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7일 수요일

봉숭아

 

 

7월 5일 밤 거의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봉숭아 꽃과 잎에  백반과 소금을 넣어 곱게 찧어 봉숭아 물을 들였다.

 

그 봉숭아 꽃은, 저녁때 오빠 내외가 일부러 송별해준다고 와서, 동생네 가족과 다 함께 임진강변의 어느 경치좋은 식당에 갔었는데 그 집 텃밭에 꽃이 실하게 피어있길래 '어둠을 틈타서' 꽃도둑질 하듯 따 모아 온 것이었다. 임진강변의 황혼이 봉숭아 꽃처럼 물드는 것을 온가족이 보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짐을 챙기고,

자정이 될 무렵에야 자리에 앉아 봉숭아 꽃물을 들일수 있었다.

비닐 랩으로 감싼 손가락을 무명실로 묶는 동안,

엄마는 어쩐 일인지 '노인 특유의' 심술스런 말투로 역정을 내셨다.

"이놈의 실이 자꾸 엉키네!"

엄마하고 나하고는 똑같이 왼손 세손가락에 물을 들였는데

엄마는 공연히 자꾸만 역정을 내셨다.

 

아침에 일어나 풀어보니 아주 연하게 물이 들었다.

한번 더 물을 들여야 봉숭아 빛이 나오련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엄마 엄마, 엄마는 내가 백반 사다 놓은거 있으니까, 재은이 데리고 한번 더 들여, 응?"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아이를 데려다가 봉숭아물 들이기를 한번 더 하라고 하자

엄마는 또 역정을 내셨다. "이런건 들여서 뭐한대!"

 

흐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봉숭아 꽃물이 들었다.

밀가루반죽을 하여 손톱 주변을 잘 감싸주면 손 살에는 물이 들지 않는데,

나는 밀가루 반죽을 하기가 귀챦아서 손가락에까지 온통 물이들었다.

하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손가락에도 붉게 물든것이 흐뭇하고 좋다. 정겹다.

 

이 봉숭아 꽃물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남는 날쯤, 그때쯤이면 첫눈이 오겠지...

 

그때쯤 엄마가 사는 나라에도 첫눈이 내릴 것이다.

 

봉숭아, 참 여리고 참 고운 꽃이다.

 

 

 

제목: 봉숭아
가수: 정태춘, 박은옥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메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댓글 2개:

  1. 어머님께서 딸 보내기가 싫으셨나봐요...

    저희 엄마는 저 돌아오기 전날 괜히 이모한테 툴툴 오빠한테 툴툴.. 그러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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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과씨 - 2010/07/08 10:38
    그렇죠...

    그래도 이번엔 사위가 함께 지내니까, 원래 딸보다 더 자상하고 상냥한 사람이라 엄마가 막내아들처럼 좋아하던 사람이니까, 그런대로 위로가 될거라고 보는거지요.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비로워요.

    우리 남편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그가 끔찍이도 아끼는 부인과도 떨어져지내는 운명을 타고 났는데

    그대신, 장모님이 해주는 따끈따끈한 새벽 밥상을 매일 받으니, 어머니가 못다준 사랑을 늦게나마 받는 셈이고,

    저도...나중에 효도해야죠 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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