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시혼 미술관에 갔을때 (http://americanart.textcube.com/72) 지하 전시장에서 특별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기획전은 2008년 12월에 공개되어 2009년 11월 15일까지 전시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50일쯤 날짜가 남아 있다. 명색이 '미국 미술'을 집중적으로 공부해보고자 블로그를 열고 나서, 내 시각이 어떻게 바뀌는가하면, 분명 이 '몸' 전시회를 그간 몇 차례 심심풀이로 보고 지나쳤지만, 상세히 들여다 본 적은 별로 없었다. '특이하군' 하고 지나쳤을 뿐이다. 그런데, '관심'을 갖고 작품들을 살피기 시작하자, 평소에 발견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일단, '미국미술'에 집중하겠다고 작정한 후부터는 작가가 'American'인 경우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몇차례 입으로 그의 이름을 옹알거려 보게 된다. (혹시 내가 잘 모르는, 대단한 사람은 아닐까?). 그리고, 작품들을 멀리서 가까이에서 살피면서 작품에 내게 던지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시간이 늘게 된다. 작품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제목이나 작가 이름, 제작 년도, 혹은 큐레이터가 친절하게 덧붙인 설명도 꼼꼼하게 읽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미술을 '읽은' 사람 쪽인것 같다. 이런 나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관찰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 미술품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다가 문득, 유럽미술을 발견할때, 아, 유럽미술이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보고 싱긋 웃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나의 '상식 수준의 교양'의 토양이 된 것은 유럽문화, 유럽 예술인듯 하다. '한국인'이 교양의 토양을 유럽에 둔다니 무슨 말일까? 물론 나는 한국인이고 나는 한국의 토양에서 성장했고, 설령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미국에서 살다 죽는대도 나는 한국인인 나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보통의 대학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의 교양을 논할때, 무엇이 그들 교양의 토양인가 생각해보면, 우선 '한국' 혹은 아시아의 정서는 기본으로 깔고, 서양을 돌아볼때, 우리는 유럽식 문화에 친숙하다는 것이지. 요즘 신세대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유신시대의 아이들의 교양은 유럽 토양이다. 우리는 '미국'이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고, 영어도 '영국'영어가 고상하고, 미국 양키영어는 싸구려 영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그렇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하). 심지어 미국에서 생활하는 수년간 이런 내 고정관념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미국은 돈만 많은 천박한 국가. 촘스키 선생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나라. 저 편할대로 여기저기 공격해대면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들. 이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무식한 대중. 철학도 교양도 없는 나라.
지금도, 미국에 대한 내 정치적인 시각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워싱턴과 뉴욕을 슬슬 드나들면서, 이들의 촌스럽고 서툴게 느껴지는 예술작품들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나는 미국을 이해하고 미국에 대한 애정을 품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앤디 워홀이나 그 대단하다는 21세기 미술가들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풍요가 낳은 '뻔해보이는' 미술이라고 속으로 종알거리고 싶어진다. 이는 나의 편견일것이다. 워홀이나 폴락 류의 너무나 유명해서 이제 재미가 없는 작가들 보다는, 촌스럽고 서툴지만 '나의 미국'을 표현했던 초기의 미국 미술가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의 '조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해서 애정의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의 '조국.' 한국이 이 별볼일 없는 나의 조국이듯이, 미국 역시 평범한 어떤 사람들의 고향이며 조국이리라. 이 평범한 사람들의 고향으로서의, 그리운 조국으로서의 미국을 나는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미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인데, 여전히 나의 기본 토양 '유럽 문화가 대단하지, 미국 문화 볼 것 없다'는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미술관에서 미국 미술 실컷 보고나서 유럽미술관으로 이동할때, 갑자기 '고향'의 친구를 만난듯 그들이 반가워진다는 것을 솔직히 털어 놓을 수 밖에. 미국 미술이 서툰대로 그 맛이 있다니깐... (수천년 전통을 쌓아온 유럽미술, 그 중에서도 대단하다는 것만 사들여서 대단하게 채워놓은 유럽미술 전시실의 작품들과, 겨우 300년 쌓아온 미국미술과 게임이 되는가 게임이...)
