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맑음
다음주부터 UVA에서 주니어 생활을 시작하는 지홍이가 오늘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
오전에는 무슨 시험을 치른다고 새벽부터 시험장으로 향했고, 정오쯤에 픽업하여
새로지은 밥과 국과 고기를 온가족이 함께 식탁에 모여서 먹고
어제 챙겨놓은 보따리들을 챙겨서 집을 나선것이 오후 한시반.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서 차에 개솔린을 가득 채웠고
Bank of America 에 들러서, 내 비상금 계좌에서 현금을 꺼내서 지홍이가 급히 쓸 용돈을 챙겨주었다.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오후 네시에 길을 헤멜것도 없이 곧바로 지홍이에게 배정된, 법과대학 맞은편의 기숙사동에 도착.
한시간 가까이 짐을 풀어주고, 곧바로 집을 향해 출발했다.
녀석의 방을 정리해주고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고 싶었으나
곧바로 기숙사 오리엔테이션 행사와 만찬 행사가 있다고 해서, 짐만 대충 옮겨주고 빠이빠이하고 떠났다.
녀석은 내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듯 하더니
주먹으로 눈을 가리고 서있다.
제 아빠와 공항에서 헤어질때도 저러고 서서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니
또 그러고 서있다.
나는 그냥 차를 끌고 기숙사 구역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다가, 길가 아웃백 스테이크에 차를 세우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찬홍이는 돼지 갈비구이를, 나는 썰로인 스테이크를 먹었다.
역시 식당을 출발한지 두시간만인 여덟시 반에 집에 무사히 도착.
지홍이네 학교는 집에서 왕복 네시간 거리이므로 부담없이 아무때나 다녀올 거리라서 참 좋다...
멀리 떠나보낸것 같지가 않다.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 엄마인가.)
돌아오는 길에 찬홍이에게, "학교가 가까워서 참 좋구나. 너도 그냥 UVA들어가라"고 부탁을 했다.
찬홍이도 UVA에 들어가 준다면 좋겠다.
한국을 떠나온지 만 8년이 넘었고,
미국땅에서 나혼자 애들을 거느리고 살아온 세월은 그중 절반쯤 된다.
만 4년간 나 혼자 애들을 키우고 살았고
지난 3년간은 애들 아버지가 함께 있어줘서 의지가 되었었는데,
이제는 다시, 나를 중심점으로 가족들이 한국에, 샬롯츠빌에 떨어져있다.
내 가족들이 나를 의지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들의 안식처로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가 중심점처럼 여겨진다.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겠으나, 나는 특별히 임무가 무겁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눈물이 나올것 같으면 어금니를 꽉 물고, 그 순간을 모면하는데 익숙해졌다.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한가지로, 나는 내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질금거리지 않는 노선을 선택했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다.
마당에서 울고 서있는 녀석을 놓아둔채 떠나온 내 속타는 심정을, 세상의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내 눈에는 그 아이가 세살짜리 꼬마처럼 보인다.
내가 안고, 업고,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켰던 그 아이가 마당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내게 돌아와주기 바란다.
이제는 내가 의지할수 있는 어른이 되어서 나를 찾아주길.
아들은 울어도 좋다.
하지만 엄마는 죽을때까지 자식앞에서 울지 않겠다.
집 떠나기 전에 아파트 현관 앞에서 지홍이와 찬홍이

매일 왕눈이가 오줌을 뿌려대는 현관 앞 베고니아 화분 앞에서, 형제.

형의 짐을 모두 차에 날라다 실어놓은 찬홍이

베고니아 화분에 걸터 앉아서

지홍이에게 배정된 기숙사 건물
저기 보이는 지홍이의 삼양라면 박스~

현관에서 내다본 풍경.
나무밑 은색 자동차 ==> 내꺼.

지홍이의 기숙사 건물 이름: 보이드 하우스

현관 문 열고 들어가면, 거실에 해당되는 홀이 있고,
방 두개가 나란히 있다.
방 하나를 두명이 사용한다. (방 하나에 침대두개, 책상 두개, 옷장 두개)
그러니까 네명이 거실과 부엌을 공유하여 생활한다.

부엌시설은 생각보다 넓어 보일정도였고, 냉장고는 우리집 것 만했다. 네명의 학생이 공유하기에 넉넉해보였다.

나는 그냥 침대보 씌워주고, 정리좀 해주고, 나머지 짐은 알아서 하라고 그러고 나왔다.
부엌이 있어서 밥 해먹을수 있으므로, 밥 해먹을 도구 모두 챙겨서 줬다.
(책상위에 라면 한상자, 그 위에 집에서 쓰던 냄비가 보인다).

사실, 기숙사 살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해전에 내 조카가 내가 공부하던 대학으로 유학을 왔을때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서 기숙사 살림을 챙겨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번에도 대충대충.

헤어지기 전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작별 드라마를 연출한 지홍이와 찬홍이.
만 3년 차이로 태어나 그동안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적이 없었던 형제이다.
이제는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
가족은 떨어져있건 함께 지내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믿음으로 나 역시 하루하루를 버틴다.
우리들은 잘 살아낼 것이다.

아이들 모습이 아주 의젓하군. 헤어져 사는 것도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을 아이들도 느끼게 되겠지. 엄마는 항상 강한 법!
답글삭제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King - 2010/08/22 10:58
답글삭제나 걱정 시키지 않으려면
매일 운동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음악회도 가고
맛있는거 먹고
재미있게 지내고 계셔.
내가 임무 완수하고 금의환향 할 것인즉~
@Anonymous - 2010/08/22 13:37
답글삭제아, 뭐 저라고 마냥 평화롭고 지혜로운 엄마가 아니라서요
바로 그 전날까지 "이 새* 너 이따위로 하면 대학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뭐 이러고 아파트 벽에 금이 가도록 소리지르고 야단치고 으르렁대고, 뭐 그랬습니다요. :)
심지어는 꿈에 "야 너 이 새* 내가 담배피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왜 담배 피고 지랄이야! 이러고 발길로 애를 걷어차기도. 그런데 정말 자다가 벽을 걷어찼기때문에, 발등에 시퍼렇게 멍이... (-.-) 찬홍이가 무슨 일인가 뛰어오고.
얼마전에 담배피는걸 '적발'을 해서 "너 죽고 나죽자" 이러고, 자식의 담배를 빼앗아서 내가 빡빡 피워대니까, 애 표정이 죽을맛이 되던데. 이제 장난으로라도 안핀다고 약속했는데, 담배 피울까봐 걱정도 되고요...
아이고, 걱정이 끝도 없어요.
내 힘으로 되는것이 하나도 없으니.
신께 녀석을 맡기는 수밖에.
(아이고 하느님. 이제 나도 모르것소. 우리 지홍이좀 잘 키워주소.)
이젠 지홍님의 댓글을 볼 수 있는 건가요 :)
답글삭제이 글을 읽으니, 내년에 꼭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둘도 부족하겠어요 ㅠ.ㅠ
@emptyroom - 2010/08/23 07:10
답글삭제우리 애들의 '회피인물 1호'가 모친이기때문에, 아마 안 올걸요~
형제 (siblings)는 많을수록 좋지요. 키우기가 어려워서 그렇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