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 채즈포드에 가면 아버지 NC Wyeth 가 가족을 위해 사들인 집과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서 앤드루 와이어드가 태어나고 성장하였다. 앤드루 와이어드가 종종 놀러 가서 그림을 그리던 크뤼너 농장이 있다. 이곳에서 그의 유명한 헬가 시리즈의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일반에 공개가 되지는 않았지만, 멀지 않은 강가에 앤드루 와이어드의 집과 스튜디오도 있다. 그리고 와이어드 3대의 예술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같은 미술관이 있다. 내가 2009년 9월에 방문한 곳이 바로 그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 (Brandywine River Museum)이다. 이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의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심 벽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그림이 그의 1989년작 눈 쌓인 언덕 (Snow Hill)이라는 대형 작품이다.
이 그림 속에는 노화가 앤드루가 평생 즐겨 그렸던 모델들이 총 동원되었다. 그의 아내 베씨도 보이고, 크뤼너 농장 주인인 크뤼너도 보인다. 그리고 가랑머리를 땋은 헬가도 있다. 이들은 어느 나라 민속놀이처럼 보이는 원무를 즐기고 있다. 커다란 기둥을 중심으로 색색 끈을 잡고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움직인다. 아마도 이리저리 교차하여 엮으면서 기둥에 직조를 하는 방식이 아닐까 상상해보게 된다. 눈이 쌓인 언덕이다. 눈이 쌓인 날, 세상이 무섭게 고요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무섭게 흰, 고요한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어느 노화가가 평생 즐겨 그린 모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이들의 웃음소리마저 저 무섭게 고요한 흰 눈이 모두 흡수해 버릴 것도 같다. 언덕 아래로는 그가 즐겨 찾았을 농가도 보이고, 그리고 1945년 그의 아버지와 조카를 빼앗아간 기찻길도 보인다. 이 그림은 1989년에 그려졌고, 앤드루는 2009년 1월에 사망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을 그린 후에도 그는 20년을 더 살았다. 그런데, 이 그림 앞에 서면, 이 그림이 이 화가의 ‘최후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신비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나이 70세를 넘기면서 앤드루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거나, 혹은 그의 건강이 악화되어 그의 마지막 그림을 그리겠다고 작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의 평생을 회고하듯 이 작품 위에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담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 그림의 알록달록한 끈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 눈에는 할머니의 꽃상여를 장식하던 원색의 무늬 같기도 하고, 상여를 따르는 만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화가가 고요한 시선으로 그가 사랑하는 세상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나는 몇 번이라도, 작별인사처럼 ‘안녕…안녕…안녕…’하고 종알거리게 되는 것이다. 눈 위를 스치는 차갑고 고요한 겨울바람이 내 뺨을 스친다. 안녕, 안녕, 안녕…
뉴욕 맨하탄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5층에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는 도중 복도에 걸려있는 그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재 (2009년 10월) 세장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다. 왼쪽부터 앤드루 와이어드의 '크리스티나의 세상' 벤 샨 (Ben Shahn)의 '핸드볼' 그리고 1945년작 ‘해방’ (Liberation http://americanart.textcube.com/85 ). 앤드루 와이어드의 그림과 벤샨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는것이다. '해방' 그림 속의 아이들은 폐허 속에서 둥글게 둥글게 뺑뺑이를 탄다. 아이들은 창백하고, 그림의 배경도 창백하다. 유령처럼 창백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뺑뺑이를 타는 아이들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줄 것이라는 희망을 읽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 창백한 얼굴로 뺑뺑이를 타던 아이였으므로. 나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므로.
앤드루 와이어드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서, 나는 문득 내 머릿속에서 그의 ‘눈 쌓인 언덕’ 장면과 벤 샨의 ‘해방’ 이라는 그림의 장면이 서서히 포개지는 것을 느꼈다. 70을 넘기고 인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노 화가에게 죽음은 어쩌면 영원한 작별이면서 해방이 아니었을까? 벤 샨에게 폐허는 죽음이면서, 이곳에서 원무를 즐기던 아이들은 또 다른 희망이 아니었을까? 벤 샨 (Ben Shahn September 12, 1898 – March 14, 1969)은 1917년생인 앤드루 와이어드보다는 20여 년 연상인, 거의 한 세대 앞선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이다. 벤 샨이 사회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보았고,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그림을 그리기도 했기 때문에 그를 사회적 사실주의화가 (Social Realist)로 분류하기도 한다. 벤 샨과 앤드루 와이어드가 20여 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들의 ‘사실주의적’ 화풍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순서로 보자면 역순이 되겠지만, 앤드루 와이어드 관련 페이지들을 정리하는 대로 벤 샨을 소개하고 싶다.
http://poowa.com/poowaboard/zboard.php?id=poowai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
답글삭제---> 종종 들르는 곳에 이 그림과 관련한 글이 있군요..^^ 클릭해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