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 the Barber Shop (1934)
Ilya Bolotowsky
Born: St. Petersburg, Russia 1907 Died: New York, New York 1981
oil on canvas 23 7/8 x 30 1/8 in. (60.6 x 76.5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Labor 1964.1.79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st Floor, West Wing
(사진 클릭 두번하면 큰 화면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전편(http://americanart.textcube.com/67)에 이어서, 역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국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젬고은 '이발소에서.' 러시아 태생의 이민자였던 화가 일리야 볼로소스키는 뉴욕의 이발소 풍경속에, 이민자들의 나라, 이민자들이 어울려서 만들어가는 국가라는 미국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섭외하여 뉴욕시의 어느 이발소를 실제 배경으로 작업을 했다. 이발사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이발사가 면도를 해주고 있는 손님은 그리스계 이민자, 그리고 오른쪽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 각자 상념에 잠긴 두 남자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은 러시아계 이민자.
이발소는 아주 작아 보인다. 이발용 의자 두개, 기다리거나 노닥거리는 손님을 위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개,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금전등록기가 보이고, 그 벽위로 보이는 것은 볼록 거울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오른쪽 구석에는 옷과 모자를 걸어놓는 걸개가 보이는데 남성 웃저고리 두장이 각기 걸려있고, 역시 남성 모자 세개가 보인다. 하단 오른편에 비스듬하게 세워진 흰색 물체는 난방기가 아닐까? 그림의 왼쪽 벽면은 유리창으로 보인다. 유리창의 아랫부분은 짧은 부분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발하는 손님을 살짝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가운데 햇살이 밝은 곳에 화분을 놓았다. 오른편 벽면은 거울일까? 나름 생각해보았으나, 거울이라면 맞은편이 투영되어야 하는데 비쳐지는 것이 없는것으로 보아 그냥 '이발소 그림'이라 일컬어질만한 그림이 걸려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시전을 서서히 잡아 끄는 것은 정면 벽. 커다란 거울이 설치된 벽면 속에 작은 거울이 비치고 그 비쳐진 거울 속으로 무수히 반복 반사되는 사물들. 그 끝점이 어디가 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거울은 끝없이 동일한 이미지를 반사하게 될 테니까, 소실점에 이를때까지. 무한반복되며 멀어지는 거울속의 영상이 이 그림에 입체감을 더 해주면서 일종의 신비감까지 자아낸다.

내가 어릴때, 시골집에 살때, 우리 엄마의 방에는 앉은뱅이 경대가 있었는데, 가운데에 큰 거울이 있고, 양쪽 날개 부분에도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양쪽 날개 부분에는 경첩이 달려 있어서 문을 열고 닫듯이 각도 조절이 가능했다. 심심할때 엄마 거울 앞에 앉아서 그 양쪽 날개 거울 부분을 조금씩 각도를 달리해 보면 거울속에 내가 아주 많아졌다. 그러니까, 장난감도 없고 별다른 놀거리도 없는 단조로운 나날 속에서, 들판으로 쏘다니거나 개, 닭들과 심심풀이를 하다가 외양간의 소한테 혼이 나가지고 시무룩해져서 엄마의 방으로 오면, 거기 거울속의 한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거울속에 마주보이는 아이와 노닥거리고 놀지만, 심심해지면 거울 날개를 움직여 내 옆모습도 보고, 옆모습 뒤에 무한반복 재생되는 나하고 똑같은 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무한 반복되는 나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리 아무리 들여다봐도 끝이 안나는거라. 한참동안 그 끝을 찾아 거울속을 들여다보면 때로 무서운 생각도 들었는데, 어쩐지 내가 깊은 우물속에 빠진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나는 어디 있는걸까? 이런 의문도 들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화가는 이발소 거울속에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담아 놓은 식으로 최초로 거울과 만났던, 두장의 거울이 만드는 우물과도 같은 깊은 세계의 기억을 표현 한 것은 아닐까? 화가는 사실주의적 그림속에 사실 너머의 세계를 도입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평면속의 무한반복되는 입체의 세계.