허시혼의 '이상한 몸 (strange bodies)' 기획전에는 미국과 유럽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뜻밖에 내가 발견하고 기뻤던 작품들은 르네 마르그리뜨의 회화와 조각품들! 오, 르네 마르그리뜨( http://en.wikipedia.org/wiki/Ren%C3%A9_Magritte ) 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 밖에도 유쾌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전시장을 스케치 하는 것으로 이 페이지를 정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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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전시장 입구. 제목 strange bodies 가 보이고, 안내글도 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경비원이 한가롭게 서있다. 입구 바깥의 벽에 르네 마르그리뜨의 청동 조각작품 두점이 있었다. 대개 미국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영구 소장품의 경우 사진 촬영에 관대하다.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미술품에 영향을 끼치니까 어차피 내가 사랑하는 미술품 보호 차원에서도 이것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외부 미술관이나 콜렉션에서 빌려다가 특별 기획전을 하는 경우 대개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그러므로 상설전시장을 돌때는 안내원에게 물을것도 없이 편히 사진 촬영을 하면 되고, 특별 기획전일 경우에는 경비원이나 안내원에게 미리 물어보는 것이 좋다. "사진 찍어되 돼? Is it o.k. to take pictures? Is photography allowed here?" 그러면 대개는 간단히 답을 해 준다. "No photography here." (여기선 사진 찍으면 안돼) "O.K. but no flashes here (괜챦아, 플래시로만 찍지마)" 대략 이런 답을 해준다. 어떤 안내인은 사진 찍지 말라고 말하면서 혹시 내가 마음 상할까봐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왜 사진 촬영이 금지되는지 설명을 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오히려 그가 더 미안해한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특별전시도 아닌데 유독 어떤 작품을 사진찍으려고 하니까 안내인이 진땀을 내면서 사진 찍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작품을 얼핏 들여다보니 "On Loan" 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다른 곳에서 빌려다가 전시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얼른 그 딱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Oh, I see, it's on loan. That's why, huh? (알았다.이거 빌려 온 거구나. 그래서 사진 못 찍는거구나)" 했더니 그가 대답대신 내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웃었다. 네말이 맞다는 말이다. 아, 어떤 기획전에서는 내가 '점 찍어놓고 그거 보러 간' 그런 작품이 있길래 사진을 정확히 한장 찍었는데, 그때 안내인이 다가왔다. "No photography, please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요)" 아 그래서 나도 멋적게 "O.K. I see" 하고 나왔는데, 나오면서 싹 웃었다. 하하. 내가 원한 사진 찍었으니깐. 물론 이경우 미술관 인심이 후해서 그냥 찍은것에 대해서는 별 말 안한다. 그냥 주의만 주는 차원이다.
저 사진속의 경비원에게 "Is photography o.k.?" 하고 물으니, "Oh, sure, but without flashes, alright?" 한다. 맘놓고 사진 찍게 해주니 고맙지.
앗참, 참고로, 뉴욕 맨해턴의 휘트니 미국 미술관이 큼직하고, 미국 미술품이 아주 많은데, 이곳은 전관 사진촬영 금지다. 이곳에 미국 현대회화가 많고 특히나 내가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Edward Hopper 의 그림이 아주 지천으로 깔렸는데...전관 사진촬영 금지라서 짜증이 난다. 너무해 너무해! (한탄해도 소용없다...)

이것이 바로 르네 마르그리뜨의 The Healer (치유자) 1967년 작품이다. 전시장 입구 통로에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왼편, 전시장 입구 왼편을 지키고 앉아있다.

역시 르네 마르그리뜨 Delusions of Grandeur 1967

위의 조각 작품과 동일한 주제의 회화 Delusions of Grandeur (1948)


Philip Guston (http://americanart.textcube.com/54) 의 작품도 보인다. Daydreams 1970

Ron Mueck (Australian) Untitled/Big Man (2000)
장난기가 발동하여 부분 촬영 해 봤다. 이 사람 정말 크다. 실물의 다섯배쯤 되려나. 그런데 들여다보면 기가막히게 사람 같다. 하하.




John Currin, American, The Pink Tree (1999)

Robert Gober 1990 (무제)

Belthus (1908-2001 French) Brother and Sister (1936)
왜 이 평범해 보이는 작품이 '이상한 몸' 기획전에 포함된 것인지 작가의 배경을 잘 모르므로 나는 알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오누이 그림으로 보이는데. 단, 이 그림이 꽤 오래 내 빌갈을 붙잡아 놓았다. 누이의 표정이 불안하고 우울해보이는것이 눈길을 끈다.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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