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기'를 반드시 쓰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역사적인(!) 날이다.
오후에 출근했다가 중요한 일을 해치우고 오후 여섯시에 아이들을 픽업하여
집으로 가는데, 온종일 찌푸려있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가 어찌나 퍼붓듯이 쏟아지는지, 하이웨이에서 앞서가던 차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켜고 서행하다가 갓길로 가서 차를 세웠고,
그대로 진행하던 차들도 비상등을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비상등을 켰다.
비가 퍼붓는것이 어느정도냐 하면, 윈도브러시를 최고 속도로 해도
앞 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간신히 비상등 깜박이는 것으로 앞에 차가
있다는 것을 식별할수 있었다.
내가 미국에와서 8년을 살면서, 급작성 폭우나 태풍이 자주 오는 플로리다에서
머리가 컸는데, 거기서 5년을 살면서 태풍속에서 바다 수영을 하기도 하고
태풍속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고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루이지애나와 남부를 덮친 태풍 카트리나도 거기서 겼었건만
이렇게 무지무지한 돌발성 폭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눈앞에 퍼붓는 '물'밖에 안보이는거라~
아, 정말 바닷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면서, 내 인생 최대의 피서다! 외치고 싶었다.
조심조심 달려서 집에 오니, 베란다에 걸어놓은 빨래는 폭삭 젖었고...
이렇게 비오는 날엔
얼큰한 김치찌개에 두부 듬뿍 넣고, 막판에 라면 사리 올리고,
창고에서 꽁치통조림 꺼내서 그건 별도로 고춧가루 팍 풀어서 자글자글 끓이고
현미와 보리를 섞은 밥을 지어서
후루룩 냠냠, 먹는 것이지.
나는 거기에 곁들여서, 비도 오니까 술도 몇잔 때려주시고.
아, 이제 수박이나 먹으면서
먹다가,
잠이 오면 그대로 쓰러져 자고야 말겠다.
미국 온 첫해 83년으로 돌아가는군요.
답글삭제LAX 에 내린 6월의 남가주 온통 빨갛게 타들어가고....
110도를 넘는 뜨거운 더위에 'WARM WEATHER!' 라며 웃통벗고 들어서던 손님들의 순박함이 좋았던 그 시절....[바로 옆에 서부시대부터 있던 SALOON이 건재하고 팻말에는 미국 마지막 서부 결투가 19XX년에 있었던 곳(믿거나 말거나)이라는 남가주 깡촌 SAUGUS]
8월 중순 빗방울이라고는 한점 내릴것 같지 않던 남가주 한여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던 강도로...
아예 윈도우 와이퍼가 소용없어 길가에 주차
비상등켜고...
신기해 웃음면서 혼자 했던 말
"내가 한국에서 소나기를 가져왔나보네...
미국오니 역시 스케일도 켜졌어 ㅎㅎㅎ"
@미소영 - 2010/08/13 13:49
답글삭제우와! 83년이면 거의 30년가까이 되시는군요!
지금도 그런 폭우가 오기도 하나요?
정말 대단한 폭우였군. 사람들이 정말로 갓길에 서있어? 그거 불법 아닌감?
답글삭제@King - 2010/08/13 23:28
답글삭제아닐걸, 아마...
갓길에 줄줄이 서 있었어, 경광등 킨 채로.
나는 물속을 달리는 일이 재미있어서 '살살' 달리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차에 애들 다 태우고 '온가족이'
빗길에 무모했다는 생각도 들어.
그 사람들처럼 신중하게 갓길에서 얌전히
기다렸어야 했다는 반성중.
아마 '천재지변'상태이므로 갓길 정지를
권장할것도 같아.
불법이건 뭐건 경찰차도 다니기 힘든 상황~
미국생활 통털어 그런 폭우는 아직 못 겪었습니다.
답글삭제대단한 폭우였습니다.
@미소영 - 2010/08/14 13:17
답글삭제이렇게 *경이로운* 폭우가 내리면
안도현 시인의 싯귀가 생각나지요.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비가 왔다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이 대목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우리 삶이 젊고 풋풋 하던 시절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비나 눈 뿐인가요
진달래도 더 진하고
꽁치도 더 싱싱하고
기쁨도 슬픔도 더 생생했겠지요.
When it rains it falls
한세대 더 올라가면
어느 한해의 메밀꽃이 유난히 더 희고 밝았더라는 이 효석씨의 대사가 나오는거지요.
살아있는동안 세포 하나하나마다 생을 가득 느끼다가
세포가 하나하나 꺼지면서 우리들도 생명의 등불을 끄고
무대에서 떠나는거지요.
연애시절
답글삭제안도현 시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연애 연애 연애아니냐
나는 아내에 연애시절의 감정 그대로인데...
답글삭제아내는 50이 넘어서 까지 바라냐며 핀잔이니...
****
속아서 결혼한 것 확실합니다. ㅠㅠ ㅎㅎㅎ
젊은 때로 돌아가 좋은 시 마음 가득히 감상합니다.
답글삭제젊음의 강함과 극함과 진함이 좋습니다.
****
하지만 이효석의 메밀꽃이 지금의 정서에는 더 맞는 듯합니다.[젊어서도 그랬던 듯도하고...]
***
왜일까요? ...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가 떠오르니...
나이들어도 아직은 젊음에 대한 애틋한 돌아가고픈 마음이 있나봅니다.
이 마음이 있는 동안은 이름과 같이 'YOUNG'입니다. ^*^
*****
이민오고 3번째로 집을 얼마전 구입했습니다.[두번째 집을 팔아야하고 아파트 전전11년만에...]
아마도 남은 생을 안식처로 부족함이 없을 듯한 작지만 (1/2 ACRE ? 흐미)(건평 2200SQFT단층) <-- 아내와 나도 오해가 되는 작은 집입니다. (가격도 작[NOT '적' ^*^]은 $850/MOㅎㅎㅎ)
그래서 집에 정붙이느라 바쁩니다.
@미소영 - 2010/08/23 08:02
답글삭제아파트 전전 11년만에 '나의 성'으로 들어가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참 좋으시겠습니다. 집이야 크거나 작거나 오막살이거나 간에 식구들 모여서 즐겁게 밥먹고 웃고 그럴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뭐.
얼마나 좋으세요. 두분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미소영 - 2010/08/23 07:59
답글삭제저는 미소영님이 여성이신줄 알았는데, 남성분이신가봐요.
아니면, 부인과 부군께서 함께 쓰시는건가요?
나이가 중장년이 되면 남성과 여성의 호르몬의 변화로,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젊은 남성처럼 터프해지고 그렇다는 설도 있는데요. 뭐, 핀잔도 애정의 표시라고 생각하시고 소신껏 부인을 사랑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