매사추세츠의 Salem (세일럼) 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직접 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Salem 이 '마녀사냥'의 마을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가보니까 거기가 아름다운 항구도시였지요. 난 세일럼이 '항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는데. 거기 바다가 있었던 말이군.
그때부터 저는 저의 지식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지요. 내가 '안다'고 믿는 것과 실재 세계 사이에 틈새들이 많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틈새들을 채우기는 쉽지 않고, 인생은 덧없고. (늘 결론은 인생무상).
그렇다고 책이나 지도에 실린 '기호'들을 '가짜'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이것이 어떤 '재현,' '안내자'의 역할은 해 준다고 위로하는 편입니다.
예, 저 역시 그 forty niner 라는 노래가사 덕분에 자동으로, 캘리포니아의 금광 러시 (gold rush) 역사를 기억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것이 '업계'의 비밀 같은 것인데, 길거리 가게모서리에서 맥주 한병씩 들고 앉아 한담 나눌때, "그 미 서부 골드 러시가 1849년 무렵에 아주 활발했거든..."이러면 사람들이 대개 속아주죠, 얼마나 역사를 잘 알면 연도까지 줄줄 꿰나 하고. 헤헤헤. 사람 속이기 쉬워요... 속아넘어가기 쉽고요. 그래서 요즘은 살짝 속아넘어가기 쉬운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 안하고 정말 아는 것만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중이지요. 헤헤헤.
@나로 - 2009/09/24 13:46
답글삭제이 작품이 그의 25세때 작품이고 30세에 요절했고, 자료를 찾아봐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별로 없어요. 화집에는 없고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보면 벽화가 하나 눈에 띄는데 그가 서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별로 직접적인 연계는 안되었지만, 당시 그가 동부에 있었다면 그는 Social Realism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계열의 작가들과 함께 활동 했을것 같습니다. 그 당시 뉴욕 인근의 작가들중에 비슷한 화풍을 성장시킨 화가들의 단체로 Ashcan/Eight 등이 있었습니다. 그의 요절이 아쉽지만, 이 작품 한가지로도 오랫동안 미국미술관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딱, 미국의 가치와 맞아떨어지니까요).
@RedFox - 2009/09/24 20:46
답글삭제salem ..담배이름아닌가??
내 사촌동생이 워싱턴 근처의 어느 도시에서 빵가게 베이커리로 오래 살았어요. 최근에 한국에 와서 한적한 시골마을 빵가게를 하고 있지요! (머..쓰잘데없는 얘기군요^^)
Salem 담배도...있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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