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더라?
박사 종합시험 준비중이었으니까, 2006년 2월쯤이었나.
동네 카페에서, 역시 시험을 함께 치는 친구와 만나 스터디를 하다가 밤늦은 시각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올 때였다. (매일 산책나가는 동네 호숫가라서 차를 안가지고 갔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매일 건너던 건널목으로 길을 건너는 대신에, 미리 앞질러서 한적한 곳에서 길을 건너고 말았다. 그리고는 슬슬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충격음이 들리고, 문득 돌아보니... 내가 항상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바로 그 건널목 앞에서 차가 정면 충돌하여 그중 한대가 인도 위로 올라와 앉아있었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곳은 내가 늘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곳이었고,
만약 그날도 역시 그 건널목에서 초록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저 차 아래에 납작 깔려있었을 것이었다.
그날 나는 왜 길을 미리 건너고 싶었던 것인지...
그 후에도 호수에 산책을 나가면서
그 사거리 건널목 앞에 서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과연 살아있기는 한 것인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 ***
오늘은 모처럼 대략 24일만에 학교에 출근을 했다. (찬홍이를 데리고.)
오후에 오피스를 나와 지홍이를 픽업하여 세식구가 집으로 향하던중
내가 평소에 안하던 짓을 저질렀다.
495 North 로 진입하여야 하는데, 뭔가 딴생각을 하다가 반대방향 South 로 진입을 한 것이다.
이런 멍청한 일을 저지르다니! (더위 먹어서 그런거야...)
나의 멍청함을 탓하며 다음 출구로 나가서 다시 495 north 방향으로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탔는데 도로가 통제가 되는지 오차선 하이웨이가 하나로 줄어들어서 우리들은 조심조심 서로 양보하며 길을 통과를 해야 했다. 가다보니 길이 줄어든 이유가 밝혀졌다. 다중적인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하이웨이의 양편으로 파편이 튀고, 도로의 양편에 사고차량들과 이를 수습하기 위한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들이 즐지어 서있었다.
그리고 얼핏, 사고를 당한 사람이 도로위에 반듯하게 뉘어져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차가 깨졌거나 혹은 피를 흘린 자국을 본적은 있지만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도 그 광경을 봤는지 암담한 표정이었다.
부디 무사하시길...
하이웨이를 빠져나오면서 문득 드는 생각,
내가 하필 오늘 오후에 생전 저지르지도 않았던 멍청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고속도로 입구에서 정반대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온 이유는?
만약에 평소대로 내가 정방향으로 하이웨이에 진입하여 그 흐름속에 있었다면
혹시나 지금쯤 저기 길위에 나 역시 누워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맞을지 알수 없다.
죽음이 언제 닥치더라도,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 ***
나는 가끔 나 혼자 정글속을 떠도는 들짐승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세상은 정글이고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도사리고 있고
그래서 더욱 스릴 넘치고...
어쨌거나, 나는 아주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믿기로 하자.
*** ***
새벽 한시반.
시차가 극복이 안되는지 며칠째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있다.
한국의 P선생에게 전화를 해보니
토요일이라서 (토요일 호우 두시반) 일찌감치 동네 극장에 나가 장모님과 영화를 한편 보고, 지금 장모님이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그거 사 먹는 중이라고한다.
전화기 너머의 엄마의 목소리는 힘차고 명랑해보였다. 아주 기분이 좋으신가보다.
엄마는 나와 비슷한 용모에다가 성정도 나와 비슷하여
호기심도 많고 세상 구경도 좋아하고 그런데
층층시하에서 엄한 남편과 살면서 많이 짓눌린 인생을 살았다 (대부분 그러하듯).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내 인생의 파트너를 - 우리집 남자들과 정 반대 성향을 사람으로 정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위는 상냥하고 자상하고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것이 한결같다.
그의 한결같음은 죽을때까지 지켜질것이다.
그러니까, 사위가 장모에게 하는 행동은 늘 오늘과 같을 것이다.
그는 주말에 나와 살던 방식대로 그의 장모님과 지낼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함께보고
미술관에 함께 가고
공연을 보러 함께 다니고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가고
이런 것들
나와 평소에 하던 것들을 그의 장모님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엄니는
다 늦게 이런 자상한 사위의 재롱을 즐기며 노년의 한때를 웃을수 있을것이다.
이들도 어떤 인연으로 지금 그자리에 손을 잡고 서 있는 것이리라.
나는 단지 이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인것인지도 모른다.
아들에겐 아들의 몫이있고
딸에겐 딸의 몫이 있듯
며느리에게
사위에게
각자의 몫이 있다.
엄마는 복이 많은 분이다.
현재 대략 30년 년하의 '젊은이'와 동거중이시다. 하하하하.
(그 젊은 동거인을 내가 제공했으니 나는 효녀라고 할만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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