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에서 이어지는 글. 3대로 이어진 와이어드 미술가 가문을 기념하는 Brandywine River Museum에서 Andrew Wyeth 의 손녀딸이 일주일에 6일간, 매일 오후 2시와 3시에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가이디드 투어 (Guided Tour)'를 실시한다. 미술관 안내를 해 주는 것이 그이의 역할이다. 이름은 빅토리아 와이어드 (Victory Wyeth). 관계를 보면, 앤드루 와이어드의 장남의 딸. 직계 손녀. 제이미 와이어드는 앤드루의 차남이다. 그러므로 빅토리아에게 제이미는 삼촌 (작은아버지), 앤드루는 할아버지, N.C.Wyeth 는 증조 할아버지인 셈이다.

나도 나름대로 앤드루 와이어드의 직계, 혹은 이 집안 사람들로 부터 직접 안내를 받으면 내가 책에서 발견하지 못한,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생생하고 새로운 무엇을 발견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이 사람의 안내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안내를 기다리던 관람객이 많아서 제대로 그림 감상도 안되는 분위기였던데다, 빅토리아 와이어드의 안내 방식이 내 눈에 거슬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 그림 구경이나 하자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왜 나는 이 사람의 안내 방식이 맘에 안 들었는가? (1) 일단 하이톤으로 귀 따갑게 크게 떠느는 바람에 몇마디 안들었는데 골치가 지끈거렸다. (2) 밝고, 명랑하고, 활달하고 다 좋은데, 그의 그런 밝고 명랑함이 미술관의 분위기하고 잘 안맞았다. 유치원생한테 떠드는 유치원 선생님 말투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시간 가까이 이 분의 연설에 시달리는 동안, 나는 한가롭게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충분히 여유있는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저 안내인이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 오면 그때 하는 얘기나 좀 들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그는 한시간 내내, '제이미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떠들어댔다. 나는 제이미 와이어드 갤러리를 한번 휙 봤는데, 내 취향도 아니고, 내 관심거리도 아니고, 그래서 미련없이 그 자리를 뜬 터였다. 그런데 한시간 내내 거기서 떠들고 있었다니...
그래도 혹시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는가 궁금하여, 그자리를 꾹 참고 지켜봤던 관객에게 "그 사람이 무슨 설명 하던가?"하고 물어봤다. 그 관객 왈, "하도 자기 집안 자랑을 해서 듣기 역겨웠지만 그냥 그래도 무슨 새로운 얘기를 하나 싶어서 참고 들었는데, 귀따갑게 집안 자랑만 해서 아주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나만 그런것 같지가 않고, 거기 모여 있넌 사람들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하도 자랑이 늘어져서, 다 듣고 난 후에도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분이 나빴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 안 듣고 내 시간을 보내길 정말 잘 했다. (처음부터 싫더라구. 그래서 잽싸게 빠져나왔지.)
그래서 내가 겪어본 미술관 안내인들, Docent 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사람들을 기억을 더듬어 살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왜 빅토리아의 몇마디만 듣고 그 자리를 도망쳤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한, 미술관의 도슨트 (Docent)들은 안내와 관련된 소정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 중에는 미술대를 졸업한 전문 미술인들도 있어서, 지식도 대단하고, 설령 미술인이 아니더라고 충분히 자료를 연구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설명이 매우 절제되어 있다. 목소리도 차분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에도 과장을 하거나 극적으로 자기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찌보면 무미건조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극히 절제된 설명을 통해서 우리는 작품에 각자의 주관을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내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만났던 안내원중에서 맘에 안 들었던 사례는, 별로 없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된 안내인은, 지나치게 자기 개인적인 설명이 많고, 개인의 주관을 많이 이야기하고, 관객한테 자기가 뭘, 어디를, 왜 좋아하는지 자꾸만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안내인에게도 주관이 있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선호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너무 드러내면, 설명 듣는 관객은 미술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인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그림 감상하러 갔다가 엉뚱하게 어떤 사람의 이야기나 듣다가 오는 꼴이 되고 만다.
빅토리아의 문제는 미술관에 미술품 보러 온 사람들, 작품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혹은 심도있는 안내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기껏해야 자기네 집안 자랑을 하는 것으로 서비스를 열심히 하는 것에 있었다. 그이는 매우 열정적이었고 활발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삼촌이나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미술가, 미술가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안내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Brandwine River Museum 에서는 전문 안내인을 따로 고용하는 것이 더 나을것 같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미술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안내인을 나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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