위의 내가 대충 그린 거울의 삽화속의 아이는 파란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내 기억속의 내 모습이 온통 '파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파랑'이었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가 내게 남동생을 보게 해 주려고 나를 사내놈처럼 의도적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결국 할머니의 소망대로 나는 남동생을 보게 되었는데, 남동생을 본 후에도 나는 여전히 파랑이었고, 나는 늘 사내아이처럼 상고머리로 살았다. 나는 가끔 마을의 이발소에 갔었다. "언년아, 오늘은 점심먹고나서 호수로 놀러가지 말고, 이발소 집으로 가거라. 내가 말 해 뒀으니까, 네가 가면 머리를 깎아 줄거다." 할머니가 점심참에 내게 이르시면 나는 군소리 않고, 찬물에 말은 밥과 김치를 대충 먹고 마당 지나, 이웃집 큰 나무 아래를 지나 골목을 지나 밭을 건너 그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소로 갔다. 그러면 이발소집 정씨 아저씨가 나를 번쩍 안아 이발소 의자 위에 올려 놓았는데, 내가 코딱지같이 작은 꼬마아이 이므로 (다섯살) 이발소 의자 양쪽 손잡이 위로 빨래판을 척 걸쳐놓고는 그 위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사내아이처럼 반듯하게 잘라 주었다. 그때 나는 온통 남자들 밖에 없는 이발소 집에 나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 앉아있다가, 이발사가 머리를 다 자르고 내 목 언저리의 머리카락들을 탁탁 털어준후에 나를 번쩍 안아 바닥에 내려 놓으면 인사도 안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쳐서 한달음에 집으로 뛰어오곤 했는데, 왜 내가 꽁지가 빠지게 도망질을 했는가 하면, 내가 가만히 보니까 머리 깎는 아저씨들은 면도도 하고, 면도가 끝나면 뜨거운 물로 머리도 감고 그러는데, 나는 무서운 칼로 면도 당하고, 닭잡아서 털 뽑을때 씀직한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고 머리를 감는 일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거야 말로 로댕의 지옥의 문에 나오는 장면보다 더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생지옥'이었던거다.
물론 여섯살이 되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상경 한 후에 나의 이발소 행보도 끝장이 났다. 엄마는 딱 한번 내 사내놈같은 머리를 다듬어 준다며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에 끌고 갔었는데, 그 후로는 엄마가 직접 가위질을 하셨고, 나는 머리가 다 크도록 엄마가 멋대로 대충 잘라주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던거다.
아, 내 추억속의 정씨 아저씨네 이발소 앞 마당에서는 비가 오는날만 제외하고 언제나 수건이 마르고 있었다. 이발소용 수건은 가정용 타월보다 작고 얇다. 아마도 그래야 빨래하기 쉽고 마르기도 수월할 것이다. 정씨 아저씨네 마당에는 늘 노란 이발소 타월들이 수십장씩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며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위의 이발소 풍경 그림에서 왼편 창가의 노란색 헝겊이 '이발소 타월'이 아닐까 하여 들여다 봤는데 아마도 저 노란 헝겊은 '커텐'인것 같아서 섭섭했다. 타월이 말라야 하는데, 타월이...
이발소는 '남성'들에게 어떤 장소일까? 요즘의 문제가 되는 일부 퇴폐 이발소 제외하고 순수한 본래의 이발소, 그 이발소는 남성들에게 어떤 정서를 불러 일으킬까? 이발소에 대한 정서는 연령별로 차이가 날 지도 모른다. 요즘 청소년들은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고, 많은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을 찾는다. 이 그림속의 이발소들이 아직도 여전히 건재 할까?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가늠이 안된다.

