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7일 수요일

Mortal, but Immortal

When a little more deliberation in the choice of their pursuit, all men would perhaps become essentially students and observers, for certainly their nature and destiny are interesting to all alike.  In accumulating property for ourselves or our posterity, in founding a family or a state, or acquiring fame even,  we are mortal; but in dealing with truth we are immortal, and need fear no change nor accident.  The oldest Egyptian or Hindoo philosopher raised a corner of the veil from the statue of the divinity; and still the trembling robe remains raised, and I gaze upon as fresh a glory as he did, since it was I in him that was then so bold, and it is he in me that now reviews the vision.  No dust has settled on that robe; no time has elapsed since that divinity was revealed.  The time which we really improve, or which is improvable, is nether past, present, nor future.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 뭔가하면,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학생' 혹은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이나 관찰자의 속성이나 운명은 모두에게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나 후세를 위해 재산을 모은다거나, 가정 혹은 국가를 이룬다거나,  또는 개인적 명성을 얻는것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은 결국 죽고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진리를 대하는데 있어 우리는 영속적이며 변화나 사고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고대의 이집트 혹은 인도의 철인은 신의 조형물을 덮은 베일의 끝자락 일부를 들어올린바 있으며,  아직도 그 미세하게 흔들리는 베일의 끝자락은 그대로 올려진채 있다.  나는 이 들어올려진 끝자락을 통해 고대의 철학자가 보았던 그 신선하고도 영광스런 자태를 올려다본다. 고대의 철학자 속에는 그 당시 그토록이나 용감했던 나 자신이 들어있었던 것이며, 오늘날 이를 다시 살피는 이는 내 속의 그 철학자 인 것이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베일자락위에 먼지 한톨도 내려 앉지 않았다.  신성이 최초로 발견된 이래로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가 향상시켜 나가는 시간은, 혹은 우리가 진보시켜 나갈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것이다.

 

--Henry David Thoreau, Walden (Reading) pp.82

 

 

Edward Hopper 가 즐겨 읽은 사람들은 Ralph Waldo Emerson, Henry David Thoreau 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의 태도와 이들 철학자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Hopper 의 삶의 태도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Emerson 이나 Thoreau 에 대한 이해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로 확장 될 수도 있겠다. 이들은  미국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인 스승이며 친구들이기도 했으므로. 이들의 Self-Reliance 정신과,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 근대화가들의 성향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어느 선까지 정리를 해야 할지 난감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

 

위로가 되는 것은, 며칠전에 집에 있는 알란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에서 그의 '호퍼'관련 챕터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지금 호퍼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 된 상태에서 알란 드 보통의 글을 다시 살펴보니 그의 그 맛깔스럽고 매력적인던 글이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참 대충 쓴 글이군.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였군.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글을 너무 심각하게 쓰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기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 시각으로 풀어내도 될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호퍼의 개성을 정리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역시 알란 드 보통은 재주가 뛰어나다.)

 

 

오늘 아침 Thoreau 의 이 글이 내게 고요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고대 이집트의 철학자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  써로우가 하늘을 보며 감탄할때 그 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  지금 내 속에 써로우가 있단 말이지. (재미있는 발상. 위로가 되는 발상.)

 

 

나의 관점은 이러하다:

 

Edward Hopper 는 Robert Hughes 의 설명에 의하면 Solitary Watcher (외토리 관찰자) 였다.  호퍼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평생 조그만 아파트를 자신의 거주지로 정해놓고 살 정도로 정적인 인간이기도 했다.  그가 생활이 핀 후에도 (그가 그림을 팔아 떵떵거리고 살정도로 부자가 된 후에도) 공중화장실을 써야하는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냥 눌러 산것은  그가 이런 일상적 삶의 양태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동떨어진 관찰자였고, 그렇게 동떨어진 자세를 견지하며,  사람들 곁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서늘하게 들어섰다. 그는 말없는 관찰자였고,  오직 그림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외쳐댔다. 그는 고요했지만, 그의 고요한 그림의 울림은 미국을 흔들었다.

 

헨리 데이비드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는 Edward Hopper 가 즐겨 읽던 작가였다.  써로우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생활한다거나,  세금 내지 않겠다고 일인 시위를 벌이며 '시민 불복종'을 외치다가, 파출소 유치장 신세를 진다거나, 산속을 떠돌며 자연을 관찰하면서 외토리처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미국의 지식인들의 양식이 되고, 추억이 되고, 울림이 되고, 그리고 세계의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검소하게 살다가, 궁핍하게 죽어갔으나, 그의 책은 재벌들의 금장 저택 서재에서부터 가난뱅이 학생의 찌그러진 책상에까지 파고들어 이들의 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써로우나 호퍼나 서로 외토리, 외고집, 은둔자라는 면에서 일치하고, 미국이 자랑하는 '고유의 미국인'이라는 점에서도 서로 통하며, 이들이 '미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간것도 닮았다.

 

이들의 삶을 관찰해보면, 외고집쟁이들의 '승리'를 읽게도 되는데,  여러가지 경영관련 처세술 책, 잘 먹고 잘살자 노래부르는, 혁신을 외치는 책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밥을 혼자 먹지 말라' '사람들과 자꾸 어울려라' '사교 골프를 치지 왜 안치냐' 뭐 이따위 대단한 금언들이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혼자 자기 구멍만 파면서 동떨어져 살아도, 난놈은 나는거고, 남이 나를 알아달라고 외쳐대지 않아도, 난놈은 저절로 세상이 알아본다는 것이지. 세상에 아첨하며 살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는 것이지. 하하 (또 이상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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