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고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앞에는 초록 동굴같이 무성한 나무가 들여다보믄 창문이 하나 있고, 창문 옆 벽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구입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림의 제목은 '케이프 코드의 아침 (Cape Cod Morning). 1950년 작이다. 아침 햇살이 쨍하고 눈이 부신데, 숲가에 흰칠을 한 목조 주택이 있고, 그 안의 창가에서 한 여자가 상체를 앞으로 내민채 창밖을 내가보고 있다. 집 너머 숲은 아침 햇살을 받은 부분은 밝게 빛나지만 그 빛때문에 아래 그늘은 더욱 어두워 보인다. 여자의 눈동자도 그 숲의 그늘처럼 어둡다. 그림 가까이에 가서 들여다봐도 이여자의 표정을 읽을수가 없다. 여자는 한없이 내다보고 있기는 한데, 이 여자가 왜 여기 이런 자세로 서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무슨 뜻인가하면, 이 그림은 우리에게 어떤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여자가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내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이 그림 포스터를 발견한 것은 2008년 5월, 이곳을 처음 방문하던 날이었다. 뮤지엄샵에서 이 그림 포스터를 발견했을때, 이유를 알 수 없는채로 이 그림에 끌렸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 그림이 전시장에 걸려있지 않았었다. 나는 이상스럽게 나를 잡아 끄는 이 포스터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안달안달 하듯이 고민을 하다가 그냥 빈 손으로 돌아섰었다.
왜냐하면...나는 이 매력적인 그림이, 무-서-웠-다.
왜 무서웠냐하면, 이 그림속의 여자가 '박제'처럼 보였기 때문인데, 그림에 마술적 힘이 있어서 내가 이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보다보면 나도 박제가 될 것만 같아서였다. 내가 박제가 될것만 같아서.
올해 봄(2009)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때, 전시장에 나와 걸려있는 원화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웠다. 원화는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큼직했고, 그림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포스터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환한 아침 햇살속에 그 여자가 여전히 서 있었다. 그 날도 나는 뮤지엄 샵에서 포스터를 발견하고, 살것인가 말것인가 망설이다가 역시 빈손으로 돌아섰다. 나는 아직도 그 여자가 무서웠다. 그여자의 박제같은 풍경이 무서웠다. 쓸쓸함이나 고독감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이었다.
지난 여름, 내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갔을때, 나는 내가 늘 그러하듯,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이 잘 있는지 살피러 돌아다니다가 전시장의 이 여자를 다시 만났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고, 나는 이 여자가 아주 가깝게 여겨졌다. 그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이 그림의포스터를 샀다. 그리고 내 방 책상앞에 붙였다. 그날부터 나는 박제가 되어갔다. 내 시간이 서서히 정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속의 여자처럼 매일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황혼의 저녁 햇살이 지나가며 동쪽에서 달이 떠서 밤새 내 창가를 기웃거리다가 사라질때까지 창을 내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말 수가 줄어들었고, 잘 웃지 않게 되었으며, 표정이 서서히 지워져갔다. 나는 고요해졌다.
나는 때로, 저 그림을 떼어내어 박박 찢어서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리면 내가 이 마법에서 풀려날까? 상상을 해 보지만 그대로 저 여자를 저기에 붙여 놔 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자 자신이 자신의 별이며 그 별은 주어진 운명을 정해진 그 시간에 받아들여야하며, 나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영원속에 존재하므로. 나는 한걸음 한걸음 영원의 베일속으로 가는 중이므로 새삼스럽게 박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Cape Cod 와 관련된 일련의 그림들을 그렸다.
Cape Cod Morning (1950)
Cape Cod Afternoon (1936)
Cape Cod Evening (1939)
이 외에도 그의 Cape Cod 그림은 많이 있다. 그런데 케이프 카드의 아침, 오후, 저녁 그림의 제작 년도를 살펴보면, 그는 오후, 저녁, 그리고 아침의 순서대로 그림들을 그려나갔다. 케이프 카드의 아침(1950)이 그가 완성시킨 하루의 최종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퍼가 의도했으리라고 보지 않지만, 그의 그림들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그가 '아침'을 최종적으로 구현해 냈다는 것이다. 그는 케이프 카드의 오후-저녁-아침을 차례차례 그렸다.
교양 차원에서 내가 가끔 들여다보는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편을 읽다보면, 내게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웹에서 NIV 텍스트를 카피해왔다:
http://niv.scripturetext.com/genesis/1.htm
1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Now the earth wasa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3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5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first day.
3절을 보면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하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이 보기에 빛이 좋더라, 그래서 그는 어둠으로부터 빛을 따로 떼어 놓았다. 하느님은 빛을 '날,' 이라 부르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그리고나서 저녁이 오고, 그리고나서 아침이 왔다 - 그것이 첫 날 이었다.
정리하자면, 빛과 어둠을 분리하여 낮과 밤이 생겨났는데, 저녁이 오고 아침이 왔을때 그것이 첫 날 이었다고 한다. 나는 창세기의 이 이야기를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자 꽤나 깊이 사색을 한 적이 있다.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는 것은 무슨 원리인가? 우리는 대개 하루의 시작을 아침으로 정하지 않던가? 그런데 창세기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것을 첫 날로 삼고, 그 다음날도 그러하고, 그 다음날도 그러하고... 나는 충실한 기독교인들과는 성서 이야기 하기를 저어하는 편인데, 신념에 찬 설교를 듣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점이 궁금하여 신학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면 이 겸손한 친구들은 나의 '이교도적인 냉소주의'를 잘 아는지라 깊은 설명을 생략하고, 우물거리다 지나가고 만다.
그러다가 나 혼자 한가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하루의 시작은 '자정'에서부터이다. 24시가 지나면 새날이 온다. 그러니까 하루의 시작은 밤이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그 자신 의식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바이블속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듯 케이프 카드를 그의 화폭안에서 창조해냈는데, 태초에 오후가 있었고, 저녁이 왔고, 그리고 아침이 왔더라. 그 아침은 영원한 박제와 같은 아침이더라...
나는 박제된 아침의 시간 속에서 영원히,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여자를 지켜보고 있더라.
Cape Cod Afternoon (1936)
Carnegie Museum of Art

Cape Cod Evening (1939)
워싱턴 국립 미술관 소장
Cape Cod Morning (1950)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소장

2009년 11월 7일에 피츠버그의 카네기 미술관에서 Cape Code Afternoon (케이프 카드의 오후)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오후, 저녁, 아침 삼부작을 모두 카메라에 담을수 있게 되었다.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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