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imdb.com/title/tt0805564/
사람이 평생 갖게 되는 '보이는/보이지 않는 상처.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필요한 요소들로, 저자/감독은 친구, 가족, 마을사람들(공동체), 전문가 (정신과의사) 등이 어떻게 서로 협조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코미디.
Lars의 엄마는 난산으로 Lars 를 낳고 죽는다. 그 결과 Lars 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키우며 우울하게 살다가 사망한다. 큰아들은 우울한 아버지를 못견뎌하다가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아들 Lars는 아버지가 죽고 형의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후 별채 주차장 구석에 붙어있는 방에서 따로 생활한다. 큰아들 부부는 Lars 에게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만 Lars 는 별채에서 따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 Lars는 착하고 성실한 직장인이고, 꼬박꼬박 교회에도 출석하는 착한 젊은이이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 마을 사람들은 Lars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Lars가 착하고 상냥한 젊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 Lars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거나 만나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다.
어느날 Lars는 '섹스돌'이라고 할만한 인체와 똑같은 '인형'을 주문하여 집으로 배달시킨다. 그리고 '비앙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Lars를 위하여 모두 '섹스돌 비앙카'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우한다. Lars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자세가 천국의 사람들처럼 선량하다. 코메디에서만 가능한 상황일것이다. 그래서 코메디가 좋다.)
정신과의사와의 대화에서 Lars 의 문제가 조금씩 발견된다. Lars는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 죽을때까지 '우울'했던 아버지 때문에 어떤 죄의식을 안고 평생 살아왔을지 모른다. Lars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무척 아프다고 고백한다. 악수를 하거나 누군가와 스쳐도 불에 데인듯 접촉 부위가 아프다. 그러니 가족이 따뜻하게 안아줘도 Lars에게는 그것이 따뜻한 포옹이 아니고 온몸이 불에 데인듯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의 접촉 통증은 죄의식과 상실감, 우울감이 복합된 심리적 통증일것이다. 게다가 착하고 상냥하기까지 하므로 어디에도 그의 우울감을 표출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의 협조속에 내면의 고통을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Lars와 비앙카의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Lars는 비앙카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고도 하고, 비앙카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은 진심으로 비앙카의 건강을 염려해주고 Lars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비앙카가 죽고 장례식을 치른다. (이는 Lars의 마음속에서 비앙카와 결별하는 과정일것이다.)
인형 비앙카는 Lars에게 무엇인가? 얼굴도 기억할수 없는 엄마 혹은 잃어버린 엄마 (여성)의 총체?
그런데 이것이 Lars만 겪는 일일까? 영화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도 아주 작은 비앙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인형, 혹은 어떤 기념품이 비앙카일지도 모른다. 나 혼자 낙엽을 보며 중얼거릴때, 내 곁에 비앙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잊혀진 애인이 준 작은 선물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비앙카일지도 모른다.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 http://americanart.textcube.com/131 )에서 도깨비들은 꽥꽥대는 올빼미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올빼미가 꽥꽥대는 소리를 '언어'라고 알아듣고 대꾸를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Lars는 '말없는' 인형과 대화한다. 한마디로 저 알아듣고 싶은대로 알아듣고, 저 대답하고 싶은대로 대답하는 것인데, 왜 이런짓을 할까?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미치겠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미칠지경이니까.... 마을사람들이 혹은 영화를 보는 우리가 Lars와 공감하는 이유는, 역시 우리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내 말을 온전히 알아듣고, 서로 온전히 소통할수 있는 비앙카를 간직하고 살아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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