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Where the wild things are: 작가, Maurice Send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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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

 

작가소개: Maurice Sendak

 

 

 

 

그림동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괴물들이 사는곳)의 이야기와 그림를 만들어낸 사람은 동화작가이면서 삽화가이기도 한 Maurice Bernard Sendak (모리서 버나드 센닥) 입니다. 1928년생이고 2009년 현재 생존하는 작가이므로 올해 81세가 되겠군요.  센닥 자신은 뉴욕의 부르클린 (Brooklyn)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폴란드계 유태인입니다. 열두살때 디즈니의 '판타지아'를 보고나서 삽화가 (illustrator)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지요.  그는 Where the wild things are 라는 출세작을 1963년에 선보였는데, 그 이전까지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주로 다른 사람들이 지은 책의 삽화를 그리면서 습작 기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또다른 작품 'In the Night Kitchen (밤에 부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은 1970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 미키가 하필 나체로 꿈속에서 노니는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여러주에서 '금서'지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리노이주, 뉴저지주, 미네소타주, 텍사스주에서 여전히 금서라고 합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벗었길래 아동 그림책이 선정성이 문제가 되어 금서가 되는걸까요? 

 

 

 

자, 이렇게 '다 벗은' 사내아이가 등장 합니다. 뭐 생식기및 고환이 다 드러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결국). 이 아이가 이리저리 뛰놀때, 뒷모습이 보일때는 뒤에서 잡히는 고환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린 남자애 다 벗고 노는것이 왜 문제가 되어서 일부 주에서 금서로 지정을 한 것일까?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금서로 지정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너라면 너도 금서로 지정하는데 찬성할래?' 하고 묻는다면, 금서지정에 찬성을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서지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들 백일사진, 돌사진 찍을때, 옛날에 제가 어린 시절에는 남자아이들 다 벗겨놓고 고추 드러내고 찍은 사진 많았습니다. 동네 사진관 앞에 지나가면 꼭 이런 사진 하나가 진열장에 있었습니다. 사내아이들 고추 다 드러내고 노는 것은 예사였고, 여자 목욕탕에 꼬마 아이들이 고추 내밀고 돌아다니기가 예사였습니다.  애 엄마는 자식 데리고 들어와 씻기는 일이지만, 아무튼 남자 고추는 일정 연령까지는 공공장소에서 내 놓기가 예사였습니다.  여자 아이는 안그랬습니다. 백일사진 돌사진에 여자아이 벗겨놓고 찍은거 본적 없죠. 여자아이는 아랫도리 벗고 공공장소에서 노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남자고추는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자랑하듯' 과시하는 지경이고, 여자의 아랫도리는 은폐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권력행사하고, 과시하고 이런데 익숙해지고, 여자는 은폐하고 가리고 숨는데 익숙해지지요.  이런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남자아이가 고추 내밀고 노니는 어린이 그림책이 -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충분히 남근중심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 고추 드러낸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하필 남자아이 혼자서만 고추 내밀고 노는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문화가 문제가 된다고 보는 편입니다.  남자 여자 둘다 벗겨놓고 천국의 아이들처럼 뛰놀게 하던가, 그것이 힘들면 적당히 입혀주던가. (공평하게). 이것이 내가 '금서'로 지정하는데 일부 긍정하는 시각이고, 딱히 금서일 필요까지 없다고 보는 이유는 그림책 자체의 본래 의도가 남근중심에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하하하. 센닥은 최근에 2008년 뉴욕 타임스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동성애 파트너와 50년 이상을 함께 살아왔다는 고백 - 일명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스콜라스틱 DVD에 그의 문제작들의 동영상이 실려 있어서 세밀하게 관찰할수 있었습니다.

 

그의 Where the wild things are 는 1979년에 드라마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오페라나 발레 무대의 배경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여러차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Where the wild things are 에 나오는 도깨비들은, 폴란드계 이민자들이었던 그의 친척 아저씨 아줌마들이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이민자들이라 영어가 서툴러서 이상스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그의 이야기책에 응용한 것이라고. (하하하) 제가 이민자 영어 문제에는 유난히 각을 세우고 들여다 보는 편입니다.  전공이 전공이다보니까.  근래에 소개된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에 올빼미 두마리가 나옵니다. 올빼미는 그냥 뭐라뭐라 지저귀는 수준이라, 그가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들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올빼미의 친구들은 그 올빼미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아듣는것 같습니다. '캐롤' 도깨비가, "난 올빼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수가 없어" 하고 투덜대자, 맥스도 고백합니다,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도깨비들을 서로 알아듣는것 같은데...  이 장면에서 나는 소통의 은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말'을 알아들을때,  그 '말'은 단지 입에서 나오는 '언어적 구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그 너머에 뭔가 있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이 영화 DVD가 나오면, 문제의 이 장면을 학생들에게 틀어주고 이 현상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궁리까지 하게 됩니다.)

 

 

 

In the Night Kitchen 에서 작은 요리사들이 미키를 오븐에 구우려고 한 장면은 유태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 (나찌의 유태인 학살)를 풍자한 장면이었다고도 합니다.  최근에 소개된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2009) 는 1973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센닥은 필라델피아의 Rosenbach Museum and Library (http://www.rosenbach.org/home/home.html) 에 그의 작품 대량을 기증한바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가게 되면 이곳도 들러보고 싶어집니다.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많군요.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겁니다. 필라델피아는, 삽화가 illustrator 들에게는 메카 같은 곳인것 같습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이 대개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여 뉴욕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삽화가'들은 대개 그들의 그림을 필라델피아로 보냅니다.  필라델피아가 '출판'의 메카였던 시절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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