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때, 나는 내 친구들 선후배 사이에서, 허우대는 멀쩡해가지고 달리기 지지리도 못하는 사람으로 찍혀버렸다. 이유는, 대학 신문사에서 3년을 보냈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가을 체육대회 마지막날, 학교에서 출발하여 산너머 남자대학까지 달려갔가 오는 작은 마라톤을 했다. 산을 끼고 이쪽에 우리학교, 저쪽에 이웃대학이 있었는데 그 산을 대충 돌아오는 코스였다. 어느해에 우리 신문사 학생들도 단체로 참가를 하여, 하는수 없이 나도 거기 끼어야만 했는데 나중에 달리기를 마치고 (아니 후반엔 그냥 걸었다) 돌아오니 운동장에 사람들도 별로 없고, 신문사 후배들이 남아서 나를 기다리다가 눈을 흘겼다.
"아이구, ** 선배 운동선수인줄 알았는데, 뭐야 이거, 오다가 어디 앉아서 술 푸다 온거야?"
후배들은 내가 선두그룹에서 도착했을거라고 두리번거리고 찾다가, 해가 기울어서야 어슬렁거리는 꼴을 보고 한심해서 혀를 차며 나를 사기꾼 보듯 했다. 내가 뭐 어쨌다구. 내가 달리기 잘한다고 말한적 있어? 내가 처음부터 마라톤따위 싫다고 했는데 끌어 들여놓고는. 내 친구들이나 후배들은, 내 다리가 실하고 근육질이니까, 운동선수 출신인줄 알았댄다.
사실, 내 다리가 튼튼해보이기는 하다. 그래서 순전히 이 다리때문에 초등학교때도 반대표로 달리기 대회에도 끌려나가고 그랬다. 물론 내가 출전해서 상 타온적 한번도 없다. 선생님이 달리기 실력으로 선수를 뽑아야지, 다리를 보고 선수를 뽑은게 잘못이지. 내가 거짓말 한 적은 없다.
어느해에는 학교에서 언론사 대학 체육대회를 했다. 대학마다 방송국, 한글신문사, 영자신문사, 교지 편집실 뭐 그런것이 있는데, 나는 영자신문사 소속이었다. 내 '체격'을 믿은 내 선후배들이 나를 릴레이 달리기 팀에 넣어버렸다. 나한테 묻지도 않고. 아 왜 묻지도 않고 멋대로 나를 ... 결국 우리팀은 '우승'하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못달렸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열심히 사력을 다해서 달리지만, 빨리 달리기를 잘 해내지 못했다는것 뿐. 그러니까 백명이 빨리 달리기를 한다면 나는 그중에서 40등쯤 하는 수준이지 꼴찌 수준은 아니다. 오래달리기를 한다면, 혹은 온종일 걷기를 한다면 성적은 달라질수도 있을것이다. 어쨌거나, 내 후배들은 내가 자신들을 배신하거나 사기쳤다는 듯이, 나를 악덕한 사기꾼 보듯 했다.
집안에서도, 나는 우리집안 형제들중에서 '몸치'로 통한다 (아니 과거에 그렇게 통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놀아도 혼자 돌아다니며 놀았고, 형제들이나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서 하는 놀이를 잘 하지 않았다. 뭐 다같이 모여서 뛰어다니며 잡거나, 고무줄놀이 하거나 그런 단체놀이를 잘 안했다. 나는 혼자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고, 멀리 멀리 내 눈에 보이는 가장 먼 곳까지 찾아가보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즐겨하는 스포츠를 잘 하지 못했다. 내가 멀리 멀리 혼자 쑤시고 돌아다니다 오면, 우리 엄니가 애 없어졌다고 식구들 풀어서 나를 찾아 돌아다닌적은 있지만, 내가 운동하다가 다친적은 없다. 운동을 안했으니까.
나는 그래서 대학들어갈때 체력장도 20점 만점에 18점 받았다. 백미터 달리기 최고기록은 17초이다. 우리언니는 사슴같이 몸이 날래서 운동을 배우면 금방금방 해냈고 잘했고, 그래서 운동을 좋아하시던 우리 아빠가 언니를 무척 예뻐하셨다. 원래 착하니까 어떤 어른도 언니를 예뻐했다. 나는 혼자 돌아다니는 괴상한 아이쯤으로 치부되었고, 별로 예쁨같은거 받지 않고 눈에 안띄게 혼자 속편하게 컸다. 다리 하나는 튼튼해서, 온종일 혼자 걸어돌아다녀도, 집에 오면 또 나가 돌아다닐 궁리를 했다. 심심하면 방에서 책이나 읽고.
사람들은 내 튼튼한 다리를 보고는, 나를 운동 잘하는 사람으로 혼자 판단을 한 후에
내가 달리기를 빨리 못한다는 이유로 혼자 실망했다.
그런 일이 잦다보니,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 실망이 나의 성격 형성에 한몫 한걸까?
나는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으로 정리해버렸다.
[나는 걷기를 아주 잘하는 사람. 달리기좀 못하면 대수인가? 나는 온종일 한달내내라도 걸을수있다.]
나는 이렇게 나를 정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며칠 달리기를 해보니, 나에대한 정의를 다듬어야 할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어릴때, 나는 달리는 일이 힘들었다. 숨차고 괴롭고, 빨리달리면 더 괴롭고. 그래서 안 달렸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달리는 일이 즐겁다. 숨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달리니 괴롭지도 않고 상쾌하다.
게다가 내가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장거리를 나는 달릴수 있다.
지금 내 또래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달리기를 한다면,
나는 선두그룹에 속 할 것이다.
나는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원래 내 이 튼튼한 다리는 달리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인데,
나는 대기만성형이라서 어릴때는 그 빛을 발하지 못했고
이제 내 그릇이 완성되어가면서
내 다리가 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 상상은 자유이니까.
인생은 살면 살수록, 그 깊이를 알수가 없어진다. 내가 이세상에 올때, 뭘 가져왔는지 가늠이 안된다.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지, 그 가능성을 얼마나 쓰고 갈지.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보게된다. 거울속의 내 얼굴에는 하루하루 주름이 늘고, 머리의 새치도 늘어나지만, 나는 아직도 매일매일 자라나는 한 아이를 그 속에서 본다.
고등학교 대학교 갈때 체력장 20점 만점 받은거 거의 불가사의라고 전해지지요..ㅎㅎ..
답글삭제100미터 19초였답니다... 저는...
하루키는 마라톤을 하는데 그이도 40넘어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레드팍스님..화이팅!!..^^
@사과씨 - 2010/08/18 06:34
답글삭제아 그래요?
하루키가 뜀뛰기 좋아한다는 것은 어디선가 들었는데
마흔 넘어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꽤나 고무적이군요.
어쩌면, 나도, 할수 있을지도 몰라.(불끈!)
아, 이 뜀뛰기도 묘한 매력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