영화 Gran Torino 의 이발소 장면
그런데, 2008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가 주연한 헐리우드 영화 Gran Torino(http://www.imdb.com/title/tt1205489/)를 보면, 보수적이고 강단이 있는 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아시아계 이민자 소년과 친구가 되어 그가 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게 되는데, 그때 노인이 한 일이 소년을 마을의 이발소로 데려가서 '사나이들만의 대화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렇게 말하는거야. 남자가 남자를 만났을땐 이런 태도로 이렇게... 노인과 이발소 주인은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소년에게 백인 남성 사회의 문화를 어떤 식으로든 전수 하려고 애를 쓴 것인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사실 마음이 짠했다. 사실 그 노인이나 이발소 주인 역시 주류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라져가는 세대의 마지막 흔적 같은 존재들 이었던거다. (이 영화 안보셨으면 심심할 때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셔도...)
1934년, 미국의 경제 암흑기, 대공황 시절의 뉴욕의 이발소 풍경. 지금 그 낡은 이발소가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거울속에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들처럼 이발소는 또 다른 풍경으로 어디선가에서 새로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 할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사라진 후에도 무한반복되는 이미지로 어딘가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september 21, 2009 your redfox.
p.s. 음, 오른쪽 구석의 옷걸이 위에 있는 '모자들'을 보니, 모자업자가 '외국에 갈때 궁색하면 안된다고' 돈 천만원을 주길래, 가족같은 사람이 주는 용돈으로 알고 이를 꿀꺽 먹었다고 하던 어떤 학자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뒷골이 뻣뻣해진다. 나도 누가 잔돈푼, 소액, 돈천만원 용돈으로 안주나? 오백만원씩 두번에 걸쳐서 주면 더 좋고, 딸라로 줘도 고맙고 ... (두리번 두리번). 대한민국 어떤 사람의 죽음 이후에, 한국의 공직자 지망생들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이제 '가족같은 친한 사람'이 주는 돈은 한푼이라도 받으면 자살바위로 직행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범을 우리는 두 눈뜨고 보았다. 울어도 소용없고, 거기 바위가 있는것이다. 자살바위 가기 싫으면, 돈 천만원 받아 꿀꺽 하면서 '소액' '용돈'이라고 방송 카메라 앞에서 종알거리는 처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거다. 루즈벨트의 뉴딜을 백번을 다시 한다고 해도, 국립대 총장이 '모자'업자가 주는 '소액'이라는 '돈 천만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넣는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자살하시라는 말씀이 아니옵고, 우리는 그 바위에서 호랭이 한마리가 뛰어 내리는 것을 두눈 뜨고 목도했는데, 이제 역사는 준엄하게 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 호랭이를 생각해야 하는거다. 이제 더이상 얼렁뚱땅, 아무개가 주는 돈 쓱싹은 안된다. 그렇게는 안된다. 우리는 호랭이를 잃었고, 앞으로 호랭이의 잣대로 공직자의 위엄을 기대 할 것이다. 그 엄중함을 아시고, 그냥 논문이나 이리저리 엮으시면서, 모자업자가 주는 모자나 하나 쓰고 그냥 유람이나 허시면서 여생을 복되고 행복하게 지내시면 어떠허실지. 총리 자리가 뭐 대단한 자리라고 그 자리에 오르려고 욕을 보시는지. 모자나 쓰시고...모자업자가 주는 용돈으로 그냥 골푸나 치시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저문후에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른다. (해 저물었어유. 늦었지만 날아 올라유.)
한점의 그림에서 시작해서 풀어나간 당신의 종횡무진하는 글솜씨에 그저 감탄하고 있는 중이라우...직접 그림까지..그저 지나쳐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가면 모두 의미가 부여되고 특별한 것들로변신하네요..그림보단 당신의 소중한 유년의 기억속에 함께 머무는 재미가 더 쏠쏠하네요^^
답글삭제아아아, 아침부터 전공 수업 두개 해 치우고, 회의하고 상담하고, 그리고...저녁 수업 준비하고...아 완전 얼 빠진 상태인데, 친구가 남긴 메시지를 보니 '힘'이 불끈. 아 인터넷이 좋구나 친구도 찾아오고. 아 내일은 좀 한가할테니 블로그에서 놀 수 있겠지요 :-)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가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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